Ⓡ 4장. 많이 아픈 찔러보기. (1)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Ⅰ
아샤르 의회는 분명 국민의 대표이지만 그 실권이 강하진 않다. 응당 가져야 하는 독립적인 입법권 대신, 법안을 제정해 황제에게 상신하고 황제의 법안에 대해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하는 것이 전부다.
즉, 옵서버 역할에 특화되어 있다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입법부의 이 허약함은 터무니없지만, 이 또한 아샤르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화정이 아닌 입헌군주제이며, 또한 훨씬 더 민의를 잘 대변할 수 있는 로사가 있기 때문이다.
의회의 정원조차 원래는 고작 100명. 이마저도 채워지지 않아, 오죽하면 무작위 추출하여 강제로 맡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당조차 미미한 편인데, 이를테면 공화당이 있어봤자 반체제일 뿐이고, 노동당은 인간의 노동이 대부분 사라진 사회에선 의미가 적다.
평민들의 입장에서도 의회란 다소 격이 낮다. 정치에 관심은 있으나 관료가 될 머리는 안 되니, 대신 선거를 통해서 정계에 진출하고픈 이로 채워지기 십상이었다.
다만, 이렇게 허약한 하원이 큰 파워를 발휘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 바로 황제에게 불신임을 제의하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황실과 정부를 도저히 못 믿는다는 것이니, 이 경우에는 황제도 해당 인사를 교체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하원과 상원이 연대하여 황제 불신임을 제출하고 국민투표에 붙여 7할이 찬성할 경우는, 자칫 황제 퇴위에 왕조가 교체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그러니 역대 황제들도 가능하면 의회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제 8왕조 마지막 황제이자 선황이었던 코에카 황제는, 단 한 번 이 황권을 썼다가 불만세력에 의해 내전이 터지는 불상사를 겪었다. 당시 의회가 불신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병상의 황제에 대한 배려도 있었지만, 불신임 이전에 내전이 터져버린 것도 크다. 이후 소요가 심각해졌다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칼스 황제는 아샤르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시기와 정통성과 실적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강력한 권력자다. 너무 민감한 문제가 아니라면 황권은 대부분 통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슬슬 뭔가 터질 때가 되었지?”
황제의 자평에 총재도 동의했다.
“그렇겠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같이 살다보면 미운 점이 보이기 시작할 테죠. 몇몇 징후도 있고요.”
황제가 레고 놀이로 비유했듯, 쌓고 짓고 고치는 재미가 쏠쏠한 관료들과는 달리, 아샤르 순혈 국민들의 불만 수치는 조금씩 쌓이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우선 공중도시다. 각 영역마다 100만 이상의 추가 인구가 들어옴에 따라, 심한 곳은 원래 거주자와 이민자의 수가 역전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서로 워낙 다른 삶이었으니 문화 충돌은 반드시 생긴다는 점이다.
원거주민인 아샤르인들의 문화도 지구인들의 눈에 보면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또한 합리적이라 쓰고 직설적이라 읽는 언어방식은 듣는 이가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보다 훨씬 다양성을 갖춘 지구식 문화와 생활방식은 순혈 아샤르인들도 질색하는 부분이 많았다. 좁은 사회, 폐쇄 환경이라는 특성에서 살아온 아샤르인들의 눈에 비친 지상인은 공중도덕의식이 심각하게 낮았다.
지금껏 조용히 살았던 도시가 갑자기 원숭이 우리가 되었다, 그리 느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왔을 총재가 한숨을 쉬었다.
“일단 교육성에서 방안을 짜고 있습니다만...”
이는 성인 및 15세 이상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다. 단기과정이나마 서로의 문화와 차이점을 충분히 교육시키겠다는 것이다.
“차츰 나아지겠지. 이제부터 우리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된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격리나 차별은 불가하다. 대원칙에 어긋나.”
“네. 다만 교육을 이수하지 않거나, 일정 이상 법을 위반해 벌점이 쌓인 이들은 공중도시 거주권을 빼앗는 방안도 있고요. 그럼 더 열심히 듣고 익히려 하겠죠.”
“방안이 완성되거든 짐에게 올리라 이르라. 하지만 나쁜 사례만 두드러지면 안 돼. 예의 축제 준비는?”
“전국 요리 대전을 필두로 해서, 몇 가지의 관제 행사가 준비 중입니다. 준비 자체는 순조롭습니다.”
“차질 없이 하도록 하고... 짐이 로사와 토의한 결과, 지상에서 가져온 것 중 아샤르인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들도 선별했다. 적극 반영하도록.”
