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도사의 던전사냥, 42화
5
“아, 정말요? 리자드맨 치프턴,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는데 언데드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모양이네요.”
“인해전술에는 장사 없으니까. 리자드맨 치프턴의 가장 큰 약점은 기동성의 부재죠. 합이 잘 맞으면, 마법사에게도 공략하기 쉬운 대상일 테고.”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네요. 네크로맨서 관점에서 보는 던전 이야기가 참 신기해요.”
“그런가요? 난 마법사가 다른 근접 공격형 탐험가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들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후아······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맥주를 이렇게나 마셨네요.”
“뭐야, 언제 일곱 잔이나 마셨지?”
나와 클로이 앞에는 사이좋게 맥주 일곱 잔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내 권유에 복면도 벗은 상태였다.
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사람이야 누구나 하나씩 상처나 흉터쯤은 갖고 살기 마련이지 않던가?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편 우리의 대화를 멀찍이서 듣던 예리나는 아예 카운터에서 엎드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새벽까지 꽤 긴 대화를 나눴음에도,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아 이야기하기는 훨씬 편했다.
덕분에 클로이에게서 마법사 얘기를 실컷 들었다. 특히 전투에 관련된 내용들은 흥미로웠다.
듣고 나서는 내 얘기도 들려주었다.
기브 앤 테이크를 해야, 즐거운 대화가 되는 법이니까.
눈가에 피곤함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자연스럽게 그녀가 대화를 끝냈다.
“오늘 얘기 정말 즐거웠어요.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해서, 내일부터는 또 바빠질 것 같네요.”
“덕분에 심심치는 않았네요.”
“편견 없이 절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렇게 복면을 벗고 편하게 맥주를 마셔본 것도 처음이에요.”
“남의 시선 신경 쓸 것 없어요. 나를 위해서 살아야죠.”
“들어가 볼게요.”
나보다 좀 더 피로감이 들었는지, 그녀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바로 불을 끈 것을 보니 그대로 곯아떨어진 모양.
나 역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와 대화하고 나니, 이 세계 모험가들의 삶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대다수가 무척이나 길드를 선호한다.
영향력 있는 세력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 그 자체로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근데 그거, 가장 큰 착각이다.
이익 집단이라는 것은 간악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들에게 보탬이 되는 자들에게만 힘을 실어주고, 뒷배가 되어준다.
자격 미달의 길드원을 사랑으로 품는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지.”
그런 자들은 무조건 버리는 패일뿐이다.
여차하면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왜냐면 내 생각도 그랬거든.
그래서 나는 아라한 사가에서 초창기 잠깐 길드 운영을 한 뒤, 내 사고 방식의 문제점을 깨닫고 이후에는 1인 길드를 만들어서 솔플을 하고 지냈다.
이 세계에 내 생각을 비웃는 고상한 분들이 희박한 확률로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큰 범주 안에선 현실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녀가 내일 두 사람과 던전을 가는 것은 라이크만 시에 거점을 둔 길드에 가입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서라고 했다.
아그네스 그룹의 수장인 아그네스의 사촌 동생 테레지아가 운영하는 길드라던가?
헌데 가입비가 20골드라는 것이다.
세상에, 길드 가입비가 2천만 원이라니.
“무슨 사이비 교단이야?”
문제는 저 가입비에도 불구하고, 대기자가 줄을 섰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간 단계의 관계자에게 뇌물조로 몇 골드씩을 더 먹여야 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랄도 가지가지.
나중에 나도 영향력이 좀 생기면, 길드나 하나 차릴 까보다.
가입비만 받아도 인생 피겠는데?
여기에 지인을 가입시키면, 소개한 분에게 수고비 지급! 같은 다단계 식으로 가면······ 나 왠지, 떼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음, 공상은 여기까지만 하고.
어쨌든 길드라는 단어가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고레벨의 개인 혹은 개개인이 뭉친 파티 단위로 3층이나 4층 정도까지는 공략이 활발한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5층부터는 길드를 끼지 않고 들어가는 모험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맵.’
지리 파악, 이것 때문이다.
4층 정도까지야 세간에 공개된 지도가 많아, 이동 루트를 짜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5층부터는 거의 미지의 세계였다.
거래소에서 판매되는 지도가 있긴 하나 엄청난 고가이고, 암시장에 나도는 지도들은 사기가 많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5층부터의 지형 정보들을 상위 길드가 담합해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꼭 꿀 빨아 먹으려는 놈들이 있지. 그게 양날의 검인 줄도 모르고.”
정보 독점은 장기적인 길드 운영에 있어 좋은 수가 아니다. 오히려 하책에 속하는 편이지.
뭐가 상책이냐고?
그건 비밀.
나중에 알려줄게.
어쨌든 다른 모험가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지 클로이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그래서 유익한 시간이었고, 만족이다.
이제 날이 밝으면, 다시 공방으로 갈 생각이다.
왜냐고?
다시 던전에 가기 전에 나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거든.
6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거래소에 들러 미리 목록에 적어두었던 스킬북을 샀다.
그리고 공방에 가져와 훌리오의 앞에 10권의 스킬북을 펼쳐 보였다.
촤악!
그러자 누워 있던 훌리오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으악! 이게 뭐냐, 이놈아! 아침 댓바람부터 자는 사람을 깨우고!”
“자긴 뭘 자요. 인간의 3대 욕구가 다 사라진 언데드 할아버지가?”
“에잉! 자는 척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자는 느낌은 기억한 단 말이다.”
“삼촌, 이상한 잠꼬대 하지 마시고, 우리 오늘은 이거로 마법부여 해야 됩니다.”
“허······ 설마 이걸 다 사온 게냐?”
“그럼 사오지 훔쳐 왔겠어요?”
[주인님은 도둑이 아닙니딱. 현금 거래, 쿨 거래. 딱딱 좋은 거래, 딱.]
스컬이 추임새를 넣는다.
요즘은 구사하는 문장의 길이 자체가 늘어난 느낌이다.
스켈레톤 나이트가 이 정도면, 설마 데스 나이트가 되면······.
[주인님을 위해 제 비루한 육신과 영혼을 다 바치겠나이다.]
하고 멋들어지게 대사라도 칠 것 같다.
아, 그거 좀 가슴 설레는데?
“이거 돈 지랄이야, 인석아!”
대뜸 훌리오가 소리친다.
틀린 말은 아니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장인에게 부탁하는 거잖아요?”
“장인이 해도 날라 갈 땐 날라 간단 말이다.”
“상관없어요. 투자도 안 하고 강해질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실패한다고 해서, 내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마법 부여는 게임으로 따지면, 쉽게 말해서 인챈트다.
단지 장비의 능력을 자체적으로 끌어 올린다기 보다, 외부 물품과의 조합을 통해 능력을 부여한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이다.
이 과정에서 스킬북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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