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균열 관리
짐승남의 서늘한 눈길에 대남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짐승남을 살펴봤다. 짐승남을 뒤적였던 지갑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잡았다. 대남은 침을 꿀떡 삼키고는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냥 내려놔라! 제발······.
신의 언제나 그랬듯 내 편이 아니었다. 짐승남이 대남을 향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잠금을 풀라는 뜻이었다.
대남은 간절한 눈빛을 보내다 고개를 떨구고는 홈버튼에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것으로 1차 잠금을 풀고 전면 카메라를 응시해 홍채 인증하는 것으로 2차 잠금을 풀었다.
짐승남은 마지못해 건넨 스마트폰을 받아 살펴봤다.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이 딱 멈췄다. 대남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스마트폰에 뭐가 있어서 저럴까?
궁금해하던 수지는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올라 대남을 봤다.
“서, 설마?”
고개도 들지 못하는 대남을 보는 수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한계에 이르러 화산처럼 폭발하려 할 때 짐승남은 이번엔 수지 스마트폰을 잡았다.
정말 넘겨주고 싶지 않지만 쏟아지는 살기에 수지는 어쩔 수 없이 잠금을 풀고 짐승남한테 넘겼다. 짐승남은 여자의 사생활이 가득한 스마트폰을 살펴봤다.
수지의 스마트폰은 수많은 앱으로 복잡해서 살펴보기가 어렵고 눈길을 끄는 것도 없었다. 짐승남은 대남의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잠금 모두 해제해.”
짐승남의 요구를 대남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반항은 해봐야 했다.
“저기 그러니까요··· 헌터 뉴폰은 전원이 꺼져도 위치추적이 되는······.”
짐승남의 눈이 가늘어지며 살기가 증폭됐다.
“아,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놓으면 됩니다!”
짐승남의 눈이 더 가늘어지며 살기가 더 증폭됐다. 대남은 고문을 받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면서 위치추적을 피하면서 뉴폰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낱낱이 까발렸다.
다 들은 짐승남이 뉴폰을 곱게 놔두고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남은 최저사양도 3백만 원이 넘는 뉴폰을 가지고 훌쩍 사라지는 짐승남을 보고 말을 잊었다.
짐승남이 사라지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난 수지는 살기 협박에 벗었던 옷을 입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눈이 마주쳤다.
“눈깔 돌려!”
“내 눈깔을 네가 왜 돌리라 마라야?”
대남은 으르렁거리고는 옷을 입었다. 남녀는 옷을 입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살벌한 침묵을 먼저 깬 건 수지였다. 수지는 대남이 콘돔을 챙기는 걸 보자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난잡해!”
“뭐가? 이게? 특수형 좋아했던 여자가 뭐라는 거야?”
“더러운 주둥아리 다물어!”
“세상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제 앞에 있는 저 여자는 취향이 참 독특해서··· 악! 이거 안 놔!”
“저질! 추잡한 놈! 죽어버려!”
수지는 대남 머리를 잡고 흔들고 대남은 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다가 수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그래, 오늘 끝장 보자!”
진짜 끝장을 보려는지 둘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악을 써댔다. 그 꼴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어둠에서 지켜보던 짐승남은 막장으로 치달아가는 남녀의 다툼을 뒤로하고 소리 없이 산에서 내려갔다. 몇 걸음이나 갔을까.
신비롭게도 짐승남의 덩치가 줄면서 얼굴도 바뀌었다. 곧 우락부락한 짐승남은 매끈한 얼굴에 늘씬한 몸의 소년이 됐다. 라이칸의 야수화를 푼 것인데 누구도 알지 못했다.
***
“이번 달 들어서만 여덟 건입니다.”
“뭐가 문제야?”
균열관리팀장의 물음에 요원은 준비해 놨던 대답을 꺼냈다.
“레이더 문제인 거 같습니다.”
“헌터들이 수작 부렸을 가능성은?”
요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기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균열의 가치는 코어에 있는데 균열을 코어로 만들려면 특수한 장비가 있어야 하고 그 장비는 이곳 센터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관리에 허점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센터 모르게 균열을 코어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왜냐면 균열제어장비는 센터의 인증이 있어야 작동하고 장비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자 역시 센터에서 파견했다.
