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니그라토 서재

니그라토 기타 단편 모음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니그라토
작품등록일 :
2017.06.25 11:55
최근연재일 :
2024.05.21 10:58
연재수 :
288 회
조회수 :
60,050
추천수 :
11
글자수 :
746,320

작성
17.06.27 06:46
조회
282
추천
0
글자
57쪽

라제드 마왕 전설 - 1997[판타지](미완)

DUMMY

라제드 마왕 전설





쟝르 : 판타지





1.탄생


바다는 잔잔하다.

배가 일렁이는 파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것은 이미 풍랑을 겪은 그들에겐 즐거운 율동에 지나지 않았다.

이스트린이 어머니에게 드릴 꿀단지를 품에 꼭 안는다. 1년 동안 먼 남쪽 나라 크린트리아에서 궁전 만드는 데 필요한 베를 짜는 일을 하다가 건축이 마무리되어 돌아가는 길이다. 평소 얼마나 좋아하시던 꿀이었나. 나랑 아린에게 주시느라 제대로 맛도 보지 못 하셨었지. 실컷 사드려야지. 우리 나라 꿀도 괜찮지만 크린트리아산 꿀은 일품이지. 한시라도 빨리 집에 이르기 위해 바다길을 택한 이스트린이다.

-이 봐, 아가씨.

한 중년 부인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이스트린의 어깨를 친다.

-안녕하세요.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육지가 가까워진 거야.

그 정도는 이스트린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 아줌마와는 배 안에서 알게 되었다. 언제나 친절하고 성실한 이스트린이기에 수이 사귈 수 있었던 것이다.

설혹 적에게 사로잡혀 적국의 마을에서 하녀를 하게 될지라도 이스트린이라면 곧 마을 사람들과 격의없이 친해질 수 있으리라.

-아가씨 어머닌 참 좋겠수. 이렇게 참한 딸이 있으니 말이야. 얼마나 딸내미 모습이 눈에 밟힐까. 남동생이 있다 그랬지.

-잘 생겼어요. 훤칠하니 키도 크고.

-그래 이름이 아린이랬지?

이스트린은 아린이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같았으나 배 다른 아우다. 철이 막 들 나이에 서로 만났다. 그래서 그런지 이스트린은 아린을 아우처럼 느끼지 않고 절친한 남자 친구같이 느낀다. 이스트린이 대답한다.

-예.

켄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웃음 흘리고 다니길 좋아하고 친절하고 박식한 청년이다.

-저 섬 보이죠? 네, 검은 구름에 싸여 있는 저 섬 말이에요. 온통 바위 뿐이지요. 이곳 바다는 마신(魔神)의 섬들이라 불리워요. 천년 전 마신이 팡게아 대륙 전체를 집어 삼키려고 든 적이 있었죠. 마신은 수많은 마족들과 괴물들을 통일하고 그들을 발판삼아 숱한 나라를 멸망시켰어요. 결국 인간, 요정, 마족, 괴물들이 힘을 합쳐 마신을 몰아냈지만요. 수많은 영웅들도 마신을 죽이진 못 했지요. 마신은 바다 한가운데로 도망쳤고, 모든 목숨을 멸절시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며 떠나갔어요.

이스트린이 웃으며 말한다.

-공포 분위기 조성할 일 있으세요? 제가 관심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라면 좀더 예쁜 화제를 대세요. 예를 들면 제 예쁜 눈동자 같은 거요.

이스트린의 까만 눈동자는 매우 맑고 깨끗했다. 이스트린의 얼굴은 아름답지만 오만해 보이지 않는다. 귀엽고 정겨운 얼굴이다.

켄프는 계속 말한다.

-당신한테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마신은 도망치면서 하나의 예언을 했어요. 난 죽지 않는다. 지극히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이 바다에서 난파당하면 나는 부활할 것이다. 그랬데나 봐요. 영웅들이 섬들을 샅샅히 수색했지만 마신을 끝내 찾지 못했죠. 마신은 그 섬들 가운데 하나에 깃들였을 텐데도요. 모르죠. 바다속 깊은 곳에 있는지도.

-그런 전설을 저한테 왜 해주시는 거죠? 저랑 그 무서운 마신이랑 무슨 관계가 있길래요.

-당신이야말로 착하고 훌륭한 숭배할만한 아가씨이기 때문이지요!

이스트린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띈다. 너무나 아름답다고 켄프는 생각했다.

-제가 뭘요. 당신이 생각하는 저랑 실재의 저는 다를껄요.

그때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먹구름이 밀려들자 바람이 차츰 차츰 세어져 간다.

-승객 여러분은 모두 객실에 들어가 계십시오.

배가 마구 흔들린다. 이스트린은 배를 붙잡고 허리를 숙이고 침대에 몸을 딱 붙여 꿀단지를 지킨다. 여러 여자들이 부둥켜 안고 비명을 지른다. 선반이 쓰러져 쟁반이 떨어져 깨지고 그릇들도 쪼개져 나간다.

켄프가 여자 객실에 불쑥 들어와 말한다.

-선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침착하게 나오세요. 여자와 어린이부터 구명정에 태우겠다 하십니다.

여자들이 비명 지르며 뛰쳐 나온다. 바다의 울부짓음에 비명은 먹혀 버렸다. 간판에 바닷물이 가득하다. 음악가들이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소리 높여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이 앞다퉈 위로 올라간다. 1등석 간판에 가야 구명정에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켜! 이 새끼들아!

-안 비키면 다 죽여버릴꺼야!

이런 식으로 빨리 올라가려는 족속들도 적지 않았다. 켄프가 묻는다.

-이스트린, 왜 올라가지 않고 있지요?

꼬마 아이가 줄사다리 올라가는 걸 짭쪼름하고 씁쓰름한 바다물에 얻어 맞으며 돕던 이스트린이 말한다.

-아이들부터 올려보내야지요.

-이젠 몇 자리 비지도 않았어요. 한 시가 급해요.

이스트린과 켄프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2등석 간판을 단숨에 지나 1등석 간판에 접어든다. 선장이 소리친다.

-여자와 아이부터 태워야 하오.

한 우락부락한 사내가 외친다.

-그런 게 어딨어? 빨랑 태워달란 말야!

선장은 화가 치민다. 선장은 물을 총탄처럼 만들어 발사하는 마법인 수포탄을 쏘아 깡패를 바다속에 떨어뜨려 버린다.

-자 거기 있는 아가씨 어서 타요.

구명정이 꽉 찼다.

-켄프, 어서 타야 해요.

-이스트린, 괜찮아요. 난 수영을 잘 하니까 거뜬할 거예요. 어서 타세요.

이스트린이 구명정에 올라탐으로서 여자와 아이들은 물에 빠진 몇몇을 제외하곤 구명정에 올라탄 셈이 되었다.

켄프는 가라앉아 가는 배에 남았다. 벼락치는 하늘 아래. 하늘과 바다의 폭력이 인간을 난타하고 모든 목숨있는 것들을 조롱하는 배 위에. 켄프가 바다물에 뛰어든다. 풍덩하는 소리는 들릴 수 없었다.

아기 우는 소리, 울부짓음, 비명 소리, 이야기 소리, 불평 소리에 구명정 위는 시끄러웠고 미어터졌다. 이스트린은 여전히 격심한 바다를 견뎌내기 어려웠다.

눈물 젓은 눈 아래 입술에서 이스트린의 마음을 배반하는 토사물이 구명정 바닥에 사정없이 나려진다. 끊임없이 넘어야 하는 파도의 이랑들 탓에 구명정은 춤 추었고 토사물도 마음대로 출렁이며 흐른다. 그 서슬에 사람들이 가뜩이나 좁은 배안에서 이리저리 피하느라 난장판이 된다. 안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빠져야 얼마나 더 나빠지랴하는 태도다.

-여기 수건있소.

선원 하나가 수건을 건내주어 이스트린은 얼굴이며 머리카락에 묻은 것부터 닦아낸다. 부끄러웠다. 그녀의 토사물을 속절없이 얻어맞은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는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다. 못생긴 중년 사내가 했었다면 싸움이 크게 났을지도 모르지만, 상냥하고 아름다운 이스트린이 했기에 노려보는 것으로 그친다.

바다는 아직도 울부짓고 있다. 마신의 저주라며 읊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이건 그저 자연 현상일 뿐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그런 현상. 켄프가 살아있을 거라고 믿어보지만 저절로 새어나오는 눈물 막을 재간이 이스트린에겐 없다. 이스트린도 울음 소리에 동참한다.

벼락이 떨어진다. 바다라는 거대한 도체에 흐르는 전기가 하늘의 전기와 닿고 싶어하는 것이다. 바다를 뛰어넘고 구름을 뛰어넘어 하늘의 하늘까지 나아가고자 벼락은 끊임없이 세계를 휘젓는다.

벼락이 치고 구명정이 부서진다. 이스트린은 조각난 나무 판자 하나 붙잡고 거친 바다에 몸 맡긴다. 퉁퉁 부은 눈 언저리와 이미 지친 팔뚝엔 나무 판자 하나에 기대어 이름모를 섬까지 갈 힘 밖에 없다.

