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물의 수호자들.
김율의 말에 아델린이 깜짝 놀라서 괴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였다.
나이는 조금 있어 보였지만 굉장한 미인이었다.
남자다움을 넘어서 산적두목 같은 풍채를 자랑하는 김율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는 다시금 놀라서 말했다.
"자기??? 뭐라고요!!! 이건 말이 안되지...."
김율이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저기 저 여인은 나의 약혼자라네.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사랑.........."
"그. 입. 다. 물. 어. 라. !!!!"
"지지직.....지지지직....."
김율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괴한의 일격이 날아왔다. 그녀의 분노의 검강을 품은 일격은 아델린의 배리어 마저 뚫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힘의 봉인을 하지 않는 9서클 마법사 아델린의 배리어는 쉽게 뚫리지 않았고
그녀는 다시 뒤로 물러나서 분한 듯 말했다.
"이놈!!! 사내 대장부라는 자가 어찌 쥐새끼처럼 남의 품에 숨어 있는 것이냐.
새로운 경지를 보았다며 자신의 약혼자도 버리고 간 주제에 겨우 이런 일격도 혼자서는 받아치지 못하는 것이냐!!!"
언제나 호탕하던 무사 김율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으로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만 있었다.
그때 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은'!!!! 은이 네 이놈!!!! 귀한 손님들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이냐.
어서 검을 거두고 예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목소리의 주인은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의 옆에는 기운이 잘 갈무리 된 노인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아........정말.....할아버진........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은'이라는 여인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김율을 다시 째려보고는 사라져버렸다.
이순신 장군은 아델린 일행에게 사과하였다.
"아.....미안하네. 미안해. 내 막내딸이 이제 마흔이 다 되가는데도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아서 말이야.
저리 보여도 김율. 이 아이를 잊지 못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라네.
얼마 전 율이가 치우에 왔을 때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다녀갔다는 것에 화가 많이 났었던 모양이야."
아델린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김율에게 말했다.
"아니...저런 미인이 약혼자라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저런 여인을 두고 떠나셨던 겁니까??? 허 참...."
김율은 아직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말했다.
"아니...그것이....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주군의 호위무사가 되었을 때 혼인을 하고자 했었네만
부친인 이순신 장군이 결국 자살로 위장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정치에 굉장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찾고자 하는 경지의 길을 빨리 이루고 난 후 치우로 돌아오면 그때 혼인 하자고 하였었네만.
피치 못할 일들로 어느새 세월이 이리 흘러버려서 나만을 기다려준 그녀를 차마 볼 면목이 없어 잠시 피해 다니고 있었었네. 하하하하"
듣고 있던 정명공주가 무사 김율의 정강이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어찌...이놈이나 저놈이나 여인의 마음을 모르는 게 이리도 똑같은지. 끼리끼리라더니...."
왠지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도 싸잡아서 욕을 먹고 있다는 쎄한 기운을 느끼며 아델린이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과 장로들에게 말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계신 두 분은 장군님과 함께 치우를 맡고 계시는 장로님들이신지요.
외부인인 제가 상황이 급박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옆에 있는 장로 중에 따스한 기운을 품고 있는 노파가 말했다.
"흠....율이의 말이 과장인 줄 알았었는데 지금 실제로 만나보니 그것도 부족한 듯 합니다.
평생을 무의 길만 정진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지금 여러분들을 뵙게 되니 너무나도 부끄러워만 집니다.
혹 시간이 되신다면 우물 안에 갇혀 있는 저희 치우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한번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델린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
"아....물론 변변치 않은 힘이라도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요."
마치 김율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노인이 성격도 급하게 말했다.
"일단 나부터 먼저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네. 그려. 하하하하.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힘이야.
내 생전에 이런 경지를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그 노인은 유심히 아델린과 정명공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자네의 것이 아닌 이 강대한 힘은 무언가. 저 뒤의 소녀에게서도 마찬가지이고.
혹시 정말 전설속의 신물을 찾았던 건가???"
"아닙니다. 신물은 분명히 존재하였습니다만, 현재 조선의 흑막인 '그분'이란 자와 연관이 있을거라 의심되는 이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신물들도 빼앗기기전에 먼저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했다.
