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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라토
작품등록일 :
2017.06.25 11:55
최근연재일 :
2024.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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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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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후조의 마왕 석호 - 2009[역사]

DUMMY

후조의 마왕 석호




*시간적 순서와는 관계없는 재구성임. 거의 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은 틀림없을 것임. 중국 정사에 관한 깊은 연구를 아주 조금 제가 받아먹고 쓴 것이기 때문임.



굴러!


좌로 굴러!


머리 박고 엎드려!.


병사들이 탈진해 쓰러지자 훈련 교두는 그들에게 엎드려뻗쳐를 하게하고는 배를 마구 걷어찬다. 교두도 장군에게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은 자리가 성치 않았다. 교두는 화풀이삼아 병사들을 채찍으로 세차게 후려갈긴다. 그들 가운데엔 그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상관없다.


반드시 패야만 한다. 그것은 군인 된 자의 의무다. 한없이 억압하고 억압하여 탈영을 하지 않으면 자살하는 게 나은 상황까지 병사를 몰아댄다. 싸움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런 일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야만 악이 받쳐서 적에게 덤빌 테니까. 몇 백 명씩 자살해도 아무 상관없다. 반항하면 생매장하고 생화장시키면 되는 일. 아무리 그렇게 대우해도 저들은 모두 당하는 판국인데 못 견디는 놈이 멍청이, 쪼다, 병신이지 라는 식으로 생각할 테니 마음껏 짓밟아도 된다. 군대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한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폭력 조직인 것.


자, 모두 일어나라. 석호님께서 오신다.


병사들이 정렬한다. 후조의 장군 석호가 말 위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육식 동물의 미소를 입가에 뚝뚝 흘리며 오만에 가득 찬 그가 포효한다.


대업을 치를 날이 왔다. 긍지 높은 후조의 병사들이여, 아무런 능력도 없는 주제에 후조의 재위를 차지하며 건들거리고 있는 석홍을 해치우고 우리 모두 좀더 멋진 앞날을 만들어보자꾸나. 갈족의 대중원을 위하여!


와아!


그런 선동에 자신의 마음이 충일해오는 것을 느끼는 것, 좀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에 스스로를 의탁코자 하는 심리는 억압받는 사회일수록 강해져만 간다. 그런 시대적 조류에 편승해 불교와 도교는 엄청난 신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들이며 황제들이나 다름없는 세력과 악행으로 중원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석호와 그의 병력은 후조의 궁전으로 난입했다. 석호는 모든 궁녀들과 친위대원을 살육했으며, 후조의 정통 재위 계승자 석홍을 단숨에 발기발기 찟어 죽였다. 석호는 석홍의 피를 마시며 미친 웃음을 웃었다. AD 333년, 중국 화북 지방이 다섯 이민족에게 휩쓸리던 오호 십륙국 시대다.


석호가 맨 처음 벌인 일은 여자를 끌고 오는 거였다. 석홍의 궁녀, 후궁들을 모두 잡아먹고 나니 먹을 만한 야들야들한 살코기가 떨어졌던 것이다.

석호는 광활한 화북에서 미녀들을 군대 징집하듯 모아들였다. 곧 중국 정식인 3000명의 궁녀가 들어찼다.


하지만 궁전으로 끌려오는 과정에서 일부가 처녀성을 잃었을 것을 생각해보니 그리 탐탁치 않았다. 벗겨놓고 처녀막 검사를 했으나 그것을 믿을 도리는 없다. 입이나 가슴이나 똥구멍에 대고 하면 흔적도 남지 않는 법. 석호는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냄새나는 침을 마구 토해내며 명령했다.


즉시 가마를 대령하라.


석호는 수도 거리로 나선다. 예쁜 여자가 눈에 띈다.


당장 잡아오너라.


저 여자는 유지의 딸입니다.


잡아 와! 방해하면 그 유지는 죽여 버려.


