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정벌에 대한 논의.
현무의 안전가옥에서 제오브리스가 말했다.
-언령(言令)-
"이제 됐다. 돌아가라. 아델린의 곁으로"
그의 말이 마치자마자 속박이 풀리며 정명공주와 삼족오, 백호, 현무는 아델린의 옆으로 순간 이동 되었다.
정명공주는 얼굴에 검은 줄이 여러 개가 그어져 버린 채 싸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델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서 울었다.
"으아아앙.....뭐냐고. 니 꼬라지는...부서진 거 같은 니 마음은 ...."
아델린은 그런 그녀를 품에서 살며시 밀어내더니 말했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물러가서 자기 할 일을 차질 없이 하도록 하세요. 나머지 일행들은 인정전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아델린의 조용하나 위압감 넘치는 말에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인정전으로 들어왔다. 일행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델린은 소현세자에게 말했다.
"즉위식 등 하셔야 할 일들이 많으실 겁니다. 최대한 서둘러 주십시요.
제가 후금의 군대를 무력화 시킨 후에는 조선의 조정에서 그들을 다스릴 방도를 찾아내셔야 합니다.
지방관의 파견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이제 겨우 왜란의 피해를 복구한 조선은 그 광대한 영토를 다스릴 이들을 파견할 여력이 없다네.
새로운 관리들을 뽑고 교육시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텐데...."
소현세자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제 명나라 마저 삼키려 드는 저 강대한 후금을 굴복 시켜 준다는 아델린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하지만 재정도 인력도 부족한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의 말이 현실성이 있었다.
한숨을 쉬는 소현세자를 보면서 아델린은 말했다.
-언령(言令)-
"주유검은 내 앞에 나아오라."
갑자기 개척촌에 있는 주유검이 인정전 안으로 불러들여졌다. 아델린은 아직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주유검에게 바로 말했다.
"네놈이 나의 하인으로 살기로 한 것이 진정 맞느냐?"
주유검은 변한 분위기의 아델린 앞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네. 물론입니다. 명나라의 황자로써의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조선의 백성으로써 아델린님의 하인으로 살기로 한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네놈을 명의 황제로 만들어줄 것이다."
"네??? 그게 갑자기 무슨....지금의 황제는 저의 이복형님이십니다. 어찌 그런 일을...."
"지금의 명은 사실상 환관 위충현의 나라가 아니더냐. 그로 인해 너의 백성들도 고통을 겪고 있을 테고.
네놈도 망국의 길로 가는 명을 구해보려고 하다가 죽게 된 것이 아니더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지금의 개척촌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아온 네놈이라면 명의 황제가 되어서 환관 위충현과 부패한 관리들을 척살하고 백성들을 위하는 황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한 힘을 내가 주도록 할 것이다. 다만. 네놈이 명나라를 장악하고 나면 조선의 속국임을 자처해야 한다. 가능하겠느냐?"
주유검은 심각한 얼굴로 아델린에게 말했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불가하옵니다."
아델린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그를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며 말했다.
"불가하다? 무엇이?"
주유검은 아델린의 위세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다잡고서 말했다.
"아무리 제가 명의 권력을 장악한다고 하여도 지금의 조선은 너무 나도 작습니다.
그러한 조선의 속국임을 자처한다고 하는 것은 명나라의 백성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 옵니다."
"그것은 걱정할 것 없다. 먼저 내 힘으로 후금을 정벌하여 조선의 영토가 되게 할 것이다.
후금을 조선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새로운 조선의 임금인 소현세자와 광해군이라면 잘해낼 것이다.
그 정도라면 되지 않겠느냐? 필요하다면 일본까지도 정벌해주마."
"아닙니다. 지금의 후금은 명나라의 모든 이들이 두려워 하는 존재가 되었으니
후금의 영토와 백성들만 온전히 흡수하여 조선이 하나의 제국으로 자리 잡는다면
저의 독단으로도 가능은 할 것입니다."
주유검은 죽음을 각오한 얼굴로 아델린에게 말했다.
"하지만. 싫습니다. 지금 저를 죽이신다고 하여도 조선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가지 않을 겁니다."
아델린은 의아한 그의 답변에 의문을 표했다.
"뭐??"
나라의 명운을 이야기 할 때는 어른스러웠던 주유검이 아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울상이 되어서 말했다.
"안됩니다. 지금 아진이의 마음을 두고 소현세자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단 말입니다.
지금 제가 명나라로 떠나게 되면 아진이의 마음은 소현세자가 차지하게 될 거란 말입니다.
