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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재입니다.

삼국지 유융전 - 한의 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흐후루
그림/삽화
문피아 제공
작품등록일 :
2014.06.05 20:50
최근연재일 :
2016.04.21 20:20
연재수 :
1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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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8
글자수 :
1,484,072

작성
15.01.15 20:00
조회
2,572
추천
40
글자
22쪽

익주 - 백제(도(度))

재밌게 읽으셨으면 해요. 대체역사 소설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DUMMY

익주 - 파동군 백제성


결코 작지 않은 배를 타고 거대한 장강을 거슬러 오르며 익주와 형주를 잇는 경관을 감상하는 인물의 얼굴에는 묘한 설렘이 가득해 성밖을 처음 구경하는 손 귀한 집의 아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배가 선착장에 닿아 선원들과 상인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기백님!”


하고 사람찾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적이 부르는 소리에 선상에서 목을 빼고 둘러보는데 얼마 두리번 거리지 않아서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 코, 입이 제 부친을 닮아 얼굴에 살이 좀 오르면 그와 똑같으리.


“하하하. 조카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나는 물론 별 일 없었네. 다만 근년에 익주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연신 들었던 바. 다행히 끝이 좋았다지만, 자네의 부친이나 강녕한가?”

“예. 걱정해주신 덕에 가내외로 사방이 모두 평안합니다. 오히려 근래에는 초탈(超脫)하신 듯 웃음도 많으시니 자식된 도리로 차라리 잘 된 일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젊을 적 자네 아버지의 권력 욕심이 흙탕물을 마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거늘. 포기했다는 자네의 말이 농처럼 들리는데.”

“익주의 권력은 오로지 한 분에게 있어 견고하니 욕심이 많다 하더라도 어찌 가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크게 반역했는데도 주인의 은혜를 입어 오히려 없는 목숨 챙겼으니 천하에 창피해서라도 오늘의 평화에 만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적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허흠의 손을 잡았다.


“아들이 아비보다 낫네! 그 친구에게는 참으로 잘된 일이야.”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허흠은 사적으로 방문한 이적의 행동과 말투에서 방문의도에 맞지 않는 거리감을 느꼈으나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했다.

이적이 명성에 걸맞은, 자신이 어릴 적 보았던 인물이라면 자신의 때 이른 초청에 생각 없이 배를 탓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허흠은 장송이 누차 당부했던 유융에 대한 칭찬을 쏙 빼고 백제성의 경관과 형주의 정세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적이 은근히 찾고 사군이 당당히 보여준다면 궂이 먼저 서두를 필요가 없었으니.


----


이적이 형주의 급한 사정을 뒤로 물리고 허흠의 초청에 응한 지도 어느덧 닷새가 흘렀다.

허흠의 말과 대접이 은근하고 정중해 마음은 편했으나 정작 당장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익주의 중요한 인물들은 만나지 못했으니 배불리 먹고 거하게 취해 만족스러운 와중에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허흠이 이적에게 사람을 소개시켜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대다수가 허흠의 또래로 이적은 익주의 관직에 나온 인물들 중 젊은 인재가 많음에 일순 놀랐으나 그들의 식견과 가문이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사실을 알자 한편으로는 익주자사의 수완과 안목이 높게 보여 찝찝하게 좋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익주자사는 형주자사가 아니므로.


“숙부님!”

“오, 조카님은 중임을 맡아 크게 자랑하더니. 어찌 관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짧은 것인가?”

“집에 귀한 손이 있다 자랑했더니 제 상관이 귀한 분을 친히 만나 뵙길 원하는데 어찌 제가 만사를 제칠 정도로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 윗사람이라, 숙부님께서 조카에 대한 말을 곱게 해 출세에 도움도 주셨으면 합니다.”

“암! 그대의 능력이면 추천해도 내 양심에 한 치 아픔이 없지.”


허흠의 안내를 따라 적당히 고급스러운 집에 도착하자 이적이 내심 반겼다.

단순히 위치가 높거나 총애만 내세우는 인물이 아니라 무슨 능력이 제대로 하나는 있는 인물의 집 같았던 것이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이를 물질로 판단하자니 스스로 속물 됨에 혀를 찼으나 고대하던 일이라, 이적의 얼굴은 가볍게 웃고 있었다.


