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그라토 기타 단편 모음

판타지 워즈 에피소드 1의 237제곱 - 1999[SF판타지]

판타지 워즈 에피소드 1의 237제곱

인간 마법사인 노케드르는 레이더 앞에 붙어서 핸드폰을 끼고 마법 공부를 하고 있다. 음, 취, 음음, 취, 파이어, 음, 취, 음음, 볼트, 음음, 취, 파이어 볼.

-야, 이 노옴! 감히 바닥에 파이어 볼을 쏴!

엄청난 목소리는 핸드폰 안에 가득 울리는 비트 박스 헤비메탈 음 보다도 높고 강렬했다. 노케드르는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드워프 다케먼이 온 몸을 벌겋게 달구고 노케드르에게 씩씩거리며 다가선다. 한 발 한 발 아장아장거리며 온다. 엄청난 근육, 120센티가 조금 넘는 키, 넉넉한 금발 수염. 나는 드워프다, 하고 온 몸에 써붙인 것 같은 모습이다. 노케드르가 질겁을 한다.

-이봐요, 다케먼. 바닥이야 아이언 골렘들이 금새 치울 거 아뇨?

아닌 게 아니라 아이언 골렘들이 나타나 바닥을 치우고 있다. 금속질로 번들거리는 아이언 골렘들의 근육은 전혀 금속답지않게 움직이고 있다. 땀도 표정도 없다는 점이 아이언 골렘다울 뿐.

다케먼이 그 모습을 보더니 숨을 고르고는 노케드르 옆으로 와서 의자에 앉는다.

노케드르가 말한다.

-다케먼, 이상한 거 없나요?

-뭐가?

-오늘날 25개 나라가 서로 싸우고 있지요.

-그런데.

-나라의 흥망성쇠 따위엔 관심도 없는 드워프가 왜 이런 데 관심 가지면서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겁니까?

-드워프가 좋아하는 게 뭐지?

-술, 이성, 보석.

-바로 그걸 얻으려는 거다. 우주엔 에틸 알콜 구름대가 심심찮게 발견되지. 전쟁터니까 매춘 사업이 넘쳐나고, 보석은 다이아몬드 별에 전자기 폭풍을 통한 루비나 샤파이어까지 막대해. 오리하르콘이나 미스릴 광맥도 아주 가끔씩 나온다구

노케드르랑 다케먼은 커다란 전함 안에 타고 있다. 안쪽에 숲에 도시에 바다까지 있는 전함으로 길이가 250km나 된다. 이 전함은 딱 평균 급의 전함으로 이런 전함만 있다고 가정했을 때, 질량으로 환산한 우주 전체 전함들의 숫자는 960억 척이다. 실제로는 그 보다 약간 많다고 한다. 인간, 드워프, 드래곤뉴트, 드래크로니언, 스콜피언 맨, 리자드 맨, 데몬, 데블, 엘프, 뱀파이어 정도가 이런 전함을 건조할 능력이 있다. 웬만한 전함 하나 부서지면 몇 억의 지성체 목숨이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노케드르가 다케먼에게 묻는다.

-전쟁을 끝내고 싶지는 않나요?

-그거야 전쟁을 일으킨 놈들 사정이지. 드래곤뉴트, 인간, 드래곤, 스콜피언 맨, 리자드 맨, 굴, 오크.... 너무 많군. 그런 것들이 도무지 전쟁을 멈추려고 하지 않잖아.

보석, 보석. 보석이 너무 많았다. 보석 먹으면 진화하는 드래곤들이 보석이 넘쳐나는 바람에 엄청나게 강해졌다. 지금은 웬만한 전함 보다도 센 드래곤들이 서로 날개를 부딪치며 우주를 누비고 다닌다. 게다가 원소 변환식 연금술까지 발달하는 바람에 황금도 막 나오고 있다. 드래곤은 황금 침대에 누워 자야 거뜬해진다. 결과 드래곤이 너무 강해졌다. 금시조나 가루다도 요즘엔 드래곤을 많이 먹어서 더욱 강대해졌다. 가끔 가다 작은 은하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가루다나 금시조여서 도망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노케드르가 다케먼에게 다시 묻는다.

-정의롭고 굴복하지 않는 드워프여, 기술적 견지에서 묻겠어요. 사이버네틱스, 인격 공학, 생명 공학, 우주 공학, 초시공 공학, 권능 공학까지 나왔는데도 우리 정체성은 왜 그대로인 겁니까? 80일에 한 번 신경 세포를 뺀 모든 세포가 교체되는 종족이 인간이고 드워프도 그거랑 엇비슷하다고 알고 있는데

-니네 정체성이 언제 그대로였냐?

-예?

-드래곤, 엘프, 오크, 드래곤뉴트, 드래크로니안, 데몬, 데블, 굴, 퓨리아이, 라미아, 머맨.... 별의별 오만 종족들이랑 결혼해서 하프링 만들 수 있는 게 인간 아니냐. 호문쿨루스를 진화시켜서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종족이 인간이고 말야. 정체성이 하도 엉망진창이라서 그 어떤 과학 기술이 나와도 감히 더이상 어쩔 수가 없는 것 뿐이야. 하프링 숫자가 종족 전체 숫자의 5분의 1이나 되잖아.

-....그런가요?

-니 족보에도 딴 종족 많이 섞여 있지?

-예. 신, 엘프, 오크, 스핑크스, 라미아, 멘티코아, 하피....

-그만.

다케먼이 의자에서 팔짝 뛰어내리더니 의자를 붙든다.

노케드르가 레이더랑 스크린을 본다. 마나는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힘이기에 마법사란 직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리학이랑 융합되어 더더욱 강대해졌다. 리버스 그래피티로 반중력을 일으켜 초팽창을 집어던지고 일루젼으로 헷갈리게 만드는 등 활약이 눈부셔졌다. 기사나 전사들은 모두 전투기나 마장기의 파일럿으로 직업을 바꿨다. 궁사들은 오퍼레이터가 되어 레이더를 관리하고 함포를 쏴갈기게 되었다. 음유시인들은 음유시 거대 생산 조직에 편입되었고 신관들의 활약은 마법사 못지않다.

다케먼이 심심풀이로 초공간 이동 의자를 만들고 있다. 뚜다닥 뚝딱! 오예, 신기록이야. 45.123초 밖에 안 걸렸어!

으휴, 빌어먹을 드워프들. 저것들은 망하지도 않나..... 마법도 못 쓰는 것들이 우주를 주름잡고 있잖아. 혹시 드워프가 술, 이성, 보석을 얻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닐까? 정의롭다는 드워프가 설마. 아냐. 드워프 고집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가능할지도 몰라.

노케드르의 모순적 의심은 그칠 줄 모르고 타올라갔다. 노케드르의 의심은 진실이 어떤 것이든 전쟁 속에서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Fin]

199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