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수호자 백호.
아델린은 깜짝 놀라서 광해군의 옆에 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기골은 장대하나 사나운 범의 형상과는 달리 굉장히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였다.
'마침. 잘되었다.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아델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백호에게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두분 다 어서 여기에 앉으시죠."
광해군과 백호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명공주의 반지에서 삼족오가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여어. 오랜만."
백호는 삼족오에게 눈 인사를 하고서 갑자기 아델린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나서 간절한 눈빛으로 아델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자네. 나 좀 살려주시게."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아델린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백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걸맞게 느릿느릿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야. 삼족오가 기습을 받고 신물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불안해진 나는 청룡을 찾아갔었네.
우리들 중에는 가장 강한 이가 그였으니 말이야."
아델린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백호에게 말했다.
"하아....청룡을 찾아가셨군요. 혹시... 설마 신물을 넘기신 건 아니지요?"
백호는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게....그놈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무서운 표정으로 신물을 넘기면 목숨은 살려 준 다기에 넘기긴 했는데."
아델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신물의 수호자라는 분께서 목숨이 아까워서 신물을 그렇게 쉽게 넘기셨다는 말입니까??"
백호는 손을 절래 절래 흔들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청룡한테 준건 가짜야. 진짜는 따로 있어. 설마 명색이 신물의 수호자인데 그렇게 쉽게 주었을라고. 하하하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족오가 냉소를 띈 채로 말했다.
"너같이 천하태평한 녀석이 진짜를 숨기고 가짜를 가지고 다녔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사실을 말해라."
"아니. 아니야.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는 숨겨놨다니까."
"그럼. 그건 어디 있는데."
"그게....잘 몰라."
삼족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답답해. 너는 옛날부터 항상 그랬어. 좀 똑바로 말하지 못해!!!"
아델린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백호에게 말했다.
"아...천천히 말해보십시오. 진짜 신물을 숨기셨다면 그것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왜 모르시는 겁니까?"
"아....그것이....사실. 꽤 오래되었는데. 아마 고려시대였던 거 같아. 어느 날 현무가 나를 찾아왔어.
그리고 그러더라고. 가짜를 만들어 줄 테니 진짜는 자신한테 맡기라고."
삼족오가 놀라며 말했다.
"현무. 그 음흉한 놈이 가져갔다고???"
"어....너는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혜의 상징으로 불리는 녀석인데.
그런 녀석이 알 수 없는 위험이 다가 오고 있기에 준비를 하여야 한다고 해서 믿고 맡겼던 거지."
"하아아...이 멍충한 놈. 그 음흉한 은둔형 외톨이 녀석이 무슨 지혜가 있다고. 그놈 말을 덜컥 믿고 맡겨 버리냐.
그리고 너 고려 시대에 현무한테 진짜를 주었다면 이성계한테 준건 뭔데!!!!"
백호는 광해군을 머쓱하게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건 사실 가짜야. 하하하하. 신물의 주인인 이성계를 만났을때는 이미 나한테 진짜는 없었거든.
현무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가짜를 주었던 거야."
삼족오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아....너는 진짜....신물의 수호자가 사기를 쳐??? 그리고 가짜를 주고서 조선왕실에서 극진한 대접까지 받아오셨다??
그런 주제에 가짜 신물을 가지고 도중에 사라지기는 왜 사라져 버린 거냐??"
"아...그건. 수양대군의 아들놈이 왕이 되고서는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나를 홀대하기 시작하더라고.
명색이 내가 조선 산신들의 왕인데 산신에 대한 제사를 다 폐한다고 하니. 내 체면이 영 서지를 않더라고."
삼족오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왕조를 개창한 신물의 수호자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그냥 삐져서 신물을 가지고 사라졌다는거네?"
"아....그것이....그렇게 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백호는 광해군 앞에서 체면이 안 서는 듯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해군이 말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왕실에서 전해져 오기로는 조선의 국운이 다하였기에 신물의 수호자가 사라진 거라고 하였었거든요.
마침 사라지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즉위한 연산군이 폭정을 일삼자 그 이야기는 더욱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은 백호에게 뼈를 때리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모든 것이 조선의 국운이 다하였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물의 수호자께서 왕실의 대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벌이신 것이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하하하하."
백호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시뻘게 졌다.
"아니...아무튼...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짜를 준 것을 청룡. 그놈이 알게 되면 나는 죽은 목숨이야.
신물을 빼앗긴 삼족오가 자네한테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겨우 고생 끝에 알게 되어서 찾아 온 거야.
나도 자네가 좀 받아주면 안되나??? 응???"
아델린은 너무나도 뇌가 순수해 보이는 백호를 보며 당황했다. 그리고 말을 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변절한 청룡이 저희를 죽이려 하여서 어쩔 수 없이 그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아델린은 아공간에서 여의주와 검은 물체를 쥐고 있는 청룡의 손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백호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정말 자네들이 청룡을 이겼다고??? 대단하군. 대단해."
말을 하던 백호는 갑자기 생각에 잠겨버렸다.
"흠.....분명히 현무가 뭐라고 했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흠......"
백호는 여전히 좋지 않아 보이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듯 보였다.
"흠흠흠....맞아...맞아....그 녀석이 분명 언젠가 청룡이 신물의 수호자 임을 포기해 버릴 때가 오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었을 때 녀석을 죽인 자가 나타난다면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했어."
아델린과 삼족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호를 쳐다보았다. 백호는 난처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그것이..........뭐였냐면..........흠..........흠........."