“자네, 조카님. 잠깐.”

“왜 그러십니까? 혹 오라, 가라함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아닐세. 다만 내가 누굴 만나는지 알아야 인사를 편히 할 수 있지 않겠나? 혹여 무례라도 저질러 형주와 익주의 교통에 소금을 뿌리게 된다면 어디 가서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아! 너무 즐거운 바람에.”

“아닌 척하더니 피는 못 속인다고 역시 허정을 닮아 출세에 웃고 우는구먼.”

“칭찬 감사드립니다.”


허흠이 말하길 집주인은 익주자사를 근거리에서 모시던 인물로 몇 달 전까지는 익주 일(一)공자와 이(二)공자의 큰 스승이었으며 근래 형주가 소란스러워지자 혹 피해를 입는 일이 생길까 저어한 익주자사의 명에 의해 백제성으로 중임을 맡아 새로이 옮겨온 인물이라 했다.

비록 형주의 정치적 소란에 의해 탄생한 임시직이나 파동군과 파서군, 탕거군에 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이 막강하며 익주자사의 총애와 신임이 굉장히 사사로워 인근의 토호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 했다.


“그래서 중요한 성명이 무엇이라고?”

“아, 출신은 저 병주 태원군이나 임관은 익주 광한군에서 했습니다. 성명은 학소요, 자는 백도라 하며 무예가 뛰어나고 병법에 밝아 군무에 능한 분이십니다.”

“알만큼 알았으니 이제 들어가세.”

“예, 숙부님.”


허흠의 서론이 긴 것에 이상함을 느낀 이적은 자리에 앉은 지 꽤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주인과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한 일을 핑계로 자리를 떠 오지 않는 허흠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이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적을 떠보려다 내가 낚이는 수가 있었으니 자신도 결코 낮은 관직에 앉지 않은 사람. 잠깐의 방심에 말려들어 형주의 기밀이 세어나갈 수 있음이었다.


“귀인을 초청해두고 사정이 있어 빨리 걸음하지 못한 점, 사죄하는 바이오. 나는 익주자사님으로부터 익주 동북의 도독(都督)자리를 수여받아 일방의 군마를 맡고 있는 학소라 하오.”

“아, 저택 후원의 아름다움이 빼어나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형주 남군의 한직을 맡고 있는 이적이라 합니다.”

“널리 빛나는 공의 이름을 듣고 항상 흠모했으나 길이 멀고 일이 많아 늘 바라기만 했는데 오늘날 이리 인연이 닿아 뵙게 되니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소.”

“오히려 별 볼일 없는 제가 허명에 의지해 익주의 거물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저야말로 즐겁고 영광입니다.”


허례허식이 몇 번이나 두 사람사이를 오가는 동안 조용한 발걸음이 몇 번이고 오가며 후원에 상큼한 주향(酒香)을 뿌리고 맛난 육향(肉香)을 채웠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 되어 내심 허전했던 이적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는데 학소가 권하지 않고 근 시일의 형국에 대한 말만 길게 나누니 기어이 한시진이 더 흘러 참지 못한 이적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이에 이적이 얼굴을 붉히며 농으로 채워 가벼워진 목소리로,


“제 눈이 보기에 날이 맑고 귀인을 만나 기분이 좋지만 제 배만은 항상 맑은 날 이후의 폭우를 두려워해 때때로 난세의 혼란함을 부끄럽게 표현하곤 한답니다.”


이에 역시 음식을 두고 손님을 방치한 학소가 미안한 기색을 담아 진심 가득 채운 무거운 목소리로,


“내 귀가 귀한 목소리와 뜻을 담아 간만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 혀가 이기적이라 몸에 좋은 음식과 난세에 좋은 말씀을 갈망해 귀인의 주림을 눈치 채지 못해 멈출 줄 모랐으니 송구하오.”


학소가 주변에 일러 식은 음식을 물리고 덥힌 음식을 다시 내어서야 이적은 마침내 향내 나는 나물을 집고 부드러운 고기를 씹을 수 있었는데 학소가 무거이 내뱉은 말에 마음은 과히 편하지 않았다.