사방이 바위로 뒤덮인 섬. 갈매기들만이 사는 섬. 아찔한 벼랑과 높은 산만이 목숨의 깃들 곳을 마련해 주는 섬. 사람을 받아줄 섬이 아니다.

이스트린은 육지를 그리워하는 본능에 따라 바위 위를 걷는다. 찟어진 치마 아래 예쁜 다리엔 여기 저기 멍이 들고 피가 맺혀 있는 게 보인다.

-물을 찾아야 해.

여기까지 오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꿀단지. 뚜껑을 살짝 열어 크린트리아의 꿀을 한 손가락 찍어서 먹는다.

샘물 정도는 있겠지. 꼭 살아서 돌아갈테야.

이스트린은 계속 올라간다. 꿀이 약간의 힘을 불어넣은 듯하다. 산자락에 갈매기의 둥지들이 보인다. 갈매기들이 경계하는 눈짓으로 이스트린을 쏘아본다. 갈매기들의 똥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하는데다 끔찍한 냄새가 풍기는 무기다.

이스트린은 꿀단지를 근처 평평한 바위 위에 올려놓는다. 꿀단지는 도자기 공예로 이름 높은 크린트리아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는 물품이었다. 간편한 걸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꿀을 비싼 도자기에 담아온 것이다.

위태롭게 벼랑 한 자락에 발을 걸친다. 빈 둥지가 눈 앞에 있다. 이스트린이 두리번거린다. 부모 갈매기가 오면 곤란하다. 알록달록한 알 하나가 손에 잡힌다.

이스트린이 알 끝을 날카로운 돌에 대고 깨뜨려 입술에 대고 노른자위와 흰자위를 빨아 마신다.

꿀단지를 다시 품고 산 정상으로 오른다. 먹구름도 풀어지고 바람도 살랑거리기만 한다. 정상에 오르면 옷을 약간 찟어서 배가 오면 흔들 깃발을 만들어야지. 올라오면서 풀이며 관목이며 부싯돌을 봤으니까 땔감 구하긴 어렵지만은 않을 거야.

비 온 뒤라 젖어 있을텐데.

정상에 거진 다 왔다. 전망이 좋다. 웬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스트린은 팔을 쭉 벌리고 소리지른다.

-야햐르르오!

위는 거대한 절벽이라 더 오를 수 없다. 절벽 옆에 30명 정도가 둘러앉을만한 평지가 붙어 있고 절벽 쪽에 동굴이 하나 있다. 비 피하긴 어렵지 않겠다.

이스트린은 동굴로 들어간다. 완경사다. 느리게 올라가보니 밖에서 보기보다 꽤 깊다.

번쩍이는 붉은 빛이 보인다. 작고 흐릿하다. 순간적으로 이스트린은 보석내지 등불처럼 보이는 그것을 만지길 꺼려한다. 세상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듯한 이질적 느낌, 무에의 의지, 죽음을 향한 본능이 이스트린에게 잠깐 느껴진 것이다.

만지면 어떠랴. 이스트린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동굴에 들어와 붉은 빛을 내는 보석을 만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는데.

이스트린이 고운 손을 뻗친다. 그녀는 호기심많은 아가씨다. 그녀의 따쓰한 손가락에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돌이 걸린다. 그리고....

꿀단지가 동굴 바닥에 떨어져 잠시 구르더니 깨진다.


신성왕 혹은 마왕이라 불릴 라제드가 산봉우리에 올라 서있다.

라제드는 이스트린과 마신 사이의 공생합체지만 둘의 인격은 최대한 억제되어 있다. 기억은 거의 흐릿해져 있다. 둘의 기억 즉 인격은 무의식 속으로 떨어져 조각나버렸다. 하지만 성격만큼은 생전의 마신보단 이스트린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성격이 이스트린과 닮은 건 아니다.

모습은 둘 가운데 누구와도 전혀 닮지 않았다. 곧추 서있는 도마뱀 인간 정도로 그리면 될까. 꼬리따위는 없다. 300cm, 500kg에 달하는 거대하면서도 균형잡힌 근육질 몸뚱이는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로 덮였다. 육중한 턱엔 검은 금속이 입혀져 있고 왼쪽 눈은 붉은 광택나는 카메라다. 양어깨엔 주황색 창날과 철갑이 달려 있다.

권능은 마신의 그것이다.

라제드는 이스트린이나 마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이다.

라제드가 밑을 쏘아본다. 그러더니 몸을 날려 거대한 벼랑을 억센 발톱으로 부여잡아 균형을 잡으며 빠르게 내려간다. 단숨에 밀물 썰물이 침범하는 곳까지 온다.

라제드가 가볍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이제 돌을 던질 때다.



2.변동


마왕 라제드가 무슨 수로 20000km나 되는 바다를 건너 팡게아 대륙 남녘 끄트머리에 있는 크린트리아 왕국의 한적한 어촌 디얼에 갔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어쨋든 라제드가 자신의 야망을 한 자그마한 어촌에서 펼치기 시작한 것만은 틀림없다. 라제드는 이곳에서 적수가 될 자 중 하나를 만난다. 온 역사에 걸쳐 반복되는 성격을 지닌 악마적 영웅 하나가 라제드에 의해 눈을 뜬다.


크링은 고운 뺨에 진흙이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갯벌에서 열심히 조가비를 골라내어 바구니에 담고 있다. 치렁치렁하고 윤기나는 보라빛 머리카락은 대충 묶여 있고 진흙이 자잘하게 묻어 멋이라곤 없다.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본다. 크링의 지나치게 큰 듯싶은 아름다운 파란 눈동자에 프렉탈이 갯벌을 헤치며 다가오는 것이 비친다.

-프렉탈....!

프렉탈은 크링보다 나이가 세 살 밖에 많지않은 스물 두살이지만 다소 긴 머리카락은 윤기나는 흰빛이다. 프렉탈의 깊이 있는 푸른 눈, 귀족 티를 풍기는 세련된 얼굴에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192cm, 79kg의 몸은 크링의 아름다운 모습와 어우러져 보기 좋은 한 쌍을 이룬다.

프렉탈이 다가와 크링의 어깨와 허리를 붙잡는다.

-크링, 사랑해.

-자기 미쳤어? 여긴 탁 트인 곳이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여긴 시골이란말야. 소문이 금새 퍼지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뭉쳐서 하는.

-그래서 재미있는 거야. 안 그래?, 자기.

크링은 겁이 났다. 사랑하지만 프렉탈의 야수성까지 사랑하긴 쉬운 일이 아니다. 둘은 격하게 입맞춘다. 햇살 아래 크링의 벌거벗은 윗몸은 눈부시다. 따뜻한 두 알의 사과는 프렉탈의 팔뚝 아래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즐길 때 프렉탈의 눈에선 언제나 아직 살아있는 초식 동물의 살을 베어 문 사자의 탐욕이 언뜻 언뜻 보였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크링은 비명을 지른다. 프렉탈과 어울릴 법한 180cm, 58kg인 늘씬한 암사자의 울부짓음. 휘어진 크링의 몸에 달린 치렁한 보라빛 머리칼이 진흙벌 위를 구른다. 프렉탈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남반구 냉대 지방인 크린트리아 사람이 보통 가진 하얗고 늘씬한 두 몸이 갯벌 위를 엉킨 채 뒹군다.


갯벌에 신성왕 또는 마왕이라 불리울 라제드가 왔다.

프렉탈하고 크링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라제드도 벌거벗은 두 몸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생기 있어 보이는 라제드의 오른쪽 눈엔 아무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라제드는 디얼 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곧 경계 태세를 갖춘다. 웬 무지막지하게 생긴 녀석이 난데없이 나타났으니 긴장할 밖에. 동네 장정들은 곡괭이, 낫, 작살, 각목따위를 들고 라제드에게 다가선다. 그 가운데엔 디얼 사람들과 친한 괴물도 하나 끼어있다.

라제드가 멈춰선다. 냉엄한 얼굴엔 아무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라제드의 억센 오른 검지 손톱이 1ton이 넘는 바위에 가볍게 박힌다. 라제드의 오른 검지 손가락이 바위를 라제드의 정수리보다 높이 들어올린다. 검은 손톱을 빼고 손가락 끝만으로 바위를 지탱한다. 무리하는 기색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가락 끝을 살짝 튕기자 바위가 5m 밖의 빈터에 추락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라제드가 입을 연다. 무시무시한 이빨이 들여다 보인다. 목소리는 남성적인 품위가 있어 듣기 좋다.

-이래도 덤빌 거요? 난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오.

장정들이 물러선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말한다.

-우리 여관에 묵으시지요.

-아예 눌러 살려고 온 겁니다.

라제드는 바위를 잘라 주춧돌, 기둥, 지붕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갔다. 제법 아늑하다.


