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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44,688
추천수 :
663
글자수 :
572,793

작성
22.10.06 01:01
조회
365
추천
6
글자
12쪽

50화

DUMMY

여타 게임에서의 패링은 타이밍만 잘 맞추면 그만이었다.

성공만 시킨다면 상대방이 짧은 시간 동안 무방비상태에 빠지는 게 보통이지만, Heaven & Hell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처럼, 걷어내는 것은 그저 걷어내는 것일 뿐 그것이 무조건 무방비상태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 말하자면, 패링을 어떤 식으로 해내느냐에 따라 발생 되는 결과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허점이 없으면 허점을 만들어내면 된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놀랍게도 로니는 지금 단장을 상대로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에르윈의 검이 튕겨 나가는 궤적이 확연히 바뀌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로니가 무슨 수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 윽박지르던 그 기세는 다 어디 갔나? 쥐새끼처럼 숨어버렸나?”


로니의 도발에 입술을 질끈 깨무는 에르윈.

하지만 이에 대꾸할 여유 따윈 없었다.


“지루하군. 더 빨리 끝내주마.”


자세를 가다듬는 로니.

잠시 숨을 죽인 후, 그는 다시 에르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얼핏 봤을 땐 앞선 공격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로니의 검을 걷어내는 순간.


“......!”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로니의 검이 아니라 그녀의 검이 엉뚱한 궤적을 그리며 튕겨 나간 것이다.


위험을 직감하고 뒤로 물러선 에르윈.

로니는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며 공격을 펼쳤다.

그녀는 재빨리 로니의 검을 받아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튕겨 나간 것은 그녀의 검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패링을 시도한 사람이 패링을 당하는 결과라니.

반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자, 에르윈의 뒷걸음질 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무슨 술수를 쓴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로니의 움직임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몇 차례 공격을 더 관찰하자, 이내 무언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르윈의 검이 닿기 직전에 그의 검로(劍路)가 순간적으로 뒤틀리는 것이었다.

즉, 공격하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검을 틀어 상대의 공격을 패링까지 한다는 말.


미친 소리였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로니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는 훈련만 줄기차게 했나 보군. 과연 단장답다. 뒤꽁무니 빼는 것 하나만큼은 일류구나. 하하하!”


그리고 저 악랄한 세 치의 혀.

아니지.

혀도 없는 녀석인데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되지?

아무튼 저 사람 속 뒤집는 입놀림 역시 전투 실력 못지않았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탓에, 에르윈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도리어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고작 두 걸음 뒤에 책상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계속 물러날 수만은 없는 노릇.

순간, 에르윈의 눈빛이 번득였다.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로니의 목검.

허나 그녀 역시 이번엔 피하지 않고 로니를 향해 마찬가지로 검을 찔렀다.


두 목검이 교차했다.

동시에 멈춘 그들.

서로의 얼굴 옆으로 목검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후두둑.


귀밑으로 지나간 로니의 공격에 에르윈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이곳이 전장이 아닌 것을 감사히 여겨라. 적으로 만났다면 지금처럼 봐주는 일은 없었을 테니.”


“......”


먼저 검을 거두는 로니.

패색이 만연한 에르윈의 얼굴.

그녀가 졌다.

마지막 공격은 로니가 한 수 봐준 것이 분명했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로니.

무기걸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목검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쉬이이익!


미친 듯한 속도로 질주하는 에르윈.

양손으로 검을 잡고 무방비상태의 로니를 뒤에서 찌르려 하였다.

이때 로니의 목검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

잽싸게 뒤로 돌면서, 그는 그녀의 공격에 맞찌르기를 감행했다.

두 검 끝이 정확히 맞닿았다.


콰지지직!


배쉬의 기운이 서린 로니의 목검이 에르윈의 목검을 가르며 나아갔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검신 전체가 갈라지더니, 결국엔 손잡이까지 갈라버렸다.


“크윽!”


배쉬의 여파로 뒤로 튕겨나며 쓰러진 에르윈.

스턴이 풀리자마자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나려던 순간.


“......”


그녀의 코앞에서 넘실거리는 검보라색의 기운.

데스 블로우의 기운이 가득한 목검을 겨눈 채, 로니는 지긋이 에르윈을 내리깔아보고 있었다.


“뒤통수치는 것까지 그년을 닮았군. 과연 수아르의 종자라 할 만하다.”


또 한 번의 신성모독.

이에 에르윈은 눈을 치켜뜨며 로니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안광을 쳐다보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한 느낌.

처음 느끼는 숨 막히는 압도감에 그녀는 곧 시선을 거두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졌습니다.”


그 말에 로니는 검보라색 기운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디오에게 감사해라. 디오가 아니었다면 넌 이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


그리곤 목검을 바닥에 내팽개친 후 로니는 내가 있는 곳으로 뒤돌아 걸어왔다.


“가자, 디오.”


“응? 아... 그래.”


뭔데 이 분위기는...

이런 어색한 공기가 싫어, 나도 빨리 자리를 뜨려던 찰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 에르윈.

바닥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간 그녀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서도 왜 D급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어떠한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요. 받으십시오.”


로니에게 건넨 것은 책과 증표.


“당신이라면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장간에 가서 그 증표를 보여주면 쓸만한 무기도 하나 내어 줄 겁니다.”


증표는 아마도 레이너의 증표처럼 무기교환권 역할을 하는 아이템일 것이다.

그런데... 저 책은 뭐지?


“로니. 잠시 그 책 좀 줘봐.”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었다.

마법서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두께.

곧장 책을 펼치자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삽화가 담겨 있었다.


