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섬멸전. 그리고 주유검.
아델린은 말에 올라타 있는 상태로 좀비군대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미 정체도 들킨 김에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간만에 대마법사로써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지."
그동안의 강자들과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영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 마법사의 진가는 일대 다수에서 드러나는 법이었다.
'건방진 티르빙 놈. 단순히 일대일에 강하다고 잘난 척 하는 니 놈에게 보여주마. 다수를 한번에 섬멸하는 나의 능력을.'
'클클클클. 어디 한번 날뛰어봐라. 지켜봐주마. 클클클클.'
아델린은 심장의 마나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앞에 다가오는 대군을 향해서 즉시 주문을 외웠다.
다섯가지 원소의 재앙을 보여주마.!!
"엘리멘탈 퍼니쉬먼트"
하늘에서 아델린이 지정한 영역에 뜨겁게 타오르는 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이 갈라지면서 용암이 이글거리며 솟아 나왔다.
"쏴아아악......화르르륵...."
좀비들은 불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몸이 타오르고, 용암에 녹아내리면서도 여전히 목표였던
아델린의 뒤에 있는 소년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호오.....이놈들도 조선의 궁궐지하에 있던 그놈들처럼 신체 하나는 튼튼하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닐지니."
"후두두두두........"
연이어서 갑자기 무서운 냉기를 품고 있는 얼음의 창들이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염의 열기 속에서 순간적으로 냉각되면서 좀비들 중 일부는 신체가 깨져버리기도 했다.
만 여 마리에 달하는 좀비들 중에 행동 불능에 빠지게 된 숫자가 2 천에 달했다. 하지만,
다리가 없어져 버린 좀비라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은 기어서라도 목표를 향해서 다가 오고 있었다.
"휘이이잉...............화아아악....."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더니 점점 날카로워져서 칼날이 되어버렸다. 바람의 칼날은 좀비들의 몸을 수없이 베어 나갔다.
이미 불길에 녹고 얼어버리면서 약해진 좀비들의 신체는 손쉽게 깎아져 내려갔다.
좀비들의 살점이 벗겨져 나가고, 이미 머리에 심각한 데미지들을 입었던 좀비들은 바람의 칼날에 머리가 잘려서 그대로 쓰러져 나갔다.
형태가 온전한 좀비는 하나도 없었으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기에 아직도 반절이 남아서 어느덧 아델린에게 다가왔다.
"쩌어어억....!!!!
갑자기 아델린의 앞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좀비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뒤에 있는 좀비들이 위치한 땅에서도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땅에 직접 삼켜진 좀비의 수가 천 마리. 지진에 의해서 몸이 뒤틀리고 사지가 절단나서 행동 불능에 빠진 수를 제외하면 이제는 삼천 정도의 병력이 남아있었다.
"캔슬."
아직 하나 발동되지 않은 라이트닝계열의 마법을 취소시켰다.
"나머지는 나의 좀비 군단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거라!!!"
"δράκων"
아델린의 고대 반지에서 조선의 궁궐지하에서 봉인해두었던 좀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번 마검 티르빙을 막다가 100 여 마리의 손해를 입었기에 9 천 9 백 여 마리의 대군이 아델린의 등 뒤에 정렬하기 시작했다.
"전원 정렬!!!!"
아델린은 말 위에서 늠름하게 말했다.
"전원 돌격하라!!! 행동 불능에 빠진 녀석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도살해라!!"
아델린의 반지 속에 있던 팔팔한 힘을 가지고 있는 좀비들은 4가지 원소의 재앙으로 인해서 처참한 몰골이 되어있는 나머지 좀비 군대에게 달려 들어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땅을 진동시켜며 달려가는 아델린의 좀비군대는 아직 남아있는 좀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미 9서클 원소 마법 네 가지가 한번에 전개되는 통에 겨우 살아남았다 하여도
남아있는 좀비들은 이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사지가 찢겨도 움직이던 좀비들은 머리가 박살 나자 더 이상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미 많은 데미지가 축적되어있던 삼천 여 마리의 좀비들은 쉽게 전원 처리가 되었다.
