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45화
한편, 오늘의 2층 사냥은 정예 육성 위주로 조용히 치르는 중이었다.
아까 스킬 레벨 업을 위해서 언데드 코볼트를 만들었다가, 바로 죽인 것을 제외하면 일반 언데드 생성은 아예 하지 않았다.
휘이이.
“아, 시원하고 좋네.”
마침 던전 어디선가 불어온 선선한 바람을 즐기고 있던 찰나.
[바람이 참 시원합니딱.]
옆에서 스컬이 말을 걸었다.
다른 녀석들은 저 앞에서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는데, 이놈은 왜?
“야, 스컬. 넌 뭔데 여기에 있어, 또.”
[쉬는 중입니딱.]
“뭘 쉬어, 내가 언제 쉬라고 했어?”
[아무 명령이 없으셨습니딱.]
“알아서 할 능력은 없는 거야?”
[저는 주인님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존재인 것입니딱.]
“······너 가끔은 내 명령 없이도 나한테 말 걸거나 따라오잖아? 그런 거 보면 꼭 명령만 수행하는 거 같진 않던데?”
[정찰 다녀오겠습니딱.]
대화가 핀치에 몰리자, 녀석이 영리하게 자리를 빠져 나갔다.
요즘 스컬이 정말 사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단지 언데드라고 치부하기엔 자아(自我)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뭔가, 애매하단 말이야.
바로 그때.
퍼어엉! 퍼엉!
옆으로 보이는 언덕 너머에서, 마법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폭음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주변이었다.
나 혼자 던전 2층을 전세 낸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로.
헌데 폭음은 아주 갑작스럽게 들렸다.
마치 예고 없이 마법을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스컬, 언덕 위로.’
나는 바로 스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한달음에 성큼성큼 언덕 위로 올라간 스컬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전방을 살폈다.
“음.”
시야가 공유되면서, 그 원인이 보인다.
검을 든 여섯의 남자들이 세 명의 무리를 원으로 빙 둘러싸고 서 있다.
거리는 어느 정도 멀리 두고 있지만, 빠져나갈 간격은 만들어놓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이놈의 던전은······.”
뭐, 이렇게 모험가들끼리 등쳐먹는 자식들이 많아? 왕국이나 관리국 같은 곳에서는 저런 놈들을 신경을 안 쓰는 건가?
하긴 일일이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감시를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지 싶었다.
“음?”
헌데 둘러싼 무리의 세 사람 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뭐야, 클로이잖아?”
어제 같이 맥주를 마셨던 클로이였다.
복면을 둘러쓴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정면의 남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파이어 볼로 보이는 마법이 캐스팅되어 있다.
그녀가 손을 앞으로 뻗는 시늉을 할 때마다 남자들이 움찔하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법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콰앙!
그 사이, 클로이의 손을 떠난 화염 구체가 남자들에게로 날아갔다.
하지만 불발.
정면에 있던 두 남자는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고, 그 사이 뒤에 있던 남자 둘이 클로이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저 두 놈 년은 뭐하는 거지?”
헌데 뭔가 이상했다.
클로이의 공격으로 전열이 흐트러진 틈을 타서 동료로 보이는 두 남녀가 황급히 포위망을 빠져나온 것에 반해.
클로이는 그대로 포위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 없다.”
나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스컬이 바로 뒤를 따랐고.
‘나머지는 언덕 옆을 빙 돌아서, 최대한 저 놈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가까이 접근 한다.’
이어서 명령을 받은 다른 정예들이 전투를 중단하고 모두 언덕을 따라 우회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클로이를 미끼로 썼어.’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전부 봤다.
클로이가 뚫어낸 활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클로이를 구하지 않고 먹잇감으로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두 남녀는 포위망 밖에서 남자들을 상대로 검을 뻗은 채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고.
이미 자신들의 손아귀를 빠져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여섯 명의 남자들은 모두 클로이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물 안에 갇힌 고기라도 잡자는 심보처럼 보였다.
“어, 뭐야. 저 새끼는?”
그 때.
맹렬히 달려오던 내 움직임을 인지한 남자 하나가 소리쳤다.
나는 바로 스컬에게 지시했다.
‘백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 클로이를 구해. 그녀를 업고, 최대한 전선 밖으로 빠져.’
[옛.]
“조용히 좀 살지.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하겠냐! 이 새끼들아!”
도발에는 욕이 최고지.
시간은 잠깐만 벌면 된다.
이 와중에 내 부하들이 언덕을 따라 돌고 있으니까.
“스켈레톤 하나 가지고 거들먹거리기는. 뭐하고 있어, 저 새끼부터 족쳐! 이 년은 내가 맡을 테니까!”
대장으로 보이는 민머리 남자가 소리쳤다.
“죽여 버려!”
“저 놈부터 목을 따자!”
다섯 명의 검사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쇄도해들기 시작했다.
잔뜩 날이 선 검의 모습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목이 깔끔하게 베여나갈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내가 당했을 때의 얘기고.
“못난 새끼들. 하나 잡으려고 다섯이 오냐?”
나는 바로 뒷걸음질쳤다.
굳이 정면승부로 힘 뺄 필요가 없거든.
판은 다 짜놓고 쫄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왕이 고생할 필요가 없잖아?
“잡아!”
“저 갑옷은 내꺼다! 좋아 보이는데? 클클클!”
“장화는 내가 갖지!”
얼씨구, 전리품 분배까지 미리하고 있다.
저런 녀석들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조금 후면, 누가 먼저 요단강 편도 승차권을 뽑을 지 그 순서를 정해야 할 텐데.
화르르륵!
“불이야, 피해!”
우우우웅!
“장판 스킬인 듯 하니, 옆으로 돌아!”
최단거리로 접근을 노리는 놈들.
당연히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은 없다.
나는 계속해서 동선을 방해하는 화염 스킬을 시전하며, 중간에 망자의 손길 스킬을 섞어 넣었다.
끄어!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스컬을 상대하려던 민머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나자빠지는 것이 보였다.
뭐야, 목이 없어진 거 같은데?
꼭 해골이라고 무시하다가 당한다니까.
“허억, 대장이?”
맹렬히 내게 돌진해오던 녀석들이 일순 뒤를 돌아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 손에도 아니고, 스켈레톤의 손에 목이 날아갔으니 그럴 수밖에.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살기로 가득 찼던 기세가 당황으로 바뀌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끼이익!
머릿속이 복잡해진 놈들의 추격이 멈춘 바로 그 순간.
캬하아악!
샤히아악!
놈들의 빈틈을 노리던 나의 정예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전부 죽여 버려.”
나는 무심하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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