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션 (1)
착, 휙, 쑥!
착, 휙, 쑥!
“작업 끝!”
가게 밖 날개미 떼를 모두 처리한 후 가게 안으로 들어온 날개미들까지 하나씩 처리했다.
특훈 마지막의 물량전 연습으로 인해 집게로 집어 망태기에 넣는 동작이 한 동작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그 많던 놈들을 결국엔 모두 처리했다.
제한시간은 아직 8시간이 남아있었다.
4시간 만에 그 많던 놈들을 모두 처리한 셈이다.
[띠링! 미션, 빵집을 다시 일으켜라.
미션 완료!
2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누적 포인트 396점.
모든 미션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최종 미션 완료로 빵집이 호황을 맞게 됩니다.]
뿌듯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재생의 권능을 사용하느라 4포인트를 써버렸다.
현재 남은 포인트는 396점.
남은 생 6년에다 추가로 1년 조금 넘는 삶을 얻게 되었다.
뿌듯함을 느낄 무렵, 어느새 그는 영계 차원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퍼엉!
그가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밖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잽싸게 밖으로 나가보았다.
맞은편 길을 따라가던 시야에 치솟는 붉은색 불길이 보였다.
JB 바게트가 자리한 건물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역시, 저 빵집이 적이었던 거군.’
“무슨 일 났어?”
주방에서 빵을 굽던 두식이 급하게 뛰쳐나왔다.
“저 빵집에서 불이 났나 봐요.”
재운이 시치미를 떼고, 남의 일처럼 흘려 말했다.
“쯧쯧, 쟤들도 참 재수가 없지. 우리 빵집을 고사시키려고 그렇게 할인을 해대더니만···, 결국 저렇게 되는구먼.”
혀를 차면서도 말끝에 고소하다는 뉘앙스가 묻어 나왔다.
그동안 쌓인 것이 제법 많았나 보다.
“어, 아저씨. 아직 문 안 닫으셨어요?”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책가방을 멘 아이 하나가 두식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너로구나. 어쩌다 보니 가게 문을 다시 열게 됐어. 앞으로도 우리 가게 많이 이용해줘.”
두식이 아이를 보며 반가워했다.
“와, 잘됐다. 앞으론 간식을 어디서 사 먹나 걱정했었는데.”
빵집을 다시 연다는 소식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눈치를 보니 이 가게의 단골손님인 것 같았다.
“고로케도 지금 있어요?”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아직 몇 개는 남아있구나.”
두식이 대답하자 아이가 후다닥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하, 녀석하곤.”
“단골인가 봐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 가게 VVIP 고객이시지. 일 년 내내 매일 고로케 하나씩을 사가 시는···.”
금전적인 도움보단 일상에 활력을 주는 손님이었다.
가게를 닫기로 결심하면서도 내심 마음에 걸리던 손님이었고.
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고로케 하나를 들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요!”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하나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어 보였다.
“자, 여기 거스름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손님!”
동전을 주며 두식이 꾸벅 인사를 건넸다.
“네, 거떵마셔여. 데가 막 파라두께여.”
이미 고로케를 한가득 베어 문 입이 오물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와! 이, 이거 너무 마있다.”
맛을 음미하던 아이가 눈을 치켜뜨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동철아, 너 뭐해?”
가게 밖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고로케 먹는데 이거 너무 맛있엉!”
아이가 친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래, 배고픈데 우리도 한 번 먹어볼까?”
아이들이 우르르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이것밖에 남은 게 없네.”
가게 안에는 고로케 몇 개와 여분의 빵 몇 개만 있었다.
“전 이거 주세요, 이거 아주 좋아하거든요.”
“저도 이거.”
“난 이걸로 먹을래.”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빵을 골라 왔다.
양손에 빵을 든 아이들이 값을 치르곤 급하게 빵을 먹기 시작했다.
“와!”
“우왕!”
