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비법 (2)
“비창?”
눈앞에 작은 창이 둥둥 떠 있었다.
창끝이 사방을 보며 천천히 돌고 있었는데, 명령만 내리면 순식간에 달려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신기했다.
고물상에 굴러다니는 짧은 철근 같았던 것들이 어느새 훌륭하고 살벌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
재운은 강화란 권능에 흥미가 생겼다.
자신의 권능인 회생과 부활과도 어느 정도 궁합이 맞는 것 같았다.
스테인에게서 강화에 대한 기초지식과 간단한 방법은 배웠지만, 더 깊은 세계를 맛보고 싶어졌다.
슬쩍!
고물 더미 속에서 비슷한 창 하나를 뽑아선 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입속에서 작은 망치 하나를 꺼냈다.
그가 찾아간 두 번째 강화사에게서 받은 신물이었다.
그는 이 신물을 준 후 영원한 소멸에 이르렀다.
“회생!”
“강화!”
피시시시!
엷게 빛나던 신물이 갑자기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에잇, 이게 왜 이러지?”
녹아내린 쇳물을 털어내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전에 알프레도에게 부러진 창을 선물할 때는 먹혔던 방법이었다.
‘회생은 안 먹히나, 아니면 두 개 이상의 권능이 안되는 걸까?’
그땐 부활만 썼었다.
바뀐 것이라곤 부활 대신 ‘회생’을 썼고, 강화를 추가한 것밖에 없었다.
둘을 함께 써도 될 것 같은 감이오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캬하하, 이런 얼치기 같으니라고. 강화는 언제나 처음에 써야 하는 거야. 그것이 완전히 힘을 잃은 신물이라 해도.”
스테인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너 같은 얼치기는 처음 본다는 투로 격하게 웃었다.
“쳇,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가 다른 물건을 뽑아 들었다.
고물상에 그런 종류의 신물은 차고 넘쳤다.
“강화, 회생!”
슈르르륵!
드디어 신물에서 안정적으로 빛이 났다.
점점 강해지는 빛이 정점에 다다르자 신물 자체가 빛으로 변했다.
‘젠장, 언제봐도 저건 부럽군.’
스테인이 속마음을 숨기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 저런 권능이 있었다면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진 않았을 거다.
저 얼치기는 모르고 있겠지만 권능을 합치는 작업은 너무도 어려웠다.
일단 권능이 두 개 이상이어야 했고, 각 권능이 서로에게 반발하지 않아야만 했다.
거기다 둘의 궁합이 잘 맞아야 다중의 권능을 쓴 보람이 생겼다.
자칫 잘못하면 아까처럼 신물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었다.
팡!
신물에 모였던 빛이 작게 폭발하며 그의 손 위에 비창이 둥둥 떠 있었다.
꿈틀, 꿈틀!
놀랍게도 비창이 뱀처럼 꿈틀댔다.
재운이 팔을 들어 올리자 비창이 그의 팔을 타고 어깨 쪽으로 내려왔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비창이 영성을···.”
스테인의 턱이 빠져버렸다.
뿔나고 저런 소린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건 강화나 회생이 아닌 창조에 가까웠다.
물론 진짜 창조의 권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신물에 영성을 부여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분명 강화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다.
“어때, 이만하면 나도 제법 하는 편이지?”
재운이 득의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스테인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
띠링!
타다다닥!
작은 스마트패드 같은 기기를 켠 스테인이 뭔가를 바쁘게 적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물건 팔려고 그런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우주선 부품을 살 것 아니야.”
“아하, 그거 게시판이구나?”
“뭘 새삼스럽게 물어, 네 것도 함께 팔아줄까? 수수료는 10%만 뺄게.”
“됐네, 이 사람아! 내껀 내가 팔 테니까 신경꺼.”
“나 사람 아닌데?”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손은 분주했다.
띠링!
게시판에 글을 등록하자마자 바로 메시지가 날라 왔다.
“오, 이번엔 입질이 빠른걸.”
그가 신나게 쪽지로 답신을 했다.
“여기 주소가 어떻게 돼?”
