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의 습격 (1)
일행이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밖은 어둠과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아직 결계를 완성하진 못했군.”
럭키가 정문 방향의 철문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턱!
재운이 뒷머리를 쳐 입에서 튀어나온 신물을 받아쥐었다.
눈앞이 바뀌면서 밤의 장막을 붉게 물들이는 엷은 빛이 나타났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일단 부딪혀 봐야겠지.”
휙!
럭키가 대답과 동시에 앞으로 뛰어나갔다.
타다닥!
재운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저기, 난? 나는 어쩌지?”
그를 급히 쫓아오며 강림이 물었다.
“난들 알아, 알아서 행동하라고.”
“젠장, 오늘 일진 참···. 에이 씨!”
그도 체념한 듯 속도를 높였다.
슈르륵!
투덜거리는 강림의 손에 검 한 자루가 소환됐다.
걸리는 놈은 누구든 오늘 밤 그의 화풀이 대상이 될 것이다.
번쩍!
앞서 달리던 럭키가 점프하며 붉은색 빛의 막을 내리쳤다.
그의 손엔 어느새 단죽이 들려있었다.
단죽에 가격당한 빛의 장막이 벼락이라도 친 듯 빛을 폭발시켰다.
그 바람에 고물상 전체를 감싸던 장막 중 일부가 찢겨 나갔다.
휙, 휙, 휙!
나머지 결계를 부수려는 럭키를 향해 사람 형상의 검은 물체가 날아들었다.
“이놈들은 너희들이 맡아라. 난 결계를 만든 놈을 찾을 테니.”
럭키가 작은 몸을 놀리며 막아서는 놈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얍!”
뒤따라오던 재운이 럭키를 쫓아가려는 놈의 등 뒤에다 집게를 꽂아버렸다.
퍽! 화르륵!
집게가 꽂힌 등 부위가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뒤이어 그 부위를 기점으로 촛농처럼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 새끼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뒤늦게 도착한 강림이 한 놈의 목을 베며 말했다.
“넌 이놈들 정체가 뭔지 알아?”
“이거 귀태야, 귀신이 인간에게서 낳은 요물새끼.”
강림이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새끼들, 한 600년 전에 이승의 질서를 너무 어지럽혀서 싹 다 잡아들이거나 없앴는데, 이게 왜 여기서 나오냐고? 그때 감찰반 쫄따구 하며 뺑이쳤던 생각만 하면···, 으으윽!”
생각하기도 싫은지 치를 떨며 손에 쥔 칼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귀태?’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팔과 다리가 길고 가는 사람 모양을 한 요괴도 처음 봤다.
그런 멸종에 가까운 희귀한 놈들이 뭐하러 고물상을 습격한 걸까?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가 됐든 일단 눈앞에 놈들을 제거한 후에 알아봐야겠지.”
판단을 내린 후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생각보단 행동해야 할 때였다.
“핫!”
푹, 꺼어억!
어둠보다도 까만 놈의 몸뚱이가 민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놈들의 방어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집게로 몸을 찍으면 붉게 달아오르다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휘익, 퍽, 으윽!
하지만 놈들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동료가 죽든 말든 겁 없이 뛰어들며 재운의 옆구리에 날카로운 손톱을 박아넣었다.
그가 잽싸게 몸을 돌리며 옆구리에 박힌 손톱을 뽑아냈다.
주르륵!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방어력 : 32 (-10)]
시야에 짤막한 메시지 하나가 떴다.
42이던 방어력이 10이나 떨어졌다.
귀태의 공격 한 번에 10의 데미지를 입은 것이다.
‘그럼 3, 4번만 더 허용하면 ···?’
아마도 강림과 손잡고 사이좋게 저세상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시발, 좃 됐네!”
역시나 강한 힘에는 강한 시련이 닥치기 마련일까?
거미 인간도 아닌데 영화 같은 일이 계속 벌어졌다.
“내가 두 번 죽지, 세 번 죽을 것 같으냐!”
틈을 노리다 다시 공격해오는 귀태 한 놈을 막아서며 크게 외쳤다.
이젠 정말 포인트가 아닌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다.