그 여자를 궁녀로 삼았다. 석호는 궁녀를 궁내 불당으로 데리고 가서 향불을 피우고 잠시 염을 한다. 잠깐 석호는 경건한 마음이 된다. 음식을 먹기에 앞서하는 기도와 같은 경건함이다.


석호가 불당 안 한쪽 벽의 장막을 걷는다. 온갖 고문 도구들이 벽에 가득히 걸려있다.


염불용 향로를 집어 들어 궁녀의 음부에 대고 지진다. 그렇치않아도 꼬여있는 거웃이 타는 바람에 더욱 꼬인다.


꿈틀거리지 마.


석호가 궁녀의 배에 주먹을 갈긴다.


꿈틀거리지 말래도!


석호가 화를 내며 벽에 걸린 거대한 칼을 떼어내어 궁녀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드디어 점심거리가 생겼군.


궁녀의 목이 잘 삶아져서 나온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넣어 함께 끓인 최고급 요리다.


볼수록 아름다운 얼굴이다.


석호가 독극물이 음식에 섞여있을 경우 검게 변색되는 은제 젓가락을 집어 들어 궁녀의 뺨에서 살점을 떼어내어 맛있게 먹는다. 사람의 고기는 이 시대에 가장 구하기 쉬운 고기이다. 소, 돼지, 말, 양 따위는 너무나 귀해서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까진 평범하기 짝이 없다.


한고조 유방 같은 경우엔 팽월이란 야심가가 반란을 일으키자 잡아 죽인 다음 삶아서 그 국물을 신하들에게 돌렸었다. 수양제는 병부 상서가 고구려로 망명했다가 되잡혀오자, 유방이 팽월을 대접한 빛나는 전통을 본받아 상서를 마찬가지로 대해주었다.


석호는 그토록 침울하고 소금 섞인 물이 뚝뚝 떨어지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석호는 심복 신하들과 함께 희희덕 거리며 궁녀의 고기를 집어먹고 골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부하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얼마나 위대한 군주인가. 꿀꺽.


궁전이 너무 좁다. 놀고 지내기엔 너무 너무 좁아! 좁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석호가 궁전을 늘리는 공사를 일으킨다. 백성들이 파촉부터 산동까지, 탁현(베이징)에서 황하까지 곳곳에서 모여든다. 그들은 돈 받기는커녕 음식, 옷, 잠자리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일에 내몰린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는 즉시 사살이며, 설혹 달아난다 하더라도 정든 가족, 친지, 이웃들이 곤욕을 치러야만 한다. 때때로 도망치는 자의 3족을 멸했다. 국가의 본질인 강제력이 그들을 휘덮어 질식시키고 있다.


담당관이 들어와 상주한다.


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멈추어야 합니다.


석호가 대답한다.


계속 해. 뭐든지 빨리 빨리 해야 하는 거야! 크아아아! 개발 독재야말로 무진장한 가치의 소산인 것이다!


비바람과 천둥번개 속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죽는다.


궁전 증축 공사는 끝내주게 마무리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골에 끝없는 노동으로 허리가 휘고 얼굴은 주름져, 실제론 갓 스물인데도 80 먹은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가득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전과 똑 같은데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힘 있는 부르주아 계급과 평등주의 사상이 이 토양에선 결코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물 먹은 노인은 역사상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난 사례에 불과하지 않은가. 2000년 동안 이런 식으로 억압받은 고대 이집트 농민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야 감지덕지다. 영국의 산업혁명 때를 보면 하층 계급의 평균 수명이 15살 아니었던가. 물론 배부른 부르주아들 - 어떤 전통이든 무조건 찬양하는 음험한 무리에 의해 산업 혁명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조상의 과업으로 간주되었다.


백성 민(民)이라는 상형 문자는 말을 안 듣는 백성은 눈알을 톡톡 가시로 터뜨려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주나라 귀족들의 앞날을 내다보는 맑고 바람직한 지혜가 담긴 글자다. 이렇게 다스려야 백성들이 반란을 안 일으키지. 틈을 주면 프랑스 대혁명이나 꿈꾼다는 말씀이야.