지상에는 야만적인 것만 있다. 그런 인식을 빨리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다행히 좋은 징조도 있었다.
지상의 다양한 술과 먹거리는 아샤르인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색다른 패션과 음악 및 미술도 충분히 흥밋거리가 되었다.
지상의 관광지도 마찬가지. 약간의 두려움과 큰 호기심을 가진 아샤르인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그들의 인터넷인 지드팃도 이미 정보공유와 교환의 장이 되었다.
“시누아즈리와 자포네스크, 한류를 모방한다. 문화는 서로의 거리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편이 될 테지.”
아무래도 지배 권력이 아샤르이니, 앞으로의 문화도 그들이 주류가 된다. 하지만 지상의 것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의 고유문화가 침해되겠지만, 또한 영원히 불변하는 전통도 문화도 없다. 섞이다 보면 또 하나의 고유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각 부서 산하의 위원회는 몹시 바빴다. 내무성 문화교류위원회의 경우, 초빙된 신영토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로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문화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내놓았다.
재무성에 소속된 경제계급평가위원회에서는 다소 불합리하게 책정되었다 여겨진 일부의 경제계급, 즉 아샤르에서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 낮게 책정되었던 직업, 대표적으로 종교인에 대한 계급 책정을 다시 하는 방안이 검토되었다.
물가책정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통해 로사가 지정하고 고정해버린, 하지만 사람들의 불만이 제기된 물가영역에 대한 재조정안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이렇게 융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도, 아직까지 아샤르인들의 직접적인 불만을 풀어줄 방법은 시행되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전쟁에 이겼는데 황제가 고개를 숙였으며 동면에서 깨어나니 도시는 원숭이 우리가 되었다. 더불어 무례한 지상인들이 감히 황족을 구설수의 도마에 올렸으며, 저질 정치가와 종교인들이 감히 황제를 귀찮게 하는 셈이었다.
내전 이후의 혼란에 겁을 먹고 안정의 시대를 기다리며 잠들었던 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대는 도리어 나빠진 셈이다.
그러니, 지금의 호기심이 지상인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관련해서, 하원의 현재 구성은 아샤르인 100명에 비해 지상인이 200명이다. 그리고 제 버릇 개 못주듯 그들은 어느 사이에 파벌을 만들었다. 의회를 장악한다면 황제에 대한 견제가 되니 나름 열심이다.
“자기들 딴에는 은밀하게 한다고 하지만, 파악한 바로는 이미 숫자가 상당합니다. 그저 반대부터 하고 볼, 그런 버릇없는 인간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차후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여기에 예전보다 시끄러워졌다, 불편해졌다는 우리 순혈들의 불만이 융합한다면, 장차 폐하의 치세에 큰 누가 되겠지요.”
총재의 당연한 걱정에 황제는 혀를 차면서도,
“파벌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네.”
“하지만, 실은 두 위원장부터 그리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쌓여온 인맥은 무시할 수 없거든요.”
“그 참. 지난번 그렇게 당부했건만...”
특별히 남궁에 엔도와 정, 두 위원장을 불러 식사도 같이 하고 사우나도 즐기면서 태도를 누그러뜨릴 것을 당부했지만, 역시 큰 소용은 없었나보다.
“지난 세월의 정치 세력들이 하원에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거기다 성은희 건으로 혼쭐을 내었으니 앙심이랄까요... 그런 게 눈에 보입니다.”
“할 수 없다. 그래도 하원 및 자문위원회의 모든 것은 생방송. 거기서 짐이 뚜렷한 명분을 밝히고 저들의 오류를 충분히 지적한다면, 그 뜻을 알아주는 이들이 저들을 다시는 뽑지 않을 테니... 임기가 끝나는 4년 후를 기약하자고.”
충분히 융화가 되었다면 나중에는 자문위원회를 축소시킨다. 어차피 전관예우의 의미가 컸던 조직이다. 하원도 다음 선거에서는 물갈이가 되는 것을 물론, 함부로 파벌을 만들어 꽁수를 부리다가는 들키는 순간 뭇매를 맞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난 세월 쌓아온, 정치적 기술이라 쓰고 술수라 읽을 만한 것들은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갖은 혜택과 강력한 기술문명의 이기에 지상인들 상당수는 감탄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샤르는 아직 침략자이자 그들의 역사를 단절시킨 지배자다.
저들이 파고들려는 점은 바로 이 마음일 것이다.