“잠깐... 이거 설마...”


책을 덮은 나는 금안을 발휘해 이 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 순간.


[‘검술 대련’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 에르윈의 증표, 훈련서 ‘차지’, 스탯 +10.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훈련서였다.


.

.

.


새로운 스킬을 익힐 수 있는 아이템인 스킬북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마법 스킬을 익힐 수 있는 마법서와 전사 및 궁수 스킬을 익힐 수 있는 훈련서.


전사의 경우 배쉬나 패링, 디펜스는 NPC와의 대련을 통해 익힐 수 있으나, 그보다 더 상위의 스킬들은 대개 훈련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전사 스킬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각각의 스킬 모두 그 능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배쉬만 하더라도 힘 100 이상이면 무조건 스턴에 걸리니, 이 얼마나 좋은 CC기 인가.


[차지] [중급]

MP 소모 : 10

추가 피해 : 힘 5당 1

질주 거리 : 힘 5당 1미터

재사용 시간 : 20초


이동기면서 추가 피해도 넣을 수 있는 훌륭한 스킬.

게다가 상대를 밀쳐내는 넉백 효과도 있어, 상대의 스킬 시전과 같은 행동을 중간에 끊어 낼 수도 있었다.


이교도 중 엘리트인 녀석이 드랍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확률이 매우 낮아 상당한 값에 거래되는 중이었다.

최근 거래된 매물만 해도 10만 골드를 훌쩍 넘겼는데, 계속해서 그 가격이 올라가고 있었다.


“골드 굳었다. 로니.”


“골드는 원래 굳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썼어야 할 골드를 안 써도 됐다는 뜻이야.”


요새에서의 히든 퀘스트라 그런지 보상이 훨씬 좋아졌다.

물론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어렵긴 했지만.

이 정도 난이도면 현존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도전한다 해도 클리어하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신전에 가기 전에 우리는 대장간에 먼저 들렀다.

NPC에게 증표를 제시하자, 레이너의 증표를 제시했을 때처럼 그는 우리를 무기가 진열된 방으로 안내했다.

벽에 걸린 각각의 무기들은 모두 +4 강화가 되어있었다.

요새의 대장간이라 그런지, 확실히 부화의 마을의 대장간보다 무기 종류가 다양했다.


“뭐로 고를 거야?”


“하나 같이 손이 가는 게 없군.”


보급형이라 해도 내가 볼 땐 강화가 +4나 되어 있어 제법 쓸만해 보였다.

하지만 로니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


“이건 어때? 이제 본격적으로 둔기가 필요하지 않나?”


[은 전투 망치 +4] [B급] [손상 불가]

공격력 : 29

*+2 강화 : 스턴 확률 +10% (3초)

*+4 강화 : 스턴 확률 +5% (3초)

*+6 강화 : 스턴 확률 +5% (3초)

*사용 제한 : 힘 50 이상


29의 공격력.

로니의 웨폰 마스터 효과를 고려하면 무려 공격력 58짜리 무기가 된다.


“그렇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는 쓰고 싶지 않군. 슬슬 제작 무기를 써야 할 때다.”


“제작 무기라... 알았어. 차차 한번 알아볼게.”


제작 무기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작 방어구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간 오크 장군 세트 덕을 봤지만 그래 봤자 D급 아이템일 뿐.

앞으로 날갯짓 고원에서 제대로 활동하려면 콘으로 제작한 무구들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팔짱을 낀 채 로니는 모든 무기를 눈으로 찬찬히 한 번 훑었다.

그리곤 이내 발걸음을 옮겨 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거 쓰려고?”


“그렇다.”


[은 단검 +4] [B급] [손상 불가]

공격력 : 14

*+2 강화 : 출혈 확률 +20%

*+4 강화 : 출혈 확률 +10%

*+6 강화 : 출혈 확률 +10%

*사용 제한 : 힘 40 이상


로니가 집어 든 것은 단검.

생각지도 못한 선택에 나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무기 놔두고 웬 단검?”


“후후후.”


공격력도 낮은 데다가 길이도 짧다 보니 단검은 보통 거들떠보지도 않는 무기였다.

물론 밸런스를 생각해서인지 날붙이임에도 손상 불가 옵션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성능이 구려 사람들이 꺼리는 무기였다.


“너무 없어 보이는데? 그거 가지고 뭐 사냥이나 제대로 하겠어?”


“그래서 쓰는 것이다.”


“응?”


“디오. 지금까진 별 탈 없었지만, 앞으로는 슬슬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할 것이다.”


“날파리? 무슨 뜻이야?”


“인간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인간들 말이다.”


“......?”


“부화의 땅에선 서로 힘을 합쳐 행동했었지. 하지만 그건 당시 모두가 약해 빠졌었기 때문이다. 날갯짓 고원이라면 이젠 이야기가 다를 테지.”


“어떻게 달라지는데?”


“가진 것이 늘어나고 힘을 갖추기 시작하면 침묵했던 탐욕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릴 것이다. 남의 것을 탐내고, 귀한 것을 독차지하려 하며,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추잡함이 앞으로는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원래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욕심이 있으니까. 근데 그럴수록 더 강해져야 되는 거 아냐? 그래야 그런 놈들을 다 때려잡지.”


“후후.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는군. 디오, 너는 사자에게 덤벼드는 여우를 본 적이 있나?”


“...아니.”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벼들 만큼 여우들이 멍청하진 않다. 오히려 알아서 피해 다니겠지. 해서 놈들을 유인할 미끼가 필요하다. 나약해 보일만 한 미끼. 이 단검이 바로 그 미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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