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의 장로 이순신.
마검 티르빙의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후 다시 거처로 돌아왔다.
아직은 출발하기에 시간이 조금은 남았기에, 강해진 것을 자축하면서 저녁이나 먹으려고 김시정에게 준비시켰다.
김시정이 오늘도 맛있는 한식을 대령 시켰다. 먹는 것을 참 좋아하는 아델린이었다.
'ㅎㅎㅎ 다행히 얻게 된 아지트가 대감집이라서, 참 맛있는 거 잘도 먹게 되는구나. 오늘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숟가락을 떠서 입에 밥을 집어넣으려고 한순간, 그의 방에 푸르스름한 포탈이 생겼다.
'아...아직은 해시 정각이 아니잖아....식사 시간에 예의 없이 도대체 누구냐.'
아델린은 불만에 찬 표정으로 포탈을 째려 보고 있었다. 당연히 안하무인 정명공주 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환하게 웃으며 안기는 아진이였다.
곧이어 두 명의 남자가 포탈에서 나왔다. 한 사내는 무사 '김율'이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그 사내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전혀 노쇠해 보이지 않았다.
부드러운듯하면서도 고강한 눈빛은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함도 주었다.
그가 풍기는 기운도 눈빛과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주위의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면서도 상대를 은은하게 제압해가는 힘이 있었다.
'누구지???왠지 낯이 익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의 거룩한 식사시간을 방해하다니. 맘에 안 들어'
자신의 식사시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허락도 없이 외부인에게 포탈의 정체를 알게 한 것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마음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반기며 아델린은 말했다.
"김율 님, 어인 일이십니까? 옆에 계신 분은 또 누구시고요?"
"아....이분은 치우의 지도부 3인 중 한 분 이신 '이순신' 장로이시네."
아델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순신 장로??? 혹시 명량해전의 영웅 이순신 장군님이십니까? 영광입니다."
그런 아델린의 반응에 이순신 장군은 쑥스러운듯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손사래를 쳤다. 옆에 있던 김율이 말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장로님께서는 좀 내성적이시네. 자리에 앉게 장로님이 부담스러워 하신다네"
"아....네.....그런데 실례지만 장군님께서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게 아니셨습니까?"
이순신 장군이 부드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하하.....영광이라....하하하..... 그대의 실제 나이는 가늠하기가 힘들어 보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젊은 청년이니 제가 말을 놓아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하십시요."
"그럼. 편하게 하도록 하지. 노량해전이 끝나고 나서는 나에게 두 가지 길이 있었을 걸세.
하나는 전쟁영웅으로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정쟁에 휘말려서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것.
그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더군. 나의 할 소임을 다하였으니, 다시 치우로 돌아가서 남은 생을 무의 길에 정진하고 싶었다네.
그래서 노량해전 당시 전사한 것으로 위장하였었다네. 그 이후 오랜 세월 오직 무의 길에만 정진하였건만 부끄럽게도 아직도 그 길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네.
이순신 장군은 눈을 빛내면서 아델린을 바라보았다.
"자네라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 부러우이. 아차차차.....그런데 식사 중에 방해해서 어쩌누....우리 신경쓰지 말고 일단 편히 드시게."
아델린은 조용히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하하 먹다 체할일 있습니까. 내성적이라고 하시더니 굉장히 배려심이 깊으시네. 저기 저 눈치 없는 김율 과는 다르게.'
아델린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성격이기에 이순신 장군의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 맘에 들었다.
산적두목 같이 외향적인 성격의 무심한 김율을 잠시 째려 보고는 말했다.
"혹시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김율이 대뜸 말했다.
"그럴까? 밥 먹은 지 얼마 안되긴 했는데, 유배지 밥만 먹다가 대감 집 밥상을 보니 입맛이 솟아나는 구만. 으하하하하!"
있는 그대로 속에 있는 말을 호탕하게 내뱉는 김율이었다.
잠시 후, 차려진 밥상에 밥과 국, 수저와 반찬이 추가되었다.
"아하하하! 맛있다 맛있어. 지금 개척촌 밥도 맛있긴 한데, 기름진 음식이 없어서 아쉬웠었다네. 오늘 실컷 배에 기름칠하고 가겠구나! 으하하하하!"
이순신 장군은 점잖게 말했다.
"무의 길을 걷는 자가 어찌 음식을 밝히는가.........흠....흠.........맛있구나.........하하하."
아델린은 맛있게 먹는 그들을 흐믓하게 보면서 말했다.
"많이들 드시지요. 아진이도 많이 먹어. 여행길 떠나기 전에 든든히 채워두어라"
편한 분위기에서 아델린이 말을 했다.
"아....그런데, 어찌하여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그것도 치우의 장로이신 이순신 장군께서."
김율이 음식을 씹으면서 말했다.
"우걱 우걱 우걱......아....그건 말이야. 내가 마검에 지배 당하시던 '이지'님과 자네의 전투를 보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네.
이래봬도 치우를 포함해 천하에 나를 상대할 자는 얼마 없다고 자부하던 나였네. 그런데 당시의 전투에 나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끼어들 수도 없었네.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나의 직계 스승이신 이순신 장로 님을 찾아갔던 거네.
