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 (1)
쿵, 쿵, 쿵!
성주신이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공간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이건 어떠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존재가 가진 포스가 공간을 내리누르는 것이다.
부르르르!
불칸이 몸을 잘게 떨었다.
뿔나고 이렇게 강한 상대는 처음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기대감에 전신이 떨려왔다.
“크아아아악!”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그가 먼저 달려들었다.
더는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어서 빨리 상대의 강함을 체험하고 싶었다.
쉐에에엑!
불칸의 도끼가 사선을 그리며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도끼는 여전히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성주신도 본능적으로 그 빛의 위험함을 감지했다.
챙!
퍼억!
휘이익!
오함마를 들어 도끼의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놈의 복부로 남은 주먹을 날렸다.
생각보다 도끼의 위력이 컸다.
오함마를 든 어깨가 충격으로 살짝 저렸다.
놈은 두 손을 사용했기에 그의 주먹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복부를 타격하니 놈의 몸이 훌쩍 뒤로 날아갔다.
성주신의 기둥 같은 다리가 불룩해지며 놈을 따라 도약했다.
저 비행이 끝나는 순간 놈의 뚝배기를 오함마로 뭉개 버릴 작정이었다.
힘의 차이가 컸다.
불칸은 일 합 만에 힘의 차이를 절감했다.
자신의 사력을 다한 공격을 놈은 한쪽 팔만으로 막아냈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놈도 강기를 쓰는지 무기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끼의 내구력이 많이 깎인 것을 느꼈다.
‘시벌,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세계수의 수액을 먹은 후 자신은 무적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야심 찬 첫 발걸음부터 괴물 같은 상대를 만나버렸다.
그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멍해 있는 동안 어느새 그를 쫓아온 성주신이 코앞에 다다랐다.
쉐에엑!
충격에 날아가면서도 본능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매서운 도끼의 궤적을 피하며 성주신이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가만있어봐봐, 움직이면 아야 할텡께.”
성주신이 불칸을 보며 앙증맞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오함마는 전혀 앙증맞지 않았다.
뽀깍, 꺄울!
오함마가 불칸의 뚝배기에 직격탄을 먹였다.
겨우 새로 돋아난 뿔 하나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코에서 퍼런 피를 토해내며 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거봐, 움직이면 아야 한당께!”
성주신이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뚝배기를 재차 깨버렸다.
남아있던 뿔 하나마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불칸의 비명이 더한층 애처롭게 들렸다.
“아따, 그놈. 대가리가 참으로 실허네.”
그가 나름 감탄을 하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할 때였다.
뷰우우웅!
하늘에 떠 있던 우주선에서 굵은 광선 하나가 그들을 향해 뻗어왔다.
“피하세요!”
아래에서 그들의 전투를 보고 있던 알프레도가 다급하게 외쳤다.
놈들이 우주선에서 쏜 것은 대항성 전자포였다.
급하게 발사하여 완전한 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못 맞으면 지구도 끝장날 수 있었다.
그의 외침을 들은 성주신이 재빨리 불칸을 광선 쪽으로 던져 버렸다.
순식간에 광선을 맞은 불칸의 몸이 불타올랐다.
그 덕분인지 광선의 위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상황을 감지했는지 다른 광선이 뻗어 나와 불에 타버린 불칸을 빨아들이곤 도망칠 준비를 했다.
슈우우우웅!
굉음을 분사하며 그들의 거대한 우주선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성주신이 그들을 쫓아가려 했지만 그들의 위치는 던전 밖이었다.
던전을 나서는 순간 그의 힘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려는 순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성주신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슈우우우우웅~!
거대한 동체를 급속히 움직이려니 엔진의 힘이 모자랐다.
잠시 주춤대던 우주선이 서서히 속도를 높일 무렵이었다.
쉐에에에엑!
지상에서 오함마가 하늘로 쏘아졌다.
오함마의 끝엔 굵은 쇠사슬이 연결돼 있었다.
퍼억!
우주선의 강력한 동체가 오함마의 일격에 두부처럼 부서졌다.
선체를 뚫고 들어간 오함마가 중앙까지 파고들며 우주선에 단단히 박혀버렸다.
쭈우욱!
속도가 붙기 시작한 우주선이 힘없이 아래로 끌어당겨 졌다.