유학자들이 돌아다니며 외친다.


아이들은 똑바로 키워야 한다. 버릇없이 키워선 안 되는 일. 말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길들어야 한다. 남녀 칠세 부동석인 것. 부모님이 지어주는 짝만 찾아야 하는 일.


석호는 유학자들을 우대했다. 유학자들은 석호의 정통성을 온갖 궤변과 억지 논리로 세워주었다. 더구나 폭력 사회를 만들어 석호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유아기나 사춘기 때 성적 쾌락을 박탈당하고 체벌까지 당한 사람들은 폭력 사회를 만드는 법이다. 폭력 사회에선 살인, 굴종, 강도, 가멸음의 과시, 미신, 조직화된 종교나 이념이 난무한다. 그런 사회는 발전마저 느려 터졌다. 석호가 자나 깨나 바라는 세상. 석호의 유토피아인 폭력 사회.


유학자들은 그때까지 한족이 빠져있던 중화사상을 온갖 논리로 때려 부수어 갈족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기도 했다.


진시황의 문화 파괴 정책은 유학자들이 한 일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디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진시황은 실용적인 책을 빼놓곤 모든 책을 없애길 열망했지만, 자신의 궁전엔 수많은 책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 책들은 항우와 유방의 파괴와 약탈로 사라졌다. 유학자들은 한나라를 통해 유교의 세상이 오자 그 뒤 2000년간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상과 이단을 극한의 극한까지 탄압하고 말살하고 박살내버렸다.


중국의 전 역사에 걸쳐 수많은 학자들이 유교의 아성에 도전하려다 패배하여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굶기를 밥먹듯하는 비참한 삶을 살다 없어져갔다. 서양에서도 기독교가 숱한 이교들을 멸망시켰었다. 따라서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석호는 한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엤다. 소규모의 반란만 일어나면 그에 연류 된 사람들을 깡그리 죽여버렸다. 실제로 반란한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사라져갔다. 석호는 싸움꾼이었다. 그는 황제가 된 뒤 단 한 번의 싸움에서도 지지 않았다.


패배 없음에서 오는 자만을 발판삼아 석호는 남방의 대국 동진을 들이치고자 하는 야심을 품게 된다.


석호는 후조에 징병제를 실시하고 병사 5명을 한 조로 삼아 각 조에서 수레 한 대, 소 두 마리를 내도록 했다. 그 뿐 아니라 각 1인당 쌀 15말, 비단 10필씩 국가에 바치도록 명하였다.


언제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되는 상인들은 여기서도 자신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권력과 영합한 몇몇 악덕 상인들은 수레, 소, 쌀, 비단을 사재기하여 비축해놓고는 엄청난 값으로 되팔았다.


내라고 한 것들을 바치지 못하는 자는 즉석에서 목을 쳤다. 못 견딘다고 도망치면 다른 사람에게 그 부담을 그대로 떠맡겼다. 어리거나 늙거나 죽어서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도 기록을 조작하여 의무를 씌웠다.


백성들은 의무를 실행하기 위해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가재 도구들을 거리에 내놓고 팔았으며, 애써 기른 아들딸을 팔아야 했다. 황제가 궁녀를 대하는 것과 지주들이 하인, 하녀를 대하는 것은 크게 다를려고 해야 다를 수가 없었다. 백성들은 먹을거리를 위해 서로 죽고 죽였다.


다른 때에도 이런 일이야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흉년만 났다하면 어린애들을 집집마다 바꿔가며 삶아 먹고 끓여 먹고 구워 먹는 중국 사람들인데 이런 일 쯤 한숨 한 번 쉬고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이다. 공자는 제후들과 야합하여 막대한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식탁에 사람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젓가락을 던지고 밥상을 엎어 버리지 않았던가. 공자의 가르침을 받드는 끝없이 예의바른 후조 사람들이 어찌 사람 고기를 마다하겠는가. 사람의 본성에 식인을 혐오하는 것 따위는 없다. 배고프면 사람 고기쯤 먹을 수 있다고 정당화시키면 장땡이다. 아즈텍 인들은 사람 고기를 먹기 위해 다른 부족을 때려잡고는 그 일을 종교로 아름답게 승화시켰으며 레닌 체제는 수백만 명을 숙청하곤 과학적인 천국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당화시키지 않았던가.


