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와의 건곤일척의 승부.
아델린이 후금의 대군을 물리치고 아민을 돌려 보낸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일대의 군사력은 장악했으나 그 지역의 통치를 위한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누르하치가 여진 부족을 통일하고 왕조를 세운 지 아직 십 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군사력을 제외한 지방 행정은 여전히 소규모 부족 중심의 마을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앙 집권 국가의 경우 전쟁에서 승리하여 중앙 정부를 장악한다면 한번에 쉽게 해결될 일이었지만
지금의 후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래서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상당히 고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처음에는 반발하는 부족장들에게 지배 반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부족장들의 혼을 광해군이 지배하여서 마을을 조선의 영토로 흡수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부패하지 않고 유능한 이들만 남아있고
거기다가 태반이 잠도 안자는 좀비 대신으로 가득 찬 유능한 조선 조정에서
유목민들에게 목숨과도 같이 귀했던 소금의 안정적 공급을 시작으로 다양한 포섭책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지배 반지로 인해 강제로라도 조선의 영토로 편입된 마을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졌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왕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광해군의 매력과 체계적인 조선 조정의 지원은 결국 민심을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석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부족 마을들을 조선의 영토로 삼을 수 있었다.
조선 군대도 국경을 확장하여 새롭게 진을 구축하였다. 물론 후금의 병력 대부분이 수도 요양에 집결해 있었기에 따로 군사적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 아델린은 광해군과 함께 누르아치가 기다리고 있는 요양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두 국가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출정하는 조선군이었다.
총 원 네 명으로 구성된 조선군이 정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당당히도 길을 나섰다.
처음 국경에 그들이 나타났을때 절망에 빠져들었던 병마절도사와 국경의 군사들은 지금은 열렬한 환호를 하며 배웅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믿고 있었다. 제국 조선의 탄생을.
아델린은 일행을 데리고 날아갔다. 얼마 되지 않아서 요양에 도착했다.
후금의 두 번째 수도인 요양에는 산과 평원의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에 탁월한 도성이 있었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수성의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 기병의 민족 답게 평원에서 아델린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대략 삼 십 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후금이었다.
그들이 가진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아민의 말을 믿어주기로 한 이상 전력을 다하는 누르하치였다.
그는 전쟁터가 한눈에 보이는 도성의 지휘부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곧 그의 눈에 조선군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셋.....넷.....???? 하아....."
아민의 말대로 모든 전력을 모아서 방비를 했다. 그런데 나타난 침략군은 단 네 명이었다.
누르하치만이 아니라 아민을 변호해주었던 홍타이지마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후금의 말단 보병마저 이 어이 없는 상황에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후금의 기병을 이끌고 최전선에서 준비 태세를 하고 있던 아민의 두 손 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단 네 명의 조선 군의 등장에 삼십만 대군을 뒤에 두고 있는 선봉장이 공포에 사로잡혀 떨고 있었다.
그는 좀비군대에게 포위 당했을 때도 결코 기세가 꺾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신과 같은 힘을 소유하게 된 아델린을 눈앞에서 대면하였을때 절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다시 아델린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마음은 절망으로 꺾이려고 하였다.
그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진정 시키고 말의 고삐를 바짝 쥐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석 달 동안 착실히 준비를 했어. 모든 것을 걸고 노력했다. 그런데....그런데....."
삼십만 대군의 선봉장이 네 명의 조선인들을 향해서 내뱉는 말을 부하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당시 겨우 살아온 천기의 기병들은 대다수가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며 군을 떠났다.
그리고 후금 전사들의 살아있는 긍지였던 아민은 조선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함에 있어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너무나 존경 하던 그이기에 그의 광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과도한 준비를 하였지만 묵묵히 따라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석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열심히 대비를 해왔건만 지금 눈앞에 있는 침략자는 단 네 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보면서 공포에 떠는 아민이었다. 그 모습에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신뢰하기가 힘들어진 부하들이었다.
아민이 삼십만 후금의 대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홍타이지에게 마저
미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리게 되던 그 순간에 아델린이 좀비군대를 소환하였다.
"δράκων"
아델린의 뒤에 순식간에 만 여 마리의 좀비군대가 나타났다. 그 광경에 후금의 모든 이들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만 여명의 대군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김새나 위세는 결코 범상치 않았다.
일반 수준의 전사들은 단지 그 위세 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누르하치를 비롯해 후금의 실력자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들은 위험하다. 아민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런 그들의 심경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아델린은 뒤에 도열해 있는 좀비군대에게 명했다.
"자.....가라. 모두를 섬멸해라."
명을 받은 아델린의 좀비군대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자신들의 삼 십 배가 되는 대군의 앞에서도 전혀 위축이 되지 않았다.
소드마스터의 육체를 가진 그들에게는 인간의 수적 우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델린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일방적인 학살을 예상하고 있었다.
