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세무서 - 1999[SF]
시간 세무서
김찬은 수천 조 분의 1초 단위로 나뉘어 있는 평행 우주들 가운데 하나로 뛰어들었다.
그곳엔 막 탐사를 하려는 녀석이 하나 있어서 김찬은 그를 죽이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김찬은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김찬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주였던 티아메트를 전자기 생체 공학으로 합성한 다음 세계 각지에 출몰케했다. 티아메트는 일곱 머리로 일곱 가지 브레스를 쏘아대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크림슨 드래곤 마냥 성층권에서 마하 50으로 쳐내려오는 모습은 신화가 되기에 충분했다.
티아메트가 바라는 건 한 가지, 싱싱한 처녀들이었다. 싱싱한 처녀들을 조달하기는 쉬웠다. 석유 화학 물질이 산업 혁명으로 생태계에 다시 되먹임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처녀들 가운데 아름다운 10%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여러 사회들은 시나브로 서로 비슷하게 바뀌어갔다. 김찬은 그것을 적어내려갔다.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혹시 사업에 도움이 될 지 몰라서였으나 그것은 곧 컴퓨터에게 맡겨졌고 그런 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곧 잊게 되었다.
타자화된 사회들은 절망, 분노, 체념에 휘감겼고 서로 딸을 뺏기지않고자 점차 서로를 멀리하고 경쟁하게 되어갔다. 그들은 어떻게든 다른 사회를 정복하려고 들었다. 그래야만 노예 처녀들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들은 자꾸만 폭력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럴수록 처녀 숭배 사상은 드높아져 교묘한 고리가 짜여져갔다.
티아메트는 조혼 풍습을 행하는 사회의 권력자들을 살육했다. 권력자들은 조혼 풍습을 막으려고 혈안이 되어갔다. 티아메트는 월경을 하고, 나이가 13살에서 24살 사이에 있는 처녀만 잡아갔기 때문이었다. 티아메트가 가장 많이 잡아가는 처녀의 연령층은 14살에서 17살 까지로 맞춰졌다.
곧 세계는 티아메트를 서로 다른 이름의 최고신으로 섬기는 종교 체제 하나로 그들이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재편되어 갔다. 처녀를 바치는 것은 공공연하고 화려하며 성스럽게 포장된 의식, 보수주의 쇼가 되었다. 티아메트는 처음엔 잔폭하기 짝이 없었으나 차츰 근엄하게 되어 그들과 장단을 맞췄다. 그 편이 더 값싸게 먹혔다. 똑같은 구조가 되었으므로 자명한 일이었다. 가장 끈덕지게 버틴 건 드래곤에 대한 혐오가 가장 극렬하던 페르시아였으나, 결국 오르마즈드는 티아메트의 형상을 지닌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같은 구조 아래서 가능한 모든 참극이 벌어졌으나 김찬은 그런 걸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티아메트를 조종하고 잡아온 처녀들을 관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얽히고 섥킨 관계들 따위는 티아메트의 물리력으로 단숨에 끊어졌다. 밧줄이 조각 조각나 못 쓰게 되는 일 따위를 생각할 신경 세포 조각은 김찬의 머리엔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얼마못가 김찬은 1억 명이 넘는 처녀들을 엑기스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처녀 엑기스를 정력제로 팔아넘길 차례였다. 정력에 좋은 성분들은 이미 다 밝혀져 있었고 얼마든지 안전하게 합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늙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연에서 추출한 정력제를 선호하고 있었다.
김찬은 한 가지 사업을 줄기차게 몰고 간 게 잘한 것이라고 여겼다. 엄청난 엑기스가 쌓였고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을 터였다. 부자가 되어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별들을 녹화시킨 다음 부족들을 풀어서 충분히 번식되고 난 뒤에 티아메트들로 처녀들을 잡아들이면, 우주의 별들마다 1억 병 이상 씩의 처녀 엑기스를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그들 부족들이 자신들의 세상 주변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으로, 티아메트의 행동을 지극히 도덕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더욱 철저하게 모르도록. 생명 유지 장치들을 신의 섭리로 여기도록 해야 한다. 김찬은 그것에 필요한 가지 가지 과학 지식들을 악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수요는 충분하다.
그로테스크하게 몸을 부풀린 몇몇 늙은 한국인들은 평균 몸 둘레가 10광년이 넘으면서도 육체 밀도는 20세기랑 똑같았다. 그들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었고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갖고 그것들을 추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세무서 직원들이 찾아왔다.
김찬은 도망쳤으나 곧 따라잡히고 말았다. 직원들은 언제나 최첨단 장비를 사용한다.
직원들이 말했다.
"당신은 타임 터널을 통과할 때 세금을 물어야한다는 법령을 어겼습니다"
"세금을 왜 내야하지?!"
직원들은 키득거렸다. 그들이 입을 모아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정력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소? 그것과 똑같은 이유요. 우리 밥그릇은 타임 터널 통과세 밖에 없단 말이오. 타임 터널은 초시공의 몇 군데 밖에 만들 수가 없소.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유지할 수 있고"
"사기치지 마. 당신들은 가짜 진공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마음껏 뽑아서 쓸 수 있잖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으면서 더욱 더 많은 걸 탐하고"
"우리나 당신 같은 부류는 생존이 아닌 경제성을 쫓는 것이오. 19세기나 20세기 같은 옛날에도 모두 다 같이 생존할 수 있었소. 천박한 것들하고 말이오. 이윤을 극한 추구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만드는 경제성만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절대 진리란 걸 깨닫지 못하던 시대였소. 행복이 팽창욕을 만족시키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생존할 수 있던 바보들의 세상이었소.
타임 터널 통과세 미납은 즉결 사살이란 건 알고 있을 것으로 아오. 당신은 운 나쁘게 걸린 거요"
직원들은 김찬을 감마 펄스 레이져로 죽여버렸다. 주인을 잃은 티아메트가 미쳐 날뛰는 건 직원들의 소관이 전혀 아니었다. 직원들은 김찬이 남긴 자료들을 챙기며 잡담을 했다.
"처녀 엑기스 사업이라... 괜찮은데. 비싸게 분양할 수 있겠어"
****************
1999.11.15.니그라토.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