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린. 흑화(黑化)하다 4.
아델린은 자신을 너무나도 반기는 김시정을 보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니놈이 어지간히도 고생을 했나 보구나. 이리로 와라."
아델린의 명에 김시정은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시야에는 벌벌 떨고만 있는 문무백관들이 보였다.
"하하하하. 이놈들아. 보았느냐. 진정한 조선의 주인이 누구신지!!!!"
아델린은 김시정을 살짝 째려보았다.
"그만해라. 일단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왼쪽에 모아두었다. 왼쪽에 모인 자는 '영'을 빼앗아서 나의 수하로 만들 것이다.
니가 일일이 살펴보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은 오른편으로 빼내거라.
오른편에 있는 자들 중에서도 악한 자가 있다면 왼편으로 보내고."
아델린의 명에 김시정은 조정에 모인 문무백관과 군사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직 악행을 실제로 저지르지 않아서 오른쪽에 있던 몇 명을 아델린의 앞으로 끌고 왔다.
"이놈들은 아직 어려서 실제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여도 싹수가 노란 놈들이라서 제가 유심히 보아왔습니다.
반드시 장차 저의 뒤를 이어서 백성의 고혈을 짜먹을 놈들입니다."
김시정은 이제 막 관리가 된 듯, 어려 보이는 몇 놈을 잡아 가지고 왔다. 아델린은 그들을 자세히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모든 것이 하찮다."
-언령(言令-
"너희의 '영'은 나의 힘이 되거라.
너희의 '혼'의 주인은 내가 된다."
아델린의 말이 마치자 마자 김시정의 손아귀에 있던 그들은 풀썩 주저 앉았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왼편에 모인 문무백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델린은 신희원과 그와 고통을 나눠지고 있는 열 여명의 무리와 신지후에게 명했다.
-언령(言令)-
"소멸되거라"
아직까지도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잠겨있던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천히 소멸되었다.
아델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언령(言令)-
"소현세자와 광해군은 내 앞에 나타나라."
아델린의 명에 그들은 영문을 알지 못하고 당황한채로 개척촌에서 순간이동이 되어버렸다.
죽은 줄 알았던 광해군의 얼굴을 본 문무백관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소현세자와 광해군은 조정에 모여서 벌벌 떨고만 있는 대신들과 군사들을 보았다. 광해군이 아델린에게 말을 했다.
"아델린. 이것이 무엇인가. 역사에 관여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아델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광해군에게 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상관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이제는 오히려 신을 불러내기 위해서 역사를 뒤흔들어 버리려고 합니다."
"아니. 그것은 아니되네. 장차 보위를 이을 총명한 세자가 있지 않은가.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두어야 하네."
"신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 순리를 깨뜨릴 것입니다.. 저의 목적은 그것입니다만."
아델린은 냉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면 지금 두 분의 뜻을 묻겠습니다. 두 분이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조선에서는 이대로 물러나 드리지요."
광해군과 세자는 흑화하여 무서운 기세를 품고 있는 아델린을 긴장한 채로 바라보았다.
"앞으로 삼년 후 후금이 침공해 올 겁니다. 여기 있는 고관대작들과 임금이야 또 강화도로 피난 가버리겠지만
이제 임진년 왜란의 고통에서 겨우 벗어 나고 있는 백성들은 다시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되겠죠."
광해군과 세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광해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그렇게나 빨리 벌어지게 되는가."
아델린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구 년 후에는 다시 후금의 대군이 쳐 들어 오게 됩니다.
이번에는 임금이 무릎을 꿇고 소현세자와 조선의 백성 수십 만 명이 끌려가게 됩니다.
'이혼'님이 조선의 미래라고 여기시는 소현세자께서는 남의 나라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귀국하신 후 이유 모를 이유로 돌아가십니다."
아델린의 엄청난 말에 할 말도 잊어 버린 채 멍하니 서있는 두 사람에게 아델린은 말을 이었다.
"순리를 거스르기로 한 제가 힘을 드릴 테니 조선에 다가올 불행한 미래를 바꿔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순리대로 정해진 미래를 받아 들이시겠습니까?"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에게 아델린은 답답한 듯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까요? 훌륭한 왕이 몇 명 더 등장하기는 하지만
표리부동한 유학자들로 가득찬 조선은 결국 시대에 뒤쳐져서 삼 백 년도 채 되지 못하여 일본의 속국이 되어버립니다."