“거기 게시판에 보면 럭키 고물상이라고 있을 거야. 난 거기로 지정해 놨어.”
“뭐야, 진짜 주소지를 적었다는 거야? 이런 어설픈 놈 같으니라고. 세상에 진짜 주소를 적는 놈이 어딨어. 어떤 미친놈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스테인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럼 마계 놈들이 쳐들어온 것도···?”
“당연히 이것 때문이겠지. 젠장, 내가 터를 잘못 골랐군. 어서 빠져나가야지 원.”
“제길, 내가 뭘 알았나?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해당 게시물 삭제하고, 주소지를 2중, 3중으로 바꿔야지. 택배 받으러 오는 장소도 바꿔야 하고, 이건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라고.”
“게시물은 삭제했고, 주소지만 바꾸면 되겠네.”
“그런 건 빨리하라고.”
“하고 있잖아. 그만 좀 재촉해.”
그도 휴대전화를 꺼내어 주소지를 바꿨다.
“그런데 그거 정말 팔지 않을 거야? 못해도 1만은 쉽게 받을 것 같은데?”
“이거? 응, 이건 안 팔 거야. 내 첫 작품 같은 거잖아.”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옷 속에 숨었던 비창이 팔을 타고 손으로 올라왔다.
무기라고 하기보단 애완동물처럼 그의 몸에 붙어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뭣 보다 하는 짓이 귀엽잖아. 하하!”
그가 비창을 쓰다듬자 몸을 배배 꼬았다.
나름대로 기분 좋다는 신호였다.
“쳇, 귀엽기도 하겠다.”
스테인이 심통을 냈다.
강화사로서 그의 자존심이 살짝 멍든 심정이었다.
신물로 하는 강화의 끝은 영통이었다.
이른바 신물과 주인이 하나가 되는 단계.
저 비창은 그 초입에 닿아 있었다.
완전한 일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나눌 수준은 되었다.
자신은 꿈조차 꾸지 않았던 경지가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아직 강화의 권능이 뭔지도 잘 모르는 어설픈 놈에 의해서.
이 상황에서 배가 안 아프다면 자신이 천계 출신인 거다.
물론, 그놈들도 이 상황에선 배가 아플 거라 믿고 있지만.
“휴~! 내가 밑밥을 깔아줘야지.”
그가 결심한 듯 한숨을 토해냈다.
비창과 잠시 놀던 재운이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여기서 잠시 머무는 방값이라고 생각하고 딱 한 번만 말해줄 테니까.”
“뭔데 그렇게 거창하게···?”
“닥치고 듣기나 해. 강화라는 건 말이야, 대상을 특정할 수 없어.”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말이 뭔 소리야?”
“아 글쎄, 닥치고 일단 들으라니까. 그러네!”
스테인의 말이 빨라졌다.
강화의 권능은 태초부터 있었다.
혹자는 창조의 권능과 연동된 힘이라고도 말했다.
많은 신과 권능들이 창조 이후에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만들어졌다.
그만큼 강화의 권능은 역사가 길었다.
그러나 태초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강화의 권능은 주목받지 못했다.
신들이 신물보다는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강화의 신이 등장했다.
그가 만들어낸 신물로 그보다 높은 신들을 꿇어 앉혔다.
그제 서야 세상 신들이 강화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화는 선천적인 재능 없이는 신들도 함부로 발현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권능이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전설?”
“그래 강화에 대한 전설.”
“그게 뭔데?”
“강화의 힘은 죽음과 탄생 사이를 잇는 줄 같은 거라고.”
“뭔 소리야?”
“나도 몰라, 그냥 강화사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전설일 뿐이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강화의 끝은 죽음과 탄생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거지. 이건 강화의 신이 직접 했던 말이야. 그가 그 증거지.”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던데?”
“그래, 사라진 후 그를 다시 본 자는 아무도 없었지. 아직까진 그 누구도···.”
재운이 잠시 침묵했다.
스테인의 말에서 뭔가 강화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죽음과 탄생 사이를 잇는다 라.’
신성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정기를 받은 직후 무언가를 향해 날아오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나의 정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을까?’
그 순간이었다.
파앗!