턱, 퍽퍽퍽!
“죽어, 이 새끼야!”
망태기를 키워 놈의 손톱을 막고, 옆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집게를 열심히 찔러댔다.
몇 방을 맞은 놈이 전보다 더 커진 불길에 휩싸이며 타올랐다.
캬아아!
귀태가 불타오르면서도 그에게 달려들었다.
불이 붙어 달려오는 놈을 향해 그가 망태기를 뒤집어씌웠다.
[띠링! 레벨 6 달성.
공격력 : 60
방어력 : 42
정신력 : 58
체 력 : 59
경험치 : 0]
망태기에 뭔가를 집어넣을 때마다 능력치가 올랐다.
그렇게 공격력이 60을 넘으면서 다시 레벨이 올랐다.
동시에 못 보던 경험치 항목까지 생겼다.
“이건 뭐 설명서나 튜토리얼도 없고.”
투덜거리면서 남아있는 귀태에게 달려갔다.
귀태 두 놈을 상대하던 강림의 상황이 위태해 보였다.
크와와왕!
각자가 한 놈씩 처리하던 순간 고물상 벽 너머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순식간에 붉은 장막이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둘에게 달려들던 귀태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귀태란 놈은 특정 결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친 둘이 급하게 고물상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문밖엔 럭키가 네 발에 힘을 주고 전방의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제길, 방심하다 그만 놓쳤어.”
분하다는 듯 럭키가 이를 갈았다.
“이놈들 정체가 뭔데?”
“나도 몰라, 장막의 핵을 찾아 가르는 순간 환술로 내 눈을 가렸어. 급히 빠져나오며 놈의 어깨를 부숴버리긴 했는데, 그 틈을 이용해 도망까지 칠 줄이야. 필시 보통 놈은 아니야, 내 손아귀에서 그리 쉽게 빠져나가는 걸 보면···.”
럭키는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지 놈이 사라진 곳 어딘가를 계속 노려보았다.
전성기의 자신이라면 이렇게 습격해오는 놈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놈도 없었을 테고.
“이놈의 몸뚱어리 때문에···.”
마음대로 힘을 쓸 수도, 완전한 힘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쳇, 하는 수 없지.”
이 안 좋은 기분 츄르나 빨면서 달래려 돌아설 때였다.
웅웅웅웅~!
귀에 익은 소리가 고물상 안쪽에서 들려왔다.
“이건 분명···, 똥파리!”
재운이 놀라 외쳤다.
그 말을 들은 강림이 온몸을 잘게 떨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나···난 이만 가볼게.”
잽싸게 발을 빼려고 걸음을 옮겼다.
툭, 털썩!
“야, 왜 발을 걸어?”
재운이 강림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에, 곱겐 못 보내주지. 우린 친구잖아?”
행운은 혼자, 고생은 함께 나눠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흐윽,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이젠 똥파리의 똥자만 들어도 속이··· 웩!”
땅바닥에 엎어진 강림이 바닥을 보며 속을 게워냈다.
아직도 입에 들어간 똥파리가 소화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2차, 이번 일만 도와주면 확실하게 내가 쏜다.”
재운이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앞장서지, 어서 빨리 해치우자고.”
잽싸게 일어난 강림이 달려가며 외쳤다.
“저런 덜떨어진 놈이 차사랍시고, 쯧쯧!”
럭키가 혀를 차며 걷기 시작했다.
뒤를 따르는 재운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
입구에서 컨테이너로 오는 길의 중간에 있는 공터에서 곤충의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도착한 강림의 눈에 웬수 같은 똥파리 떼가 보였다.
뒤따라온 둘에게도 잔뜩 쌓인 파지 더미를 뒤덮은 똥파리들이 보였다.
“분명 봉인했는데···.”
럭키가 경리과장 집의 안방 문을 직접 봉인했었다.
똥파리 각각의 개체는 별 힘이 없었다.
하지만 떼거리로 뭉쳐 끝도 없이 달려드는 작은 파리들을 모두 처리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방 자체를 봉인하고 경리과장을 공장 숙소에 임시로 머무르게 했다.
