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원합니다. (1)
빵집이 있는 도로변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코너를 돌아 100미터쯤 이어진 직선 길의 반을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트럭을 반대편에 세워놓고 급하게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줄을 서던 사람들의 눈에 곱지 못한 시선이 서렸다.
“관계잡니다.”
노골적인 눈빛에 뭐라도 변명을 해야 할 분위기였다.
손님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 한 가지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형님!”
“어, 동생 왔어?”
가게 안에 정신을 쏙 빼놓은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두식이 보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글쎄, 나도 잘 몰라. 어제부터 손님이 갑자기 폭발을 하더라고.”
그의 물음에 두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많이 바쁘시겠어요. 도와드릴까요?”
“아니, 안 그래도 그 일로 연락한 거야. 아무래도 이게 하루 이틀 가고 말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사람을 좀 채용해야 할 것 같아 의논 좀 하자고.”
“아니 뭘 그런 거까지 제 의견을 물어요. 그냥 형님이 알아서 처리하시고, 나중에 알려주시면 되지.”
“일단 알바는 몇 명 더 구해놨는데, 아무래도 숙련된 정직원을 몇 명 뽑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을 우리 가게 대주주를 놔두고 나 혼자 결정할 순 없지. 잘 못 되면 나 혼자 독박 쓰게?”
두식이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가 말속에 충분히 녹아있었다.
동업 계약을 할 때 두식과도 51대 49로 지분을 나눴다.
그가 51, 두식이 49였다.
대신 가게 운영에 대한 전권은 모두 두식에게 일임했다.
음식 장사엔 문외한인 그가 끼어들 자리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다만 가게 운영이 다시 어려워지면 자금만 추가로 투입할 생각이었다.
“밖에 줄 선 손님 말고도 전화로 주문해오는 손님도 많아. 일단 감당할 수 없어서 전화 주문은 받지 않고 있지만, 여건만 갖춰지면 모두 수용할 계획이야. 그러니까 정직원을···.”
“형님 뜻대로 하세요. 필요한 자금 있으면 그때그때 말씀하시고요. 저도 새로 일을 해야 해서 여기 자주 못 올 것 같으니까.”
그가 웃으며 두식을 바라보았다.
밀가루가 하얗게 묻은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 보였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은 보는 사람조차 들뜨게 만들었다.
“고마워 동생.”
“별말씀을. 모두 형님이 노력해서 얻은 건데요 뭐.”
둘 사이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광경을 손님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거리할 시간에 빵 하나라도 더 만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
“흠!”
고물상으로 돌아온 재운이 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장엔 8억이 좀 넘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빵집을 회생시키기 위해 판 고물값 중에 1억 남짓을 두식에게 주었다.
빵집을 나서기 전 그는 직원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가게를 확장 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두식도 그 제안에 동의했다.
필요한 경비를 산출해 알려달라고 하니 두식이 자금은 더 필요 없다고 했다.
초기에 투자한 1억도 아직 다 못 썼다며 일단 남은 금액으로 시작하고 더 필요하면 그때 말하겠다고 했다.
“뭘 그렇게 골똘히 보는 게냐?”
볕을 즐기며 낮잠을 진하게 때린 럭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미션을 새로 받아서 어떻게 할까? 궁리 중이야.”
“오~! 벌써 다음 미션을···. 이거 잘만하면 진짜 제2의 동방삭이 되겠는걸.”
럭키가 재미있다는 투로 끌끌거렸다.
“그래서, 구체적인 미션이 뭔데?”
“가공식품 공장을 살리는 거야, 거기 자금 관리할 사람을 먼저 뽑아야 하고.”
“흠~!”
미션 내용을 들은 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뭔가 고민을 하는 럭키의 표정에 궁금해진 그가 물었다.
“내가 누구냐? 바로 재물의 신 아니냐.”
“전직이었지, 아마···.”
“씁!”
그의 딴죽에 럭키가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뭐?”
“재물을 모으는 가장 근본이 자금 관리란 말이야. 그런데 이번 미션이 자금 관리자를 찾아 그 자리에 앉히라는 거고. 과연 이번 일이 쉬울까, 어려울까?”
“그거야···.”
“그래, 몹시 어렵다는 뜻이지. 능력이 있어야 하고, 거기다 믿을 수도 있어야 하니까. 자고로 능력 있다고 나대는 놈 중에 믿을 놈은 별로 없다고 했다. 다들 자기 주머니나 챙기기 바쁘지.”
“그래서 핵심이 뭐야?”
“이 몸이 나서야 일이 풀릴 거다, 이 말이지.”
“너 심심하구나?”
“컴컴······!”
럭키가 애꿎은 헛기침을 연발했다.
***
끼이이익!
사람이 사라진 공장은 을씨년스러웠다.
기름칠이 말라버린 사무실의 출입문조차 사람에게 겁을 줬다.
하지만 재운이 그런 것에 겁먹을 사람은 아니었다.
저승까지 갔다 온 마당에 귀신이 두려울 리가 있을까.
“오, 여기 참 흥미로운데. 원한의 기운이 아주 제대로 깔려있어. 끌끌!”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럭키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원한의 기운?”
“그래, 필시 여기 어딘가에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있다는 뜻이지.”
협상이 끝난 다음 날 전 사장과 다시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은 후 곧바로 공장으로 달려왔다.
미션의 제한시간은 148시간으로 줄어있었다.
전 사장에게 물어보니 회사의 경리과장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했다.
집안 문제나 사고, 이유 없이 퇴사하는 등 그동안 몇 사람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금 관리가 부실해졌다는 걸 인정했다.
전 사장과 대화하는 동안 이동 케이지 안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럭키가 이곳으로 와보자고 했다.
