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에서 영감 받은]건방진 부적응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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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만화점' 작가 디스 강한이님이 제 글 '히키코모리 방콕기' 읽으시고 영감 받아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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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부적응자 이야기.
디스
자기 방 밖으로는 죄다 지옥이라고 여기는 인생부적응자가 살았다.
그는 화장실에 갈 때에만 방 밖으로 나갔다. 하루 세끼 밥과 간식은 그의 부모가 항시 문 앞에다 가져다주었다. 그는 방문을 10센치만 열고 안으로 음식을 끌어와 야금야금 처먹곤 했다.
어느 날 그는 피자가 먹고 싶었다.
평소 하던 대로 그는 피자가 먹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를 써 문 밖에 두었다. 부모는 그 쪽지를 읽고 바로 피자 한 판을 주문해주었다. 그런데 때맞춰, 부적응자가 목숨만큼 소중히 하던 인터넷이 끊겨버렸다.
그는 문틈에 대고 거실의 부모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인터넷을 복구하라고 지껄였다. 부모가 부랴부랴 인터넷 회사에 알아보니 인근의 공사로 인해 내일까지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나왔다. 부모는 몇 번이고 나무라듯 설명을 해 줬지만 이놈의 인생 부적응자는 막무가내였다. 자신의 나이가 계란 한 판이라는 것마저 망각한 채 인터넷을 복구해주기 전에는 피자를 한 입도 먹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 여보, 어쩌죠?
- 그냥 놔둡시다.
이번만은 너무 괘씸한 나머지 그의 부모도 손을 놓았다.
언제나처럼 반나절만에 부모가 해결책을 들고 와서 싹싹 빌어줄 줄 알았으나 막상 저녁이 다 되어도 소식이 없자 그는 불안해졌다. 다시 시간이 지나 새벽 즈음이 되자, 이제는 불안이고 나발이고 부적응자는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졌다. 물이라도 마실까 하여 방문을 살짝 열었던 그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여동생에게 비아냥을 들을 것이 두려워 도로 문을 닫고 말았다.
- 여보, 하루 내내 아무 것도 안 먹었어요. 어쩌죠?
- 굶어죽기 전엔 알아서 기어나올 거요.
다음날 아침이 왔다.
이제 이 부적응자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등골에 달라붙은 배를 움켜쥐며 부모가 가져다 줄 아침식사를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일 뿐이었다. 주방의 식탁에서 그의 부모와 여동생이 숟가락을 덜그럭거리며 즐거이 식사하는 소리만 악몽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나갈까.'
부적응자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기엔 너무 억울했다. 아직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고분고분 나간다면 괘씸한 부모가 앞으로 더더욱 자신을 얕 볼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것 뿐이랴, 인터넷을 끊어버릴 지도 모르고 매달 피규어 구입비로 받았던 30만원의 용돈도 주지 않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좀 더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괴롭기 그지없었다.
다시 저녁까지 추이를 지켜봤지만 오는 건 쌀 한 톨 없었다. 그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가슴과 궁둥이를 깐 여자 피규어를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입으로 씹고 말았다. 실리콘 재질의 피규어는 딱딱할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평소 먼지 하나 붙을까봐 걱정하며 애지중지했던 그 피규어를, 부적응자는 짐승처럼 짓밟아 부수어버렸다.
- 어머, 여보. 방금 걔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났어요.
- 배고파서 나오려다가 닫은 걸거요. 하루 더 놔둡시다.
하루 더 놔둘 것도 없이 새벽이 되자마자 아들은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런데 이게 왠 떡이랴, 문 바로 앞에 이틀 전 시켜 둔 피자가 오롯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부적응자는 지화자를 외치며 피자를 들고 방으로 도로 들어와 문을 걸어잠궜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어먹다가, 복통을 느끼며 나뒹굴었다. 여름철이었던지라 그새 피자는 상해 있었다.
"아 빛이 너무 눈부셔."
"입 닥쳐."
들것에 실려가는 부적응자의 말에 그의 여동생이 한마디 했다.
병원에 이르렀고, 배탈이 아니라 맹장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틀간 입원을 하게 되자 부적응자는 병실에서 무선인터넷을 깔고 노트북으로 소일했다. 그리고 모 비디오게임 사이트의 커뮤니티에 자신이 드디어 피를 봤으며, 내장까지 튀어나오는 부상을 입었지만 200바늘을 꿰매어 목숨을 건졌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쓰는 내내 마음 속으로는 끊임없이 '이건 사실이야, 틀림없는 사실이라구.' 라며 주문을 걸고 있었다.
"얘, 아들아. 이제 좀 세상과 어울려 살면 안되겠니?"
"흥, 어림없어요! 이런 썩어빠진 세상에 내가 나와 줄 이유가 뭐죠?"
"얘야, 그렇다면 네 힘으로 살거라. 우린 더 이상 너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단다."
"뭐라고요? 자기들이 낳은 주제에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거야!"
"오빠! 역겨워!"
"뭐라고? 그게 오빠한테 할 소리야? 세일러문 피규어만도 못한 얼치기 여고생 주제에!"
대화는 또 불발로 끝났다. 결국 그의 부모는 '어쩌겠어, 그래도 내 자식인데.' 하는 심정으로 퇴원한 아들을 집에 데려다놓았다.
이제 이 부적응자는 또 다시 긴 세월을 매달 30만원의 피규어 구입비,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으로 무장한 최신형 컴퓨터와 더불어 행복히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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