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의 습격 (1)
“이런 이런, 나쁜 의도는 없었네. 그저 내 남은 힘을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딴 식물의 힘 같은 거 있어봤자 쓸데도 없을 텐데, 뭐 식물인간이라도 만들 참이냐?”
“어허, 자꾸 나를 무시하면 쓰나. 그래도 나만큼 오래 산 신이 없을 텐데. 어린놈이 참 싸가지가 없구먼.”
“염병은, 나이 많아서 좋겠다. 어디 쏘다니지도 못하는 주제에···.”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펼쳤다.
아직도 전기에 감전된 기분인 재운의 귀엔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정신이 저 높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주 먼 우주를 지나 태초의 근원으로 향하던 그의 정신이 무엇엔가 막힌 듯 튕겨 나왔다.
“컥!”
“저런 쯧쯧, 아직 인간의 태를 못 벗었구먼.”
“흥, 남이야 태를 벗든, 때를 벗든 네가 상관할 일은 아닌 듯한데.”
휘청거리는 그를 바라보면서 둘은 계속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대,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한차례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린 재운이 둘을 보며 물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다 늙은 엘프가 먼저 말했다.
“자넨 상위 신계로 향하다 튕겨 나온걸세. 그대로 갔으면 완벽한 신이 되었을 텐데. 쯧쯧!”
“흥, 개방귀 같은 소리. 세상에 정말 완벽한 게 있다고 믿는 게냐, 불완전함을 포함하지 않은 완벽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엘프의 말에 럭키가 반발했다.
하지만 재운은 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체험했던 깊은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과 신과 인간에 대한 비밀에 아주 조금 가까이 갔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기억 안에 벽을 쳐놓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시라고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재운이 물었다.
“나? 난 이 나무의 정신체 일세. 헐헐!”
“그럼, 정신 빠진 나무구먼.”
“무슨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틀린 말은 아닐 텐데?”
둘의 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화노인과도 그러더니.
고양이와 식물 사이에는 뭔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걸까?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는 겁니까?”
둘의 말싸움 사이에 끼어들며 그가 물었다.
세상엔 공짜밥이 없는 법이니까.
“험험! 뭐 그리 큰 부탁은 아니고, 그냥 내가 안전하게 뿌리 내릴 곳을 좀 찾아 줬으면 해서···, 여긴 이제 글렀어.”
“이 큰걸요?”
재운이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150m는 족히 돼 보이는 길쭉하고 곧은 삼나무 모양이었다.
이걸 대체 어디로 옮긴단 말인가?
흡사 대형 빌딩을 뽑아 옮겨달란 소리와 같았다.
“설마, 이 늙은 성체를 옮겨달라고 할까 봐? 난 이미 너무 늙고 지쳤다네. 하나의 세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살아왔거든.
그래서 나의 싹을 다른 곳에서 키워달라고 하는걸세. 나의 정신은 이대로 무너지겠지만 나의 존재성은 계속되도록···.”
늙은 엘프는 조금은 서글픈 감정을 담아 말했다.
생의 주기를 지나,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그 말속에 담겨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무엇일까?
기억이 사라진 삶은 어떤 기분일까?
그의 말속에서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기억 저 너머에 쌓인 정보들이 질문에 동조하듯 진동하고 있었다.
“너무 찾으려 애쓰지 말어. 기억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으니.”
럭키가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 나직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분이 가라앉으며 머리가 차분해졌다.
“고마워! 이젠 개운해졌어.”
그가 웃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럭키의 말대로 애써 찾으려 할 필요 없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자넨 참 좋은 스승을 뒀구먼. 헐헐!”
늙은 엘프가 깊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속엔 많은 질문과 해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재운은 아직 그 정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그릇은 아직도 한참 모자랐다.
“그래,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그가 다시 물었을 때였다.
[띠링! 퀘스트, 성스러운 나무를 옮겨 심어라.
퀘스트) 나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장소에 새싹을 심어라.
퀘스트 완료시 3000포인트를 획득.
퀘스트를 승낙 하시겠습니까?]
퀘스트가 떴다.
이번에도 제한시간은 표시되지 않았다.
나무가 원하는 조건이란 것도 아직 알지 못했다.
만약 어려운 조건이라도 걸리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젠장, 이럴 거면 차라리 미션이 뜨는 게 속 편하지.’
“왜 대답하지 않는 건가? 혹시 못할 이유라도···?”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을 알지 못한 그가 대답을 재촉했다.
불칸에게 수액을 빨린 그의 본체는 급속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저렇게 여유로운 척해도 그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승낙하기 전에 조건을 알고 싶습니다.”
“조건이라, 어떤 조건?”
“당신의 새싹이 안착할 만한 곳이 어딘지를 알고 싶습니다.”
“허,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일단 물이 풍부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았으면 하고. 이렇게 변방에 꼭꼭 숨어있는데도 마계 놈들과 만날 줄은 몰랐거든.”
“그게 답니까?”
“그만하면 됐네. 아!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저 아이들이 살 곳도 함께 알아봐 줬으면 하네.”
늙은 엘프가 뒤에 시립한 엘프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재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 많은 인원을요?”
“아니, 저들 중 어린 것들만 거둬줬으면 하네. 이들은 나의 수액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 수액을 마시고 육체를 재구성하면서 다시 몇백 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
“아, 그렇게 생명을 연장하면서···.”
