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19화
“이, 이 자식!”
연이은 두 동료의 죽음에 떡대는 하얗게 질린 표정이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죽여서 얼마를 챙길까 하던 녀석이 반대로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나를 모른 척 지나쳤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날 먼저 죽이려 한 건 녀석들이었고, 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씹고 찢어 발겨라. 양쪽 팔이 모두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늘한 살기가 담긴 명령이 머리에 입력되자, 언데드들의 붉은 안광이 더욱 짙어진다.
“사, 사, 살려줘!”
“······.”
“돈은 얼마든지 줄게! 죽은 놈들 몸을 뒤져서라도 다 줄게!”
떡대가 연신 살려 달라 애원한다.
하지만 나는 무심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공세를 높였다.
굳이 화염이나 죽음의 마력 스킬을 쓸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양손을 쓸 수 없게 된 떡대에게 남은 공격 수단은 없었기에.
그르르륵!
우적! 우적우적!
“끄아아아!”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체에 불과했던 녀석들은, 불청객의 목숨을 거둘 저승사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떡대에게 다음을 기약할만한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푹!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끅.”
마지막 생명의 불씨마저 꺼졌다.
[레벨 업! 레벨 15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레벨이 올랐다.
“나 참.”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언데드도 아닌 사람의 죽음이 내 경험치가 되다니.
물론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후.”
분명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씁쓸한 쪽에 가깝다고 할까.
어쨌든 사람을 죽인 것이고, 인간 본연의 도덕심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바로 떨쳐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후회는 없다.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테니까.
양자택일이라면 당연히 전자 아니겠나?
남을 위해 죽어줄 사람은 없다.
무거운 감정을 빠르게 털어내고.
나는 3인조의 사체를 살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유품, 아니 전리품을 안 챙길 이유는 또 없잖아?
“아니, 이거······.”
헌데.
이놈들에게서 나오는 물건들의 값어치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8
쩔렁. 쩔렁.
“이 정도나 될 줄은 상상 못했는데.”
거래소를 나서는 내 표정은 얼떨떨했다.
가죽 주머니 안에 묵직하게 채워져 있는 금화가 그 이유였다.
견물생심, 혹시나 다른 이들의 눈에 띌까 싶어 바로 인벤토리에 보관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던전에서 거두어 거래소에 판 3인조의 물건 값은 자그마치 200골드나 됐다.
거기에 녀석들이 소지하고 있던 금화까지 합치니, 약 230골드 가량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골드가 100골드.
합치니 도합 330골드가 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2억이 넘는 거금이 생긴 셈이었다.
물론 세 녀석의 무기, 방어구, 장신구, 보조 아티팩트를 모두 갖다 판 덕분이기는 하지만.
이래서 놈들이 내 목숨을 노린 건가 싶었다.
자기들도 이렇게 물건들을 소지하고 있듯, 내게도 당연히 그 정도 가치를 할 물건이 있다고 여겼을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몸뚱이가 전부였다. 아마도 그건 꿈에도 몰랐겠지만?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보이는 게 이상할 것도 없지.”
던전에서의 일은 이제 지나간 일이다.
악당에게는 죽음을.
정의에게는 보상을.
간단하잖아?
“그 바람에 갑작스런 목돈이 생겼네.”
생각지도 않은 일확천금이다.
희귀 스킬이 드롭 되거나, 순도가 높은 마정석이 나와 목돈을 버는 그림은 생각해 봤는데.
이런 식으로 큰돈을 손에 쥐게 될 것은 예상도 못했다.
물론 3인조 녀석들도 날 기습해서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게 아니라, 저승 행 특급열차를 탈 것이라곤 예상도 못했겠지.
어쨌든 이 돈은 알차게 쓸 필요가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3달이 넘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준 마당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지.
그러자 두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 돈을 더 모아 공방을 매입하는 것.
둘째, 내 능력을 위해 투자하는 것.
무엇을 택하든, 내가 강해지는 길이다.
즉, 행복한 고민이란 말씀.
언데드 군단을 무장시키는 것도 내 전력이 상승하는 일이고, 내 능력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공방을 산다고 해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제작 스킬을 습득하고 다시 발전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제작은 그리 만만히 볼 부분이 아니다.
스킬 중에서 제작이 숙련도 노가다로는 최고봉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악명이 높거든.
게다가 신경 쓸 부분은 하나 더 있지.
앞뒤 생각하지 않고 훌쩍 제작에 뛰어들기에는 아직 내 힘이 본 궤도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에 내가 가진 네크로맨시 스킬만 봐도, 언데드 생성이 고작이다.
이 상태로는 군단을 꾸려도 한계가 명확하다.
쉽게 말하자면 알몸의 병사를 전장에 밀어 넣고, 열심히 싸워보라고 하는 꼴이다.
위용이 없다는 말이야.
적이 알몸으로 나온 병사를 보고 겁을 먹겠어? 오히려 사기가 더 오르지 않으면 다행이지.
몬스터들의 전투력이 높지 않은 라이크만 던전 1층 짤짤이야 무난히 한다고 쳐도, 그 아래의 층계부터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본 아머, 본 쉴드 같은 것들.”
그러다보니 뼈를 이용한 무구 제작 스킬이 떠오른다.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아주 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언데드들을 어느 정도 무장시킬 수 있는 선택지다.
이 선택지는 스킬북을 구할 수 있으면 반드시 포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정도의 사전 작업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던전 2층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짤짤이만 할 수도 없고.
“공방은 더 적절한 때가 있겠지. 지금의 제작은 본 시리즈 수준에서 끝내고, 내 능력에 올인. 좋아, 스킬북으로 가자.”
결정을 내렸다.
내실을 기하는 것으로.
아직 나는 채워 넣을 공간이 무궁무진한!
파릇파릇한 새싹과도 같은 네크로맨서기 때문이다.
커즈의 본격적인 쇼 타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단 말이지.
스킬북을 살 필요가 있다.
일반 거래소를 나온 나는 바로 스킬북 거래소가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9
얼마 후.
스킬북 거래소에 도착했다.
던전 도시 라이크만의 수많은 탐험가들이 와서 스킬북을 판매하고, 또 사가는 곳이라 그런지 규모가 상당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대형마트를 연상케 하듯 일렬로 끝없이 늘어선 계산대가 보였고.
그 계산대 뒤로 보이는 공간이 온통 스킬북으로 가득한 책장들이었다.
라이크만의 탐험가들은 모두 여기에 모인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수가 많았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래소 전체가 책 반, 사람 반인 것 같다.
바로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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