쇠사슬을 붙잡은 성주신이 던전 안에서 연을 끌어 내리듯 우주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쇠사슬에선 밝은 빛이 나고 있었다.
“오는 건 니들 맴대로 해도, 가는 건 맴대로 할 수 없제. 그려 안 그려?”
“······.”
쇠사슬을 끌어당기며 성주신이 가벼운 농담을 했다.
그 농담을 들은 알프레도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전 차원에서 강력하기로 소문난 마계 군단 하나가 박살이 났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강력한 우주선이 쇠사슬에 묶여서 지상으로 끌어 내려지고 있었다.
저 우주선 하나면 웬만한 행성 하나는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이걸 믿어야 할까?
아마도 미우왕에게 보고하면 ‘네가 미쳤구나!’ 란 핀잔만 들을 일이었다.
‘이 고물상이란 곳이 대체 뭐 하는 곳일까?’ 란 강한 의문이 들었다.
차원 어디에도 이런 강력한 존재들이 뭉쳐있는 곳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계 우주선 한 대가 그렇게 지상으로 끌어내려 졌다.
푸카아앙!
우주선 상층부가 부서지며 비상용 캡슐 하나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한두 놈 탈출하는 것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고물상에 큰 고물 하나가 그렇게 들어왔다.
***
파아앗!
휘리리릭!
공간이 열리며 주변으로 바람이 휘돌았다.
신비롭게 빛나는 원형의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돌아왔다!”
재운의 어깨에 올라탄 럭키가 앞발을 번쩍 들면서 만세를 외쳤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고물상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재운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뜻하지 않은 긴 여행길에 그도 많이 지쳐있었다.
“응, 저 큰 고물은 또 뭐야?”
“저, 저건 마···마계의 우주선인데?”
“뭐, 그럼 이 새끼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왔다는 게야?”
럭키의 의문에 스테인이 놀라워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분명 마계의 우주선이 분명한 물체가 떡하니 고물상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덩달아 놀란 럭키가 펄쩍 뛰며 분해했다.
집까지 쳐들어온 마계 놈들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며 펄펄 뛰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고물 같은걸?”
상황을 주시하던 재운이 의문을 제기했다.
우주선이 땅바닥에 처박혀 있다는 게 이상해 보였다.
전력을 잃은 우주선은 고물 같아 보였다.
오랜 경험으로 척 봐도 쓸 물건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었다.
“고물은 무슨, 어떤 미친놈이 우주선을 고물 취급하겠어?”
“아따, 성님 오셨어라? 어끄제 오셨으면 고물 큰 놈으로다가 들어오는 걸 직접 보셨을 틴데···. 아숩소, 정말!”
일행을 발견한 성주신이 달려오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간만에 밥값을 한 것 같아 그도 무척 들떠있었다.
“저거 네가 그런 거냐?”
“말해 무엇 하것소, 소 뼈다구들이 아닌 밤중에 쳐들어와 나가 묵사발을 내부렀지 라. 흐흐흐!”
성주신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주변이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가, 갑자기 오한이···.”
“아따, 시간이 제법 지나 부렀지 않소. 이젠 날씨가 제법 따끔해져 부렀지라.”
그의 말대로 세상이 온통 이글거리고 있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도 숨 막히는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헐,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우리가 여행했던 기간만 족히 3년이었으니 여기도 많이 변했겠지.”
“동생, 여기선 얼마나 지난 거야?”
“2개월은 지난 것 같은 디요.”
“2개월? 그럼 뭐 시간 축이 아주 많이 어긋난 건 아니네.”
일행이 겨우 안심을 했다.
그들의 여행은 그렇게 끝을 맺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봄의 쌀쌀함이 여름의 열기로 변해버린 시기였다.
***
“성주신님, 성주신님? 저 강림입니다. 그러지 말고 좀 들여보내 주세요.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네?”
아침 댓바람부터 강림이 고물상에 찾아와 사정을 했다.
재운 일행이 결계의 단서를 찾아 여행을 떠난 후 성주신이 그의 출입을 막았다.
재운이 없는 동안 일체의 잡상인 출입을 금한다는 명분이었다.