무엇보다 균열제어장비는 3톤의 무게에 가로세로 2m나 되는 데다 예민한 정밀기기인 탓에 분해조립을 할 수 없어서 통째로 옮겨야 했다.
거기에 더해 기기를 작동시키려면 대형 발전기까지 필요했다. 그런데 균열이 생성되는 곳은 대부분 산간 지역이었다. 지역 센터마다 수송용 헬리콥터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능력이 대단한 헌터 혹은 단체가 국가정보처를 능가하는 정보력을 가진 센터 모르게 균열제어장비와 기술자를 확보하여 방공망을 무시하는 스텔스 헬기로 장비를 옮겼다고 억지 가정을 해도 일은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최신 균열제어장비도 균열을 코어로 만드는 데 사흘이나 필요했다.
그런데도 헌터들이 수작 부렸을 가능성이 있냐고? 당신이 전 재산을 몽땅 기부하고 세계의 안녕을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목숨 걸고 미궁에 들어갈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데?
요원은 이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어찌 될지 뻔해서 용기를 내질 않고 목소리를 조심해 대답했다.
“말씀하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서 감사 요청했었습니다.”
요원은 감사팀으로부터 받은 1차 감사 통보서를 팀장한테 건넸다. 팀장은 특정 사항 없음이라는 굵은 글씨를 보고서도 쭉 읽어갔다.
“처음 세 건 모두 김대남과 박수지가 출동했었군. 그리고 김대남은 뉴폰을 분실했다고 신고했고.”
“확정되지 않아서 보고서에는 오르지 않았는데 김대남과 박수지는 연인 사이였던 거 같습니다. 크게 다투고 해어진 거로 조사 됐습니다. 그 뒤 3년을 연락조차 없었는데 얼마 전 김대남이 긴급출동 파트너로 박수지를 지목했었습니다.”
긴급출동은 해당 지역에 거주한 3년 차 이상의 경력자와 1년 차 이상이라는 조건만 맞으면 누구와도 파트너가 될 수 있고 파트너를 지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목한다고 무조건 파트너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세 번째 출동 때 둘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크게 싸웠습니다. 뉴폰은 그때 분실했다고 신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는?”
“동백산 정상이고 장소, 시간 일치합니다.”
“둘이 누군가한테 당했을 가능성은?”
둘이 입원했으니 의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명확했다.
“김대남 몸에 난 치흔 다섯 개 모두 박수지 치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물어뜯을 수도 있었을 상처 깊이로 봐서는 강요나 억지는 아니라는 게 의학팀 판단입니다. 김대남 상처 대부분이 긁히거나 찍힌 건데 박수지 손톱 모두에서 김대남 상피세포가 나왔고요. 감사팀 의견도 일치합니다.”
헌터 둘이 치고받고 싸운 건 대수롭지 않지만, 뉴폰은 사안이 달랐다. 반드시 회수하거나 처리해야 했다.
뉴폰은 와이파이 기능을 강제로 작동시켜 위치를 추적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꽤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통신 기기가 하나도 없고 중계기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산속에서는 오차 범위가 1km에 이를 수도 있었다. 수백의 인력을 동원해 샅샅이 뒤진다면 언제고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뉴폰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업데이트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때 인증을 하지 않으면 파기 프로토콜이 작동해 뉴폰은 급격히 온도가 올라가 폭발한다.
단 하나 문제가 업데이트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앱을 작동시키지 않거나 작동한 채로 유지하고 있다면 업데이트가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건 앱 관리자 정도만 아는 문제고 센터 요원들은 까마득히 몰랐다.
남은 건 김대남과 박수지의 징계 여부였다. 김대남은 뉴폰 분실에 따른 경고 조처가 내려졌고 박수지는 주의 조처가 내려졌다. 그런 것에는 두 사람이 입원하고 나서도 레이더에 잡힌 균열이 다섯 차례나 더 사라졌다는 사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관심은 여덟 차례나 사라진 균열에 관한 것으로 집중됐다. 특이하게도 두 건을 빼면 신시 일대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에 따라 조사관들이 파견됐지만 이렇다 할 정황을 잡지 못했다.