프렉탈과 크링은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디얼에 들어선다. 둘이 연애하고 있다는 걸 디얼 사람들은 다 안다. 크린트리아에서 둘의 관계는 불륜이 아니다. 디얼 사람들은 둘에게 갯벌에서 일 벌이는 걸 즐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모른다.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다. 곧 둘은 라제드가 디얼에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충돌이 벌어질 뻔했다는 점도 들었다. 설사 충돌이 일어났더라도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크린트리아는 인간, 요정, 마족, 괴물이 옛날부터 잘 어울려 살던 곳이니까. 라제드는 이스트린으로부터 물러받은 기억 속에서 알아낸 정보를 통해 크린트리아를 여러모로 자신의 야망을 일구기에 적합한 곳이라 여겼던 것이다.

크링은 촌장집의 자기 방에 들어가 누웠다. 책이 잡히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사는 프렉탈이 언제 덮쳐올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렉탈은 오지 않았다. 쳇, 어디 가서 딴 여자 만나고 있나. 크링은 프렉탈이 없으면 그가 그리워진다.

크링은 제 팔 다리를 주무르다가 창문 너머로 분주한 어촌 디얼의 풍경을 본다. 물고기 상자를 나르는 남정네들, 바람에 말려지고 있는 물고기들, 어딘가에 있을 훔쳐 먹을 것을 찾으며 돌아다니는 갈매기와 도둑 고양이, 삶에 찌들고 벌건 살결을 지니고 뚱뚱하지만 여전히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줌마들와 할머니들. 나도 얼마못가 저렇게 되겠지. 프렉탈과 결혼해서 그이랑 날 닮은 아이를 낳아 저렇게 키워내게 될거야.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살다가 손자 손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을 거야. 디얼을 떠나지 않을 거야. 디얼을 넘어선 세상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반목이 적지 않지만 디얼이 도시보단 나에겐 나아. 그 모든 게 시골다운 것이니까.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제가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실은 할 줄 모릅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라제드는 그물 수선하는 법부터 배웠다. 일단 시작하자 이스트린에게서 물려받은 재능 덕분인지 손재간이 보통을 넘어 어렵지 않았다. 라제드가 일을 잘 하자 디얼 사람들은 친밀감을 느끼기 비롯한다.

서른 된 루이스가 라제드의 팔뚝을 멋모르고 치다가 손바닥이 몹시 아파지자 당황하며 말한다. 루이스는 라제드의 평생 친구가 되는 사람이다.

-네 가죽은 무지하게 단단하구나. 힘도 센 놈이 쭈그리고 앉아 그물이나 고치고 있냐? 덩치가 아깝다 아까워. 이 형님이 작살 던지는 법이나 가르쳐줄테니 따라와.

-그거 좋지.

루이스는 라제드의 억센 팔을 잡고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라제드는 요령없이도 연습용 죽은 돼지의 살찐 몸을 간단히 꿰뚫었고 요령까지 익히자 벽까지 관통했다.

-이야 죽이는데. 내가 지금껏 본 사람 가운데 최고야.

-고마워. 껄껄껄. 근데 여기 혹시 도서관같은 거 있니?

이스트린은 상당히 책을 좋아했었다.

-촌장님 집에 책이 많아. 크링이라는 아가씨가 있는데 촌장님 댁에 얹혀 살아서 박식하지. 아니, 그런 것도 아니겠다. 촌장님 아들이 프렉탈이란 놈인데 동네에서 내논 꼴통이야. 여간 말썽꾼이 아니야. 그래도 다른 말썽꾼보다 약간 나은 건 동네 일 하난 잘 한다는 거겠지. 크링이란 애 불쌍한 애야. 어버이가 둘 다 이름난 낚시꾼이었는데 크링이 일곱 살 나던 해 함께 바다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 촌장님이 크링을 양딸로 거두어 주셨지. 그때 크링 얼굴을 봤는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군. 지금 발랄하게 자란 걸 보면 신기해 죽겠다니까.

라제드는 루이스를 따라 촌장의 집으로 갔다. 과연 책이 적지 않았다. 라제드는 책을 대단히 빨리 읽었다. 촌장은 다방면에 걸쳐 관심이 많았다. 강렬한 지식욕을 지닌 사내같다. 정치, 경제, 문화, 요리.... 며칠에 한 번 장에 나가 각종 물품과 함께 책 한 권씩을 들고 온다고 했다. 라제드는 5분에 한 권 꼴로 책을 읽어치우고 있다. 라제드가 서른 여섯 권 쯤 보았을 때 프렉탈이 나타났다.

-당신이 라제드군요. 무척 힘이 세시다던데요. 한 번 잘 부탁합니다.

-반갑군요. 우린 멋진 한 쌍이 될 수 있을거란 예감이 듭니다. 아주 멋진 한 쌍이요.

프렉탈은 기분이 나빠져 그 자리를 서둘러 떴다. 라제드가 말한다.

-몹시 춥군.

-원래 여기 날씨가 그래. 적도 부근에서 왔나 보지?

-여긴 쌀쌀해. 이 집이 말야. 파충류는 빛을 사랑하거든. 냉혈동물들은 다 그렇지. 피와 힘살을 따뜻하게 하려면 일광욕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체온이 떨어져서 견딜 수 없지. 핏줄 안에 해를 심는 거야. 그래야 일도 우정도 사랑도 할 수 있지.

하지만 라제드는 온혈동물이다. 스스로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단지 먹이만을 필요로 하는. 오직 먹이만이 필요하다.

라제드는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촌장의 권력을 떨어뜨릴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촌장의 지식을 이용하여.

라제드는 물길을 깊이 파고 나무와 돌을 날라 부두와 창고를 증축했다. 둑도 빙둘러 쌓았다. 등대도 높다랗게 세웠다. 처음엔 구경만 하던 디얼 사람들도 라제드를 도왔다. 이제 디얼은 어엿한 항구가 된 것이다. 등대에서 나오는 연기와 불을 보고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역물품이 늘어났고 라제드는 디얼 사람들 가운데 손재간 있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기술을 배우도록 각처에서 끌어모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어업에서 중계 무역으로 디얼의 경제 중심이 이동해간다. 라제드는 산기슭을 개간하고 갯벌은 관광지로 개발했다.

라제드가 디얼에 온지 2주 뒤 디얼은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고 라제드는 디얼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창녀촌이 생기고 낯선 이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싸움질, 도둑질, 강도질이 늘었다. 라제드와 루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는데도 며칠 전엔 불특정한 사람에 대한 마구잡이식 살인까지 일어났다.

크링은 슬퍼졌다. 라제드는 낯선 세상의 법칙에 디얼을 떨어뜨렸다. 옛날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금을 넘었다. 프렉탈이 생글거리며 다가온다.

-왜 벌써 돌아가고 그래. 집에 가서 할라고?

-아니. (빙긋 웃는다). 갯벌에서 일하는 것도 시들해졌어. 솔직히 내가 이거 안 해도 우리 집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너 옛날하고 좀 다른 것 같다.

-이 마을이 바뀌고 있어. 오빠는 못 느껴?

프렉탈은 정색한다. 크링이 프렉탈을 오빠라 부르는 건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고 심각하게 나온다는 표시다. 크링이 말을 잇는다.

-라제드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거야. 우리 마을에 이질적인 걸 들여놓고 있어.

-네가 원한다면 놈을 죽일 수도 있어.

-놈을 죽여도 달라지진 않아. 이미 변화는 일어났어.

-내가 막을 거야.

-왜 이번엔 자기가 더 심각하게 나오고 난리야. 난 잠깐 기분 나빠서 그런 것 뿐인데.

-거짓말하지 마. 크링 얼굴에 다 써있어. 알았어. 위험한 일은 하지 않을꺼야. 난 널 사랑하니까.

돌아서는 프렉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날 밤 라제드와 루이스는 함께 낯선 깡패들을 처리하고 헤어졌다. 라제드는 손수 지은 집에 누웠다. 나무로 지은 그럴 듯한 집이다. 아늑한 분위기가 집 안을 감돈다. 루이스가 꾸몄기 때문일 것이다. 라제드는 편안함에 취해 정신없이 골아떨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덥지근해서 라제드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게츰스레 눈을 뜬다. 더위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라제드가 몸을 돌린다. 불길이 라제드를 향해 덮쳐들고 있다. 라제드는 벌떡 일어나 벽을 향해 몸을 날린다. 나무벽이 가볍게 부서져 나가고 불똥이 파리떼 나는 모양으로 떨어진다.

-어떤 놈이냐!

라제드가 뱀처럼 적외선을 볼 수 있고 몇 가지 방사선조차 감지할 수 있는 왼쪽 눈의 카메라를 움직인다. 산 쪽으로 달아나는 건장한 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잡힌다.

라제드는 호랑이처럼 용의자를 뒤쫓았다. 용의자는 막 라제드의 억센 손길에 등판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려 하는 찰나 재빨리 돌아서며 고래잡이용 작살을 라제드의 가슴팍에 집어던진다. 요령 있고 힘 있는 동작이다.

라제드는 굳이 막지 않았다. 작살은 라제드의 굳센 가슴에 맞고 날이 구부러진 채 땅바닥을 굴렀다.