그런데 똑같은 놈들이 고물상에 다시 나타날 줄이야.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귀태와 똥파리들을 함께 다룰 수 있는 거지?’
나름 신들의 세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하는 럭키였다.
그런 그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번 같은 경우는 생각나지 않았다.
별거 아니게 보이는 저 똥파리는 마계 쪽에서 부리는 곤충이었다.
마계와 관련된 일은 천계 쪽에서 전담하였기에 선계나 신령 쪽에선 관여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일단 봉인만 해두고 천계 쪽에 소식을 전할 참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귀태까지 나타났다.
이놈은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요괴가 인간을 통해 생산한 전략무기 같은 거였다.
요괴와 마계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서로가 먼저 인간계를 먹으려 했기에 오히려 경쟁 관계를 넘어 원수처럼 돼버렸다.
“그런데 두 놈이 같은 곳에 나타났다고···.”
자신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을 묶는 뭔가가 있거나 아니면 우연히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나타났다는 가정 밖에는.
“우연은 개뿔.”
둘이 우연히 같이 나타날 확률은 선녀가 나무꾼한테 날개옷 강탈당할 확률보다 적었다.
우우우웅!
럭키의 고민을 덜어주듯 파리 떼가 그들을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다.
“젠장 뭔가 방법이 없을까?”
럭키 옆에서 싸울 방법을 고민하던 재운이 결국 한 발 나섰다.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전처럼 망태기 주둥이를 한껏 벌리고 빨아들이는 방법 외엔.
“이건 또 뭐 시여?”
그 순간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일행이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거대한 덩치의 성주신이 서 있었다.
“너 마침 잘 왔다. 너도 한 손 거들어야겠다.”
럭키가 반색하며 그를 불렀다.
“네, 성님! 근데 저것들은 다 뭣이다요?”
“보면 몰라, 똥파리 떼잖아. 잔말 말고 손이나 거들어.”
럭키가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동시에 망태기의 주둥이를 펼친 재운이 강림을 보며 외쳤다.
“야, 너 그 파란 불꽃 좀 만들어봐. 그게 그나마 저놈들에게 제일 효과가 있었잖아.”
강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거 하루에 한 번밖에는 못 써먹어. 소환할 때만 나오는 효과인데 이미 써먹었잖아.”
“헐, 무슨 불꽃이 충전형이야? 하루에 딱 한 번씩만 쓰게. 젠장,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싸워야겠네.”
투덜거리면서도 단박에 포기했다.
안되는 것에 미련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2차, 확실한 거지. 지금 난 여기에 용병으로 참가한 거라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존재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각자의 전투는 시작됐다.
우우웅! 탁, 휙, 화르륵!
똥파리 떼가 가까이 날아왔을 때 재운이 집게를 쳐댔다.
그렇게 잠시 멈춰선 틈을 타 집게를 휘둘렀고, 불에 탄 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한쪽 손에든 망태기론 파리 떼가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망태기 밖에 붙은 놈들은 연신 망태기를 갉아 먹으려 애쓰고 있었다.
후우욱! 슈르륵, 하아압!
럭키는 단죽을 빨고,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럭키의 입에서 나온 연기가 뭉치며 커다란 하마 형상을 만들었다.
하마가 입을 벌리며 파리 떼를 빨아들였다.
럭키가 연기를 뿜으며 하마를 한 마리 더 만들려 했다.
우우웅!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멀리 돌아온 파리 떼가 럭키의 왼쪽으로 돌진했다.
“이크!”
놀란 럭키가 펄쩍 뛰며 자리를 피했고, 만들다 만 하마는 연기로 화해 사라져버렸다.
“분명 조정하는 놈이 주변에 있을 게야. 파리가 편을 갈라 조직적으로 공격해오진 않을 터.”
“워어억, 워어어억!”
럭키의 경고가 들렸지만, 강림은 파리 떼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없었다.
재운도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그대로 버티면서 눈동자를 돌려 주변에 특이한 점을 찾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파리 떼와는 다른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의 눈에 똥파리보다 큰 곤충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꿀벌이었다.
- 작가의말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만렙용병 재벌 성공기"입니다.
https://novel.munpia.com/214358
독자님들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