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오만 대군과의 전쟁.
아델린은 자신의 좀비군대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령(言令)-
"좀비 군대는 조선 군인의 복색을 갖추어라.
조선군은 좀비군대의 뒤편에 도열한다."
갑자기 옷을 입지 않았던 좀비군대의 몸에 조선 군인의 복장이 입혀졌다.
그것을 본 조선군은 계속 벌어지는 일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압록강 너머 좀비 군대의 뒤편에 도열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는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앞을 지켜주는 실제하는 강대한 좀비군대를 보며 그들의 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멀리서 위세를 뽐내며 진군해 오던 후금의 대군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조선군의 함성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야가 확보된 거리에 이르러 살펴보니 이 만 여 명이 안되는 보병이 넓은 평야에 집결해 있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 이괄의 난으로 반란군 만 오천명 이상과 그것을 저지하던 관군 만 여명 이상이 내부 싸움으로 자멸했다.
후금에 투항한 이괄의 난의 잔당들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현재 국경지대에 기껏해야 만 여명의 군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예상보다는 많았다고 하여도 고작 만 여명의 보병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후금의 총대장인 '아이신기오로 아민'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을 정벌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포를 하였기에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겠구나 싶어서 기병만 삼만인 총 오만의 대군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침략자인 조선군은 보병 이 만 명이 전부였다.
'하아....보병 이 만 명으로 침략을 하겠다는 게 제 정신인가.'
통상 기병 한 기당 보병 오인 이상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넓은 평야에서의 기병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 조선군 이 만 여명은 스스로 압록강을 건너와서 넓은 평야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전술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조선군에게 이제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아민은 부하 아지거를 불러서 기병 삼천기를 맡기고 조선군의 섬멸을 명했다.
그리고 한윤을 불렀다. 이괄의 난의 잔당으로 후금으로 도망갔던 조선인이다.
"너. 먼저 가서 조선군에게 이렇게 전해라."
-네놈들의 임금은 미쳤다. 너희가 너무 불쌍해서 명한다. 기회를 줄 테니 도망가라.
그렇지 않다면 기병 삼천기가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
아민은 진심으로 미친 임금의 밑에서 스스로 죽으러 온 조선군이 불쌍해서 한윤을 먼저 보낸 것이다.
"미친 임금과 전술도 모르는 지휘관이라니."
혀를 끌끌 차는 아민의 명에 한윤은 부지런히 말을 달려 조선군에게 다가갔다.
이괄의 난으로 아비와 집안이 몰살 당한 것에 조선에 큰 원한을 품고 있었던 그였다.
한윤은 아민이 시킨 것보다도 더 과장된 말로 조선 군대를 향하여 임금을 능욕하는 말을 했다.
"이 미련한 것들아. 망국의 길에 접어들어 쇠락해 가던 조선에 드디어 미친 임금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네놈들은 조선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거냐!!! 후금의 총대장이신 아민님께서 자비를 베푸신다고 하셨다.
당장 도망가거나 투항하거라. 미련하게 네놈들의 목숨을 버리지 말란 말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한윤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넓은 평야에 집결해 있는 군대는 분명히 조선군의 복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들은 사람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은 손은 검이나 창, 도끼, 망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허걱.....저것들은 뭐야. 눈빛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괴물들이 아닌가. 하나같이 내뿜고 있는 기운도 무시무시 하고.'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살펴보던 한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반정을 뒤에서 이끌고 잠잠하던 '그분'이라는 자가 후금의 정벌을 주도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처구니없는 조선 임금의 정벌 선포도 말이 된다. 아...이걸 어쩐다.
한윤은 안절부절 못했다. 인조 반정 당시 '그분'이라는 자가 보여준 가공할 무력은 잘 알고 있었다.
'그자는 조선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찌 다시 나타난 것이냐. 어찌 해야 하지?
이제와서 다시 조선에 붙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빨리 가서 이 상황을 전해야 해.'
한윤은 재빨리 말을 돌려서 아민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민의 명으로 기병 삼천 기를 이끌고 오는 아지거에게 다급하게 말을 했다.
"헉헉....일단.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세요."
하지만 아지거와 수하들은 그런 한윤을 비웃으며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다.
강한 전사의 삶만을 동경하며 살아온 그들은 애초에 한윤을 싫어했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탔다고 헥헥거리는 약골. 그리고 자기 나라를 버리고 온 배신자.
그런데 자신들이 인정한 남자. 강한 전사 아민의 옆에 그가 붙어있는 것이 상당히 못마땅했던 아지거와 수하들이었다.
"시끄럽다. 겁쟁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
"크크크크. 얼빠진 놈."
"훠이 훠이.....배신자 놈. 또 배신하려고 하는 거냐? 캬캬캬캬."
아지거와 부하들은 한윤을 조롱하며 그대로 평야에 집결해 있는 조선군을 향해서 돌진하였다.
그들을 무참히 도륙할 셈이었다.
아지거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감히 대륙을 정벌할 이 후금의 기병에게 아무 방비도 없이 평야에 가만히 서있는 꼴이라니.
너희의 어리석음과 약함의 대가는 충분히 치르게 해주마. 가라!!! 후금의 용감한 기병들이여!!!!"
삼천의 기병은 함성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돌진하였다.
"와아아아아!!!! 하하하하"
"죽어라...죽어라!!!!캬캬캬캬캬!!!!"
"이거야 원.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 같아서...영....죽어라!!!!!!.....
...................................."
"..........................................."
"................................................"
"........................................................."