저마다 빵을 입에 넣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아이들이 가게 안에서 재잘거리며 빵을 뜯는 동안 학원을 마친 친구들이 속속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들을 찾아 부모들도 하나씩 출입구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찾아 가게를 나가는 어른들의 손엔 어김없이 빵 봉지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시험 삼아 만든 빵이 순식간에 동나 버렸다.
장사에 흥이 난 두식이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은 제빵 겸 연구를 위해 밤을 새울 작정인 것 같았다.
계산대에 앉아 순식간에 비어버린 가게 안을 바라보며 재운도 생각이 많아졌다.
위이잉, 위이잉!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며칠이 지났다.
오늘도 어제처럼 야전침대에서 눈을 떴다.
요 며칠 빵집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재 개장 둘째 날, 빵 맛이 남다르단 소문이 나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두식도 신기하다고 말할 만큼 가게 안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쉴 틈조차 없어서 계산대와 주방일을 보조할 사람을 구한 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부턴 두식이 모든 것을 맡아 가게를 운영하기로 했다.
코끝으론 여전히 겨울 끝의 쌀쌀함이 느껴졌다.
국방색 담요를 살짝 들어 올리니 등푸른생선 같은 꼬리가 보였다.
럭키가 말을 하게 된 뒤로도 변함없이 함께 잠들었다.
추운 겨울 서로의 몸을 데워주던 체온이 서로에게 너무 익숙했다.
담요를 조금 더 들추니 눈을 꼭 감은 작은 머리통이 보였다.
차가운 공기에 럭키의 귀가 실룩거렸지만, 여전히 눈을 뜨진 않았다.
참 신기했다.
요 자그마한 생명이 재물의 신이라니.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고, 특훈까지 시켜주는 능력으로 볼 때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대단한 존재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존댓말이 나오진 않았다.
혹시 저 자그마한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함께 살아온 기억 때문에?
럭키도 그가 반말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말로는 항상 위대한 존재라고 떠들어 댔지만, 생활하는 모습은 여전히 고양이 그대로였다.
“냉큼 담요 덮어라, 난 더 잘 테니까.”
달라진 점은 이렇게 자신이 일어날 때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따뜻한 이불 밖으로 혼자 나가려니 뭔가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
위이이잉!
거울을 앞에 놓고 전동이발기로 웃자란 머리칼을 밀었다.
웃통을 벗고 볕이 잘 드는 공터에 앉으니 피부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겨울 동안 내버려 뒀었던 머리칼을 봄을 맞이하며 싹 밀어버릴 참이었다.
위암 선고를 받은 후부턴 머리를 다듬지 않았었다.
이렇게 다시 살아와서 머리를 다듬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빗살 캡을 씌운 이발기가 몇 밀리 두께만을 남겨두고 지나가자 시원한 두상이 드러났다.
혼자서 하는 이발이란 게 모양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둥그런 밤톨 같은 스타일이 약간은 촌스러워 보였지만 얼굴이 받쳐주니 이 정도면 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병들었던 과거를 벗고 새로 태어난 양 환히 빛나는 것 같았다.
“그냥 빛에 반사돼서 그런 거다.”
“······.”
어느새 밖으로 나와 고물 위에서 볕을 쬐던 럭키가 그의 감상에 초를 쳤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이 세상이 내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있던 그 세상이랑 같은 거야?”
재운이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물었다.
거울 속의 모습은 건강했고, 젊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한 발로 턱을 괴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늘어져 있던 럭키가 되물었다.
“저승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이후로 일어난 모든 사건이 달라져서 말이야.”
두식의 빵집을 다시 여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고철을 팔기로 했다.
그렇게 고철의 시세를 자세히 알아보던 중 자신이 기억하던 이맘때 고철의 시세와 전혀 다른 가격에 놀라버렸다.
4년 후에나 오르게 될 고철 가격이 벌써 상한가를 찍고 있었다.
덕분에 적은 분량만 팔고도 거금을 손에 넣긴 했다.