저는 명나라의 황제가 되는 것보다도 개척촌의 촌민으로 아진이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주유검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아델린에게 간청했다.
"부디. 명나라에 아진이를 데리고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요.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작은 어린아이가 사랑을 위해서 황제의 자리와 목숨까지 버리려 하는 모습이 인정전의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하였다.
어둠에 침식되어 인간의 감정을 잊어버리게 된 아델린도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하아....그것이 이유였더냐? 어이가 없구나. 아진이의 마음은 어떤데?"
"저에게 기울어 있습니다!!!!"
"나를 조금 더 좋아하오!!!"
주유검과 소현세자는 동시에 다급히 외쳤다. 소현세자도 어느새 아델린의 앞에 와서 앉아있었다.
아델린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아진이. 요것이 상당히 여우였구나. 벌써부터 남정네 둘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다니.
그것도 조선과 명나라의 후계자들을.....'
아델린은 주유검에게 말했다.
"청나라의 군대를 굴복시키고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동안 아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거라.
그리고 명나라에서도 개척촌에 순식간에 올 수 있는 반지를 만들어 줄테니.
조선을 떠난 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델린은 마치 장인어른에게 허락을 받고자 하는 사위후보들을 보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둘을 보면서 말했다.
"소현세자도 이제 조선의 임금으로써 상당히 바쁠 것이고 주유검도 명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려면 상당히 바쁠 것이니
둘다 자신의 책무에 충실히 하고 남는 시간에 아진이의 마음을 정정당당히 사도록!!
모든 결정은 아진이가 하는 걸로. 이상 끝."
주유검과 소현세자는 결의에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잠잠히 있던 현무가 아델린에게 말을 하였다.
"지...지금 하려는 일들은 다 '그분'이라는 자가 의도하는 것입니다. 그...그것이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얼굴에 검은 줄이 여러 개 그어진 아델린은 현무에게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오브리스가 강제로 주입한 어둠의 힘에 의해서 제가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점점 제 안의 분노가 커지고 어둠에 마음을 침식당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이란 작자가 나의 딸과 나의 사람들에게 일어날 비극을 앞두고 저를 소환해 버렸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델린은 분노하며 말했다. 그가 뿜어대는 분노의 기운은 사신(四神)들도 압도당할 만큼 강력하였고 또한 절망이 가득 했다.
"그래 놓고 나의 딸과 사람들을 죽인 자들의 후손을 구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대리자들이여. 신을 불러주시오. 그에게 연유를 묻고 합당하다면 지금 당장 이 미친 짓을 멈추도록 할 것이오."
사신(四神)들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델린에게 일어난 비극이 신의 뜻이라면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고
신의 대리자들이라고는 해도 수 백 년에 한 번 신물을 통해 주어지는 신탁을 제외하고서는 신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델린은 그들에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신은 비겁하게 나타나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뜻을 강요만 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신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그분'이라는 자의 장기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세계의 질서를 무너트릴겁니다.
여러분들과 적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를 막지 마시고 가십시오. 가서 신을 찾아 오시란 말입니다."
아델린의 말에 사신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무가 백호와 삼족오에게 말했다.
"우...우리는 모두 신물을 빼앗겨버린 상태입니다. 이제 신탁을 듣기도 힘든 무력한 존재들.
하...하지만 제가 희박한 가능성이나마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두분은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요.
이....이제 우리는 아델린을 막을 힘도 없지만 그래도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현무는 아델린에게 따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할 방법을 찾아서 꼭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지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요."
"어차피 청의 정벌을 위해서 조선이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니 조금은 기다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기약도 없는 일에 그 정도 이상의 시간은 드릴 수 없습니다."
"네...부...부디 아델린님. 어둠을 이겨내셔야 합니다."
현무는 안타까운듯한 표정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델린은 소현세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김시정의 집에 가 있을 테니 준비가 되는 대로 연통을 주십시요. 군사들은 필요없습니다.
파견할 지방관들도 준비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니 그것도 제가 해결해 놓겠습니다.
다만 후금에 조선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선포를 하십시오. 후금을 정벌하겠다고."
아델린은 그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한양 도성 김시정 대감의 집-
'후.....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 세상을 뒤흔들어서 신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그가 나를 원래의 시간으로 보내줄까?
그럴 확률이 높지는 않다. 그렇다면 신과 싸워서 힘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건데.'
그때 티르빙이 아델린에게 말을 걸었다.
'클클클클. 네놈도 이제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구나. 내가 왜 갑자기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는지 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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