아델린의 좀비 군대에게 돌진한 삼천기의 기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전멸하였다.
조선 궐의 지하에서 아델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기를 발사해 대기 시작했던 좀비군대였다.
육체의 강함만으로는 소드마스터의 수준으로 만들어진 좀비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두 차례의 섬멸전을 거치면서 진화하여 더욱 더 강해졌다.
단지 앞열의 백 마리 만이 나섰을 뿐이다.
각각 다양한 무기의 형태로 변화된 손에서 날아간 선명하고 강한 백 여 개의 검강들은 후금 기병 삼 천 명의 머리를 순식간에 잘라버렸다.
주인을 잃은 삼천 마리의 말만이 영문도 모르고 겁에 질린 채 남아있을 뿐이었다.
"우우우웅"
아델린의 팔찌가 순간 붉게 변했다. 그리고 불쌍하게도 삼 천 여명의 '영'은 아델린의 팔찌 안으로 순식간에 흡수되어버렸다.
팔찌 안으로 모아진 '영'은 아델린의 몸안으로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델린의 몸이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하아아.........느껴진다. 강대해지는 힘이....초월자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은 착각인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후금의 총대장인 아민과 군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던 삼 천 명의 머리가 스스로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인간의 인지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에 그들의 사고는 정지해 있었다. 정적만이 고요히 흘렀다.
아델린은 천천히 병마절도사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저 불쌍한 삼 천 마리의 말들을 잘 부탁합니다."
아델린의 말에 멍하니 있던 병마절도사가 깜짝 놀라며 정신이 들었다.
같이 멍하니 있던 군사들을 시켜서 주인 잃은 말들을 진정시키고 조선의 군대의 전리품으로 취하게 하였다.
그 작업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후금 군대는 아직도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한윤이 아민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헥헥헥......일단 후퇴하셔야 합니다. 조선에서 떠났다고 생각했던 '그분'이라는 자가 다시 돌아온 모양입니다."
전사의 긍지가 상당한 아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군의 지휘관이었다.
평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다수의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던 '그분'이라는 자의 이름이 나오자
지금의 어이없는 상황이 머리속에서 빠르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호승심을 버리고 일단은 후퇴하기로 하였다.
먼거리였지만 상당한 무인의 경지에 오른 그는 분명히 느꼈다.
삼 천 기의 기병의 목을 잘라버린 그 강대한 기운을. 그의 본능이 말했다. 도망치라고.
"전군!!! 후퇴한다!!!!!"
우왕좌왕하던 후금의 대군은 지휘관의 명에 의해서 정신을 차리고 후퇴를 준비하였다.
아직도 그들의 정신은 혼미하였지만 잘 훈련된 그들의 몸은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상당히 신속한 태세로 대열을 정비하여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먼거리에 있었다.
지금 이대로 후퇴를 한다면 당연히 안전한 퇴각이 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했다. 말도 타지 않은 보병인 좀비군대가 달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그 어떤 후금의 말보다 빠른 속도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무슨 말도 안되는 속도냐!!!!"
"괴....괴물이다......!!!! 빨리 가라고!!!!"
"허어억.....사....살려......"
후금의 군사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그들을 보며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후미의 보병들은 이미 따라잡혀 버렸다. 총대장 아민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기병들을 보병들에게 보내서 맞서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기병들만이라도 도망가야 하는지.
하지만 그가 고심할 새도 없이 후미의 보병 이 만 여명은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쳐버렸다.
아델린의 좀비군대는 싸우기 위해서 멈추지도 않았다. 그저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가면서 후금의 보병들의 목만을 잘라내었다.
보병을 전멸시키면서도 그들의 속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는 기병들마저도 따라잡힐 순간이었다. 후금의 기병들처럼 능숙하게 말을 타지 못하는 한윤은 겁에 질렸다.
조선의 정벌을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이괄의 난의 잔당들의 뜻이 드디어 먹혔다. 멍청한 조선의 임금이 먼저 선포를 해온 덕분이다.
이제 남은 건 조선 정벌의 앞잡이가 되어서 새로운 제국이 될 후금의 공신이 될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이 무슨......xxx 상황인가.....'
한윤의 머리는 생각을 마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이제 기병들의 후미마저 따라잡혔다. 평생 말과 함께 살아온 기마민족의 속도를 우습게 따라잡는 괴물들의 속도에 후금의 기병들은 진저리가 났다.
그들 중의 일부는 패닉에 빠져버렸다. 조선의 미친 선포에 대한 대응으로 나서게 되었을때 일방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전쟁이 아닌 도륙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에서 신나게 약탈할 계획만으로 머리가 가득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고 있다. 이건 전쟁도 아니다.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다.
조선과 명나라의 계책으로 하나로 뭉치지 못하였던 여진의 부족들이 드디어 영웅의 등장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제 과거에 대륙을 지배하였던 금나라의 재현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자신들은 이제 대륙의 지배자가 될 것이었다.
그것도 후금의 대표적인 무장 아민님의 수하로 전쟁에서 이름을 날릴 것이었다.
조선을 정벌하고 이곳에 머물러 한 자리씩 하면 좋을지 아니면 명과의 전투에 끝까지 임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지 고민하고 있던 그들이다.
'그런데.....이것이 무슨.........아....
내 머리가 떨어지고 있는 건가.'
후금의 수많은 기병들의 머리들도 생각을 미처 마치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져 내려버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작가의말
한윤은 명백한 조선의 배신자이고 정묘호란의 원흉이기에 실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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