“지랄, 그래서 뭐. 세상이 정해진 그대로 흘러가야만 한다는 거야? 운명이란 게,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것처럼 딱딱 시간 맞춰 일어나야만 하는 거고.”
“아니야?”
“쯧쯧, 인간들이란. 모든 일에는 꼭 뭔가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고 집착을 하지. 자신의 별거 아닌 성취도 뭔가 특별한 노력이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그런 거 없다.”
“그런 거 뭐?”
“운명 같은 거. 세상은 주어진 숙명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그냥 조건과 조건이 겹쳐서 우연히 일어나고 사라질 뿐인 거지. 흔한 새나 박쥐 하나가 평상시와 다른 방향으로 날기만 해도 세상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말이야.”
“모든 건 우연히 일어난 다라···.”
럭키를 바라보며 그가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런 쓸데없는 망상은 집어치우고 맛동산이나 캐라. 화장실이 꽉 차서 변비에 걸릴 판이야.”
“그 정도는 알아서 할 때도 됐잖아.”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넣고 피우는 놈이 귀찮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허, 무엄하구나. 감히 신에게 똥 치우는 일이나 하라는 게냐?”
“그게 싫으면 아예 똥을 싸지 말던가.”
“기저귀 하나 사주지 않는 놈이 말은 참···.”
둘 사이에 옥신각신 말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
부르릉!
트럭의 엔진음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기어를 넣는 손에 펄떡이는 심장처럼 엔진의 진동이 전해져왔다.
언제라도 엔진이 멈춰 설 것 같던 낡고 병든 트럭은 저 먼 시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힘찬 엔진음으로 아직 팔팔하다고 외치는 중년 나이의 트럭이 있을 뿐이다.
트럭만큼 젊어진 자신을 느끼며 재운은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즐겼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폐업 정리 건이 하나 들어와 현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영감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의무감으로 해오던 일이었지만 어느새 자신의 천직이 돼버렸다.
거기다 럭키를 통해 고물상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 일은 노동이 아니라 취미생활이 되었다.
고물상의 면적은 약 2천 평.
하지만 그곳의 면적을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순 없었다.
공간과 공간이 겹쳐지고, 차원이 중첩되면서 도대체 넓이가 얼마인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 안 곳곳에 언제부터 모았는지도 모를 고철과 희귀한 물건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고철이란 말보단 유물이나 골동품이라 불러야 할 것들이 널려 있었다.
그냥 고철만 무게 달아서 팔아도 대충 몇백억은 나올 것 같은 상황에 유물이라도 몇 개 내다 팔게 되면···.
이런 사실을 알고도 고물상 한다고 업신여길 사람이 있을까?
졸지에 갑부가 된, 아니 자신이 원래 갑부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 노인들의 파지를 받았고, 폐업 정리하는 곳으로 출장을 갔다.
그게 자기 일이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돈이 있건 없건,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현재까지는 ···.
***
이번 현장은 같은 경기도 권역이었지만 만복고철 과는 서울을 기준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었다.
거리가 거리다 보니 몇 군데 정리업체를 거치다 자신에게까지 연락이 닿은 사례였다.
만약 다른 일이 있었다면 아마 자신도 다른 이에게 미뤘을 만큼 공장은 외진 곳에 있었다.
논두렁 같은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 산자락 밑에 ‘소정식품’이란 이정표가 보였다.
온통 논으로 둘러싸인 마을 외곽에 가건물 형태로 세워진 가공식품 공장이었다.
좁은 1차로를 가로막은 연두색의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단순한 구조의 공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빵~!
출입구 쪽에 정차해서 클랙슨을 울렸다.
잠시 후 공장 안에서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힘없이 걸어 나왔다.
“폐업 정리하러 왔습니다.”
철컹!
말 한마디에 철문을 열어 주었다.
부우웅!
그 순간 재운이 진입한 길 뒤로 검은색 세단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https://novel.munpia.com/214358
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