“하하, 허명만 가득하고 허례를 할 줄 아는 서생이 어찌 높고 귀한 분 앞에서 난세에 좋은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이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여직 기쁘기 그지없는데 사양하지 말고 좋은 소리로 이 몸의 앞을 밝혀주시오. 선생을 만나 한 수 배우지 못하면 세상에 부끄럽소.”

“하하하, 식견이 짧아 공맹의 먹물 흉내뿐이 내지 못하니 듣고 노여워하지 마시길.”

“고이 담아두고 나날이 꺼내어 빛내겠소.”


이적은 대접이 너무 융숭해서 까끌거리는 손목을 상 아래로 내리고 입을 열었다.


“천하가 혼란할수록 인간의 도리가 사라지니 난세에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제 자리에 어울리는 도리를 지키고 도리와 타협하며 도리와 공생하는 길 뿐입니다. 학자는 배움이 있어 도리를 아니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이를 지키기만 하면 되고 관료는 현실이 있어 뜻을 펼쳐야하나 유혹이 많으니 도리와 적절히 타협하면 되며 제후는 야심이 있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여 실수하기 쉬우니 도리와 공생해야 합니다.”

“허면 도리란 무엇일까?”

“배운 것 없는 백성에게는 식량과 옷가지요, 가축과 농지이며 배운 것 있는 학자에게는 보는 글이요, 입에 담는 말이며 실천이고 권력을 지닌 관료들에게는 높은 것에 거스르지 않으며 낮은 것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면 제후의 도리는 무엇인지?”

“........ 제후는 난세를 만나 무궁한 야심을 품음에 그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여 웅대한 꿈만 품으니 한치 앞의 현실을 외면해 쉬이 넘어져 체면(體面)을 구기고 옳은 소리와 개소리를 구별하지 못해 능히 휘둘리며 제 입맛에 맞는 것만 찾아 남을 쉽게 욕보이고도 수치를 모릅니다. 즉, 제후의 위기는 다 이 때문입니다. 헌데 학소 공은 어찌 제후의 도리마저 궁금하십니까?”


학소가 짐짓 사양하는 태도를 취하며 변명했다.


“다 깊이 배워 주군을 위해 쓰고자 함이오. 어찌 사사로이 딴 마음이 있을 수 있겠소? 다만 본인이 학자이자 관료인 바, 학자의 도리가 인상 깊고 마음에 와 닿아 다른 것이 궁금함이오.”

“배운 이는 배우지 않은 이를 위해 꺾임 없이 실천함이 제일 중요하지요.”

“동감이오. 헌데 왜 제후의 도리를 다 설명해주지 않소? 듣기만 해도 두려운 위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학소는 생각이 짧아 주석이 따로 붙지 않은 책은 다 보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소.”


이적이 잠시 차로 입을 헹궈 주향을 씻고 한숨을 내쉬어 말을 이었다.


“제후가 위기를 겪는 이유는 도리와 공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음.”

“제후에게 도리란-, 도리란 백성이요, 학자이며, 관료입니다. 백성의 입으로 느끼고 학자의 귀로 듣고 관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제후의 도리입니다.”

“어려워, 어려워. 나는 잘 모르겠소.”

“....... 백성이 땅을 파지 못해 입이 비어 굶주리면 나라가 위태롭고 학자가 배운바에 너무 얽매여 귀를 닫고 올바르게 실천하지 못하면 관이 궁핍해지며 관료들이 위만 보고 아래를 살피지 않으면 법이 한쪽으로 치우쳐 그 숭고한 뜻을 바로 행할 수 없습니다. 허니 이 세 가지를 모르는 군주는 경계할 수 없고 경계할 수 없는 군주는 그저 궁 안에 갇혀 스스로에게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마시다가 끝내 현실과 동떨어져 역사 속 비난받는 망국의 제후가 되는 것이지요.”

“허면 어떻게 백성의 배를 채우고 입히겠소?”

“순서가 그릅니다. 어찌 제후가 근처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먼 곳을 다스리려 걱정 한단 말입니까? 어리석은 물음입니다.”

“듣고 보니 그러하오. 허면 어찌 관료들이 아래도 보게 할까?”


이적이 아름다운 술잔에 눈을 머무르게 하고 입을 열었다.