방화범은 라제드에게 붙들려 거꾸러진다.

-누가 시킨 거냐?

-청부업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객의 이름을 팔지 않는다.

-만약 네 놈이 날 죽이라고 시킨 놈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네 다리를 뽑아 네 놈 배에 처박아 버리겠다. 난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라제드는 손칼을 만들어 단숨에 청부업자의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잘라냈다.

-다른쪽 다리도 그렇게 해줄까? 어서 말해라.

청부업자는 라제드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마성을 느낀다. 한 인간으로선 감히 감당 못 할 마신의 위력이 라제드에게서 풍겨나오고 있다. 라제드는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흥분해 있다. 프렉탈에게서 풍기는 호적수의 가능성을 감지한 듯하다. 청부업자가 입을 연다.

-디얼의 촌장이 시킨 것이오. 그는 당신의 존재를 몹시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그래서 멀리서 온 나를 골라 일을 맡겼던 것이오.

-잘 알았다. 그럼 죽어줘야겠다.

-난 사실대로 말했잖소.

-살려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통은 덜 할 것이다.

라제드가 한 손을 뻗쳐 청부업자의 머리를 붙잡고 쪼였다. 청부업자의 머리는 라제드의 주먹과 크기가 비슷했다. 라제드의 주먹이 모아지자 거기엔 피, 뇌수, 살점, 뼈가 잔뜩 붙어있다. 라제드는 청부업자의 살을 붙잡고 바다로 집어던진다. 청부업자의 주검이 단숨에 수평선 너머로 날아간다.

촌장을 죽일 수는 없다. 청부업자와는 달리 이 마을 출신이니까. 마을 사람 가운데 촌장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으니 이 기회에 촌장을 내쫓아 버려야 겠다. 장 보러간다는 핑계로 읍내 관리들과 친분을 쌓은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촌장을 많이 원망하고 있었지. 내가 놈을 대신하겠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라제드와 루이스를 앞세워 촌장 집에 몰려들었다. 라제드는 촌장의 하인을 통해 입수한 계약서를 높이 쳐들었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했소. 해명할 수 있으면 말해보시오!

루이스가 소리 높여 외친다.

-탐관 오리를 등에 엎고 촌장 노릇 하는 주제에 그딴 짓까지 저지르다니 정말 천박하군요. 정정당당히 나와서 마을을 떠나시오. 그러면 그밖의 권리를 빼앗진 않겠소.

라제드가 루이스에게 말한다.

-내가 잽싸지 않았으면 이미 청부업자에게 죽었을 거야. 간신히 피했지.

루이스는 그대로 믿는다. 그만한 신용을 쌓아 둔 것이다.

크링은 안절부절 못하며 복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프렉탈은 활을 들고와 화살을 매긴다.

-안 돼! 오빠 그러지 마.

-너야말로 방해하지 마. 저놈의 오른쪽 눈을 멀게 만들겠어. 놔. 어서 놓으란 말이다! 난 너에게 약속했어. 저놈을 죽이고 말테야.

-정말 왜 그래. 그런 짓 하다간 우린 라제드한테 다 죽어. 죽는 것보단 달아나는 게 낫잖아.

중년이고 장대한 체구의 촌장이 빠져나간다. 프렉탈이 크링을 뿌리치고 번개처럼 달려가 촌장을 붙잡는다.

-아버지, 정말 이 마을을 떠나실려고 그래요? 포기하지마요. 왜 그렇게 나약해지셨어요?

프렉탈보다는 족장이 아무래도 세상 경험이 더 있다.

-이미 놈을 따르는 게 대세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대세가 사악하고 편견에 찬 것이라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인간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라제드가 집에 불을 지르도록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기 전에 나가야 한다. 고집피우지 마라! 라제드는 우리를 죽이진 못할거다. 그러기엔 놈의 바탕이 약하다. 현명한 놈이니까 우리를 곱게 보내줄거다.

촌장 가족이 나온다. 촌장, 촌장 부인이며 프렉탈의 어머니인 바이올렛, 프렉탈, 크링이 전부다. 라제드가 말한다.

-이건 이미 결의된 것이오. 촌장은 마을을 떠나야하는데 탐관오리와 결탁하여 사복을 채웠고 나를 청부업자를 시켜 암살하려 했기 때문이오. 프렉탈도 마을을 떠나야하며, 여러 번에 걸쳐 마을 청년들과 싸우고 선동하고 몇몇 아가씨들을 겁탈하고 상인들을 위협했기 때문이오. 마찬가지 사유로 크롤린, 제이피유, 무스크등도 프렉탈과 함께 내쫓길 것이오. 바이올렛과 크링 두 여성은 마을에 남아도 좋소.

바이올렛이 말한다.

-전 남편과 아들이 없이는 살지 못해요. 나도 가겠어요.

크링도 말한다.

-저도 아버지, 어머니, 오빠를 따라갈래요.

라제드가 대답한다.

-그건 전적으로 당신들 자유요. 당신들 나귀들을 끌고 가시오. 나귀들에 실을 수 있을만큼의 재산이라면 얼마든지 가지고 가도 좋아요. 나머지는 우리가 접수하겠소.

크롤린, 제이피유, 무스크등 동네 깡패들에게도 각각 한 사람씩 데리고 가는 여자가 있다.

친하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곤 촌장 가족은 나귀가 끄는 사두 마차를 타고 디얼을 떠난다.

숫사자는 대부분 자신이 태어난 집단을 떠난다. 하지만 암사자는 보통 삶을 준 집단을 떠나지 않는다. 크링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읍내로 가죠. 거기가면 될 거예요.

-그러자고. 재산은 충분하니까.

디얼에서 몇십 km쯤 떨어졌을 때 촌장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가족이 붙잡았을 때엔 이미 죽어있었다.

-아버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분명해요. 라제드가 독을 쓴 거예요!

라제드는 여러 길을 통해 교묘하게 독을 썼다. 라제드는 여러 재료를 여러 사람에게 구해 독을 손수 합성하고 하녀들을 통해 독을 투여했다. 여러 하녀를 통해 촌장이 쓰는 물건들에 조금씩 독이 스며들도록 만들어놓았다. 하나 하나로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지만 한 사람에게 모두 스며들면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것으로. 이 계획은 라제드를 빼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름 높은 촌장이 돌아올 경우 라제드가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잃고 있다면 촌장이 다시 지위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촌장은 상속제가 아닌 투표제였으므로 바이올렛, 프렉탈, 크링은 전혀 위험할 것 없다. 라제드는 망각의 능력으로 자신이 독을 썼다는 사실을 의식에서 지워버렸다. 아무도 확실한 증거를 지닐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돌아가요. 내가 라제드를 죽여버리겠어!

크링은 프렉탈을 붙잡아 흔든다.

-오빠, 왜 그래? 그러다 오빠도 죽어. 놈은 괴물이야. 아주 교묘한 놈이야. 어딘가에 숨어서 우릴 노려보고 있을 거야. 돌아가는 즉시 라제드는 우릴 몰살할 거야. 참아. 참으란 말야! 죽이려면 나중에 죽여. 지금은 안 돼. 안 된다고!



3.출발


샤버르 왕국은 신성왕 또는 마왕이라 불리울 라제드가 탄생될 때 반쪽을 제공해 준 이스트린과, 그 남동생 아린의 고향이다. 샤버르는 마왕 라제드가 탄생된 마신의 섬들 북서쪽에 있고 팡게아 대륙의 동북방에 있는 북반구 온대 계절풍 농경국으로 풍요로운 대국이다.

한달이 다 되어갈 때까지 이스트린이 찾아오지 않자 아린은 애가 탓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갑자기 사장이 헉헉대며 뛰어들어온다. 어, 언제 나갔다 들어오신거지?

-야 임마!

-예?

-아니 점원이란 녀석이 바로 옆에서 도둑질하는데도 멍하니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떻하냐? 장사 다 말아먹을 일있냐? 아무리 누나가 걱정된다 해도 그렇지. 너 자꾸 이러면 널 쓸 수가 없어. 아무리 네 돌아가신 아버님께 내가 은혜 입은 일이 있더라도 말야.

아린의 아버지가 사장에게 끼친 은혜는 사장이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걸 줄을 던져주어 구해준 일이다.

아린은 터벅터벅 걸었다.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다. 아름답고 상냥한 누나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였다. 이스트린과 아린은 각기 11살, 10살 때 처음 만났다. 아버지는 같았지만 어머니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둘의 아버지는 허구헌날 떠도는 인물로 둘 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린의 어머니는 아린이 15살일 때 병으로 죽었다. 이스트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어릴 때 같이 껴안고 뒹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선 욕정을 서로에게 느끼지 못한다. 아린은 이스트린과 그런 경험을 나누지 못했고 그 때문에 사랑을 품었다. 아린은 굳이 이스트린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애써 부정하려 하지 않고 친절과 충실로 이스트린의 다정함에 응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좀 나아진 것 같구나. 방문 좀 닫으렴. 춥구나.