“그렇다네, 하지만 내 마지막 수액을 그 마계 놈에게 빼앗기고 말았어. 난 더이상 버틸 힘을 잃었다네. 이제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린다 해도 2, 3백년 간은 수액을 생성하지 못할걸세. 그럼 저들도 늙어 죽을 수밖에 없겠지. 어린 것들만이 그 공백기를 버틸 수 있을게야. 나머지는 여기서 나와 함께 끝을 맞이할 것이고.”
늙은 엘프의 모습을 한 나무의 정신이 그들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엘프들이 급히 자세를 낮추며 자신들의 의견을 말했다.
“신성한 나무께서 돌보셨기에 저희가 긴 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끝도 함께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긴 생을 살아온 그들 중 영원한 삶 같은 것을 바라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는구먼. 허허!”
“네, 새싹을 옮겨 심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이들도 새로운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제가 돌보겠습니다.”
“그래 준다면 내 안심하겠네. 고맙구먼.”
“저 또한 당신의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재운이 감사를 전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를 바라보며 나무의 정신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래, 잘 아는구먼. 그게 나의 마지막 정수였네. 오직 나 같은 존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힘의 비밀을 파헤친다면 언젠간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쳇, 쓸데없는 자랑은···. 그깟 나무의 기운을 가져다 뭐에 쓴다고. 고작 해봐야 땔감으로나 쓸까.”
그의 자랑질에 심통이 났는지 럭키가 딴지를 걸었다.
“저런 어린 것들은 아직 그 의미를 모르지. 세상 넓은 줄도 모르고 까부는 주제에 주제 파악이나 할 수 있으려나?”
“뭐, 뭬야? 이런 늙은 땔감 주제에···.”
어디 가서 어리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던 럭키가 발끈하며 털을 세웠다.
그만큼 나무와 럭키의 세월은 달랐다.
그런데도 서로 으르렁대는 것은 왜 똑같아 보일까?
이것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들만의 특징인 걸까?
[띠링, 퀘스트를 승낙하셨습니다.
제한시간 : 10,000시간
퀘스트 실패시 제시한 포인트의 두 배를 차감합니다.]
“휴~!”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넉넉했다.
이 정도면 실패할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저 어린 엘프들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었다.
그들을 나무와 함께 돌보며 적당한 자리를 찾아 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이봐, 여자가 깨어났어!”
스테인이 소리치며 그녀를 돌보던 엘프의 소식을 전했다.
일행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 잘못되었으면 미우왕에게 뭐라 할지 난감할 뻔했다.
고난은 있었지만 그렇게 모든 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서둘러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
쾅, 쾅, 쾅!
부들, 부들, 부들!
성주신의 망치질이 땅을 통해 전해졌다.
알프레도가 이곳에 온 지도 2개월이 넘었다.
큰 상처들은 아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했다.
아가씨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신의 한계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소식도 없었기에 그 좌절감은 점점 깊어만 갔다.
미우왕에겐 이미 보고를 했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성주신이었다.
무뚝뚝한 그가 뭔가 위로의 말을 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난 후, 쉼 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을 뿐이다.
그 후 알프레도도 성주신 옆에서 쉼 없이 단련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성주신은 말이 없었지만, 그에겐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열심히 화염석에 오함마를 내리치던 성주신이 다가오는 그를 슬쩍 쳐다봤다.
‘싱긋’ 웃음 한번을 짓고는 그대로 계속 망치질을 이어나갔다.
성주신의 주변엔 언제나 검은색 고양이가 있었다.
이젠 럭키만큼 커진 고양이가 성주신 흉내를 내며 고물을 향해 냥냥펀치를 날려댔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알프레도가 녹이 슨 창 하나를 잡고 고물 더미를 찔러댔다.
어느 날 인가 성주신이 그의 앞에 툭 던져놓고 간 창이었다.
그의 창끝에 고물들이 숭숭 구멍이 나버렸다.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하는 곳에 창을 찔러 넣었다.
찌르는 속도를 점점 높여가며 둘이 무아지경에 이르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르르!
땅이 심하게 요동쳤다.
분명 성주신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들 주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둘이 하늘을 올려 다 봤다.
기괴한 모양의 우주선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그들의 머리를 스쳐 갔다.
***
화노인도 땅의 진동을 느꼈다.
한창 꽃밭을 관리하던 그가 다급하게 숲을 벗어났다.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우주선 하나가 보였다.
처음 보는 모양의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가 고물상으로 접근하려는 순간 우주선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삽시간에 넓은 고물상 전체를 그 빛들이 둘러싸 버렸다.
팅!
화노인이 그 빛의 막을 뚫으려 하자 심한 반동과 함께 밀려났다.
결계였다.
강력한 결계가 고물상 전체를 격리해 버린 것이다.
“이익!”
펑!
손끝에서 작은 번개 하나를 쏘아 보냈다.
결계에 부딪친 번개가 요란하게 터졌지만 결계 자체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결계를 더욱 강화한 신물에 의한 방식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 정도 신물을 뚫을 자신은 없었다.
휘익!
그가 손을 휘두르자 검은 먹구름이 일대를 점령해 버렸다.
결계를 뚫을 순 없었지만 결계를 만든 놈들은 자신도 가둘 수가 있었다.
먹구름에 감싸 인 우주선을 향해 그가 몸을 날렸다.
***
“뛰어, 제일 늦는 놈은 오늘 저녁 동료들의 간식거리가 될 거다!”
우르르르!
뿔 달린 마계의 병사들이 열린 강하 창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들의 굼뜬 동작을 걷어차며 통솔하는 자는 바로 애꾸가 된 불칸이었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https://novel.munpia.com/214358
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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