자연히 레이더 오류 쪽으로 심증이 굳혀졌고 기술자들이 레이더를 손보자 더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질 않았다. 그런데도 팀장이 불쑥 나타나 잔소리하는 건 뭔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요원의 짐작이 맞았다. 위에서 특이 사건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위험인자를 가진 인물을 조기에 파악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거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보고했더니 골라서 보고하란다.
빌어먹을 뭐 어쩌란 거야!
성질이 난 팀장은 이번 레이더 오류 사건을 보고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요원한테 꼬치꼬치 따져 물은 것이었다. 사실 말단 요원은 모르는 게 있었다.
그분들이라면 잠깐만에 균열을 코어로 만드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뭐가 아쉬워서 오밤중에 남모르게 산에 오르는 수고를 하시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코어는 그분들께 가는데······.
뭐가 있는 건가?
문득 든 생각에 팀장은 고민했다. 그분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는 어떤 분이 이번 일을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떨치지 않았다. 물어보면 확인될 일이지만 팀장한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확률이 낮긴 한데 균열이 연달아 사라진 게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이리저리 재보던 팀장은 마음을 굳혔다.
“이번 건 여기서 닫아.”
사건 종결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레이더 오류로 결론 난 보고서는 위로 올라가지 않고 서랍에 꽂혔다가 상자에 담겨 한 번 들어가면 잊혀버리는 창고로 옮겨졌다.
그렇게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균열이 연달아 사라지는 특이한 사건은 레이더 오류라는 이름이 붙은 채 조용히 묻혔다. 누군가가 알면 분통을 터트릴 일이고 누군가는 히죽 웃을 일이었다.
* * *
화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꺼져버렸다. 전에 들었던 얘기를 기억한 민준은 뉴폰을 바로 던졌다.
퍽!
던져져 덩그러니 있던 뉴폰은 연기를 피워 올리다 불꽃을 일으키며 터져버렸다.
민준은 아쉬웠다. 위치 추적된다는 말에 뺏은 곳 근처에 숨겨 놓고 꼼꼼하게 알루미늄 포일로 칭칭 싸놨다가 보조 배터리를 바꾸거나,
센터에서 보내준다는 균열 좌표를 확인할 때만 꺼내서 1분 내로 다시 알루미늄 포일로 꽁꽁 싸뒀는데 저절로 꺼지고 켜지더니 폭발해 버렸다. 아무래도 때때로 한다는 시스템 업데이트 때문인 거 같았다.
어쨌든 아쉽게도 꽤 정밀한 지도에 균열 위치를 꼭 찍어 알려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를 잃어버리게 됐다. 그게 이참에 균열을 찾는 일을 관두라는 신호 같았다.
몇 개 먹지도 않았는데 균열의 핵, 코어를 먹어도 마력이 더는 늘지 않았다. 어디 팔아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력 풀풀 풍기는 코어를 가지고 있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런데도 여태 균열을 찾아다니며 코어를 만든 건 코어가 다른 쪽으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균열을 무작정 찾아다니는 건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니 이참에 관두는 게 맞았다. 산에서 내려가 바로 집으로 간 민준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부모님 방으로 갔다.
피곤함에 절어 시체처럼 잠들어 있는 부모님을 보자 애잔해졌다. 우선 아빠, 경환 머리맡에 앉은 민준은 균열의 코어를 꿀꺽 삼키고 경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손에서 황금빛이 흘러내려 얼굴로 스며들더니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보기보다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핏줄까지 돋은 민준의 얼굴과 흘리는 땀으로 알 수 있었다. 먹은 코어의 마력에 자기 마력도 보태 경환한테 넘긴 민준은 지치고 힘들어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드러누워 푹 자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번엔 엄마, 정희 차례였다. 지친 얼굴을 지운 민준은 다시금 힘을 썼다.
보기보다 매우 까다로운 일을 마치자 힘이 쏙 빠져버려 민준은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와 달리 부부는 활력이 몸에 가득했다.
날이 밝았다. 평소와 달리 꿈지럭거리지도 못하고 잠에 빠진 민준이와 달리 부부는 거뜬히 일어나 활기찬 아침을 보냈다.
“어, 여보? 화장했어? 얼굴에서 빛이 나네?”
“화장은 무슨, 로션 바른 게 다예요.”
정희는 남편이 놀린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다가 허리통증으로 고생하는 남편이 물건을 번쩍번쩍 드는 걸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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