아린은 방문을 닫고 부엌에 들어가 쌀을 씻었다. 요즘들어 어머니는 눈에 띄게 쌀쌀맞게 굴고 있다. 누나가 실종된 탓이다. 더 성마른 사람이 되어버리기 전에 막아야겠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래. 쫄깃한 노루 고기나 맛있게 해드려야지.

아린은 손수 사냥한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친다. 혁띠를 단단히 졸라 매고 은제 죔쇠를 든든히 죄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샤버르 고유의 반월도를 허리춤에 찬다. 흰 가죽 신발끈도 단단히 맨다.

머리카락이야 검으니 상관없지만 얼굴은 약간 볕에 그을린 정도라서 아린은 얼굴에다 검댕을 잔뜩 칠했다.

-준비 끝이다. 이제 잡으러 가야지.

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싸리나무의 메마른 가지들이 온 산에 가득하다. 낙엽은 수북히 쌓인 채 나무의 거름이 될 준비를 하면서 벌서 수많은 벌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 저리 밀릴 때마다, 아직 가지에 달라붙은 메마른 잎사귀더러 어서 떨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린은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나아간다. 눈을 부릅뜨고 귀에 힘을 주고 코를 벌름거리며 모든 짐승의 움직임을 쫓는다. 발로 낙엽을 헤쳐 발자국을 찾기도 한다. 진드기, 무당벌레, 지네 따위가 놀라서 기어나온다. 가끔 멈춰서 도토리를 줍거나 딴다. 다람쥐 집을 뒤져 도토리를 얻기도 한다. 노루 발자국이다. 따라가 보자.

한 다섯 리 쯤 걷다 보니 노루 한 마리가 보인다. 낙엽을 헤쳐가며 이끼를 뜯고 있다. 늦가을은 노루에겐 가혹하다. 빨리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늦장을 피운 듯하다. 그 게으름이 널 죽일 것이다. 아린은 능숙한 솜씨로 소리 없이 엎드린다. 아린은 샤버르인치고는 몸집이 크다. 키가 다섯 자 아홉 치(177cm)에 몸무게가 백십칠 근(70.2kg)이나 된다. 덕분에 몸 숨기기가 쉽지 않다. 낮은 포복으로 최대한 다가선다. 샤버르에선 남자는 16살때부터 예비군으로 나가서 50살이 되어서야 예비군의 의무가 풀린다. 예비군에서 훈련받은 게 발휘되고 있다.

계속 가까이 다가선다. 노루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노루가 코를 벌름거린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노루가 도약한다. 동시에 아린의 몸이 허공에 뜬다. 아린은 반월도를 휘둘러 노루의 양눈을 능숙하게 베고 앞가슴에 반월도를 깊숙히 찌르고 재빨리 빼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린이 숨을 헐떡인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으며 따뜻한 온기가 있는 노루의 허벅지를 베어 피를 뽑아 그릇에 담아 마신다.

아린은 노루를 어깨에 메고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간다.

집에 무사히 왔다. 노루 가죽을 벗기고 푹 삶는다. 아껴 둔 대추와 산에서 줏어온 도토리를 넣는다. 소금을 뿌린다. 쌀을 씻어서 솥에 붓고 땔감을 아궁이에 집어 넣고 부채 부친다.

-따뜻해져라. 따뜻해져라. 조왕신님, 제발 노루국이 맛있게 되어서 우리 엄마가 벌떡 일어나도록 해주시옵소서.

온갖 법석 다 떤 끝에 노루국이 익었다.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먹어보니 맛이 좋다. 역시 내 요리 솜씨는 죽인다니까. 아린은 싱글벙글거리며 그릇에 노루국을 듬뿍 담는다.

이스트린의 어머니는 살 몇 점 집어 먹고 국물 몇 모금 마시더니 숟가락을 놓고 울음 섞어 말한다.

-이스트린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추워서 떨고 있지나 않은지 못된 놈들 만나 고생하고 있지나 않은지 음식이 목에 넘어가질 않는 구나. 끊임없이 눈에 밟히는구나.

-알았어요. 어머니.

아린은 집을 나서 사장에게 갔다. 사장은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인지라 눈 비비며 일어났다. 아린은 사장에게 이스트린의 어머니를 잘 돌보아달라고 당부했다. 부탁할만한 사람이 사장 밖에 없기도 했지만 의리 있고 성실해서 믿을만한 사람이다.

아린은 집에 돌아와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검은 두루마기, 검은 바지를 걸치고 있다. 붉은 혁띠를 차고 은제 죔쇠로 단단히 조인다. 멧돼지 가죽옷을 등에 지고 흰 가죽신도 몇 켤레 둘둘 말아 둔 가죽옷 안에 잘 간종거려둔다. 허리에 반월도 두 자루를 튼튼히 찬다. 은화는 달랑 몇 푼 뿐이다. 따뜻하고 질긴 흰 가죽신을 신으니 만사 끝이다.

아린은 편지 한 장을 문지방에 놓아두고 집을 나선다.

<어머니 잘 있으세요. 누나를 찾아올께요.>

아린은 17살 나이로 고향을 떠난다. 이미 마신과 합체해 라제드가 되어버린 누나 이스트린을 찾아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자 아린은 그렇게 머나먼 길을 떠난다. 그 길은 산이나 궁전이 그렇듯이 미로일 것이다. 수많은 함정마저 있는.

이스트린 누나는 참 발랄했어. 누난 눈동자만큼이나 까만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뛰어다니곤 했어. 달리기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누난 언젠가 그랬었지. 세상이 아무리 무시무시한 곳이라 해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어. 언제였던가.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아래 푹신한 풀밭에 나란히 누워 있을 때, 지붕 위에 올라가 나란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을 때, 함께 토끼를 잡았을 때. 도대체 언제였던가? 에이, 언제면 어때! 아린은 이스트린이 베짜는 일을 했던 크린트리아 왕국으로 가기로 한다.


켄프는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커다란 배가 가라앉을 때 만들어지는 소용돌이가 아직 자그마할 때 바다로 뛰어내렸었다. 그리곤 배 위에서 봐 둔 나무 판자로 전력을 다해 헤엄쳐 붙잡고 떠돌았었다.

폭풍 속에서 바닷물을 수없이 마시고 토하길 반복했다.

바다가 잔잔해진 뒤엔 따가운 햇살, 똑같은 하늘과 바다, 단조로운 기러기 소리에 지겨워해야 했다.

정신 잃길 수 차례. 깜빡 잠든 적마저 있었다.

그런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판자를 끝까지 붙잡고 있던 억센 두 팔 덕택이었다.

정신을 여섯번째로 차렸을 때 정체 모를 집 지붕이 보였다.

갯벌에 떠밀려 온 켄프를 구해낸 것은 샤버르 왕국의 한적한 어촌에 사는 한 늙은 부부였다.

노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고향에도 목적지에도 갈 방법은 이제 없다.

지금 이스트린은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있겠지. 이스트린을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망없지. 이스트린이 죽었을지도 몰라.


신성왕 또는 마왕인 라제드는 여전히 그가 일궈낸 신흥 항구 도시 디얼에 있다.

라제드에게 쫓겨나 디얼의 옆에 있는 도시에 있는 프렉탈은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프렉탈은 함께 쫓겨난 크롤린, 제이피유, 무스크등을 중심으로 폭력 조직을 만들었다. 프렉탈은 가지고 온 재산 덕분에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조직원은 주로 빈민굴에서 구했다. 반목과 시기가 넘치지만 그래도 서로 서로 잘 알고 있는 시골. 빈민굴에선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유롭다. 좁은 곳에서 한데 부대껴야 하는 도시 생활은 스트레스를 늘리고 정력을 감퇴시키나 성욕은 늘려놓는다. 참된 새디스트가 만들어질 수 있는 훌륭한 토양. 프렉탈은 빈민굴에 들어설 때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야, 크롤린 요즘 생활은 어떠냐?

-여전해. 그럼 보슨? 어서 일거리나 달라고.

-왜? 잡아 온 계집애 돌려가며 따먹는 걸 신물났냐?

-이미 물렸어. 갈보 만들고 두들겨 패는 건 물린지 오래야. 난 뚜쟁이되긴 글렀나 봐.

-니가 좀더 오입쟁이 기질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다음 일거리를 마련해주지. 예쁘장하게 생긴 사내 놈들 납치해서 돌려 먹는 거야. 그리곤 게이 바에 파는 거지. 동성연애는 끔찍하게 오래된 전통이니까.

-농담이지? 난 변태가 아냐.

-실은 라제드를 치는 거야.

-라제드는 웬만한 군대보다 강해.

-깡패, 뚜쟁이, 거지들 모조리 모으면 몇 백 명은 실히 나올 거야. 그 놈들을 동원하는 거다. 디얼로 쳐들어가는 거야. 전쟁을 벌이는 거지.

프렉탈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한다.

