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또?
@9 또?
여자는 1번을 꾹 눌렀다.
[식별번호를 눌러주십시오.]
여자는 숫자 9개를 눌렀다.
[본인확인을 위한 비밀번호를 눌러주십시오.]
여자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영문과 한글, 숫자에 특수문자까지 섞인 16글자를 꾹꾹 눌렀다.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한참 기다려도 그다음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이해는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니 당직자가 많지 않을 거고 오늘따라 사건 사고가 많다면 통화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아씨, 그래도 이건 아니지!”
10분 넘게 기다려도 연결이 되지 않자 여자는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담배를 빼 물고 나 몰라라 했다. 그 꼴을 보면서도 여자는 참았다.
[회원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연결됐다!
“균열 확인하라고 해서 왔는데 균열이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확인해보겠습니다.]
확인해보겠다더니 또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
[확인됐습니다. 코드 9, 케이스 C, NO 7475 균열 발생 건으로 출동하셨는데 균열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처리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에? 이게 무슨···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는 바로 끊겼다. 분통 터질 일이었다. 잘 자는데 깨워 세상이 멸망할 위험이 임박한 듯 요란 떨어대고는 재수 없는 인간과 달밤에 등산하게 하더니 이게 끝?
“아오, 진짜!”
여자는 앞에 있는 나무에 발길질하는 것으로 분풀이했다. 그 발길질에 맞은 나무가 뚝 부러졌다. 놀라운 일인데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 꼴이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어디서 담배질에요! 산에선 금연인 거 몰라요?”
여자의 말에도 남자는 보란 듯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열이 뻗칠 일이었다. 여자는 고함을 지르려다 말고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지금 동영상 촬영하고 있어요! 당장 담배 끄지 않으면 산에서 담배 피우는 몰상식한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이 올라갈 거예요!”
“아니, 이 여자가 정말!”
도끼 눈을 뜬 남자는 사나운 얼굴로 여자한테 다가갔다. 그러면 겁먹어야 하는데 여자는 다음을 기대한다는 듯 스마트폰을 고쳐잡았다.
“어휴, 진짜!”
남자는 올렸던 주먹을 거두면서 담배를 땅에 던지고 짓밟고는 쿵쿵 소리 내며 산을 내려가 버렸다.
“흥!”
깊은 산 속에 홀로 남겨졌으나 여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라 까똑 하는 여유를 부렸다.
- 냠냠, 잠?
- 안잠 미드 몰아봄
- 작작 봐!
- 누구한테 머라는 거? 지년은 시즌 3개 이틀에 봤으면서
- 됐고 물어볼 거 있음
- 뭥?
- 코팩에서 긴급 떠서 출동햇거든?
- 뭔 긴급? C케?
- 올, 감 조은데?
- 초짜 님한테 긴급 때릴 케스면 C지 초짜한테 뭘 바람?
- 우씨, 됫고 와보니까 없음
- 그런경우 잇냐고?
- 옹 레다에 뜬 균열이 사라지기도 함?
- 간혹 그럼 보급 얼마안된거라 오류 이빠시~
- 헐~
- 센타 레다도 곧잘 먹통!
- 센터 껀 엄청 좋은거 아님?
- 스펙은 환상 성능은 월월~
- 글쿠나···나 할말 잇음
- 또머?
- 긴급 파트너 누구인지 암?
- 설마 그놈?
- ㅠㅠ
- 악이 창대하구나!
여자는 친구와 까똑하며 산에서 내려갔다.
***
구글링 잘하면 미 국방성 비밀자료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민준은 작정하고 찾아봤다.
늑대 종족, 늑대인, 늑대족, 라이칸, 블라드, 혈인 종족, 혈인족, 혈족, 균열, 균열, 코어, 미궁, 미로, 사냥꾼, 이면 세계······.
당연하다는 듯 일반적인 정보 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름으로 검색해 봤다.
바란, 베커, 샤샤, 칼, 버크, 라젠드라, 엘바스더, 불카, 칸, 라칸, 칼베라스, 루얀카······.
뭐로 검색해도 힘 빠지는 결과만 나왔다. 포기해야 하나 하다가 문득 SNS 쪽을 검색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을 바로 실천했는데 아쉽게도 SNS는 검색 기능이 미흡해서 불편한 게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놓지를 않았다. 그 노력이 통했다.
SNS에서 검색하는 방법이라고 검색하니까 언어 설정을 외국어로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해봤다. 그랬는데도 별 게 나오질 않아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는데 우연히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laby에 갔다 왔다, 다음엔 laby에 같이 가자, laby에서 뭘 얻었냐? laby에서··· laby는······.
laby, laby 해서 어디 클럽 같은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laby, laby하고 영국에서도 laby, laby하고 독일에서도 laby, laby했다.
laby가 뭔가 싶어서 구글에서 검색해보니까 결과물이 난잡해서 네리버에서 검색하려고 했다. 그런데 철자를 다 입력하지도 않았는데 단어가 자동으로 완성됐다.
labyrinth! 그 뜻은 미로 혹은 미궁!
laby를 특정해 닥치는 대로 검색했다. 그 결과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장난 아니구나!”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이 세상엔 보통 사람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특별한 혹은 특정한 사람만이 아는 또 다른 세계에서는 미궁, 사냥, 마물, 전리품, 조합, 협회, 등급, 문신, 마력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다.