여기까지도 평범하다.


석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석선님이 석도님을 죽였습니다.


보고를 받은 석호는 분기탱천 길길이 날뛰었다.


석호에겐 여러 자식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석도는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자신의 복사판 같은 석도를 석호는 가장 아꼈다. 그런데 석선이라는 별 볼 일 없는 아들놈이 석도를 죽이다니. 석호는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석선의 처자 9명을 석선이 보는 앞에서 찟어 죽여라! 크아아아!


석선의 자식은 바로 석호의 손자였으나 모두 석선 눈앞에서 때려 죽였다.


석선의 목에 쇠고리를 채워 창고 안에 집어넣은 다음 한참동안 개, 돼지와 함께 먹고 자고 싸게 만들었다. 손과 발엔 칼을 채워 움직일 수 없었고, 옆에 고문관을 집어넣어 혀를 깨물 수도 없게 만들었다. 고문관은 끊임없이 석선을 두들겨 팼다. 신난다! 신나. 이럴 때 아니면 왕자님을 언제 돌려 먹겠어?!


마침내 석호는 자신의 아들인 석선을 끌어내라 했다.


석호의 명령은 충실히 시행되었다.


석선의 머리털을 뽑고, 혀를 빼고, 도르래 줄로 묶은 다음 잡아당겨 손과 발을 떼어 내고, 눈을 으깨고, 배를 도려 낸 뒤 산 체로 태워버렸다.


석호는 미소 띄며 바라보았다. 크하하하! 석호는 측천무후가 아니다. 피만 보면 질겁을 하는 주제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학살한 할머니인 측천무후와는 달리 석호는 대놓고 즐길 줄 알았다.


평범하다.


위, 오, 촉의 혼란을 평정한 서진을 멸망시킨 선비족의 한은 전조와 후조로 나누어졌다. 강북에서 서진은 없어졌지만 화남에서 서진의 후예 동진이 남은 상태였다. 한족의 나라 동진은 서진을 반성하여, 황제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고, 서진의 적통을 받은 황제와 화남 호족의 우두머리 왕진이 함께 옥좌에 나란히 앉아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동진에겐 그 이후 부견의 80만을 8만으로 막은 영광이 있었다.


후조의 갈족 석륵은 전조의 흉노족 유오를 살해하여 옛 서진의 북쪽 영역을 장악했다. 후조는 갈족인 석륵이 세운 나라다. 갈족은 코가 높고 눈이 깊은 것이 특징인 민족이다.


석륵의 정치는 훌륭했다. 덕분에 후조는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런 석륵이 죽고 제위에 오른 석홍을 살해하고 제위에 오른 것이 석호다.


석륵은 민족 문제를 잘 처리했으나 석호는 그렇지 않았다. 석호는 갈족 아닌 모든 종족을 세상에서 없에버리고 싶어했다. 한족, 훈족(흉노), 선비, 강족, 저족, 부여족은 중원에 존재해서는 안될 족속인 것이다. 주관적 환상인 혈연과 지연을 바탕삼아 성립된 민족주의가 석호를 통해 스스로의 가장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산동의 대도시 청주엔 한족이 많이 살고 있다. 석호는 명령한다.