-디얼을 우리가 휘어잡는 거야. 그 도마뱀 새끼는 죽여버리자. 이젠 디얼도 부자야. 라제드가 어촌에서 항구로 발전시켰지. 단 한달만에. 라제드는 디얼을 제 기반으로 삼을라고 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빼앗어버리자. 그리곤 디얼을 기반으로 크린트리아를 집어 삼키는 거야!

-우린 깡패야. 깡패가 나라를 삼켜? 웃기지 좀 마.

-모르는 모양이지. 이른바 국가의 창업주란 놈팽이들은 모조리 도적떼 두목이거나 간신배였어. 크링이 그러더군. 이런 말도 했어. 우리 상태에서 큰 일을 이루려면 우선 암흑가를 잡아라. 벌써 이 도시 밤거리의 반이 우리꺼잖아. 디얼에서 쫓겨나길 잘 했지. 안 그랬으면 이 멋진 소질을 발견하지도 못 했을 꺼 아냐? 평화로울 때라도 재벌이나 정치가까진 될 수 있어. 난세라면 더욱 좋지. 왕이 될 수 있거든. 크아!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프렉탈은 섬뜩하게 웃는다. 크롤린은 절로 어깨가 떨려오는 걸 느낀다.

-크링한테 가야 겠어.

-크링말야? 그 년 완전 돌았더군.

-경고하겠는데 크링한테 욕하지 마.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너도 욕할 수 밖에 없을 거다. 내가 아는 계집 하나가 해준 이야기인데 허구헌날 남녀 혼탕에서 뒹굴고 있다더군.

프렉탈은 탁자를 발로 차 넘어뜨리곤 의자를 문에 집어 던져 그 충돌로 문을 열었다.

크롤린이 정신차렸을 땐 프렉탈은 이미 없었다.

-이럴 줄 알았지. 근데 그 새끼 어느 남녀 혼탕인지 모르고 갔잖아.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렉탈이 문 앞에 나타난다.

-어디야?

크롤린이 말해준다.

모든 사회엔 남녀 혼탕이 존재한다. 권력층만이 향유하는 것이라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나 천민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곳이니 경찰의 눈이 희번뜩거릴 수밖에 없다.

프렉탈은 커다란 칼을 들고 비밀리에 운영되는 남녀 혼탕에 들어선다. 겉에서 볼때엔 평범한 여관같은 곳이다.

-손님, 옷을 벗으셔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종업원 하나가 막아서자 프렉탈은 베어버린다. 목욕탕 증기와 섞여 피안개가 피어오른다. 비명 소리가 인다. 사람들이 돌아나간다.

-어떤 새끼야!

육중한 경호원들이 각목, 칼, 창 따위를 들고 쏟아져 나온다.

-난 프렉탈이다. 나 지금 엄청 열받았어. 날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전쟁이 나는 거다.

경호원들이 추츰 추츰 물러난다. 프렉탈은 잠시 움직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선동한다.

-저 놈 하나만 없어지면 저 놈 조직은 끝이야!

-내 그럴 줄 알았지.

프렉탈이 덤벼든다. 아버지에게서 검술을 배우고 도시에서 숱한 실전을 거친 프렉탈의 칼솜씨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하지만 혼자서 여러 명을 무찌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워낙 복도가 좁아서 정작 프렉탈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한 명씩이다. 차례 차례 프렉탈은 경호원을 해치워버린다. 그러는 동안 프렉탈은 어깨와 팔꿈치에 상처를 입었지만 깊지는 않았다.

프렉탈은 크링이 들어가 있는 탕을 찾아낸다.

-크링!

크링은 게츰스레 풀린 눈으로 프렉탈을 본다. 치렁 치렁한 보라빛 머리칼은 풍성하게 풀린 채 물 위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새하얀 몸 위에 걸친 것은 루비 알갱이로 이루어진 십자가 목걸이 뿐이다.

-자기야, 내 모습 어때? 예쁘지. 그렇지. 왜 십자가를 걸었는지 알아? 난 사회 체제를 거부한다는 식의 뜻은 몰라. 그럴 생각도 없어. 실제론 그리스도는 장대에 메달렸었잖아. 또 그리스도는 손바닥이 아니라 팔목에 못 박혔었지. 마지막으로 크리스트 교인들이 박해당했을 때에 십자가에 메달렸었지. 사실 십자가란 건 남녀가 서로 엉켜서 사랑하는 모습이래. 나 자기 말고도 이젠 남자 많이 알아. 옛날엔 몰랐거든. 디얼에 있을 때엔 몰랐는데 멋진 남자 많더라. 끝내주는 남자들 굉장히 많던데. 내 몸 위를 벌써 중대 병력이 지나갔다구. 이 집 술 괜찮데. 나랑 같이 먹어줄꺼지?

프렉탈이 크링을 본다. 넓은 갯벌에서 조가비를 줍던 고운 손을. 깊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며 해초를 모아오던 늘씬한 몸을. 드넓은 바다는 좁디 좁은 욕조가 되고 조가비와 해초는 찾을 길이 없어졌다. 절망한 영혼이 의지해야 할 사랑은 언제나 거리를 쏘다니기만 했다. 이제 영혼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은 타락의 거품에 싸인 최악의 육체 뿐.

프렉탈이 칼을 집어 던진다. 그리곤 탕에 몸을 담근다. 크링을 껴안고 울먹이며 말한다.

-다시는 이러지 마. 앞으론 이 따위로 쏘다니지 않을 거야. 니 곁에 더 붙어 있겠어. 원한다면 평생 붙박고 있어도 좋아. 다시는 네가 이렇게 되도록 하지 않겠어.

프렉탈이 크링을 용서할 수 있게 한 마음의 크기만큼 커다란 라제드를 향한 증오가 프렉탈의 마음 안에서 피어오른다. 그를 결국 파멸시키고야 말 편협된 증오가.

라제드! 널 죽이고 말겠어.



4.악연


도시화로 말미암아 샤버르 왕국의 주민 통제 정책은 효과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아린은 옛날보단 좀더 편안하게 고향을 떠날 수 있다. 안 그랬으면 군대에 끌려갔었을 아린이다.

아린은 황톳길에 주저앉아 살랑 살랑 날개짓하는 나비를 바라본다. 다리도 아프고 막막하기도 해서 그러는 거였다. 이스트린과는 달리 고향 산천을 사랑했던 그는 고향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덕분에 길눈이 어둡다. 항구로 가야하는데 혹시 쫓아올지 모르는 관리며 경찰의 눈까지 신경써가며 가려니 지리를 모르는 그로선 죽을 맛이다. 게다가 촌뜨기 청년이라 물가도 제대로 몰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이 네 번이나 바가지를 썼다.

-어쩜 좋은가? 이 돈 가지고 크린트리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을까? 크린트리아는 남반구에 있다던데. 그냥 육로로 가?

사기당해서 돈이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을 아린이 알 리가 없다. 땅길로 가다간 천리길이 아니라 몇만리 길이니 어느 세월에 갔다 온다는 말인지.

무릎을 두어번 두드리곤 아린은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선다. 어딘가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린의 뒤를 아까부터 밟고 있는 사내가 있다. 이스트린이 타고 있던 배가 소용돌이 속에 가라앉은 뒤 간신히 살아나왔으나 덕분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 샤버르를 떠돌고 있는 켄프다.

켄프는 여비가 있어야 했다. 워낙에 인심 좋은 샤버르 사람들인지라 아무 집이나 덜컥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청하면 잠도 자고 밥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시골일수록 가난한 집일수록 인심은 좋아졌다. 쉽사리 재워주는 집이 없으면 풀이 무성하게 깔린 숲에 들어가 한둔(낯선 곳에서 잠자기)을 하면 되었다. 밥도 논에 가서 일을 후딱 해주고 반참을 얻어 먹으면 되는 거였다.

켄프의 고향인 남쪽 크롤로인 왕국에 가려면 결코 만만치않은 뱃삯이 필요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바다로 착각할만한 거대한 강을 너댓개나 건너야 한다. 목적지인 그라데라스에 갈래도 막대한 돈이 필요할 것이다.

봉사및 희생 정신은 투철한 켄프였지만 사정이 이쯤되고 보니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어쩌다가 이렇게 타락해버렸단 말인가!하고 마음 속으로 외쳐보는 켄프였지만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고향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폐쇄되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 온 사람에게 고향의 관념은 희박하다. 떠돌이인 켄프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고향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스트린을 상대로 연애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바다를 헤매다 간신히 구출된 뒤에 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졌던 것이다.

켄프가 아린을 목표로 선택한 까닭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린을 보아하니 칼도 가지고 있고 체격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눈이 날카로워 둘레를 잘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접근하기로 한다. 크롤로인 왕국과 샤버르 왕국은 인종은 달라도 언어는 비슷하다. 같은 어족이라서 낱말들만 신경써서 말하면 되었다. 더구나 켄프는 언어 방면에 소질이 많다. 켄프가 아린에게 다가가 말한다.

-어디에 가십니까?

-잃어버린 누나를 찾으러 갑니다.

-누나가 집 나간 모양이지요?