“파악 가능한... 하원에서 반항적인 세력들의 구성은?”
“윤곽은 뚜렷하지 않아도, 일단 구 일본과 한국의 집권 세력이 많습니다. 좋았던 시절이 사라진 만큼 이를 갈고 있는... 아마 필두가 되는 사람이라면, 일본 지역에서는 와타나베 의원과 스가 의원에 사이토 의원, 황령에서는 김정수 의원과 윤창환 의원에 심정호...”
“그 녀석...”
총재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황제는 혀를 찼다.
역시 저번 성은희 사건으로 공개 모욕을 당한 것이 앙심을 품은 이유인가. 아니, 원래 그랬나.
“그들이 지상인 의원들을 모두 규합할 경우, 하원은 불만 세력에게 넘어가는 셈이죠. 그러기에 의석수를, 아샤르인 숫자와 동등하게 100명으로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알다시피 자문위원회에서 요청한 사항이다. 상원에 아직 지상인이 없는 만큼 그 숫자를 요구해왔고, 경제계급 및 교육과 종교개혁에 입을 다물어주는 대가인 셈이지.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니 인구비례는 당연한 거고... 그러니 저들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의식 있는 지상인 출신이 적어도 51명이 되어주길 기대할 수밖에. 또한 설령 하원이 넘어가더라도... 짐은 옳다고 생각한다면 지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원의 우리 출신들에게도, 가능한 한 충분히 접촉해서 주의하도록 의식시키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의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들보다 순진할 테니까요.”
총재가 물러가자 황제는 피곤한 어깨를 주물렀다. 오늘의 업무량도 상당했고, 이 모든 것을 그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벌써 지쳐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부 행정을 맡아주는 로사, 그리고 각 왕국의 왕들이 중앙정부의 지침에 맞추어 같은 작업을 행하고 있다. 격무였지만 다행히 사람이 버틸만한 수준은 되었다.
이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뒤로 미룰 수 없는 가디언즈의 일까지 겹쳐, 차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황제가 자리를 비운다는 그 자체가 이미 불안의 씨앗이므로, 엉뚱하고 불안하긴 해도 대역이라도 앉혀놓아야 약간의 행동의 자유라도 생길 판이었다.
그동안 가르쳐놓은 것도 있다.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뭐, 잘해 내겠지.
그는 큰 기지개로 피곤함을 몰아냈다.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위로 좀 해주라... 오늘도 악다구니를 쓰는 바보들을 상대하고 왔다고...”
황후궁에 오자마자 아내의 무릎 신세를 지며 쓰러진 남편. 그 등을 아내가 토닥였다.
“제가 돕겠다고 했는데도, 고집은 여전해요...”
“네 몸 문제에 집중해야지.”
그녀의 치료는 일반적인 의학적 처치를 동반할 수 없다. 분명 앞으로도 상당한 고통을 겪어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묵묵히 참을 예정이었다.
“그거... 아직은 없지?”
황제의 걱정에 세리사는 낮게 웃었다. 미약한 떨림이 베고 누운 무릎을 통해 전해졌다.
“없어요. ...하지만 역시 무섭네요.”
“그래... 첫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부디 내가 없는 동안은 괜찮기를. 앞으로 10년. 루이코가 좀 더 익숙해지면 외부 행사는 맡기고... 유키나도 내궁 일은 도우라 할 거야. 절대 무리하지 마.”
유키나는 여왕이라 서궁에도 문제없이 들락거릴 수 있다. 이 점은 몹시 다행이다.
“...알았어요. 그런데... 언제 떠나시게요?”
“모레. 준비는 되었지만... 그동안 잘 부탁해.”
“네. 참, 차비에게는 말씀하셨어요? 놀라지 않던가요?”
“했지. 하지만 뭐랄까. 그 녀석도 슬슬 나라는 인간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
“하지만 요즘 차비는... 제게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요? 묘하게 거리감이 드네요.”
“녀석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는 거야.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고... 녀석이 움츠려 들더라도 네가 조금 더 잘해주는 것으로 상쇄하면 될 거야.”
“그럴게요.”
천천히 일어난 그는 그녀를 포옹했다.
“미안해. 정말 후궁은 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또 인연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나봐.”
“...제가 질투한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루이코가 아이를 가진다면...? 그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해한다면... 그걸 바라보는 네 마음은 괜찮을까?”
