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40화
그 다음.
푸슉!
미련 없이 왼쪽 어깨 위에서 심장을 향해, 그대로 검을 사선으로 꽂아 넣었다.
[……!]
심장을 관통당한 벨라즈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유격전과 정예 전력의 후방 공격이 만들어 낸 멋진 결과물이었다.
[스킬북 드랍이 확인 되었습니다.]
“오!”
스킬북이 드롭 됐다.
그리고 상태창을 살피자, 단숨에 급상승하는 경험치 수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레벨 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34를 목전에 앞둔 수치까지 대폭 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각사각.
딸깍.
[주인님, 마정석입니딱.]
스컬이 벨라즈에게서 마정석을 추출해왔다.
보스 몬스터는 무조건 마정석을 드롭 한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오, 중급 마정석이군.”
중급 마정석은 50골드를 호가한다.
단번에 몇 일치 일당을 얻은 셈이었다.
게다가 전리품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
벨라즈, 리자드맨 치프턴이었다.
이 녀석을 언데드로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정예가 될 터.
하지만 확신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보스 몬스터는 레벨 판정이 높고, 본신보다 레벨이 높은 경우에는 언데드화가 불가능했으니까.
나는 기대 반 여유 반으로 벨라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의 충실한 종이여, 네게 어둠의 서약을 내리노니…….”
그리고 언데드 생성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대상이 본신의 레벨보다 높아, 종속의 계약이 성립 되지 않습니다.]
[대상의 레벨은 40입니다.]
“역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임드인 보스 몬스터가 쉽게 내 것이 될 리 없지.
어차피 시체만 잘 보관하고 있으면, 조건이 맞을 때 내 수하로 만들면 되는 문제다.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 벨라즈의 시체를 보관했다. 산 것은 보관할 수 없지만, 죽은 시체는 가능하니까.
마음 같아선 언데드 플레인에 보관하고 싶은데, 녀석은 아직 언데드 화가 되지 않아 불가능하다.
그 다음은 스킬북을 확인할 차례.
스킬북은 그대로 두고, 제목만 확인했다.
[강타]
응?
뭔가 익숙한 이름이다.
“야잇, 예전에도 먹은 스킬북을 여기서 또 주는 게 어딨냐. 중복인 데다가 값도 10골드 밖에 안 나가는 걸 뱉었단 말이야?”
[축하드립니딱.]
“죽을래?”
[죄송합니딱.]
딱!
[윽.]
병주고 약주는 스컬의 머리에 시원하게 꿀밤을 먹인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강타 스킬북을 챙겼다.
스킬북 드롭 운은 더럽게 없어.
누군 1000골드 짜리 스킬북도 2층에서 먹고 그랬다는데.
나는 그런 운은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차분히 정리했다.
포기하면 편해.
차라리 스킬북이라도 나왔다는 그 자체를 행복하게 생각하면, 나름대로의 ‘정신승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바로 순식간에 1승을 거두었다.
“후아, 아주, 매우! 보람찬 하루였네. 지금 딱 돌아가면 당일치기가 되는 건가?”
계산해보니 얼추 맞겠지 싶다.
여기까지 한나절 조금 넘게 걸렸으니, 돌아가 정산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그 쯤 된다.
아침에 들어와, 늦은 저녁쯤 나가는 셈.
“간만에 쉬지 않고 달렸더니, 온 몸에 피로가 장난이 아니네.”
피로감이 묵직하게 몰려왔다.
마음 같아선 드러누워 자고 싶지만, 하루를 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애초에 올 때, 장기 공략을 생각하고 안 온 탓에 식량이 충분히 못했던 것이다.
“자, 돌아가자!”
일단 방향을 틀고, 다시 던전 1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몸 풀기로는 괜찮았어.
확실히 그간 공방에 틀어박혀 지냈던 것이 체력을 무척이나 갉아 먹었던 모양이다.
주머니 사정도 다시 넉넉해진 만큼, 며칠 쉬며 체력을 확실히 보충하고.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설 생각이었다.
3
“언니, 저랑 아론은 맥주 한 잔 하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언니도 같이 가실래요?”
“아니, 괜찮아.”
“에이, 언니! 그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한 잔 해요.”
“아냐.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고 와. 어차피 던전 공략은 내일 정오부터잖아? 내일 아침에 약속장소에서 만나자.”
“흐음…… 그래요, 언니. 가볼게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메이, 가자.”
“응, 오빠! 가요!”
팔짱을 낀 채, 멀어지고 있는 두 남녀.
클로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별이 아름다운 밤.
청춘남녀가 운치 있게 술 한 잔 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다른 이성과 눈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하룻밤의 불같은 사랑이든 새로운 인연이든 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클로이에겐 모든 것이 사치였다.
메이가 같이 가자고 말하긴 했지만…….
클로이는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메이와 아론이 자신과 같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함께 있어봤자, 그녀의 못난 외모가 자신들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예의상 한 말이라는 걸, 눈치 좋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휘이이!
바로 그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안 돼!”
그 순간.
클로이가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바람에 복면이 날아갈까 걱정했던 것이다.
바람은 그녀가 입은 치마와 로브도 펄럭이게 했지만, 클로이는 다른 곳보다 입을 먼저 신경 썼다.
“누가 보면 안 되니까…….”
그녀가 찬바람에 시려오는 입가를 어루만지며, 다시 복면의 매무새를 만졌다.
“피곤하네.”
오늘은 던전에서 무척이나 마법을 많이 쓴 날이었다.
근접 딜러인 메이와 아론이 자신의 보호를 게을리 한 탓에 몇 번이고 위험에 노출될 뻔했다.
특히 마지막에는 블랙 모르그의 검 끝이 이마에서 손가락 한마디도 되지 않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그 때, 클로이가 온 힘을 다해 두터운 실드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여기가 아닌 저승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언니, 좀 움직이면서 싸워요! 언제까지 그렇게 우리 보호만 기다릴 거예요?
- 클로이 씨, 마법사가 귀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대충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 또 우리 때문에 위험해졌다고 생각하려고 하죠? 언니도 이젠 긴장 좀 해야 해요.
두 사람은 자신의 탓만 했다.
블링크나 헤이스트 같은 이동, 가속 스킬을 배우기 전까지는 뻔히 마법사의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서러웠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클로이는 두 사람을 떠날 수가 없었다.
- 작가의말
서울은 비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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