“제후가 잘나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둘 수 있어 걱정이 없고 제후가 평범하면 모든 관료들의 입을 빌어 배우고 눈을 빌어 항상 감시할 수 있으며 제후가 못나면 잘난 가문의 관료를 머리로 둔 당파를 만들어 서로 견제하게 둘 수 있다면 능히 크고 작은 성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허면 어찌 학자들이 실천하게 할까?”

“학자는 관료가 아닌 바, 실력이 입증되지 않아 제후가 듣기만 하고 뒤돌아선 무시하기 쉬운데 일단 현명한 방법은 본인과 관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무난한 방법은 학당을 세워 그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이며 소소히 소통하는 것이며 허술한 방법은 낮은 관로(管路)를 열어주어 입신의 꿈을 꾸게 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변방의 주와 군을 다스릴만합니다.”

“백성은 어찌 굶기지 않을까?”

“백성은 어린아이와 같아 작은 일에는 감사하고 나서며 서로 뽐내지만 크고 복잡한 일은 항상 외면하고 불안해해 일의 경중과 대처를 모르니 난세와 태평을 가리지 않고 몇몇 무리가 득세하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 예로 오두미교가 득세했던 것을 잘 아시지요?”


학소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었다.

이 모습에 이적이 못마땅한 듯 술잔에 손가락을 담그고 맑고 달큰한 술을 방울방울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하책(下策)은 제후가 마음대로 법을 바꾸며 만들어 백성들을 강제로 땅에 잡아두고 학자들로 하여금 이를 선전하며 관료들로 하여금 매서운 법으로 얽매는 것입니다. 세금을 걷는 관료와 위대(偉大)하여 범접할 수 없는 제후만 있을 뿐 누가 감히 지엄한 법을 어기겠습니까?”

“허나 법에는 눈과 귀, 손이 없으니 음지에 위협을 알 수 없고 죄인들이 양지로 나오면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그곳에 기울어 제후가 기댈 곳이 없음이라. 특히 관료들의 위세가 너무 크겠네.”


학소의 말에 조금 만족한 이적이 술잔을 휘젓던 것을 그만두고 손가락을 튕겨 술을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중책(中策)은 제후 스스로 사치해 신분의 고하와 지역에 상관없이 물산(物産)과 이익을 교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흉작(凶作)에 세금을 내려 터무니 없는 값에 자식을 파는 일이 없고 학자들은 책을 무르고 당 밖으로 나와 함께 근심하며 관료들은 변화하는 백성들의 사정에 익숙하니 융통성을 발휘할 것입니다. 다만 제후의 사치에는 끝이 없어 위엄(威嚴) 있는 제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허나 부는 항상 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몸집이 비대한 자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제후를 대신해 은혜를 베풀고 제후에 비견되는 유세를 부려 민심이 쉽게 이반할 것일세.”


학소의 말에 이적이 휘저어 식어버린 술을 버리지 않고 냅다 마시며 말을 이었다.


“상책(上策)이라함은 제후가 직접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입니다. 제후가 아비요, 제후가 지주이며 제후가 교주라 스스로를 은근히 높이는 동시에 파격적으로 낮추니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백성은 풍(豊), 흉(凶)에 가리지 않고 기꺼이 세금을 내고 없는 복을 제후에게 빌 것이며 관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아래로 숙여 감히 스스로를 높다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후의 콧대는 나날이 높아져 사방에 평화가 가득한 듯 보이나 실제는 그러하지 않을 지니 위덕(威德)한 제후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허나 그대와 같이 똑똑한 관료요, 학자가 이를 두고 보지 않으며 똘똘 뭉쳐 공맹을 부르짖을 것이니 겨우 몇 대만 유지할 수 있을 것일세.”


이적이 술주정을 부릴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말끝마다 좋지 않다 하니 밑천을 다 보인 소인은 더 할 말이 없소! 이만 가보겠소!”

“어이쿠! 귀인에게 결례를 범했구려. 그저 하나의 말을 굳이 셋으로 나눠 하는 모습이 웃겨 그랬소.”

“나는 이방인 손님이라, 주인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 이만-.”


학소는 이적을 잡지 않고 식은 고기만 몇 개 집어 맛있게 씹으며 자리에 앉아 배웅하지 않았다.


학소의 집을 나온 이적은 부리나케 허흠의 집으로 향하니 하나도 취한 것 같지 않은 형색이요, 간간히 뒤를 살피는 것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이의 것과 같았다.