자신은 잡상인이 아닌 관계자라고 외쳤지만, 그는 귀를 후빌 뿐이었다.
고물상 안으로 슬쩍 들어가려 해도 귀신같이 성주신이 나타나 째려보았다.
그의 눈길이 닿으면 신기하게 발이 얼어붙었다.
오늘도 월례 행사처럼 고물상 앞에서 부탁을 하고 있었다.
주인도 없는 곳에 왜 이렇게 들어오려 하는지는 그만이 알고 있었다.
삐꺽!
한참 소란을 떠는 사이에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그를 맞아줬다.
재운이었다.
“너, 너 언제 온 거야?”
“어제 돌아왔어.”
“야, 왔으면 왔다고 얘기나 좀 하지.”
“무슨 수로?”
“······. 저, 적패지 있잖아!”
“그건 너 부를 때만 쓰라며?”
“내가, 언제···?”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발뺌을 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뭐 꼭 용건이 있어야만 여기 오는 건가, 우리 사이에···? 으이그, 잘 알면서 또 그런다.”
강림이 친한 척 팔꿈치를 슬쩍 밀어 넣었다.
재운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봤으면 됐지. 그럼 다음에 보자!”
“이, 이봐. 재운아, 그러지 마! 나 너무 힘들다고···.”
“뭐가 힘들어?”
철문을 닫으려고 하니 강림이 다급하게 발을 밀어 넣었다.
간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하는 짓은 여전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나 친구도 없잖아, 너 빼곤.”
“인싸 라며, 네 입으로 항상 지껄이던 말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 다 필요 없더라고. 진정한 친구는 단 한 명으로 족한 거였어. 되돌아보면 말이지.”
“되돌아보긴 뭘 되돌아봐. 안 하던 짓을 하면 갈 때가 됐다던데, 넌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
재운이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다.
어제 성주신에게 듣기론 강림이 자꾸 타마스 꽃에 욕심을 낸다고 했다.
볼 것도 없었다.
음흉한 놈이 뭔가를 꾸미려는 것이다.
큰일을 벌이기 전에 미리미리 단속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강림과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치밀한 전략싸움이 펼쳐질 때였다.
“어머, 사장님! 언제 돌아오셨어요?”
강림의 등 뒤에서 여자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동시에 그쪽을 쳐다봤다.
거기엔 소정이 입을 가리며 놀라고 있었다.
***
쪼르르!
재운이 그녀에게 믹스커피 한 잔을 타주며 말했다.
“저 없는 동안 고물상 일을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네요.”
“별말씀을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그런데 일은 잘 마치셨나요?”
“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끝냈습니다.”
그녀에겐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만 했었다.
기간도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았고.
강화사 셋을 찾는 일이 이토록 길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스테인 하나는 함께 넘어왔고, 둘 중 하나는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소멸의 순간을 맞은 잊혀진 신을 만나서 뜻하지 않게 그의 신물과 강화의 권능을 받았다.
그에게선 결계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미유의 말에 따르면 이쪽 차원계는 한 번 빠져나오면 일정기간 동안은 다시 올 수 없다고 했다.
양 차원의 시간 축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간 축을 가진 차원은 언제든 왕래할 수 있지만 이렇게 시간 축이 다른 차원은 제약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렇게 나머지 하나를 찾기 위해 그쪽에서 2년을 허비했다.
하도 자주 거처를 옮겨 다녔기에 그를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그만큼 성장하긴 했지만.
결국, 그를 찾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다.
“그런데···, 뭔가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뭐 가요?”
“키도 더 커지신 것 같고, 외모도 많이 달라지신 것 같은 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재운의 외모는 많이 변해있었다.
키가 좀 더 커졌고, 피부가 깨끗해졌으며 이목구비가 훨씬 뚜렷해졌다.
신성한 나무의 정수 때문이었다.
“뒤늦게 성장판이 열렸나 보죠. 전 잘 모르겠던데···. 하하!”
“머리도···.”
“아! 머리 자를 시간이 없어서, 곧 잘라야죠.”
치렁해진 머리를 만지며 그가 말했다.
단 한시도 쉴 수 없었던 여정을 떠올리면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벌컥!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성주신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강림이 뒷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도둑놈을 잡았써!”
성주신이 앙증맞게 웃고 있었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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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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