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공주가 아델린을 납치하다.
아델린은 순순히 정명공주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의 영혼의 각인을 확인하고 싶었었던 아델린이었다.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그분'이라는 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도 뒷전이 되어버렸던 참이었다.
이럴 때 마침 궁에 있어야 할 공주가 제 발로 찾아와 준 것을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었다.
정명공주는 아델린을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이끌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그마한 오두막이 하나 나오게 되었다.
아델린을 그 오두막 속으로 끌고 간 그녀는 아델린의 뒤에서 순식간에 마취침을 놓아버렸다.
아델린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멸망 시킬 수 있는 인간을 초월한 강자이다.
하지만, 그는 원래 지력에만 올인되다시피 한 신체적으로는 허약한 마법사였다.
비록, 9서클에 진입하면서 육체가 젊어지고 힘, 민첩, 체력 등 밸런스가 잡혀지게 된 탓에
지금은 신체강화마법과 마법검을 통한 근접전투만으로 소드마스터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이 신체 강화 마법을 걸어 놓지도 않고, 특히나 방심하여 상대에게 뒤를 내준 이상 마취침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평소에는 언제나 기척을 감시하며 다니기에 이런 어이없는 일을 당할 일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명공주가 자신이 그리워하는 델리나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서 제 정신이 아니였기에 이리도 허무하게 마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비가 되어서 제자리에 주저 앉은 아델린을 바로 앉히고 정명공주가 물었다.
그녀는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아델린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이놈...젊은 놈이 김시정같은 탐욕스러운 자 옆에서, 권력이나 추구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아델린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내가 무슨 권력이나 추구했다는 말이냐...갑자기 뜬금없이 뭐하는거냐..."
복면을 쓴 괴한인 정명공주는 대답했다.
"흥...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너는 오늘도 임금과 대비에게 귀한 물건을 진상하며 권력의 줄을 잡는데 혈안이 되었었다고.
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 시치미 떼지마라..."
아델린은 생각했다.
'뭐지...이 상황은...
궁 내부를 맘편히 조사할 권한을 얻을 목적으로 선물을 바치긴 했다만, 타인이 보기에는 줄을 대기 위해서 그리하였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 것은 충분히 맞다.
그것도 자타공인 악덕 세도가 김시정과 함께 하였으니....그런 오해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니가 그러냔 말이다. 하...참... 내가 설사 김시정과 같은 이라고 할지라도
너의 어미는 그런 자들과 한 배를 탄 상황이고 너 또한 광해를 미워하여 그들과 같이 손을 잡았던 것 아니였냐는 말이다.
심지어 너는 '그분'이라는 자를 통해서 가공할 무공마저 손에 넣어 놓고서, 음모와 권력의 중심에 있는 니가 할 말은 아닌 듯 한데 말이다...'
아델린은 답답해서 속으로 말을 뱉으며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명공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흥...내 목숨은 살려 주겠다. 하지만, 니가 꽤나 귀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시치미 떼지 말고 그 물건들을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 만은 살려주겠다.
물론,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겠지. 하지만, 어디에 그 물건들을 숨겨 놓았는지 샅샅이 말해라.
내 지금 당장 가서 그것들을 가져온 다음에 너를 풀어주도록 하겠다."
아델린은 정말 너무나도 궁금해서 질문을 하였다.
"아니...그쪽의 말이 다 맞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실 작정이오.
결국은 그쪽도 재물을 탐하는 것 아니오?."
정명공주는 잠시 째려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흥....내가 너나 김시정 같은 자일까 보냐.
김시정과 다니며 그와 뜻이 맞는 자라면, 볼 것도 없이 너는 악한자이다.
내 너같은 이한테는 변명할 것도 없다. 어서 말해라!!! 보물들은 어디 있느냐!!!"
아델린은 김시정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제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욕심은 많아도 똑똑한 좀비 일뿐이지만, 과거에는 악한의 대명사인 자였음을.