그의 손목을 감아 돌던 비창이 또 한 번 빛을 토해냈다.
“허, 헙···!”
스테인이 놀란 입을 막으며 소리를 죽였다.
지금이 중요한 고비임을 눈치챈 것이다.
비창의 몸체가 늘어나며 꿈틀댔다.
여러 곳이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형태가 계속 변했다.
재운은 여전히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화아악!
형태가 이리저리 변하던 비창의 몸이 빛으로 완벽하게 물들며 터졌다.
물리적 형태의 폭발이 아니기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팔로 눈을 가린 스테인이 빛의 폭발이 끝나자 급하게 비창을 찾았다.
“헉, 기···길이가?”
사람의 키만큼 커진 비창이 재운의 몸을 감싸며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응?”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그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감싼 비창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비창의 모습이 놀랍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알아 온 것처럼 변해버린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슥!
그가 손을 들어 비창의 창끝을 쓰다듬자 비창이 그의 손목을 감으며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곤 원래의 작고 가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 말도 안 돼. 가, 강화의 신···. 강화의 신 얘기가 지, 진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스테인의 얼굴이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자신이 어릴 적 얘기로만 들었던 강화 신의 무용담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신물을 살아있는 완전체로 만들 수 있다는 말.
강화사의 길을 걷는 자로서 언제나 목표는 그 한 가지였다.
“응, 뭐가?”
자신에 손목에 감긴 비창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재운이 그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자신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스테인은 입을 다물었다.
속이 따끔거릴 만큼 마음이 쓰렸다.
마족의 위대한 심보가 시키는 대로 그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아니어도 밝혀질 것은 언젠가 밝혀질 테니까.
“야 인마, 이것도 좀 강화해봐!”
“응, 이건 너의 주 무기잖아? 왜 그래, 지금까진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스테인이 자신의 최고 걸작품인 강화된 총을 내밀며 떼를 썼다.
평소엔 절대 남의 손 타지 않도록 까탈스럽게 관리하던 그의 보물이었다.
“잔말 말고 이것 좀 강화해 보라고.”
“싫어, 내가 그걸 왜 하냐고?”
“이 새끼, 까라면 깔 것이지. 참 말 많네.”
“너야말로, 미쳤냐? 왜 안 하던 짓을 시키냐고?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둘의 옥신각신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
벌써 저녁이 되었다.
해도 더위에 지쳤는지 느린 걸음으로 산을 넘어갔다.
붉게 물들었던 산자락도 다시 검은색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쪼르르륵!
호르륵!
사무실에서 그리웠던 커피믹스 한 잔을 타 마시던 재운에게 럭키가 물었다.
“그래, 이젠 뭘 할 생각이냐?”
“뭘 하겠어, 밀린 일을 끝내야지.”
“밀린 거 뭐?”
“만복당과 소정식품, 그리고 비성유통일 까지···.”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오늘 낮, 소정에게서 그간의 사정을 들었다.
TH그룹의 식품사업부 부장의 폭로로 TH와 비성유통 모두 꼬리를 말고 한껏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러다 여론이 잠잠해진 저번 주부터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기존의 거래를 모두 중단했고, 더 이상의 거래는 없을 거라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그가 떠나기 전 벌여놓았던 만복당의 일은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소정식품의 생산라인 절반을 이미 만복당 프랜차이즈를 위해 바꿨다.
이제 나머지 라인도 모두 빵을 만드는 공정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만복당의 가맹점 소식에 그동안 가게 앞에 진을 쳤던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예상대로 가맹점 계약이 순식간에 100곳을 돌파했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가맹점 개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전반적인 시설물 설치나 관리, 기타업무는 외주업체에 맡겼기에 양측 다 어려울 일은 크게 없었다.
이미 몇 차례 전국구 방송을 탔기에 만복당의 인지도는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대기업 베이커리에 길들여져있던 고객들도 호기심에 만복당 가맹점을 찾았다가 그 맛에 홀딱 빠져버렸다.
혹시나 라인을 놀릴까 걱정하던 소정식품 임시사장은 폭발적인 주문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비성유통의 반격이 시작됐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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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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