일종의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다들 나를 냉대하여도 장로님은 나를 굉장히 이뻐하시거든. 하하하하.
그때 사정을 다 들으신 장로님께서 자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네."
아델린은 의외라는 듯 이순신 장군을 보며 말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시라는게....."
기름진 음식이 오랜만인건 마찬가지인 이순신 장군은 닭다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니 민망한 듯 닭다리를 내려놓고 말했다.
"에흠.....그게 말이지. 율이의 설명은 솔직히 믿기 힘들었었네. 하지만 율이가 눈치가 없긴 한데 거짓말이나 과장을 할 녀석은 아니거든.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치우의 수준으로는 앞으로의 전투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내부적으로 '그분'이라는 자에 대한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의가 크게 상실되어 버리더군.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자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주려고 왔네. "
"정보라시면??? 어떤???"
"치우에는 많은 고대 지식들이 내려온다네. 그중에는 분명히 큰 힘이 되어줄 신물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네."
'신물?? 아티팩트 같은 건가??'
아델린은 속으로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신물이라 하시면.....어떤....."
"한반도에 내려오는 신물들은 여러가지가 있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부인' 일세.
그것의 구체적인 힘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네. 다만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는 엄청난 힘이 주어진다는 것이지.
천부인의 소유자는 계속 바뀌다가 광개토대왕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네. 치우의 고대문서에는 그의 무덤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하네.
마침 자네들이 후금의 영토에 간다고 해서 하는 말이야. 광개토 대왕의 무덤인 태왕릉에 꼭 가보게.
그곳에 반드시 자네의 큰 힘이 되어줄 신물이 있을 거야."
"아....네. 일부러 신경 써주셨는데 반드시 가봐야죠. 감사드립니다."
아델린은 솔직히 반신반의 하면서 생각했다.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이순신 장군께서 친히 와주셨으니 그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구나. 그냥 관광 삼아서 한번 가봐야겠다.'
아델린은 이순신 장군이 가져온 정보보다는 직접 그를 만난 것이 더 좋았다. 그래서 아공간에서 술을 한병 꺼냈다.
저번에 광해군에게도 대접했던 와인이었다.
"장군님. 이 술 한번 드셔 봐 주시겠습니까?"
김율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오오오...내 이것이 그리웠소. 한잔 주시오!!!"
"아...네....장군님도 한잔 드시지요."
"그럼 한잔만 받아 보겠네. 흠................음??????"
이순신 장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오오오!!!!이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완벽한 이 술은 무엇이오!!!"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술입니다. 맘에 드신다면 한 병 드릴 테니 가져가 주십시요. 장군님께 대접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말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하하하. 다음에 치우에 한번 초대하도록 하지. 그곳에서 나도 내가 직접 담근 술 한잔 대접하겠네."
"영광입니다. 일이 정리 되는대로 한번 찾아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율이 끼어들었다.
"아델린....나는???우리 전하도 그리워 하시는 것 같던데...."
"아....당연히 한 병 드려야지요. 하하하하"
아델린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공간에서 와인 두병을 꺼내서 그들에게 주었다.
나머지 음식과 술을 즐겁게 즐기고 있을 무렵 포탈이 다시금 열렸다.
"뭐야.....이 술판은......"
정명공주였다.
"벌써 시간이 되었나??? "
공주는 특이한 술이 있음을 보고는 바로 자리에 합석해서 아델린에게 잔을 내밀면서 말했다.
"뭐냐....너 이런 특이한 술이 있으면서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던 거냐??"
"아...그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지 않습니까. 여기 한잔 받으세요."
아델린이 따라준 와인을 마신 정명공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뭐냐....이 술은.....그렇게 도수가 강하지도 않고 은은하게 취하게 하는구나. 술이 쎄지 않은 나한테 딱인 술이다."
정명공주는 이순신 장군과 김율이 한 병씩 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델린에게 말했다.
"뭐냐....너....나도 한병 줘."
"드리고는 싶은데, 지금 드리면 그냥 짐이 되어버리시니까 여행 다녀와서 드리겠습니다."
아델린은 단순한 정명공주라면 며칠후에는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
그 사이 포탈이 또 열리고 소현세자가 들어왔다.
"뭡니까? 이 술판은??? 이제 출발을 앞두시고 잘하십니다. 하....."
소현세자의 일침에 일동은 이제 자리를 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있는 이순신 장군을 세자와 공주는 알아보지 못한 채,
이순신 장군과 김율을 배웅하고 아델린은 김시정을 불렀다.
"시정아.....준비한 것들 가지고 오너라."
"네...여기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김시정은 명나라와 후금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법한 복색을 인원수에 맞게 가지고 왔다. 그리고 노잣돈도 충분히 챙겨왔다.
"우리 시정이가 참 일은 잘해요. 잘 지키고 있어라."
아델린은 물건들을 아공간에 넣고는 우선 압록강 이북으로 좌표를 설정하여 포탈을 생성했다.
"자....갑시다....후금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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