그가 아진이 모녀에게 했던 일들을 어느새 잊고 있던 아델린이었다.
'뭐...그 김시정은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그걸 알리는 없으니
내가 그렇게 오해를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네...'
아델린은 마비가 풀리기까지 시간이 필요 했기에 조금 시간을 끌어보려고 하였다.
마비만 풀린다면 그냥 그녀를 제압하여 어서 영혼의 각인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밖에서 수십, 아니 백 여 명에 가까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정명공주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설마...너를 구하러 온 놈들인 것이냐?? 흥...여기 있어라...내 처리하고 올 터이니"
그리고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얼굴을 확인한 정명공주는 짜증이 나는 듯 혼잣말을 하였다.
"흥...네놈들은 저번 그놈의 왈패들이었구나.....하필이면 지금....귀찮게 되어버렸어..."
그런 그녀를 보면서 웃을때마다 달빛에 금이빨이 번쩍 번쩍 거리는 흉칙하게 생긴
무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정명공주에게 말했다.
"어이....의적 나으리....그렇게 혼자 설치시고 다니시니 결국 이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저번의 수모를 경험 삼아 이번엔 좀 더 튼튼한 애들로 많이 데리고 왔으니 한번 즐겨보십시오.
으흐흐흐.....자 애들아 쳐라!!!"
"챙...챙....챙챙챙.....챙...."
정명공주의 오두막을 포위하였던 이들은 능숙한 무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이라는 자와는 상관없는 일반인들이었다.
백 여명에 달하는 인원이었지만 원래의 그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자들이었다.
'그분'이라는 자에 의해 양산된 기를 다룰 줄 아는 영역에 다다른 소드익스퍼트 수준의 무사들은
그 경험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보통 일당백으로 불린다.
하물며, 그들 중에서도 특별하여 소드마스터의 수준에 까지 이르렀고
심지어 흉폭한 저주의 마나까지 사용하는 마검사였던 그녀에게 일반 무사 백 여명은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다만, 지금의 그녀는 며칠 전 마니산에서 자폭을 하기 위해서 마나를 방출하여 버려서 이제 마나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또한 그 일을 통하여 심신의 기운이 심하게 뒤틀려 있는 상태이다.
거기다가 두 손의 동상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원래가 무사로써 경험치가 전무하였던 약점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지금 수준은 소드익스퍼트 하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경험 많은 소드익스퍼트 정도가 되어야 일당백을 여유롭게 하는 것인데
지금의 그녀에게는 무사 백명의 숫자는 버거운 것이었다.
"챙....챙...챙챙..."
"서걱....슥....으아악...."
천천히 숫자를 줄여나가는 그녀였다. 하지만, 아직 기운이 뒤틀려있는 그녀의 체력은 금새 방전되었으며,
동상에 걸렸던 손의 부상은 검을 잡고 운용하는데 점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사들의 숫자를 줄여나가면서 힘겹게 전투를 이어나가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무사가 나직이 말을 했다.
"니가 만만치 않은 녀석인건 다 알고 있지...그려....그래서 오늘은 선물을 준비했단다."
말을 뱉음과 동시에 그는 치명적인 독이 뭍은 화살을 그녀에게 겨누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가까스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그녀에게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휘이이잉~~퍼억"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그녀의 심장 근처에 박히고 말았다.
"읍....흐윽......으윽...."
기운을 운용할 줄 아는 그녀였지만 이미 마니산의 일로 기운이 틀어져 버린 상태에서 독을 제어할 힘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화살을 맞은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이 온몸에 퍼졌는지 정명공주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무사들의 대장은 뻐드렁니처럼 튀어나온 금니를 번뜩이며 앞으로 나서서 정명공주의 복면을 벗겨내며 말했다.
"으흐흐흐....이걸 어쩌나 우리 의적 나으리...이제는 꼼짝도 못하십니다 그려.