아델린의 말에 광해군과 소현세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의의 표시를 하였다.
"하....하겠네..."
"나도 동의하네."
소현세자가 진중한 표정으로 아델린에게 말했다.
"자네의 목적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였네. 조선을 어찌할 생각인가."
아델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강대해진 후금을 정벌할 겁니다. 그리고 환관 위충현을 없애버리고 주유검을 황제의 자리에 앉혀서 조선의 속국임을 자처하게 할 겁니다.
조선은 후금의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명나라를 속국으로 둔 대국이 될 겁니다."
광해군과 소현세자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광해군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정말....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후금의 정벌이야 저의 좀비 군대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다만 '그분'이라는 자가 나선다면 일이 복잡해지겠지만
어찌된 연유인지 그자는 제가 순리를 어지럽히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굳이 제 행동을 막지 않을 겁니다."
광해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그분'이라는 자의 흉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겠다는 것인가?
당장 눈앞에 처한 조선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긴 하네만.
그자가 결코 선한 이가 아니라는 것은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아델린은 공허한 눈빛으로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그 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장기말이 되어서 그것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시간을 거슬러 나의 딸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들입니다."
아델린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기적이라고 욕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광해군은 슬픈 눈으로 말했다.
"하아....아니야. 나도 백성들의 눈앞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이기심으로 자네의 손을 잡는 것이니 자네를 비난할 자격은 없네."
아델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현세자가 바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시고 광해군께서 그를 보좌해 주십시요.
제가 후금을 정벌한다 하여도 그곳의 백성들을 받아 들여서 광활해진 영토를 하나의 조선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조정의 대신들의 상당수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아델린은 왼편에 있는 이들과 '그분'의 무사들에게 명했다.
-언령(言令-
"너희의 '영'은 나의 힘이 되거라.
너희의 '혼'의 주인은 소현세자가 된다."
조정에 모인 대신들 중 삼분의 이가 넘는 인원이 왼편에 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가 일어났다.
이제 그들은 임금이 될 소현세자의 명에만 복종하며 오직 조선의 부강을 위해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영이 아델린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델린의 몸이 환하게 빛이 나며 그는 일종의 쾌락마저 느끼게 되었다.
'영을 흡수할수록 강해지는 힘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마치 마약과 같이 끝없이 갈구하게 될 것 같은 이 불길한 느낌은 무엇인가.
뭐. 상관없다. 이제는 단 하나만 생각할 것이다.'
아델린도 모르게 그의 얼굴에는 검은 줄이 하나 더 그어지게 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광해군과 소현세자는 악마와 손을 잡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상황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아델린은 소현세자에게 말했다.
"저 왼편에 있는 자들은 이제부터 세자의 말에 절대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라는 자가 만들어둔 조선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자는 부디 명군이 되소서."
아델린은 여전히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인조에게 말했다.
"다 들었지 않소. 그대를 해치고 싶지 않으니. 세자에게 지금 선위(禪位)하고 상왕의 예우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시오."
인조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조정에 모인 대신들에게 선포하였다.
"이제부터 소현세자에게 선위할 것이다. 부디 그를 도와서 조선을 부강한 대국으로 만들어라."
아델린이 단순히 무서워서만은 아니고 자신이 빠져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 순순히 선위한 인조였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상황에서 그의 욕심이 자연스레 사라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세상 만사 욕심에서 해방된 인조는 광해군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 제가 임금의 자리에 눈이 멀어서 백부님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습니다."
광해군은 인조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손안의 변신마법반지를 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 얼굴을 본 인조는 깜짝 놀랐다. 광해군은 따스한 미소로 말했다.
"기억나는가. 내가 자네의 부름을 받고 가끔씩 죽을 만들어 주러 가지 않았던가.
자네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독살을 했었겠지. 하하하하. 이미 지난 일이네.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 소현세자의 힘이 되어주게나."
인조는 광해군의 손을 잡고 말했다.
"부디 제 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내 뒤에서 최선을 다해서 그를 보필하겠네. 그 아이는 반드시 명군이 될거야."
아델린은 감동 넘치는 왕위의 선위과정을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을 본 티르빙이 말했다.
'클클클클. 네놈도 나와 같이 되는구나. 네놈의 영을 먹어치우려고 했는데.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클클클클'
아델린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나도 '그분'이라는 자나 마검 티르빙과 같이 되어가는 건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