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20화
“벤, 전사가 무슨 마법 스킬이야?”
“왜, 인마. 근접 직업군이 원거리 공격 스킬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잖아?”
비슷한 시기에 거래소 안으로 들어서던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렸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목소리가 높다.
귀에 쏙쏙 박히게 옆에서 대화를 나누니 들릴 수밖에.
“뭔 소리야, 어차피 못 익힌다니까?”
“스킬북을 사용해도, 스킬이 안 된단 얘기야?”
“몇 번을 얘기 하냐. 너 내 말 안 들으면, 진짜 허공에다가 돈 뿌리게 될 수도 있어!”
“야잇! 그럼 안 되는 거냐?”
“마음 접어. 안 되는 건, 안 된다.”
보아하니 전사, 그러니까 근접 딜러인 남자가 매직 미사일 스킬북을 사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옆에 있던 동료가 말린다.
아직 스킬북을 구매한 경험이 없는 남자는 혹시라도 직업이 달라도 재수 좋게 배워지지 않겠냐며, 티격태격 하는 중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라한 사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세계관이니까.
아라한 사가에서는 오픈 후 6개월 간, 타 직업군의 스킬을 배울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몇몇 유저들이 호기심에 타 직업군의 스킬북을 사용했다가, 허공에 돈을 날린 적이 많았다.
그렇게 날아간 스킬은 이후 어떤 식으로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공지 한 번만 읽어봐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한 놈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더라고.
커즈라는 놈이 전 서버 최초로 그 뻘짓을 했다는데, 어떤 멍청한 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확장팩이 나오면서 바뀌었지.’
이후 오픈 6개월 차에 접어들던 때.
전장의 마에스트로라는 타이틀을 단 대규모 확장팩이 업데이트 되면서, 그 때부터 아라한 사가에서 타 직업 스킬이 학습 가능하게 바뀌었다.
그렇다면?
“확장팩 이전의 설정이군.”
지금 이 세계는 이전의 룰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 내가 배웠던 강타 스킬은 어떻게 된 거냐고?
그건 공용 스킬이다.
어떤 특정 직업군을 대표하는 스킬이 아니라는 것.
다만 적합 직업군이 정해져 있어, 거기에 맞지 않으면 능력 구현에 패널티가 주어질 뿐이다.
그게 전부다.
“어서 오세요, 손님! 찾으시는 스킬북이 있으신가요?”
거래소 안으로 좀 더 들어서자, 미소와 목소리에 과즙미를 뿜뿜 풍기는 여직원 하나가 내게 달려왔다.
처음 온 뜨내기라는 게 티가 많이 났나?
하긴 주변을 무척이나 두리번거리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예, 네크로맨서 관련 스킬북을 찾고 있습니다만.”
“오, 그러신가요? 우와, 뒤에 스켈레톤도 있네요?”
그녀는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나와 내 뒤에 뻣뻣하게 서 있는 스컬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거래소를 둘러보니 대다수가 검이나 도끼, 창 따위를 든 근접 딜러들 천지였다.
그나마 가끔 마법사가 보이는 정도.
네크로맨서는 내가 유일했다.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 까요?”
“하핫, 얼마든지요! 따라오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무척이나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다.
얼굴에 미소도 가득하고.
그녀 덕분에 스킬북 거래소 나들이가 밋밋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블록을 지나 구석으로 들어가자, 네크로맨서 스킬북 분류 구역이 나왔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입구 근처와 달리, 이곳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책장 사이에 이불을 깔고 자도, 사람이 있는 지도 모를 것 같을 한적함이다.
“생각보다 보실 스킬북이 많으실 거예요. 공급은 계속 있는데, 수요가 없다보니 스킬북이 쌓이는 중이거든요.”
“그 정도로 수요가 없나요?”
“제가 보름 전부터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네크로맨서 스킬을 보러 오신 분은 손님이 처음이에요!”
“그렇군요.”
“저기 혹시! 이 스켈레톤, 한 번 만져 봐도 될까요?”
처음부터 눈빛이 심상치 않았는데, 스컬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사실 치장 하나 한 것 없이 하얀 뼈만 가득한 녀석이긴 했지만, 골격이 좋아 다른 스켈레톤과 달리 든든한 맛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든지요. 스컬, 가만히 있어.”
[네, 알겠습니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컬이 차렷 자세를 하고는 얼음이 된 것 마냥 서 있다.
“신기하다. 말투가 은근 귀여운데요?”
그러자 그녀가 신기한 듯, 스컬의 몸 면면을 살피며 탄성을 터뜨렸다.
그 사이, 나는 스킬북을 훑었다.
먼저 본 것은 흡수 계열 쪽.
생명력 흡수와 마력 흡수였다.
두 흡혈은 네크로맨서의 성향에 따라 길이 갈라진다.
생명력 흡수는 언데드가 적에게 가한 데미지의 일부를 체력으로 되돌려 받는 식이다. 즉, 전투 지속력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언데드 집중형의 방향성이다.
반면 마력 흡수는 핵심이 내게 있다.
생명력 흡수, 생흡과 달리 지휘관 집중형의 방향성이라는 말이다.
언데드가 적에게 가한 데미지의 일부를 내 마력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흡수 효율은 생흡에 비교하면, 마흡 치환 수치가 훨씬 낮은 편이다.
당연한 일이지 않겠어?
수많은 언데드가 퍼붓는 데미지가 넉넉하게 마력으로 흡수되어 내게 온다면, 평생 마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계속해서 각각의 스킬북에 붙어있는 꼬리표의 설명을 읽던 나는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생흡에 관련된 스킬북이었다.
“그것으로 하시겠어요?”
그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의욕이 엄청 넘치는 친구네.
“예, 일단 이거 하나 담고.”
“구성 요소를 보여드릴게요!”
샤아아.
바로 그때.
스킬북 끝자락에 손가락 하나를 올린 그녀가 수인을 맺더니, 내 앞에 작은 홀로그램 창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스킬북의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표시됐다.
[스킬 : 피의 맹세]
[사용 가능 유형 : 소형, 중형 언데드]
[직업 : 네크로맨서 전용]
[대상에게 구속된 모든 언데드에 데미지 당 0.3%의 생명력 흡수 능력을 부여합니다.
활성화, 비활성화의 전환이 가능한 액티브 스킬이며, 활성화 시 유지에 필요한 마력은 5초당 전체 마력의 0.01%입니다.
비활성화 시, 생명력 흡혈 능력은 사라집니다.]
“잘 보이시나요?”
그녀의 명랑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이런 간단한 마법 정도는 부릴 줄 아는 모양이다.
“예, 잘 보이네요.”
“가격은 100골드에요. 2개월 전만 해도 200골드였는데, 시세가 크게 내려갔죠.”
가격도, 구성도 괜찮아 보였다.
스킬 레벨 1의 옵션 치고 흡수율도 좋아 보이고.
스킬 레벨 작업만 빠르게 하면, 군단의 유지력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 같다.
원래 언데드 군단의 생명은 맷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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