우연히 일어났다고 하기엔 수상한 점이 많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몰래 공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털을 쫑긋 세웠다.
“봐라, 내 말이 맞지?”
럭키가 사무실 안의 자리 하나를 가리키며 거만하게 말했다.
“뭐가, 뭐가 맞는다는 거야?”
그의 눈엔 그저 빈자리만 보일 뿐이었다.
“허, 이런 둔한 놈 같으니라고. 네 눈엔 저게 안 보인단 말이냐?”
럭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뭐, 저 빈자리에 뭐라도 있는 거야?”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보이는 게 없었다.
퍽! 꺄울!
럭키가 털 주먹으로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보기엔 그저 귀여운 털 방망이 같았지만, 파괴력은 헤비급 복서 이상이었다.
비명과 함께 입에서 신물이 튀어나와 그의 손에 잡혔다.
“자, 그 장식으로 달린 눈구멍으로 보지 말고, 신안으로 보라고, 신안으로.”
신물이 손에 잡히자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동시에 눈으로 보이는 세상과 새로운 세상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야로 바라보니 빈 의자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뭔가 있었다.
“에이 씨! 깜짝이야.”
놀란 가슴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책상 위엔 두 발이 대롱거리며 떠 있었다.
그 발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사람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딱 봐도 책상을 밟고 올라가 목을 매단 형상이었다.
뜻밖의 광경에 놀란 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쯧쯧, 이런 걸 후계자라고 앉혀놓고, 세상일은 나 몰라라 신나게 쏘다니는 영감탱이하곤.”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럭키가 중얼거렸다.
“왜, 뭐, 어쩌라고! 또 뭐라고 시부렁거린 거야?”
찔린 재운이 일부러 강경하게 나갔다.
“에휴, 아니다. 죄지은 내가 참아야지. 넌 그냥 그렇게 살아, 앞으로도 쭉~.”
럭키의 뭔가 포기한듯한 태도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썅, 넌 뭔데 거기서 공포영화를 찍고 있는 거야? 사람 무안하게.”
그의 화는 줄에 목을 매달고 대롱거리는 영혼에게로 옮겨갔다.
“제, 제가 보이시나요?”
혀를 빼고 있던 영혼이 고개를 돌렸다.
짙은 눈그늘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자 기분이 몹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던 경리과장들이 그만두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 웬만하면 목줄은 풀고 얘기합시다. 무슨 개도 아니고.”
그가 심통 맞게 대답했다.
“저, 정말 제가 보이시는군요. 이게 몇 년 만인지. 아무리 불러도 누구 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흑흑!”
책상에 발을 디딘 영혼이 감격하며 울먹거렸다.
“자자, 일단 진정하시고. 왜 이 꼴이 됐는지와 당신 덕분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한번 심도 있게 얘기해 봅시다.”
재운이 책상 아래를 가리키며 그를 인도했다.
사무실 소파에 마주 앉은 영혼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린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그전에 미, 믹스커피 한 잔만 마실 수 있을까요?”
영혼이 쑥스러운 듯 조용히 청을 해왔다.
“내 참 별···, 후~!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탕비실을 찾는데 한참을 소비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
“그래서? 억울해서 이대론 못 가시겠다.”
재운이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참아가며 물었다.
“흐읍! 네, 뭐 일단은 그런 거죠.”
종이컵 안에서 올라오는 진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영혼이 대답했다.
그의 하소연은 이러했다.
그는 이곳에 소정식품이 들어오기 전에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땅을 사고, 동산을 깎아 오늘날의 이 공장 부지를 만든 장본인이라며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하다가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밑에서 일을 배우던 놈이 퇴사한 후 자신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판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며 참을만했는데, 그놈이 단가를 후려쳐서 자신의 거래처를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자신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기에 놈은 가격경쟁을 하면 얼마나 버틸지도 알고 있었다.
억지로 내린 가격 때문에 팔아도 손해가 나는 상황이 계속되다 결국엔 부도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화를 못 이겨 결국···.
“근데, 그렇게 아픈 사연 있는 사람, 아니 영혼이 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데.”
“네, 제가요? 전 그런 적 없는데요. 그냥 하도 억울해서 제 얘기 좀 들어달라고 옆에서 떠든 것밖에는···.”
영혼이 억울하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
“얼마나, 하루 종일?”
“뭐, 딱히 할 것도 없고.”
그제야 영혼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그렇게 원한을 품은 혼령이 산 사람에게 딱 달라붙어 있으니 없던 병도 생기고, 안 좋은 일도 계속 일어난 것이다.
“그냥 지금 잡아넣을까?”
손에 든 집게를 까딱이며 럭키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션에 저놈을 처치하란 말은 없었지? 그럼 안돼. 자칫 잘못하면 포인트가 깎일 수도 있어.”
럭키가 고개를 흔들며 반대 의사를 보였다.
“엑, 그런 룰도 있어?”
“이놈아, 힘 있다고 마음대로 쓰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겠냐? 너도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라. 에잉!”
“사람이 잘 모를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너무 뭐라 그러는 거 아니야?”
무안함에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아까 맞은 통증이 아직도 뒤통수를 타고 울려왔다.
그때였다.
[띠링! 미션, 폐업 직전의 회사를 다시 일으켜라.
미션 2) 원한령의 한을 풀어주어라.
제한시간 : 145시간
완료 시 400포인트 추가 지급.
최종 미션 완료 시 회사가 호황을 맞게 됩니다.]
급작스럽게 추가 미션이 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당신 소원이 뭐야, 어떻게 해주면 곱게 저승길로 갈 건데?”
그 질문에 실없는 사람 행세를 하던 영혼이 눈에 살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는 몹시도 확고했다.
“복수를 원합니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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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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