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46화
9
불과 몇 분 전까지 기세등등하게 세 사람을 위협하던 놈들은 온데 간데 없었다.
허허벌판 위에 남은 건, 숨이 끊어진 여섯 남자의 시체 뿐.
이제 이런 녀석들을 뒤처리 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나는 부하들을 시켜 죽은 놈들의 몸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기게 했다.
그 다음, 클로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스컬의 곁에 안전하게 서 있었다.
나는 클로이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여길······?”
클로이는 아직 경황이 없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레 기습을 당했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모험가가 던전을 안 가면 어딜 갑니까? 마침 이쪽을 공략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현장을 목격했군요.”
“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그녀를 걱정하는 찰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 정말 구세주십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남녀가 달려와 내 손을 덥석 붙잡고는 감사인사를 했다.
아 맞다, 이 버러지 같은 남녀.
쓰레기만도 못한 놈들이 내 손을 잡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의는 갖춰주지.
“손 치우시죠.”
“······예에?”
역시 못 알아듣는 눈치다.
하는 짓이 버러지라고, 들어먹는 것까지 버러지면 곤란한데.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손 치우라고.”
나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생존본능이야 인간 본연의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 녀석들은 방법이 잘못 됐다.
클로이는 목숨을 걸고 활로를 열어줬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최소한 그럴 듯한 시늉이라도 했으면, 양심은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쉽게도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처음부터 클로이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끝까지 동료를 지키려했던 그녀와는 달리.
“착각하지 마. 너희들 살리려고 온 거 아니야.”
“하, 하지만······.”
“셋 셀 동안 안 꺼지면.”
홱!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르르륵. 치이이익.
부하들이 저마다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여기 죽어있는 놈들처럼 똑같이 보내줄 테니까.”
“히익!”
“꺄아아악!”
이미 여섯 명의 모험가들이 부하들에게 도륙이 난 것을 본 터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 다 비명을 질렀다.
“하나.”
“오빠, 어, 어, 얼른 도망가자!”
“크, 클로이 씨는?”
하나는 혼자 살고 싶어 하고, 하나는 그 와중에 나쁜 놈은 되기 싫어 연기를 한다.
“둘.”
“알게 뭐야! 가라잖아!”
“아오, 젠자앙!”
본심이 나온다.
알게 뭐야, 그게 지금껏 클로이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의 단편이겠지.
“세······.”
“가, 가요!”
“메이, 손 꽉 잡아!”
그럼 그렇지.
“엣.”
파앗!
나는 도망치는 두 사람을 향해 바로 죽음의 마력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갈 수 있도록.
쿠웅! 쿵! 콰아앙!
그들의 뒤에 아낌없이 죽음의 마력을 난사해주었다.
그러자 걸음아 날 살려라, 두 사람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죽일 명분까지 주지 않은 것을 두 사람은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거다.
도망친 벌레들의 신경은 끄고.
나는 다시 클로이에게로 향했다.
“다친 곳은 없죠?”
“괜찮아요. 후우. 이제 좀 정신이 드네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싸웠던 것 같아서요.”
“왜 저런 사람들이랑?”
나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 말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겠지.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두 사람의 민낯을 본 마당에 더 이상 함께 가는 건 미친 짓이다.
“제가 모자란 탓이에요.”
“왜 그걸 자기 탓을 하죠? 쓰레기 옆에 서 있다고 해서, 내가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죠. 쓰레기는 쓰레기고, 나는 나지.”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커즈 씨.”
그녀가 화제를 돌린다.
나도 굳이 아픈 곳을 들추고 싶진 않다.
“감사인사는 됐어요. 우선 던전 밖으로 나가죠.”
나는 이동 방향을 던전 밖으로 잡았다.
마정석 벌이도 충분히 했고, 던전에 온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그나저나 내가 늘 금전적 여유가 없을 때면 공교롭게도 이런 일이 생기곤 하는데.
처치한 여섯 놈에게서 수거한 물건이 꽤 되는 것 같았던 것이다.
방금 스컬이 살짝 귀띔을 하고 갔거든.
[주인 님, 풍년입니딱.]
아, 진짜 이 해골 자식 눈치 없는 것 하고는.
방금 전까지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사람이 옆에 있는데, 풍년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물론 주인을 닮는다곤 하지만, 진지할 땐 진지할 줄 알아야지.
나는 스컬의 뒤통수를 클로이가 보이지 않게 잽싸게 후려쳤다.
그러자 스컬이 뭔가 불이 반짝인 듯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멀어져 갔다.
다행히 그녀는 듣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일단 좀 더 서두르죠. 이 안에 이놈들과 한패가 또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하는 거니까.”
나는 그녀의 경계심을 다시금 자극하며, 던전 1층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좀 더 재촉했다.
물론 정신 나간 놈이 아닌 이상, 정예 언데드들로 둘러싸여 있는 내게 덤벼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유비무환이다.
1층으로 향하는 동안.
동료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하려던 클로이는 결국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예상대로 두 남녀는 쓰레기였다.
3인으로 이루어진 팀인데도 불구하고 분배 비율은 완전 엉망.
정보 수집 비용, 식료품 세팅 비용, 길드 가입을 위한 관계자 포섭 비용 등의 명목으로 공공연히 분배금 갈취.
기가 찼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횡포에 장단을 맞춰준 클로이에게도 문제가 있다.
클로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이런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레벨 1때부터 만나서 함께 한 동료들이었으니까······ 그만큼 믿었거든요.”
그녀가 계속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제가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의 수도 썩 많지 않고, 정확도도 떨어지다 보니까. 괜히 아론과 메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그게 정말 미안했어요.”
“초보 모험가인건 클로이나 그 두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피차 서로 경험이 부족한데, 뭐가 미안할까요?”
“제 몫을 못한다는······거죠.”
“물론 팀원 중에 누군가는 1인분을 못할 수도 있을 테죠. 근데 그게 불평등한 분배와 업신여김의 이유가 되나요? 그게 팀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나는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분을 생각하기 보단 현실을 좀 더 냉정히 보길 바랐다.
마냥 착하게 살면.
남에게 그 사람은 영원히 바보가 된다.
등쳐먹고, 뜯어먹고, 배신을 해도.
늘 웃고 마는 바보, 머저리, 등신.
그 역할극을 클로이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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