청주를 공략하여 그곳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석호는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청주를 포위하여 압살해나갔다. 수십만 인구에 대응되는 수십만의 개성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원자 폭탄도 대포도 가장 기본적인 포탄인 화전조차 없던 시대에, 청주 같은 대도시의 수십만 인구를 죽이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춘추전국을 제패한 진나라는 조나라 장군이 투항해오자 조나라의 40만 병사를 골짜기에 파묻어 죽인 적이 있다. 항우는 진나라의 항복한 병사 20만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시저는 룬 어를 쓰는 켈트족 100만을 학살했다. 화전을 조금 쓰기는 했던 칭기즈칸은 터키 호라즘 제국의 한 지역에서만 600만을 가볍게 때려죽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작디작은 일인 것이다.


병사들은 마음껏 약탈하고 고문하고 강간하며 살인하면서 불을 질렀다. 성폭행은 보통 주먹다짐이 행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병사들은 거대한 전체주의 집단인 군대에 자아를 맡기고 평소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온갖 변태적 공상들을 실행에 옮긴다. 여자를 벗기곤 불에 지지면서 춤추게 만들곤 살결을 벗겨내어 드러난 살에 소금을 뿌린 다음 토막 내어 잘 말려서 두고두고 아껴먹는 일도 이 세계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능한 일이라면 한 번쯤 일어났을 법하다. 인도네시아라는 독재국가의 군대가 동 티모르를 때려잡으려고 들었들 때에도 식인만 하지 않았을 뿐 거의 엇비슷한 예쁜 짓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순식간에 청주 사람 수 만 여명의 주검이 거리를 매운다.


청주 자사는 석륵이 임명한 사람이었다. 만약 청주 자사가 석호가 임명한 인물이었다면 아래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봉건 군주는 조직 보스이고, 그 신하들은 깡패들이다. 대체로 깡패들에게 있어 보스는 신이나 다름없다. 청주 자사의 보스는 석호가 아닌 석륵인 것이다. 청주 자사가 석호에게 상주한다.


선제(석륵)께오서 저를 청주 자사로 임명한 것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백성을 모두 죽이라 하시니 저는 청주 자사의 직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석호가 말한다.


짐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냐. 물론 나는 내 명령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의견이 지닌 이적성과 반역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강력한 지도력이 요구되는 이 때에, 너는 국론을 분열하고 상하를 이간질하여, 결국 남쪽에서 정통성을 주장하며 거들먹거리는 한족의 동진을 편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바로 너 같은 감상주의자 덕분에 동진을 향하는 나의 창날이 언제나 빛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네 의견이 갈족의 세상에서 뿐 아니라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쳐 옳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이야기하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제 의견이 한때 짓밟히더라도 미래에는 찬란히 빛날 것입니다.


으하하하. 미래의 아름다운 이름이 밥을 먹여주더냐? 네가 생존을 따지지 않는 골수라고 상정하고 이야기하마. 유비는 난세에 난세를 더하고, 한나라의 헌제가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는데도 헌제의 재위를 위왕(조조)이 유지시키고 있었음에도 헌제가 조비에게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촉한의 황제를 칭했으며, 기회주의적 행위를 일삼았다. 그러나 그는 혈통 정통론을 주장하는 한족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기면 모든 것은 정당화되는 법. 네놈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수긍하라.


소신의 의견은 옳은 것입니다. 얼마든지 선량하게 행동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식인종으로 만드는 행위를 자제해 주십시오.


네 놈에게 직접 육체적 위해를 가하지는 않겠다. 정서적 유대감의 상실에서 오는 고통을 맛보아라. 저 놈의 구족을 차례로 끌어내어 저 놈 눈앞에서 살육하라. 우리의 고문 기술도 예술의 경지에 올라있지만 다른 나라의 고문 기술도 대단하더군. 권력자는 이래서 해볼만한 것. 비단길로 전해져오는 것을 보면 서양의 고문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의 것은 우리를 능가한다. 난 그것을 네 놈에게 시험코자 한다. 너는 갈족 귀족이며 선제로부터의 중신이니 네 의견이 틀렸다는 한 마디만 하면 이 모든 일을 멈추겠다. 네 친척들을 죽이겠느냐?


당신이 뭐라 하든 제 말은 옳습니다.