계속해서 뜸을 들이는 백호에게 성질이 불같은 삼족오가 기다리지 못하고 말했다.
"그것이 뭐....이 멍청한 호랑이 녀석아."
백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로 오라고 했는데. 기억이 도통 안나. 하하하하."
삼족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얼마나 되었다고 그것도 기억을 하지 못해. 아이고 답답아."
백호는 삼족오의 무안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수 백 년은 지난 건데 그럴 수도 있지. 너야말로 오 백 년 주기로 부활 할 때가 되면 바보가 되는 주제에 잘난 척은."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백호의 눈이 번뜩였다.
"아!!!! 맞아 맞아...!!!! 나도 내가 잊어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위치를 새겨 두었어.
나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든 진짜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의 검날에 "
아델린이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아...그것은 지금....어디에 있습니까???"
"흠....그게....태조 이성계의 무덤 안에 있을 거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가짜 신물을 주기는 했어도 진정한 신물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이성계였다.
미안한 마음에 무엇을 줄까 하다가 사악한 기운을 베고 재앙을 물리치는 사인참사검을 주었지."
백호는 다시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그곳에 현무의 당부를 적어 놓은 것은 깜빡하고서 말이다. 하하하하.
그 당시 내가 가진 것 중에 그것이 가장 귀했거든.
그 이후로 왕실에서 나를 기리며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사인검을 만들어 오던데
그것들은 다 가짜고 진짜는 오직 하나뿐이다. 나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든 신검."
청룡의 여의주 덕을 톡톡히 보았던 아델린은 백호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들었다는 사인참사검에 급 관심이 생겨서 백호를 띄워주며 말했다.
"오호....백호님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들었다면 그것도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겠군요."
첫 만남 이후 사신(四神)으로써 체면이 서지 않았던 백호는 드디어 당당하게 자랑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검이라 불리지만 사실은 실전용 무기가 아니라 일종의 주술적 도구에 가깝지.
나의 순양(純陽)의 기운이 가득한 그것은 사특한 힘을 물리쳐준다네."
아델린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오호라. 사신(四神) 백호님의 능력은 어둠의 힘을 물리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신가보네요."
백호는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음양오행 중 쇠(金)를 다스리는 나의 힘 앞에서 조선의 악귀들은 내 이름만 듣고도 모두 벌벌 떨곤 하지."
아델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명공주보다 더 뇌가 순수한 것 같다. 잘만 구슬린다면 사인참사검도 얻어낼 수 있겠어.
그 양기의 힘으로 청룡에게서 얻어낸 검은 물체의 사악한 기운을 정화한다면
그 거대한 힘을 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는걸. ㅎㅎㅎㅎ'
아델린은 백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존경 어린 표정으로 백호의 두 손을 잡고서 말했다.
"백호 님의 신변을 노릴 청룡은 죽었지만 그 배후의 세력이 신물이 가짜임을 알게 된다면
필시 백호 님을 노리고 다시 찾아 오게 될 겁니다. 제가 맹세코 목숨을 걸고 지켜드릴 테니 저희와 함께 하시죠."
뇌가 순수한 백호는 감동한 듯 아델린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그래. 청룡도 이긴 자네의 곁이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지.
나를 편하게 형이라고 여기고 무엇이든 편히 부탁하게. 하하하하."
순수한 표정과는 다르게 시커먼 속을 한 아델린이 생각했다.
'ㅎㅎㅎㅎ. 네. 그러지요. 마침 골치 아프게 자꾸 등장하는 어둠의 속성을 잡아 줄
빛의 속성인 쇠(金)의 기운을 다스리시는 백호님을 열렬하게 환영합니다.
최고급으로 모시겠습니다. VIP 실험체로써 말입니다. ㅎㅎㅎㅎ'
아델린의 흉계를 알리 없는 백호가 해맑게 말했다.
"대낮에는 좀 그러니. 오늘 밤에 이성계의 무덤에 가도록 하세.
나 때문에 식사를 하다가 말았구나. 어서 먹어. 아우님."
"네. 그렇게 하시지요. 백호 형님은 혹시 이곳의 명물인 군(君)죽을 드셔 보셨습니까?"
"아. 물론이지. 물론이야. 감동을 하였다네. 청룡에게 쫓기듯 도망 나와서 마음을 졸이던 나에게 평안을 주더군.
참으로 신비한 죽이야."
백호는 코를 킁킁 대면서, 초콜릿을 먹고 있는 정명공주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아이가 먹고 있는 저 시꺼먼 것은 무엇인고. 참으로 달콤한 냄새가 난다만."
"아...저것은 제가 있던 곳에서 즐겨 먹던 초콜릿이라는 것입니다."
백호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참으로 냄새가 좋구나."
"아..형님도 드시고 싶으신 건가요? 공주마마. 아직도 많이 남으셨으니 조금만 떼어 주시겠습니까?"
"시러. 이거 다 내 꺼야."
그 말을 마치고 정명공주는 아직도 많이 남은 초콜릿을 한입에 다 넣어 버렸다.
"아.....하아아아....."
아델린은 한숨을 쉬면서 아공간에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초콜릿을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각각 백호와 광해군에게 나눠 주었다.
"..............................."
"..............................."
그리고 그 둘은 이내 황홀경에 빠져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델린의 등 뒤에서 소름이 돋았다. 귀신보다 무서운 초콜릿에 중독이 된듯한 정명공주의 음성이 들렸다.
"야.....너 또 있었구나. 나 또 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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