"일방의 군권을 쥔 고관이 제후의 도리를 묻고 답하니 필시 보통 심보가 아니라 반드시 반역할 것인데 나는 사람 사귀기 좋아하다 자칫 타지의 정쟁에 휩쓸려 비명횡사하겠구나!"


이적은 허흠의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서찰 하나만 달랑 남기고 짐을 챙겨 나루터로 향했는데,


“이적 님!”

“이거, 유파 공이 아니오.”

“행색을 보니 돌아가시는 모양입니다. 허흠에게 일러 마중을 함께 하자 약조하였거늘 못난 친구가 아닙니까.”

“하하하. 급한 일이 생겨 조카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오. 글쎄 멀쩡하시던 남군의 당숙께서 급사(急死)하셨다지 뭐요!”

“저런~.”


유파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이적이 두루 살피길 나루터의 경계가 삼엄함이 평소와 달랐다.

이에 병사들을 인솔하는 책임을 맡아 이곳에 나온 것 같은 유파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요? 도적이라도 있는 것이오?”

“도적은 쉬운 일입니다. 헌데 훈련받은 세작이 잠입해 있다니, 쯧! 번거롭게 되었지 뭡니까. 항상 저같은 젊은 말단들만 고생하는 일이거늘.”


이적은 바쁜 마음에 유파에게 부탁했다.


“허면 남군이나 형북으로 향하는 배가 있겠소?”

“오늘은 때가 좋지 않아 딱 한 척 허가가 났습니다.”

“어디?”

“저것이지요. 좋은 것이 좋다고 우선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이리 조카 덕을 보는군.”


이적은 자신의 짐을 날름 맡겼고 유파와 그 무리가 짐을 건성으로 뒤지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루터를 살피며 학소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잡아 둘 거라는 불안에 떨었다.

이적은 이처럼 신경이 날카로워 오히려 무뎌진 것인지 유파의 손짓에 조용히 접근하는 병사들을 알아채지 못했고 유파가 몰래 종이 몇 장을 짐에 섞었다가 발견한 듯 꺼내는 것도 눈치 챌 수 없었다.

이에 저항할 새도 없이 조용히 잡혀 성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자 이적이 억울함을 토로(吐露)하고 원망하며 유파에게 자신의 죄를 물었다.

그러자 유파가,


“이적 공의 짐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비록 서찰의 그것이 이적의 서체는 아니나 백제성과 그 인근의 상황을 상세히 적혀 있어 이적은 입을 다물었다.


----


이적은 옥에 갇혀 하룻밤을 지세는 동안 불안에 떨었는데 곧 정신을 차리고 전날 만났던 학소를 생각하며 냉정을 되찾았다.

이는 필시 유융에게 반역하려는 학소가 제 마음을 들킨 것에 자신을 잡아두려 수를 쓴 것이니 말만 잘하며 동조를 약속하면 필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곧 병사들에게 끌려간 곳에는 예상한 인물이 있었고 높은 곳에 앉아 자신을 모른 척 정무만 보던 학소가 놀란 기색을 꾸며 단하로 내려와 포승을 친히 풀어 이적을 예우하니, 이적이 입을 열고 내키지 않는 감사를 표했다.


“학소 공. 이는 모두 오해인데 다행히 친밀한 공을 만나 무사하니 이 이적은 형주로 돌아가면 공의 은혜를 꼭 보답할 것이오.”

"하하하. 이 익주에도 어려운 일이 많아 공의 능력이 필요한데 하필이면 저 먼 형주에서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는구려."


그러자 학소와 함께 정무를 보던 말단 관료들 중 하나가 불쑥 앞으로 나오며 이적을 아는 채 했다.


“숙부님! 이 분은 익주의 주인이신 대사마, 유융님이십니다! 어찌 그분의 근신이요, 호위 장수이며 백제성의 도독인 학소 장군의 이름을 부르십니까?”


그제야 이적은 놀란 표정과 화난 표정을 번갈아 표하며 유융을 뚫을 듯 바라보았는데 이미 덫에 잡힌 토끼요, 올가미에 걸린 여우라. 유융이 눈썹을 올려 느긋하게 말했다.