-아닙니다. 누나는 남쪽 나라 크린트리아로 가서 돈을 벌고 있답니다. 그런데 돌아오겠다는 날짜에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일단 항구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볼 생각입니다.

둘이 이름을 서로 알려준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도 친절한 사람이다. 켄프는 아린을 안심하고 접근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동질감만으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마음이 바뀔 리는 없다. 아직은 경계심이 남아있는 것 같다. 좀더 터놓고 지내는 상태로 몰아가야 한다. 그런 다음 함께 한둔을 한다. 아린이 깊이 잠들면 돈과 물건들을 강탈한다. 마을로 가서 물건을 처분한다. 그러면 돈이 약간은 모일 것이다.

아린과 켄프는 나란히 걷는다. 아린이 묻는다.

-길을 아십니까?

-하하. 잘 모릅니다.

-어떻게 여기 오셨지요? 보아하니 외국 사람이신데.

-크롤로인에서 왔습니다.

-멋진 곳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샤버르도 만만치않아요.

-뭐하러 샤버르에 오셨습니까?

-원래는 샤버르에 올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라데라스로 갈 작정이었지요. 그런데 일이 틀어지고 말았어요. 제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했지요. 바다를 떠돌다가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해변가에 밀려 온 절 살도록 도와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요.

-제 누나도 그 배에 타고 있었을지 모르겠군요!

-이름이 뭐지요? 혹시 아는 이름이라면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스트린이에요.

켄프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아린이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눈과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마음씨가 고우며 예쁜 20대 초반의 아가씨를 말하는 겁니까?

-대충 맞네. 어떻게 되었지?

-구명정에 타고 갔어.

켄프가 아린을 더이상 도둑질의 목표로 삼지 않기로 한다. 켄프가 말한다.

-같이 찾으러가자.

-좋아.

둘은 항구를 향해 출발했다.


-어떻게 됐어?

-헛탕이야.

아린이 한숨을 내쉬며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비어 있던 가슴 한켠이 점점 커져 가는 것 같다. 아린이 지친 다리를 잠깐 주무르다 말한다.

-돈을 아껴야 돼. 며칠이 걸릴지 모르잖아. 이렇게 묻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놈들도 있는 것 같았어. 오늘은 그냥 한적한 곳에 가서 자버리자.

켄프가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지 뭐. 나도 갈 데도 없는 판이니까. 이스트린 찾으면 내 뱃삯 두둑히 주는 거 잊지 마.

-알고 있으니까 채근거리진 말라구. 누나가 돈을 꽤 벌어 왔을 거야. 아니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해줄께.

둘은 나란히 항구 바깥쪽을 향해 걷는다. 멀리 벗어날 마음은 없다.

문득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봐, 혹시 켄프 아닌가?

아린과 켄프가 거의 함께 돌아본다.

무척 너그럽게 보이는 노인 한 사람이 빙긋이 웃고 있다. 작지 않은 몸에도 무척 커보이는 머리가 보여주는 표정이 몹시 풍부하다. 흰 수염은 가슴까지 늘어뜨려져 있다. 검은 도포를 입었는데 소매 아래로 보이는 손이 노인으로 보이지 않을만치 섬세하고 푸른 핏줄이 드러나보인다.

-레츠브마가 님!

-하하. 제대로 봤군. 응?! 저 사람 누군가?

-제 친굽니다. 아린이라고 샤버르 사람이죠.

레츠브마가가 아린을 잠시 훑어본다.

-켄프, 아린, 오늘은 늦었으니 나랑 같이 묵지 그래. 허름한 방이지만 바깥보단 낫지 않겠어.

-그러죠.


아린과 켄프는 여관 방에 들었다. 꽤 깨끗하고 넓다.

아린은 푹신 푹신한 침대 위에서 펄쩍 펄쩍 뛴다. 켄프가 말한다.

-신기하냐?

-그래. 우리 고향엔 침대가 없거든. 촌놈 보는 눈으로 째려 보지 마. 난 촌놈이지만 우리 나라엔 원래 침대가 없어. 부자들도 마찬가지란 말야.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켄프가 문을 연다.

-레츠브마가 님.

-하하. 아린, 잠깐 켄프와 실례하겠네.

레츠브마가는 켄프를 여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별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밤이다. 나무들이 어둠을 더하며 추적거린다.

-켄프. 자네는 가출을 했었지.

-예.

-어떻든가.

-사회는 더하더군요.

-운명을 거스르려 했지. 예언가가 되겠다는 걸 말야.

-네. 레츠브마가 님을 뵙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뵙나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

-하하. 자네는 아직 뛰어나진 못하지. 감지자로서의 능력도 예언가로서의 느낌도. 하지만 난 다르네. 자네와 함께 온 아린이란 청년을 봤을 때 난 정말 놀랐어. 내가 쫓았던 어둠이 눈에 띄었으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아린 그 자체가 어둠은 아니야. 그의 누나가 어둠이지.

-그의 누나요? 이스트린은 저도 압니다. 무척 착하고 빛나는 여자였어요.

-어둠을 이끄는 빛. 그런 빛은 우리에겐 어둠과 다름없는 것. 마신과 합쳐져 마왕을 불러낸 게 바로 아린의 누나야.

-정말입니까?

켄프는 믿을 수 밖에 없다. 레츠브마가에 대한 그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레츠브마가가 말을 잇는다.

-내가 왜 가출을 언급했는지 알겠나? 사회는 험악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는 범죄와 부정부패가 판치고 있지 않은가. 그 냉혹과 잔인은 언제나 착한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지. 그건 그렇지만 이나마 사회가 있는 게 낫지 않은가. 마왕은 이 사회마저 모조리 짖밟을 거야. 이 세상을 최악의 악인 전쟁으로 덮어버리겠지. 잔혹하기 그지없는 용병들, 도적들, 간첩들이 날뛰는 세상으로 만들거야. 난세! 바로 그거야.

-이런 점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내 말이 의심스러운가? 그럴지도 모르지. 자네의 말투를 보아하니 아린의 누나를 짝사랑했던 모양이군. 나의 예언은 직관에 바탕삼고 있고 매우 특정하지. 뭔가를 알아낸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좁은 범위에 머무른단 말일세. 그래서 난 몇몇 동지들과 더불어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목적은 간단했지.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 그 여자와 마신의 결합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거야. 신의 예지는 아린을 극단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거기에 약간의 마법만 부리면 그 여자와 마신의 결합이 풀린다고 말하고 계시다. 또한 풀려난 마신은 힘이 없을 것이다. 도와주겠나.

-물론이죠.

-그럼 지금 당장하세.

-예?

-다른 사람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네. 자네 힘을 빌려야겠어.

-아린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죠.

-난 언제나 수면제를 가지고 다닌다네.


-많이 먹으라고. 레츠브마가 님은 쓸 땐 팍팍 쓰는 분이야.

-응. 졸리네. 가서 자야겠다.

벌써 수면제가 퍼졌을 리는 없는데. 그러고보니 켄프도 꽤 졸리웠다. 수면제에 피곤까지 겹치면 잠들지 않을 리 없다.

레츠브마가가 올라왔다.

-자네, 졸린가? 오늘밤 안으로 해치우는 게 좋다네. 오늘밤 안으로 하지 않으면 그 여자를 살릴 수 없을지도 몰라.

-이스트린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켄프는 날카로운 단도를 허리춤에서 뽑아서 팔뚝을 살결만 상하도록 살짝 긋는다. 별 해가 없지만 예민한 살결이 상했기에 괴로움은 지독하다.

-잠이 깼습니다. 어서 하시죠.

-하하하. 참말 그 여자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하하. 맞아요. 제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를 이렇게 취급하는 게 껄끄러울 정도라구요.

레츠브마가와 켄프는 아린을 침대에 동아줄로 억세게 매듭지어 묶는다. 레츠브마가가 말한다.

-단도로 아린의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깊숙히 긋게. 나는 자네가 긋는 칼 금에 따라 회복 주문을 외우겠어. 알다시피 내 회복 주문은 꽤 아프지. 뼈는 상하지 말도록 하게.

켄프가 아린의 팔꿈치에 깊이 단도를 찔러넣는다. 레츠브마가가 넋을 모아 아린을 깨운다.

한줄기 외침이 밤하늘을 찟어발긴다.



5.만남


-너희 뭐야!

아린이 부르짓는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아린이 연달아 외친다.

-죽이려는 것이라면 어째서 상처를 고쳐주는 거냐!

레츠브마가가 자상한 미소를 띄며 말한다.

-설명을 해주지. 잠시 멈춰라, 켄프. 이성을 굴리는 게 좋겠지. 사람이니까 상황을 말해주면 납득할거야.

마왕이 있다는 것. 마왕이 마신과 이스트린의 합체라는 것. 이렇게 해야만 마신과 이스트린의 합체를 풀 수 있다는 점 따위.

아린이 찬찬히 듣더니 말한다.

-난 그런 말 따윈 믿을 수 없어요. 허무맹랑한 소리요.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마왕의 부하들로 가득차 있을 그곳에서 누나가 홀로 풀려나 봤자 아니오!