"δράκων"
아델린은 다시 자신의 고대반지에 좀비군단을 봉인시켰다.
"분명히 이놈들은 궁궐지하에서 전투를 통해서 점점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어. 오늘의 전투로 인해서 조금은 성장했을거야."
'자...티르빙...니가 폐세자 이지를 숙주로 삼아서 나에게 덤볐을때, 나의 좀비 백 여 마리 정도도 처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 걸로 안다만.
나는 그 백 배에 달하는 규모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일대일에 강한 너라지만 대규모 전은 나보다 못할 거다.
앞으로 잘난 척 좀 그만해라.'
'클클클클. 그거야 일반인인 '이지'가 숙주였기 때문이었고, 너를 나의 지배하에 숙주로 만든다면 저런 떨거지들이야. 일격필살이다.
기대해라. 그날을. 클클클클.'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다시 넌 차단.'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었네. 더 다양하고 화려한 방법으로 해치우고 싶었다만 남의 나라 국경에서 할 짓도 아니고. 이만 돌아가자."
아델린은 공중에 떠 있는 정명공주 일행과 좀비에게 쫒기던 소년을 땅에 내려주었다. 소년에게 자동 통역 마법을 걸어주고는 그에게 물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저 좀비떼 들은 뭐고....왜 너를 쫓아 오던 건데. 너는 누구냐???"
소년은 소현세자나 아진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귀하게 자랐는지 얼굴이 여인네처럼 하얗고 복색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소현세자와 마찬가지로 그 아이의 눈에는 고강한 기개가 서려있었다.
다만 이제껏 공중에 있다가 땅에 내려온 소년은 구토를 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하늘을 나는 경험과 눈앞에서
처참하게 만 여 마리의 좀비가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으에엑.....으에에엑..........."
아진이가 소년의 등을 쳐주면서 작은 천을 건네주었다. 소년은 그런 아진이를 쳐다보며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아...소저.....고맙소....하아..."
구토가 진정이 된 소년은 아델린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주유검(朱由檢)이오. 나를 쫓던 저 괴인들은 지금 명나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환관 위충현이 보낸 것 들이고....."
주유검은 분한 듯 이를 물면서 말했다.
"나라를 좀 먹고 있는 괴물 같은 것이....어디서 괴이한 술수를 얻어 왔는지..."
아델린이 대한민국 시절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성취로 자랑하는 유일한 것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이였지만
명나라의 역사는 알 길이 없었다.
아델린은 소년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는데 소현세자가 옆에 와서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저 소년은 필시 지금 명의 황제 '천계제'의 이복동생이자, 유력한 차기 황제로 거론되는 인물이네."
아델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호라....명의 권력 암투에 쫓겨 왔다?? 그리고 그것에 '그분'이라는 놈이 또 관련되어있다???
참으로 부지런한 놈이구나. 어느새 명에서도 이런 일을 벌여 놓다니. 하지만 지금은 신물에 집중 할 때다.
소년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의 나라 왕족을 하나 더 귀찮게 달고 다닐 수는 없지. 그것도 암살 위협을 받는 놈을 말이야.'
아델린은 주유검에게 말을 돌려주며 말했다.
"자 여기 말..다시 돌려주겠소. 그럼. 안녕히"
돌아서려는 아델린에게 소현세자가 말했다.
"아니 그냥 이대로 돌아가려고?? 차기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이를 이런 허허벌판에 혼자 두고 간다는 건가?"
"아니....그럼 어떻하시려고....지금 명나라의 실세가 죽이려고 하는 저 자를 조선에서 보호라도 하고 계시겠다는 겁니까??"
"아니...그게...그건 아니지만.....그래도 인간 된 도리로 어찌 저 작은 소년을 혼자 두고 간다는 말인가."
"차기 황제로 거론될 정도면 저자를 지키려는 무리 역시 상당할 겁니다. 그들이 알아서 데려가겠죠."