특별한 혹은 특정한 사람들은 미궁이라는 곳에 가서 마물을 사냥하고 전리품을 갖고 돌아오며 등급이 있고 조합이나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판단을 해야 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다른 이들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다른 이들 가운데는 세계를 파멸시키려 했던 왕도 있다.
파멸의 왕 엘바스더가 살아있을 수 있다?
민준의 눈에서 시퍼런 빛이 흘렀다.
* * *
“쟤 이상해······.”
아이들은 민준을 보고 수군거렸다. 더벅머리에 할아버지 뿔테 안경에다 언제나 굳은 얼굴이고 낡은데 다림질도 안 해 꾸깃꾸깃한 교복을 입고 다녀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엉망진창인 패션으로도 부족했나 보다. 얼마 전부터는 의자에 책상다리하고 꼿꼿이 앉아 수업이 시작되건 말건 꾹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게 사실 꿀꺽 삼킨 균열의 핵을 소화하려고 그러는 거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 리 없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니까 그 시간을 이용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달랐다.
꼴통.
민준은 어느 사이에 선생님들도 포기한 꼴통이 됐다. 그걸 민준한테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민준은 자신이 꼴통이 된 걸 몰랐다.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바란의 영향 탓에 민준은 공부에 흥미가 없고 공부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학교를 착실히 다니는 건 부모님이 그걸 원하고 학교라는 나름 안전하고 평온한 울타리 안에서 세상에 나가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파멸의 왕이 어디선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평온은 사치였다. 더군다나 지금으로서는 접근할 수도 없는 은밀한 세상이 있었다.
그 세상을 보통 사람은 존재조차 몰랐다. 정보가 범람하는 지금도 그렇다는 건 그 세상을 이끄는 이들의 정보 통제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들이 바란의 부활을 안다면? 그들이 바란이라는 라이칸을 모를 수도 있으나 지금 이 순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전자라면 참으로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문제는 심각했다. 짐작하는 대로 그들 위에 블라드가 있고 파멸의 왕이 있다면 그들은 민준은 당연하고 민준과 닿은 사람은 모조리 짓이길 것이다.
혹시라도 모를 눈길에서 벗어나야 했다. 생각해보니 학생이라는 신분과 학교라는 울타리는 정체를 드러내질 않을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학교가 마냥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훈련이란 게 꼭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감각 훈련은 육체적인 움직임을 최소화할 때 그 효과가 컸다.
민준은 화장실도 안 가고 종일 꼿꼿이 앉아서 정신력을 집중했다. 그 모습이 겉보기에는 도라도 닦는 것처럼 보여서 아이들은 민준을 더 멀리했다.
멀리하다 보니 안 보게 되고 안 보니까 관심이 멀어지고 그러다 보니 민준은 교실에서 없는 사람이 됐다. 존재감을 잃는다는 건 괴로운 일일 텐데 그게 민준한테는 달가웠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균열을 찾겠다고 마냥 뛰어다니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균열은 마력을 흘렸다. 그 얘기는 마력을 감지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 좀 더 수월히 균열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쉬운 건 마음처럼 그렇게 성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그 답답함을 풀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균열의 핵, 코어는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기물로 영약과도 같았다.
얼마 전 획득한 게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급한 것이었고 코어를 다 녹여 흡수한 것도 아닌데도 민준의 마력은 그 이전보다 딱 두 배가 됐다.
이전 마력이 워낙 미약했던 탓에 두 배가 됐다고는 하지만 자연적으로는 몇 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쏟아야 이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음에도 두 배가 되지는 않겠지만, 효과가 클 게 분명하고 그래서 탐나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고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었다.
* * *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들녘에 푸름이 가득한 5월이 됐다. 민준은 밤마다 집 근처 야산을 돌아다니다 주말에는 작정하고 멀리 나갔었다.
행운의 동전을 모두 쓴 것 같았다. 부지런 떨어도 얻는 건 체력뿐이라 욕심을 많이 내려놓고 산등성이를 뛸 때였다. 기대 않던 마력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민준은 기뻐하며 달려갔다. 산 하나를 넘자 마력을 흘리며 넘실거리는 균열을 보게 됐다.
구경 않고 재빠르게 뛰어간 민준은 마력으로 달군 손으로 균열을 응축해 검은 구슬, 핵을 만들었다.
어둠조차 삼키는 새까만 구슬을 보자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민준은 감상을 그만두고 균열의 핵을 꿀꺽 삼키고는 만족스러워하며 산에서 내려갔다.
민준이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린 두 사람이 나타났다.
“또?”
앞서 나타나 주위를 둘러본 남자는 찾는 게 보이질 않는 것에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뒤이어 나타난 여자는 스마트폰 지도와 주위를 비교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제대로 왔는데 있어야 할 균열이 보이질 않았다. 혹시라도 착각했을까 싶어서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별수 없어서 센터에 연락했다.
[현재는 레이더에 감지되는 게 없습니다만 30분 전에는 분명히 감지됐었습니다.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철밥통 아니랄까 봐 제 할 말만 하고 끊었다. 그것만으로도 육두문자를 쏟아낼 수도 있지만 그러려니 해야지 지랄해봤자 이쪽만 손해였다.
그나저나 저 인간이랑은 왜 또!
여자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면상을 노려봐주고는 주위를 샅샅이 뒤졌다. 당연하다는 듯 균열은 보이질 않아서 다시 센터에 연락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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