인도의 성고문은 대단하지.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계집을 능욕하는 것이 정식 형벌이라니 놀랄 지경이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하지는 않으마. 너의 눈 앞 에서 네 친척 계집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되는 것을 보겠는가? 너에겐 예쁜 딸도 있더군. 내가 직접 맛을 보면 너에겐 무한한 영광일 것이니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 바라보는 게 더 재미있거든. 인도의 성폭력 형벌 가운데 극치는 잘 훈련된 개와 말로 형틀에 묶어놓은 계집을 강간하는 것이다. 난 이미 여러 마리의 투견과 난폭한 말들을 멋지게 훈련시켜 두었다. 지금까지는 궁녀에게만 사용했는데 드디어 형벌에 쓰게 되니 기쁘구나. 이 모든 것을 당할 것이냐?


제 말은 옳습니다.


네 놈은 이 나라 못지않게 미쳤구나.


청주 자사 역시 미쳐있는 것이다. 뎡샤오핑(등소평)이라는 땅딸보 돼지 마왕이 천안문 광장에서 무더기로 사람들을 학살했을 때, 중국군의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섰던 이름 모를 젊은이처럼. 다나카 요시키는 말했다. 중국의 미래가 그런 사람들의 것이기를.


석호는 우선 청주 자사의 입을 가로로 찟었다. 그리곤 친척을 한 명씩 끌어내어 청주 자사 앞에서 강간 살인하면서 그때마다 물었다. 청주 자사는 친척들이 뭐라 울부짓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했다.


석호는 마지막으로 청주 자사를 쇠지팡이로 찍어 죽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갈족의 강경파들조차 석호의 행위를 지나치다 생각해 청주 공략을 말리게 되었다.


여기서 독자의 흥을 떨어뜨릴 생각은 없지만, 실제론 청주 자사는 청주 공략이 다 끝나갔을 때 쯤 상주를 했고, 청주 자사가 갈족 고위층이었기 때문에 석호는 그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했다 한다. 당사자의 입을 찢은 다음 그 당사자의 앞에서 구족을 차례로 죽이며 신념을 지울 것을 강제한 자는 명나라 영락제다. 영락제는 당사자 앞에서 제자들까지 때려잡았다.


석호가 공격을 멈추고 돌아가자 몇몇 사람들이 폐허가 된 청주 거리에서 기어 나왔다. 그들은 아이를 바꿔 먹고 쥐나 벌레를 잡아먹으며 질긴 목숨을 이었을 것이다. 눈앞에서 스스로의 딸을 강간 살인하는 병사들에게 뇌물을 바쳐 목숨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청주 사람은 원래의 40만 명 가운데 7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족은 자신들이 오호 16국의 조상들을 대해온 방식대로 그렇게 당했다, 아주 조금.


석호가 죽자 그의 영토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 빼고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형제 싸움이 일어났다. 석호의 뒤를 이은 석세는 재위 33일만에 그의 형 석준에게 죽고, 석준은 즉위 뒤 83일 만에 그의 아우 석감에게 죽었고, 석감은 즉위한 지 103일 만에 석호의 양손 염민에게 살해되었다.


정력이 절륜한 석호에겐 13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 8명은 형제끼리 싸우다 죽었고 5명은 염민에게 죽었다. 손자도 38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염민이 때려죽였다.


이것을 가지고 역사의 냉혹한 심판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 역사상 으뜸가는 성군으로 떠받들여 지는 당태종 이세민은 친 형과 친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형과 동생은 아들만 각각 5명씩 낳았었는데 이세민은 자기 조카인 이들을 모두 죽였다. 또 이세민은 친 아우의 아름다운 아내를 아내로 삼았다. 그녀는 이세민이 자기 남편과 자식들을 죽였지만 책임을 지려는 이세민과 혼인하여 늙어 죽을 때까지 잘 살았다. 시대적 상황이 석호의 후손들을 그렇게 몰아갔던 것뿐이다.


한족인 염민은 위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었다.