“그 집은 참으로 학소의 것이며 약속을 잡은 이도 그이니 허흠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오. 내 욕심이 지나쳐 부하의 배울 기회를 한번 빼앗은 것이지. 자- 허면 어제 다 못한 말을 계속할 텐가, 아니면 그대의 죄를 빌미로 형주와 강대하며 준비 된 익주간에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텐가?”

“.......먼저 소인이 묻겠습니다. 제후께서는 어찌 백성을 굶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상, 중, 하책이 비록 흠이 있으나 다 쓰는 사람에게 달린 법입니다.”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어찌 하나의 방법을 셋으로 나눠 일방(一方)의 제후로 남을까? 그대의 상, 중, 하책을 하나로 하면 최상(最上)의 계책이 되는 것을. 법(法)으로 신분의 질서(秩序)를 잡고 상(商)으로 만백성의 빈궁(貧窮)을 줄이며 교(敎)로써 오로지 군림하면 백년의 대업을 능히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정녕 그것을 모두 하실 수 있으십니까? 전국의 수재들이 달려들어 법을 정립하고 다듬어 고치는 일만 십년이요, 관료들이 상업에만 매달려 이를 장려하여 전국에 자리 잡는 일은 이십년이며 국가의 종교로 뿌리내리고 모르는 곳이 없도록 선전하는 일은 삼십년이 넘게 걸리는 바, 모두 한 사람, 한 세대가 하기 어렵습니다.”


유융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적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나는 모자란 사람이고 이미 이립(而立-30)이 훌쩍 넘은 나이라, 반드시 다 할 수 없을 것이오.”

“허면 어찌 허언 한마디 하자고 사람을 이리 곤혹스럽게 만든단 말씀이십니까! 자사님의 취미가 너무 고약하지 않습니까!”

“그대의 눈앞에 일하는 자들은 약관(若冠-20)이 조금 넘은 나이요, 내가 친히 천하에서 가려뽑은 수재들이니 그들이 좋은 스승을 만나 배우고 또 그 뜻을 후계로 전한다면 반드시 백년의 대업을 다 이룰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겠소?”


이적은 마지막 발버둥처럼 물었고 유융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익주에는 이미 일가를 이룬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어찌 궁색한 소인의 식견에게 의지함이 이리 크십니까.”

“익주가 아무리 넓다하나 어찌 천하만 하겠소? 형주에 그대를 따르며 보고 배우는 이가 이미 수천이며 괴월이 죽어 그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니 부디 형주의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내 곁을 사양하지 마시오. 다만 그래도 못하겠거든 나도 억지로 붙잡지 않겠소.”

“허허! 이미 주인이 있는데 어찌 두 주인을 섬기라 하십니까?”

“하하하. 군자가 이곳에 가서 모시면 이것이 주군이고 저곳에 가서 모시면 저것이 주군이며 그대가 봉사하는 형주의 주인도 곧 바뀔진데 그대는 부디 나를 사양하지 마시오.”


유융이 선인(先人)의 말까지 인용하며 끈질기게 설득하자 마침내 이적이 한숨을 내쉬며 응낙했다.

이적이 웃는 낯을 노려봐도 웃기만 하니 참으로 끈질기고 야심찬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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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ㅇㅅㅇ;; 길다.

열심히 썼으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읽어주세요. ㅇㅅㅇ★

길잖아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소제목을 정하느라 시간이 흘러간다능.ㅇㅅㅇ;;