"아....그렇군. 그 자는 전설 속의 신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우리도 그 존재에 대해서 확신하지는 못했던 건데.
어찌. 그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두분 장로님들 '그분'이라는 자의 위험성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모양입니다."
아델린은 힘주어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힘의 한계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분'이라는 자가 만약에 신물들을 다 모으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꼭 막아야 합니다. 치우 여러분들께서도 부디 뜻을 모아 주십시오."
따스한 기운의 노파도 말했다.
"그래요....마침 우리도 '그분'이라는 자의 위험에 대해서 치우가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지고는 있습니다만.
율이의 이야기를 듣자니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는 막막하기는 합니다.
세상이 상정하지 못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인데 그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힘을 가진 위험의 등장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델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어떠한 행동을 취해달라고 요청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라는 자의 움직임도 지금은 현저히 제한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차후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될 때 부디 치우의 힘을 보여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오늘은 치우의 고대문서를 살펴 보고자 방문드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행을 앞장서면서 말했다.
"시간이 없는 듯 하니. 어서 가세. 이리로 가면 되네. 그리고 율아. 너는 은이한테 좀 가보려무나.
팔십이 넘은 내가 봐도 너는 좀 답답해. 너 하나만 기다리다 벌써 마흔이 되버린 아이다.
마음을 좀 달래주고 오너라."
언제나 호탕했던 김율은 오늘만큼은 축 처져서는 얼른 '이은'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그를 아델린이 급하게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응???왜 그러는데???"
"그냥 가서 어떻게 달래시려고요. 이십년을 넘게 기다리게 했던 죄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죄인지 아직도 모르시는 겁니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아델린은 여분으로 샀던 반지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개척촌과 이곳의 위치를 계산한 후에 마법을 반지에 부여했다.
"인챈트-텔레포트"
"이 반지 디자인도 괜찮은데 더구나나 순금입니다. 거기다가 개척촌과 이곳을 오갈 수 있는 순간이동마법을 부여했으니
이것을 바치고 무조건 용서를 비세요. 이제 주군이신 이혼(李琿)님도 일선에서 은퇴하셨으니
서로 자주 오가시면서 남은 생은 마나님께 충성을 바치십시요."
김율은 감동한 듯이 아델린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재빨리 달려나갔다.
그것을 지켜보고서 정명공주는 아델린의 뒤통수를 한대 또 때려주었다.
"아악.....뭡니까...갑자기...."
"너.....좀 맘에 안 들어....그렇게 잘 아는 애가...그냥 모지리인줄 알았는데 선수였어 선수...."
정명공주는 툴툴대면서 이순신 장군을 따라 나섰고, 아델린과 나머지 치우의 장로들도 고문서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아델린은 이동하던 중에 자신의 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련하는 이들의 청량한 기운이 곳곳에 가득한 것을 보면서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서 이곳의 이들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하는 마음을 먹었다.
-치우의 고대 지식이 가득한 도서관-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상당히 컸고 온갖 문서들에서 풍기는 기운들도 범상치는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말했다.
"자...이곳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치우의 모든 지식들이 있다네. 원래는 외부인에게 공개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이 긴급상황이라는 지도부의 판단하에 자네에게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네.
내가 자네에게 말했던 '천부인'에 대해서 기록되었던 문서가 이것이네."
아델린은 이순신 장군에게 전해 받고서는 말했다.
"삼족오...나와봐라."
아델린의 말에 정명공주의 반지에서 자그마한 화염의 새가 나왔다. 그것을 본 장로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아델린이 장로들에게 설명했다.
"아....얘가 '천부인'을 대대로 지켜오던 주작으로 알려진 삼족오라네요. 칠칠맞게 이번에 신물을 빼앗긴 신물의 수호자입니다."
아델린의 설명이 상당히 심기가 거슬렸는지 그의 얼굴에 화염을 뿜어대고서는 말했다.