후조 30년은 민족 감정을 극히 악화시켰다. 염민은 후조의 석호가 한족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포로로 잡힌 갈족을 모조리 때려잡았다. 며칠동안 20만여 명의 갈족이 죽음을 당했다.


염민은 선비족인 모용씨에게 포로가 되어, 조조를 꿈꿨던 위나라는 3년의 짧은 왕조가 되었다. 모용씨의 전연은 염민을 멸망시킨 10수년(370) 뒤 저족의 전진에게 멸망되었다. 물론 전진도 역사의 혼돈 속에서 파멸했다. 전진의 황제 부견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 전진의 황제 부견은 5호 16국 모두를 품으려고 했다. 부견은 오만해졌다. 소련이 훗날 그랬듯이 부견은 민족성을 깎아 내렸다. 민족들을 강제 이주시켜 비참한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

부견은 80만으로 동진을 쳤다. 부견의 군대는 숫자는 많았지만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통제가 어려웠다. 이는 필연적이었고 오합지졸이었다. 미국처럼 되고 싶었던 부견은 그만치 성숙된 사회를 갖지 못 했다.


한족들이 단합되어 있던 동진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부진의 군대를 파멸시켰다. 부견은 수도로 도망쳤지만 목숨을 잃었다.



@1998년 2월에 청아 출판사의 '이야기 중국사'를 읽고 비분강개(?)하여 대충 썼습니다. 그야말로 '위험한 세계사'죠.... 니그라토.


2009년 6월 23일 역사와 인간에 대한 약간의 이해력을 얻어 조금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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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암살자 - 1997[판타지] 17.06.26 213 0 11쪽
33 쇼펜하우어의 지행일치 - 1995[역사] 17.06.26 261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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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영혼 결혼식 - 1999[SF] 17.06.26 199 0 3쪽
24 넝마주이의 죽음 - 2012[현대] 17.06.26 177 0 30쪽
23 김은 노숙자다 - 2012[현대] 17.06.26 157 0 2쪽
22 신림역 살인마 - 2011[현대] 17.06.26 136 0 30쪽
21 헤이 파리마왕 - 1995[판타지] 17.06.26 171 0 19쪽
20 히키코모리 방콕기 - 2011[현대](작은 상 탐)[문장 소설집] +1 17.06.26 163 1 30쪽
19 세이브 - 1998[SF] 17.06.25 72 0 11쪽
18 속도의 절대자 - 1997[SF] 17.06.25 410 0 10쪽
17 나이팅게일 - 1996[현대] 17.06.25 50 1 27쪽
16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 - 2008[SF] 17.06.25 117 0 2쪽
15 피자는 구토 - 2009[SF] 17.06.25 106 0 3쪽
14 사반트 후작국 - 2010[판타지] 17.06.25 58 0 3쪽
13 경국지색 - 말희 - 2009[역사] 17.06.25 62 0 16쪽
12 새로운 하늘 - 1차판 - 1999[SF] 17.06.25 403 1 47쪽
11 달은 살아있다 - 1999[SF] 17.06.25 151 0 5쪽
10 목에 달린 입 - 1997[스릴러] 17.06.25 96 0 15쪽
9 지옥의 법칙 - 1997[SF] 17.06.25 73 0 13쪽
8 시간세무서 - 1999[SF] 17.06.25 126 0 6쪽
7 미래에 굶어죽다 - 1998[SF] 17.06.25 96 0 5쪽
6 프림 커피 - 1995[현대] 17.06.25 188 0 17쪽
» 후조의 마왕 석호 - 2009[역사] 17.06.25 72 0 23쪽
4 생명주의자 - 1999[SF] 17.06.25 79 0 6쪽
3 돼지 멱따기 - 1997[현대 + 역사] 17.06.25 104 0 6쪽
2 천막 노인의 말 - 1998[현대] +1 17.06.25 268 1 5쪽
1 동급생 - 1998[현대] +1 17.06.25 823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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