지적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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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익주 - 백제(형산 너머-1) +10 15.01.24 2,620 35 16쪽
140 익주 - 백제(유표와 채모) +6 15.01.23 2,440 41 17쪽
139 익주 - 백제(유종-3) +4 15.01.22 2,461 55 19쪽
138 익주 - 백제(유종-2) +6 15.01.21 2,550 39 17쪽
137 익주 - 백제(유종-1) +4 15.01.16 2,535 43 17쪽
» 익주 - 백제(도(度)) +9 15.01.15 2,573 40 22쪽
135 익주 - 성도(형주를 두고-2) +6 15.01.14 2,795 51 17쪽
134 익주 - 성도(형주를 두고-1) +9 15.01.09 2,875 49 16쪽
133 익주 - 성도(남만-3) +8 15.01.08 2,919 61 17쪽
132 익주 - 성도(남만-2) +8 15.01.07 2,480 43 15쪽
131 익주 - 성도(남만-1) +8 15.01.02 2,729 47 17쪽
130 익주 - 성도(숙청(肅淸)-2) +4 15.01.01 2,753 51 16쪽
129 익주 - 성도(숙청(肅淸)-1) +2 15.01.01 2,977 58 19쪽
128 익주 - 성도(남쪽에서 부는 바람) +8 14.12.31 3,163 44 16쪽
127 익주 - 성도(남쪽으로 부는 바람) +6 14.12.26 3,385 65 22쪽
126 병주 - 원소(33-설욕(雪辱)-3) +10 14.12.25 3,077 43 16쪽
125 병주 - 원소(32-설욕(雪辱)-2) 14.12.25 3,262 40 17쪽
124 병주 - 원소(31-설욕(雪辱)-1) +4 14.12.24 2,846 54 16쪽
123 병주 - 원소(30-원소-8) +6 14.12.19 2,870 46 17쪽
122 병주 - 원소(29-원소-7) +4 14.12.18 2,988 66 15쪽
121 병주 - 원소(28-원소-6) +4 14.12.17 2,802 48 15쪽
120 병주 - 원소(27-원소-5) +2 14.12.12 2,780 45 13쪽
119 병주 - 원소(26-원소-4) +8 14.12.11 2,891 55 15쪽
118 병주 - 원소(25-원소-3) +4 14.12.10 2,764 51 18쪽
117 병주 - 원소(24-원소-2) +6 14.12.05 4,479 70 14쪽
116 병주 - 원소(23-원소-1) +6 14.12.04 4,540 72 13쪽
115 병주 - 원소(22-낙양의 파종(破腫)-4) +4 14.12.03 3,411 59 12쪽
114 병주 - 원소(21-낙양의 파종(破腫)-3) +4 14.11.21 2,962 51 13쪽
113 병주 - 원소(20-낙양의 파종(破腫)-2) +8 14.11.20 2,731 54 14쪽
112 병주 - 원소(19-낙양의 파종(破腫)-1) +4 14.11.19 3,384 64 14쪽
111 병주 - 원소(18-추수(秋收)-2)+지도 +6 14.11.14 3,203 49 14쪽
110 병주 - 원소(17-추수(秋收)-1) +2 14.11.13 3,486 56 15쪽
109 병주 - 원소(16-쟁(爭)-4) +8 14.11.12 3,397 56 16쪽
108 병주 - 원소(15-쟁(爭)-3) +8 14.11.07 3,512 60 12쪽
107 병주 - 원소(14-쟁(爭)-2) +6 14.11.06 3,645 54 14쪽
106 병주 - 원소(14-쟁(爭)-1) +6 14.11.05 3,148 59 15쪽
105 병주 - 원소(13-흔들리는 전선(戰線)) +2 14.10.31 3,878 73 15쪽
104 병주 - 원소(12-남(南)) +8 14.10.30 3,410 51 18쪽
103 병주 - 원소(12-북(北))+지도 +4 14.10.29 4,512 50 14쪽
102 병주 - 원소(11-동(東), 서(西)-3) +8 14.10.23 3,823 57 13쪽
101 병주 - 원소(10-황하너머로) +8 14.10.22 3,406 58 15쪽
100 병주 - 원소(9-사수관을 울리며) +6 14.10.21 3,889 69 16쪽
99 병주 - 원소(8-동(東), 서(西)-2) +10 14.10.16 3,567 73 14쪽
98 병주 - 원소(7-기둥(柱)) +4 14.10.16 3,715 61 15쪽
97 병주 - 원소(6-황윤(皇胤)) +13 14.10.15 4,671 67 15쪽
96 병주 - 원소(5-동(東), 서(西)-1) +10 14.10.14 4,489 108 16쪽
95 병주 - 원소(4-영천을 사이에 두고) +8 14.10.09 4,262 84 16쪽
94 병주 - 원소(3-황하를 사이에 두고) +6 14.10.08 4,507 67 16쪽
93 병주 - 원소(2-분잡(紛雜)-2) +6 14.10.07 4,464 66 17쪽
92 병주 - 원소(1-분잡(紛雜)-1) +10 14.10.02 4,847 6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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