"아니....그렇지만, 아까 주유검을 죽이려 한 좀비 군대를 생각해보면 이미 다 죽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영민한 주유검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서는 말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하오. 나를 지키던 수하들은 모두 괴인들에게 도륙되고 혼자 남았지만,
비록 혼자의 힘으로라도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서 그 악독한 환관 위충현을 죽일 것이오.
물론 소년의 여린 몸으로는 명나라 국경에서 황궁으로 돌아가던 중에 굶어 죽던지 도적 떼에게 잡혀 죽던지 할테지만
설사 하늘이 도와서 황궁에 도착하더라도 위충현 그자에 의해 반역죄를 뒤집어쓴 나이기에
바로 처형되겠지만 염려 하지 마시오...그럼...다시 한번 감사하오."
아진이가 아델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쟤도 광해군 아저씨처럼 이제 갈 때도 없는 거 같은데, 우리 개척촌에서 그냥 같이 살면 안되요???
그냥....일반 백성으로요....네????"
아델린에게 딸 같은 존재인 아진이의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위충현이라는자와 '그분'이라는 자에 의해서
차후에 개척촌 마저 표적이 될까 봐 그것을 거절하려고 하였다.
눈치 빠른 주유검은 흔들리는 아델린을 보았다.
'이자가 위충현이 보낸 괴인들을 일순간에 도륙하는 것을 내 두눈으로 보았다. 지금 내가 살 길은 이자를 따라가는 것 뿐이다...
옳지....지금이 승부수를 띄울 때다!!!'
갑자기 주유검이 아델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면서 말했다.
'선비님...아니...주인님...이제 저는 황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저는 이미 죽고 없습니다.
일개 백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 터이니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시죠??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그였지만, 다른 순진한 일행들은 껌뻑 속아 넘어간다. 대국인 명나라의 유력한 차기 황제였던자가
여린 소년의 모습으로 목숨을 살려달라고 아델린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에
여론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델린...그냥 데려가줘라...이미 쟤는 여기서 죽은 걸로 다들 알 텐 데. 그냥 데려가도 아무도 모를걸???"
"선비님.....이런 허허벌판에 혼자 두고 가면 굶어 죽을게 뻔해요... 제가 데려가서 사고 안치게 잘 감시할게요....네???"
"험....일국의 세자로써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맞다고 하겠지만, 사람 된 도리로써 이대로 두고 가는 건....
영...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자신을 압박해오는 여론에 아델린은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하아아.....나에게는 왜 이렇게 왕족들이 들러 붙는단 말인가....이제는 하다못해 남의 나라 왕족까지도......귀찮게..
일단 개척촌에 데려다 놓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나의 옆에 두고 감시하고 있는 게 차라리 낫겠어.
옳거니!!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본에라도 떨구어 놓고 와버리면 되겠다.'
아델린은 여론이 잠잠해지면 일본에 떨구어 버릴 셈으로 일행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일단 제가 데리고 있도록 하지요."
아델린은 아직 무릅을 꿇고 있는 주유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일어나라...너의 말대로 이제 내가 너의 주인이다. 나의 명에 절대 복종 하여야 하며 나의 눈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된다."
주유검은 억지로 짜내었던 눈물을 훔치면서 아델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 주유검. 선비님의 분부대로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정말 모두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참으로 태세전환이 빠른 그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티르빙이 아델린에게 말했다.
'야...무언가 좀 찜찜하다. 쟤...그냥 여기서 죽여라.'
'티르빙...넌 아직도 차단된 상태다....말 걸지 마라...그리고 뭐가 찜찜하다는 건데? 저놈이 '그분'이라는 놈과 관련이라도 된 것 같다는 거냐??'
'아니....그건...아직...잘 모르겠다..아무것도 느껴지지는 않다만. 조금..... 좀 그렇다.'
'흥....뭐 별것도 아니구만......아직도 정명공주에게 저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라 하였던 너를 잊을 수가 없다.
너는 여전히 차단이다....반성이나 더 하고 있어.'
"다행이야....다행이야!!!"
주유검은 천진난만하게 아진이와 손잡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가 향후에 어떠한 파국을 가져올지 모른 채
일행은 그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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