눈앞에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괴인들의 기세에 아민의 선봉대는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좀비들의 등장 전에는 벌벌 떠는 아민을 비난하려 하였던 그들이었다.
그때 아민은 입술을 깨물며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부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정신차려라!!!! 우리는 괜찮다!!!! 훈련한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모두 준비해라!!!!!
지...지...지금이다!!!!!"
아민의 명에 준비해두었던 화약이 터졌다.
"쿠쿵....콰아앙"
"투둑....투두둑.....투두두둑......투두두두두둑....."
그 순간 공포로 몸이 얼어붙은 선봉대의 학살을 시작하려던 좀비군대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델린의 시야에서 갑자기 그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아민의 선봉대 앞에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판 구덩이가 있었던 것이다.
상당한 넓이의 구덩이를 약한 나무로 막고 천으로 가린 후 흙으로 덮어 위장하였었다.
그리고 좀비군대가 모두 그곳에 들어 섰을 때 곳곳에 설치해두었던 화약을 폭발 시켰다.
가공할 신체능력을 가진 좀비 군대들도 그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깊은 구덩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차려라!!!! 이때다!!! 어서 훈련한 대로 !!!! "
아민의 외침에 선봉대는 정신을 차렸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아민에 의해서 죽을 만큼 훈련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여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구덩이를 향해서 일제히 불화살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쾅....콰쾅쾅....!!!! 콰쾅!!!!"
구덩이 안에 갑자기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곧 커다란 굉음이 울리며 구덩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민은 구덩이 안에 기름이 가득한 통을 상당히 많이 준비해두었었다. 그리고 강력한 화력의 화약도 상당수를 파 묻어 놓았었다.
화약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구덩이 안은 아직도 터무니 없이 많이 준비한 기름에 의해서 업화의 불길로 가득했다.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린 것만 같았다.
'하아....이 정도면 되겠지. 아무리 그 괴인들이라 해도 저곳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을 거다.
아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괴인들의 등장에 공포로 얼어붙었던 선봉대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너무나도 과한 준비를 한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모두에게 조롱을 받아 온 아민이었다.
하지만 누르하치를 비롯해서 후금의 모두가 지금 그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아민 버일러!!!! 아민 버일러!!!!!!아민 버일러!!!!"
여진의 영웅 누르하치는 진심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동안 아민의 말을 반신반의 하였었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좀비군대는 분명히 너무나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멀리서 보았지만 무의 경지에 이른 그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나 하나가 분명 후금의 명장들을 압도할만한 무의 기운을 뿜어 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만 명이나 되다니. 삼십만 대군일지라도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온갖 멸시를 받으며 착실히 대비를 했던 아민으로 인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저 무시무시한 일 만의 괴인이 사라진 이상 이제 후금의 승리가 확실했다.
모두가 구국의 영웅 아민을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다른 사실을 알고 있는 아민은 결코 웃지 못했다.
좀비군대가 구덩이에 갇혀 화약의 폭발과 불길 속에 사라져가는 순간에도 태연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아델린의 시선을 느꼈다.
그의 눈빛을 통해서 아민은 잊고자 했던 절망에 다시금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하아.....이제는 어찌 해야 하는 것인가. 좀비군대가 사라졌어도 저자가 있으니.'
아민의 손은 다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석 달 전 눈앞에서 보았던 아델린의 힘을 부정하려고 했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힘이기에 잘못 본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였었다.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좀비군대의 몰살에만 온 힘을 쏟았었다.
하지만 오늘 아델린을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처참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저것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하늘은 우리 후금을 버리는 것인가.'
삼십만 대군이 승리의 기쁨에 가득 차 있을 때 홀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패배의 절망을 맛보고 있는 아민이었다.
하지만 후금의 모든 이가 그 절망을 공유하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저....저것은!!!!"
"우아아악!!!! 이것은 꿈이야. 말도 안돼!!!"
"도망가...도망가야 돼. 살려줘!!!!!"
구덩이에서 아델린의 좀비들이 하나둘 기어 올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화약의 폭발과 끓어오르는 화염으로 인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불길이 가득한 구덩이에서 기어 오르는 모습은 지옥에서 악마가 나오는 것만 같았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던 후금의 대군은 그 끔찍한 모습에 전의 자체를 잃어 버렸다.
그리고 아민은 이제 실소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하다고 모두가 말려도 끝을 알 수 없도록 깊게 파두었던 구덩이다.
거기다가 엄청난 수의 화약의 폭발과 업화의 불길로 가득한 그곳이다.
그곳을 살아서 기어 나와? 나는 네놈들의 상대도 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였구나."
아민과 선봉대는 처참한 몰골로 달려온 지옥의 좀비군대에게 순식간에 목이 잘려버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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