레츠브마가가 침착하게 말한다. 그는 언제나 침착하게 말한다.

-그건 사실이지. 나는 마왕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푸는 법만 알지 구체적인 위치는 알지 못하니까. 잘 생각해 보게. 누나가 살 수 있다는 건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네. 앞으로 있을 수백만의 죽음을 생각해 봐.

아린이 외친다.

-난 믿을 수 없어. 당장 풀어 줘!

-말이 많군. 켄프, 자네는 납득하고 있겠지.

켄프가 무겁게 고개숙인다. 할 수 없지. 어차피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때부터 기대하지도 않던 일이었어. 그녀와 맺어지는 일은 한때의 꿈으로 덮어둘 밖에. 가슴이 아려온다.

켄프가 단도를 다시 들어 아린의 정강이를 베어낸다. 사람 몸에 이렇게 피가 많았나 하고 켄프가 속으로 놀라워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니그라토 기타 단편 모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8 [제 글 패러디]빅 거세가 인류를 멸종시킨다 17.07.01 291 0 2쪽
87 [제 글 패러디]럼프랏자(트럼프 팬픽) 17.07.01 198 0 3쪽
86 [제 글 패러디]후타랏자 17.07.01 367 0 3쪽
85 [제 글 패러디]요리 폭력배 제거론 17.07.01 278 0 2쪽
84 [제 글 패러디]니그라토를 쓰러뜨리려는 소년의 모험 17.07.01 339 0 9쪽
83 [제 글 패러디]요리일진의 승리 17.07.01 199 0 6쪽
82 [제 글 패러디]빅 메이드 이즈 커밍 17.07.01 293 0 2쪽
81 [제 글 패러디]유딩 요리 폭력배 17.07.01 164 0 2쪽
80 [제 글 패러디]악마 미식가 인류멸망 예상 17.07.01 195 0 2쪽
79 [제 글 패러디]양박사와 공산주의 17.06.30 199 0 23쪽
78 [제 글 패러디]엘더 갓 17.06.30 183 0 2쪽
77 [제 글 패러디]으따랏자 17.06.30 99 0 3쪽
76 [제 글 패러디]비서 돌려막기 17.06.30 183 0 3쪽
75 [제 글 패러디]하루 34000명의 아이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세계 17.06.30 252 0 5쪽
74 [제 글 패러디]나는 니그라토다[intro] 17.06.30 188 0 3쪽
73 [제 글 패러디]벙커 안의 메딕 17.06.30 267 0 6쪽
72 [제 글 패러디]메갈리안 전체주의 17.06.30 248 0 4쪽
71 벙커 속의 메딕 - 2002[스타크레프트 패러디] 17.06.30 275 0 14쪽
70 메딕의 출정 - 2007[스타크레프트 패러디][미완] 17.06.30 282 0 8쪽
69 진 은하영웅전설 - 2016[은영전 패러디] 17.06.30 256 0 3쪽
68 아르케르 정권기 - 2016[SF] 17.06.30 183 0 20쪽
67 유딩 공갈 - 2016[현대] 17.06.30 239 0 1쪽
66 엄마는 옥황상제 - 2016[현대][브릿G큐레이션] 17.06.30 264 0 15쪽
65 살인 피라미드 정신분열증 - 2016[역사] 17.06.30 191 0 4쪽
64 대륙 한국 촛불 판타지 - 2016[SF 판타지] 17.06.29 338 0 6쪽
63 리쟈드맨 - 1997[일반] 17.06.29 223 0 6쪽
62 Dead of white - 1996[일반] 17.06.29 263 0 11쪽
61 초딩 우가우가 - 2015[현대] 17.06.29 227 0 2쪽
60 천년전쟁 - 2015[현대] 17.06.29 45 0 1쪽
59 일진에겐 마음이 없다. - 2015[현대] 17.06.29 207 0 2쪽
58 코끼리 바다표범 - 1998[현대] 17.06.29 61 0 23쪽
57 어느 86세대의 초상 - 2015[현대] 17.06.29 325 0 5쪽
56 경국지색 - 달기 - 2015[역사] 17.06.29 168 0 8쪽
55 국민 오우거 - 미상[패러디] 17.06.29 254 0 2쪽
54 신자유주의자 - 2015[일반] 17.06.29 236 0 2쪽
53 보편적 열정 페이 - 2015[일반] 17.06.29 230 0 1쪽
52 니체 초인 - 2015[일반] 17.06.28 235 0 1쪽
51 카이퍼 대공사 - 2014[SF][미완] 17.06.28 63 0 12쪽
50 착하게 살자 - 2014[역사&종교] 17.06.28 269 0 5쪽
49 한국의 멸망 - 1999[SF] 17.06.28 232 0 3쪽
48 노인을 왜 존경 - 2014[현대] 17.06.28 311 0 8쪽
47 지존파의 재림 - 2014[현대] 17.06.28 611 0 8쪽
46 끝없는 여독 - 1998[SF] 17.06.28 228 0 8쪽
45 아프로디테와 인간 - 2014[판타지] 17.06.28 226 0 8쪽
44 개 아기를 뜯다 - 2014[SF] 17.06.28 159 0 2쪽
43 나는 작아 - 연대 미상[SF판타지] 17.06.28 274 0 4쪽
42 판타지 워즈 에피소드 1의 237제곱 - 1999[SF판타지] 17.06.28 386 0 6쪽
41 아테네 - 1999[SF] 17.06.27 221 0 6쪽
40 님프의 동굴 - 1998[판타지][미완] 17.06.27 280 0 55쪽
39 파워풀가이 - 2014[SF] 17.06.27 219 0 3쪽
38 브레이브 블러드 - 1999[판타지](미완) 17.06.27 262 0 32쪽
» 라제드 마왕 전설 - 1997[판타지](미완) 17.06.27 283 0 57쪽
36 사이좋은 가족 - 2014[로맨스] 17.06.27 255 0 10쪽
35 모모지세 - 2009[SF] 17.06.26 166 0 6쪽
34 암살자 - 1997[판타지] 17.06.26 212 0 11쪽
33 쇼펜하우어의 지행일치 - 1995[역사] 17.06.26 260 0 6쪽
32 우주 폭력배 : 악의 현현(미완) - 2013[SF] 17.06.26 243 0 4쪽
31 리치 킹(미완) - 2008[무협] 17.06.26 181 0 8쪽
30 넝마주이의 죽음 - 2차판 - 2014[현대] 17.06.26 330 0 32쪽
29 노예주와 노예 - 2014[현대] 17.06.26 230 0 5쪽
28 살인자 지망생 - 2014[현대] 17.06.26 234 0 10쪽
27 인육교실(人肉敎室) - 2014[현대] 17.06.26 168 0 3쪽
26 악녀와 요술사 - 2013[판타지] 17.06.26 199 0 13쪽
25 영혼 결혼식 - 1999[SF] 17.06.26 198 0 3쪽
24 넝마주이의 죽음 - 2012[현대] 17.06.26 176 0 30쪽
23 김은 노숙자다 - 2012[현대] 17.06.26 156 0 2쪽
22 신림역 살인마 - 2011[현대] 17.06.26 135 0 30쪽
21 헤이 파리마왕 - 1995[판타지] 17.06.26 171 0 19쪽
20 히키코모리 방콕기 - 2011[현대](작은 상 탐)[문장 소설집] +1 17.06.26 162 1 30쪽
19 세이브 - 1998[SF] 17.06.25 71 0 11쪽
18 속도의 절대자 - 1997[SF] 17.06.25 409 0 10쪽
17 나이팅게일 - 1996[현대] 17.06.25 49 1 27쪽
16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 - 2008[SF] 17.06.25 117 0 2쪽
15 피자는 구토 - 2009[SF] 17.06.25 105 0 3쪽
14 사반트 후작국 - 2010[판타지] 17.06.25 57 0 3쪽
13 경국지색 - 말희 - 2009[역사] 17.06.25 61 0 16쪽
12 새로운 하늘 - 1차판 - 1999[SF] 17.06.25 402 1 47쪽
11 달은 살아있다 - 1999[SF] 17.06.25 150 0 5쪽
10 목에 달린 입 - 1997[스릴러] 17.06.25 95 0 15쪽
9 지옥의 법칙 - 1997[SF] 17.06.25 72 0 13쪽
8 시간세무서 - 1999[SF] 17.06.25 125 0 6쪽
7 미래에 굶어죽다 - 1998[SF] 17.06.25 95 0 5쪽
6 프림 커피 - 1995[현대] 17.06.25 187 0 17쪽
5 후조의 마왕 석호 - 2009[역사] 17.06.25 71 0 23쪽
4 생명주의자 - 1999[SF] 17.06.25 78 0 6쪽
3 돼지 멱따기 - 1997[현대 + 역사] 17.06.25 103 0 6쪽
2 천막 노인의 말 - 1998[현대] +1 17.06.25 267 1 5쪽
1 동급생 - 1998[현대] +1 17.06.25 822 3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