“자신 없네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도 제 아이에요. 그리 생각할 것이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알아요. 아마, ...차비에게 뭔가 말씀하셨겠죠? 그 때문에 차비가 최근 제 앞에서 잘 웃지도 않으려고 조심하는 거겠죠? 그 의지 강한 아이가 어지간한 일로 동요하진 않을 테니까.”
“...하여튼 문학부 아가씨... 표정 관리가 참...”
“반대로 제게도 말씀하시고 싶지만... 차마 할 수가 없는 거겠죠. 아마도 장래의 황태자의 모후. 싫어도 내궁 안에서 파벌이 생길 것이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두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쓸데없는 일에 말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런 거죠?”
“정확하다...”
아무리 그라도 세리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는 힘들었다.
그녀는 절대 멍청하지 않으니, 어지간히 알아서 하리라 생각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너를... 내게 제위도 뺏기고 수치를 감내하며 팔려오듯 시집와서도 배시시 웃는, 그런 바보로 보는 시각도 있어. 속사정을 모른다면 쉽게 재단하는 것이 사람이고... 혹 억울하지 않니?”
“괜찮아요. 사실 아직도 제게 뭔가 기대하는 이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런 찔러보기는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하나도 안 아파요. 왜냐하면...”
그를 안는 팔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저는 가장 큰 것을 얻었으니까요. 당신과, 당신이 꾸는 꿈을...”
“가르쳐준 것은 다 외웠나?”
“네.”
“그럼 됐어. 나머지는 유키나가 도와줄테고...”
황제는 가면과 가발을 쓴 이영을 보며 쿡쿡 웃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웃기는군. 물론 짐이 생각한 짓이지만...”
“폐하께서는 역사에 괴짜로 기록될 수 있어요.”
“그러니 역사에 드러내면 안 돼.”
거울을 보니 분신술이라도 쓴 것 같다. 체구도 황제가 이영의 영자골격을 조정하여 맞추었다. 또한 성대를 강제로 조정하는 팔찌의 언어번역 기능을 이용, 황제의 성음(聲音)과 동등하게 조정했다.
이영도 반년간 아샤르어로 말했었고 나름 익숙해졌으니, 발음 문제는 바로 옆에서 아주 세밀하게 듣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어 방으로 들어온, 세리사와 유키나, 루이코도 한참 웃었다.
“자, 누가 가짜일까요?”
약속한대로 두 명이 동시에 말했지만,
“이쪽...”
세리사의 손가락에 이영이 움찔했다.
“어찌 아셨습니까?”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서.”
황제를 돌아본 이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초장부터 실패 아닐까요?”
“루이코는 모르겠지만, 세리사와 유키나는 당장 알 거다. 하도 오래 보고 살았기 때문에.”
“에... 저도 알고 있었다고요.”
어설프고 뒤늦은 항변에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넌 아직 멀었어.”
입술이 삐죽 나온 루이코에게 웃어 보이고 다시 들어갔다 나온 황제는, 이번에는 간편한 지구 복장으로 갈아입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 때 이후 가면은 참 오랜만인데...?”
거울을 보며 웃은 그에게 세리사가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팔찌는 가져가시죠?”
“그래. 하지만 연락이 닿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아무튼 한 달 뒤에 보자. 잘 부탁해.”
모두와 인사를 나눈 후, 공간이동으로 그가 사라진 곳에는 빛의 가루만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황후가 쿡쿡 웃었다.
“그럼 한 달 황제 폐하. 돌아가셔서 침수 드시지요.”
“네. 잠은 안 오겠지만...”
“어허.”
유키나가 주의를 주었다.
“황제는 국내 어느 누구에도 존대를 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지만, 나도 고생이다. ...서로 주의하자.”
“네...! 가 아니고... 오냐?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흠흠. 이 시간부터는 존대하지요. 폐하, 주의를...”
어색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여왕은 헛기침을 연발했다.
시녀와 론비샤를 모두 물린 늦은 밤중의 북궁. 이영은 침대에 누웠지만 줄곧 눈이 말똥거렸다.
날이 밝으면 여러 사람을 겪어야 하겠지. 게다가 밤에도 나름 곤욕으로, 혼자서 편안한 수면을 취할 날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비록 한 달이긴 해도 일생 다시없을 경험을 하는 셈이다.
...가능하면 즐기도록 하자.
하지만 그는 밤새 몹시 뒹굴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이 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이 보실 것은 평민회인 하원의 특성과 현재 상황, 그리고 황후를 보는 세간의 시각의 일부... 정도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파트는 이영의 황제 흉내, 그리고 축하할 경사가 하나 있네요. 그러나... 못된 작가는 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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