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30화
어쨌든 흥정 덕분에 당초에 500골드로 잡아두었던 공방 매입 예산이 300골드나 줄었다.
돈이야 쓸 곳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정말 잘 된 일이었다.
그 길로 바로 매매 계약서를 썼다.
나는 나대로, 로튼은 로튼 대로 서로 마음 변하기 전에 도장을 찍자고 생각했을 터.
모든 건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내게 드디어 공방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이제 공방 건물을 직접 찾아가 알아 볼 차례였다.
30분 후.
로튼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이제 전(前) 주인이 된 훌리오의 공방이 있었다.
오늘부터는 훌리오 씨의 공방이 아니라 커즈 씨의 공방이 될 것이다.
“대장장이는 수소문해서 구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공방을 둘러보면서 생각해 볼 참입니다.”
“예, 그럼 거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귀신은 질색이거든요.”
이미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로튼.
위치도 알았으니, 그의 역할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로 그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와 스컬, 단 둘이 남았다.
스컬이 공방 쪽을 보더니,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있는 거 같습니딱.]
“그렇겠지, 귀신이 있다잖아.”
[산 자에게 죽은 자는 무섭습니딱.]
“너도 죽은 자거든. 착각하지 마.”
[그렇습니딱?]
이젠 산 사람 행세까지.
요즘 스컬을 보면 인공 피부를 덧씌우고, 눈알을 달아주면······ 사람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람 행세를 한단 말이야.
나는 공방 안으로 향했다.
열쇠는 로튼에게 넘겨받았으니, 열고 들어가면 된다.
입구로 가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이 쪽 거리는 문을 닫은 공방이 많아 보였다.
주변에 옹기종기 다섯 개의 공방이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래서 더 으스스하니 귀신 나오기 좋아 보이네. 누가 봐도 그렇겠어.”
해가 쨍쨍한 아침인데도 여기는 어두웠다.
높은 건물들이 주변에 있어 일조량이 부족한 탓이다.
딸깍. 드르르륵.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 때.
- 이 놈!
코앞에서 나를 반기는 누군가가 있었다.
사람? 아니었다.
로튼이 말하던 귀신이었다.
이 세계의 귀신은 아침부터 활동을 하나?
헌데 햇빛이 없다보니, 안은 밤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어둡긴 했다.
귀신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배경.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 공방의 주인이 된 커즈입니다.”
- 뭐냐, 네 놈은?
귀신은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예전 주인이자 대장장이였던 훌리오가 이 중년의 인물인 듯 싶었다.
“제 공방을 좀 보려고요.”
-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군?
“모르고 보는 귀신은 몰라도, 알고 보는 귀신이 놀라울 리 없죠.”
- 허, 이 녀석 봐라?
훌리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귀신인 그의 모습은 뭔가 이상했다.
이마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철심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도깨비의 뿔처럼 앞으로 솟아나온 철심은 미안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당신을 보러 왔어요. 쫓아내려는 것도, 퇴마 의식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니에요.”
나는 우선 훌리오를 안심시켰다.
이곳이 죽은 대장장이의 공방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생전에 특별한 직업이 있던 사람은 언데드로 부활시킬 경우, 그 직업을 승계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아라한 사가에서 체득한 정보로 대상이 NPC든, 일반 유저든 적용되는 것은 똑같았다.
즉, 훌리오가 유명한 대장장이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를 되살릴 경우, 자연스럽게 대장장이를 구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언데드는 내게 영적으로 구속되어 있으므로, 명령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으으으음, 음침한 기운을 풍기는 네크로맨서 놈이로구나. 무섭게 시리. 두 다리가 후들거리네.
“예?”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귀신이 날 무서워하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야.
우선은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살짝 내게서 물러서려고 하는 훌리오를 향해 손짓했다.
“적의는 없어요. 얘기 좀 할까요?”
- 좋다. 네 놈은 날 보고도 도망가지 않으니, 간만에 심심치는 않겠구나. 클클.
이 할아버지.
은근히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의 경계를 풀기 위해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무척 대화가 고팠던 것일까?
훌리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자기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 내가 꽤 실력이 있는 대장장이였단 말이야. 훌리오의 무기 하면 다들 알아줬거든.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 놈아!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
- 아 머리에 박힌 이거 말이냐?
태연히 머리 한가운데의 철심을 움켜쥐는 훌리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철심.”
- 담금질을 하다가 끝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게 튀어서 이렇게 됐지 뭐냐? 그 날 너무 바빴던 탓에 제련을 서두르다가 그만······.
음, 이 말을 듣고 나니 그가 과연 실력이 있는 대장장이였는지 갑자기 의문이 든다.
세상에 어떤 장인이 제련을 실수해서, 담금질을 하다가 인생을 마감한단 말이야?
- 지금 내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약을 파는 건 아닌가 하는 표정인데. 그렇지? 네 이노옴!
순간 훌리오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줄 알았다.
어쩜 그렇게 속마음을 잘 읽을까.
이제야 이 할아버지가 좀 무서워진다.
정말 귀신같아서.
“그러니까 오랜 시간 이 공방에서 작업을 해 오셨다는 얘기죠?”
- 그렇지! 그 뒤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이쪽 공방 거리가 망하면서 오래된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내 실력은 꽤 괜찮았단 말이다, 이놈아!
“저, 말끝마다 놈은 좀 빼주시······.”
- 그럼 놈이라고 하지, 년이라고 하느냐! 어쨌든 말이야, 난 아직도 현역이란 말이다. 근데 귀신이니 뭐니 하며 날 멀리하려고만 하니, 답답해서야 원.
훌리오는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눈치였다.
대화를 나눠보니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귀신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이승을 떠나기는 싫은 것’이다.
그러니 자꾸 이 자리에 머물며, 자신을 받아줄 사람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누가 귀신을 받아주겠어.
아마 이렇게 진득하게 대화를 한 것도 내가 처음일 터.
“훌리오 할아버지.”
- 할아버지가 뭐냐! 삼촌이라 불러라!
“······그래요. 훌리오 삼촌.”
- 왜 이 녀석아?
나참.
말끝에 놈을 빼 달라고 했더니 호칭이 녀석으로 바뀌었다.
- 작가의말
연휴가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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