"야. 이놈아. 내가 500년 주기로 부활을 앞두고 약해진 시기를 틈탄 기습에 당한 것이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태왕인 '담덕' 조차도 항상 나에게는 무릅을 조아리고 예를 갖추었건만.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
"앗...뜨...뜨거워.........아니 대우를 해주려고 해도 수호자가 신물도 빼앗겨버리고, 다른 신물의 위치에 대한 기억도 못하는데
이 정도 구박은 받아야지. 자 어서 기억의 단서가 될만한 것들이나 찾아봐봐."
삼족오는 씩씩대면서도 아델린의 손에 있는 고문서를 살펴보았다.
"이것이 내가 지키던 '담덕'의 무덤 태왕릉에 대한 이야기이고...조금 더 뒤로 넘겨봐봐."
아델린이 책장을 천천히 넘기던 중에 나온 사신도의 그림을 삼족오가 눈을 빛내며 보면서 말했다.
"아...맞아...맞아. 신물들의 수호자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오오...드디어 떠오른 거냐??? 어서 말해봐봐."
"그것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든다. 500년 주기로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나와는 달리 그냥 오랜 세월 살아온 녀석들이다.
갓 부활하고 나서는 모든 기억이 온전치 못한 나를 언제나 새대가리 취급하며 놀려 대던 못된 놈들이다.
기억난다. 기억나!!! 그 못된 놈들의 면상들이!!!!.
삼족오는 고문서의 사신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놈!!! 언제나 잘난척만 해대는 지가 제일 강한 줄 아는 동해바다의 용. 신문왕의 '만파식적'을 수호하고 있는 놈이다.
그리고 요놈은 이성계한테 신물인 금척을 주고서 눈꼴사납게 전달자인 수호자 주제에 조선왕실에서 은근히 대접을 받아오던 백호녀석이다.
그리고 그리고...요놈 요거는...정말..."
삼족오는 마지막 현무를 가리키면서 분노의 불꽃을 내뿜었다.
"요놈....요놈은....그냥 괜히 싫어. 나랑 정말 안 맞아.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싫다고.
지가 지혜가 많은 현자인척 거드름이나 피우고 다니고 말이야. 사실은 느려터진 은둔형 외톨이주제에.
요놈이 근초고왕의 '칠지도'의 수호자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1급의 아델린이 아는 지식을 동원해 말했다.
"그거는 이미 일본에 있는 거 아니야???"
"아니...그건 단지 신물의 모양을 흉내 내서 만든 모조품일 뿐이다. 진품은 음침한 '현무' 그놈이 가지고 있지.
그런식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도 참 맘에 안들어.:
아델린이 삼족오를 놀리듯이 말했다.
"그런 위장을 통해서 신물을 안전하게 잘 지켜내고 있는 거 아니냐?? 누구랑은 다르게 ㅎㅎㅎ"
삼족오는 대답 대신 이번에도 아델린의 얼굴에 불꽃을 뿜어 주었다.
"앗 뜨 뜨거워!!!....이놈이...확......너.......너....... 일단 시간이 없으니 한번만 더 봐주마. 혹시 수호자들의 위치도 생각나냐???"
"흥이다. 이놈아. 또 까불면 언제든지 불꽃을 내뿜어 줄 거다.!!!
'만파식적'의 동해용은 지가 천하무적인줄 알고 숨어있지도 않고 대놓고 문무대왕릉 인근의 동해바다에 머물러 있을 것이니 어렵지 않을 거고"
삼족오는 사신도의 백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놈은 조선 초기에만 해도 왕실의 섬김을 받는 것을 나름 즐기면서 그들과 교류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금척'을 가지고 숨어버렸다. 그래도 조금 더 고문서를 더 찾아보거나 조선왕실을 조사해보면 실마리가 쉽게 나올 거다.
이놈. 참으로 단순 무식한 놈이거든."
삼족오는 사신도의 현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근데 문제는 이놈이다. 말했듯이 은둔형 외톨이인 놈이다. 또 조심성은 얼마나 많은지. 수시로 위치를 바꿔버리는 녀석이고.
이놈은 찾고 싶지도 않고 찾을 방법도 쉽지는 않은 놈이다."
삼족오의 설명을 듣고 아델린은 말했다.
"그럼..우선은 가장 위치가 확실한 동해의 용부터 만나러 가봐야겠구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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