우리 대감 나으리가 얼마나 짜증이 나셨는지 말이야. 내 앞니가 모두 날아가 버렸네...그려.
대신 이렇게 번쩍 번쩍 금이빨이 생겼지만 말이야...
만약 오늘 너를 잡는데 실패하였다면, 이번엔 내 모가지가 날아가 버렸을 거야...으흐흐흐.
하마터면 그렇게 될뻔했는데 미리 준비해 놓은 독화살이 겨우 나를 살려버렸네 그려 ....으흐흐흐
니가 상당히 강한 것은 대감님도 잘 알아서 그냥 니 놈 모가지만 가지고 오면 된다시네..그려....으흐흐흐"
그렇게 말하며 잘 다물어지지도 않는 입을 꽉 물며, 정명공주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그 순간....
아델린이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오두막에서 나왔다.
아직 몸이 마비된 상태로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있던
아델린은 정명공주가 독화살에 맞아서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는 수 없이 마비를 풀기 위해서 금기를 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가 없는 아델린의 신체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일체화된 그의 마나였다.
입도 마비가 되어서 주문을 외우지도 못하고, 손도 마비가 되어서 마법진을 그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신체를 일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마나를 역행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아델린은 심장과 단전, 두 곳에 마나를 축적하여 운용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에는 마나, 단전에는 오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마법사들은 심장을 위주로 마나를 운용하고, 소드마스터들은 단전을 중심으로 오러를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두 힘은 결국 같은 것이기는 하나, 그것의 운용방식과 발현되는 성질은 확연히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두 가지를 동시에 체내에 담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델린이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단순히 신체강화마법을 걸었다고 하여도 마법검에 오러를 실어서 운용하는 식의 전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의 궁극의 깨달음에 다가간 아델린은 단전에도 무한한 양의 오러를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단전에 축적되어 있는 오러는 근접전투 외에도 마나에 의해 형성되어진 마법을 발사할 때
잘만 사용한다면, 그 특유의 폭발적인 성질로 인한 추진력을 통해서 단순히 마나만 사용하여 발휘하는 마법보다 훨씬 더 강한 위력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도 위험성이 크기에 일반적으로는 이론에서만 그치는 것이기도 하다.
아델린은 급박한 상황에서 마비를 풀기 위해서, 단전의 오러와 심장의 마나를 일부 역행시켜서 체내에서 충돌시킨 것이다.
그 충격으로 마비가 풀렸지만 심장과 단전을 중심으로 아델린의 신체가 입게 된 데미지는 상당히 큰 것이었다.
하지만 마비만 풀린다면 금방 치유마법으로 회복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 충격으로 즉사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모험이었다.
아델린도 잘되리라는 보장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델리아의 환생일지 모를 정명공주를 저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이었기에 무리를 하였던 것이다.
오두막 밖으로 나온 아델린은 즉시 주문을 외쳤다. 먼저 자신에게 치유마법을 걸어야 했지만 정명공주의 목이 달아나게 생긴 급박한 상황이라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래비티 필드"
아델린의 마법이 발동되자, 정명공주와의 접전으로 이제 30 여명 남아 있는 그들은
기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이 없었기에, 그들의 대장을 포함해서 전원 모두 무릅을 꿇고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으로 인해서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정명공주에게 즉시 치유마법을 행했다.
"리스토레이션"
본래라면, 자신과 정명공주를 포함해서 여러 명을 동시에 치유하는 마법도 가능한 아델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체 내부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충돌에 의해서 많이 손상되어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마비를 풀기 위해서 역행시켰던 마나와 오러는 이제 자신의 구역을 벗어나 통제가 잘 되지도 않고 있었다.
이로 인해서 마법을 발휘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나의 운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가까스로 두 가지 마법을 시행한 후, 아델린은 정신을 잃어 버리고 쓰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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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이봐....이제 정신이 좀 드는거야???"
".........델리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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