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6세대의 초상 - 2015[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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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86세대의 초상
아들이 자살했다.
“못 난 놈!”
김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다. 김의 집안은 식모를 둘만치 부유했다. 김은 14살 때 식모를 강간했고 집안에서는 압력을 넣어서 식모를 자살시켰다. 식모는 가난했기에 식모살이를 했고, 가난은 죄악이었다. 김은 명문대에 들어갔다. 김은 동기들과 함께 심심풀이로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을 했다. 전두환은 거의 모든 학생을 잡더라도 기껏해야 고문이나 좀 하고 풀어주었다. 김은 민주화 운동 선배가 되어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신을 위로해 달라면서 후배 여학생들과 난교하고 다녔다.
김은 전두환 시절이라 호황기였기에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골라서 갔다. IMF가 왔을 때 김은 윗선도 신입사원도 아니었기에 퇴직을 피했다. 노무현이 100조를 토지 보상금으로 풀었을 때 김의 재산도 덩달아 올라갔다. 이제 김은 복지와 연금을 강화해서 아랫세대를 뜯어 먹으면서 살 궁리했다. 이제 김이 속한 86세대 즉 80년대 학번에 60년대 출생은 한국에서 제일 부유한 세대가 되어 있었고 그러면서도 복지에 가장 찬성했다. 그렇게 김은 전형적인 86세대로서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모두 업수이여기고 모두 뜯어먹었다.
그 와중에 김의 아들이 자살했다. 그 이전에 김은 외아들을 닦달했다. 김의 외아들은 공부도 운동도 잘 못 했고 친구도 없는 주제에 부모인 자신을 비난했다. 김이 보기에 아들은 도저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릇이 못 되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진 이후 김은 아들을 내쫓았다. 김은 외아들이 노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귀찮게도 자살했다. 노숙자가 될 깜냥조차 김의 외아들에겐 없었던 것이다.
김은 아들을 장례식 없이 화장했다.
김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김은 아들을 낳을 때의 김이 아니었다. 뇌조차도 물질이 한 달이면 다 교체되는 세상에서 자아의 연속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김은 아랫세대에겐 분발하라고 지껄이긴 했지만, 실은 자아는 없고 모든 것은 우주적 인과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노력하라는 의견은 사기극이고 모든 것은 우주적 남 탓으로 돌릴 일에 지나지 않는다. 김도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지 못 했다면 지금처럼 대기업은 취미로 다니면서 임대업자도 하는 삶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신은 없고 죽으면 끝인데 기생충에 불과한 아들이 죽은 건 잘 된 일이었다. 김의 늙은 어머니는 김에게 재산을 증여해준 10년 전에 연락을 끊었다. 아마 지금쯤 치매에 걸려 길거리를 떠돌다가 객사했을 것이다. 김에겐 유산도 못 주는 부모 따위 미련 없었다.
어느 날 김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인터넷 소설가 니그라토의 글을 보았다.
니그라토 글의 요지는 아래와 같았다.
천문학자 카르다세프는 말했다 문명 1단계는 한 행성의 에너지를 모두 쓸 수 있다. 문명 2단계는 한 태양계의 에너지를 모두 쓸 수 있다. 문명 3단계는 한 은하계의 에너지를 모두 쓸 수 있다. 여기에 세계적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문명 4, 5, 6단계를 추가했다. 문명 4단계는 한 우주, 문명 5단계는 여러 평행 우주들의 에너지까지 모조리 쓸 수 있다. 문명 6단계로 가면 개개인이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이와 같다면 문명 6단계 또는 그 이하의 문명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나 혹은 그 외 의식 있는 지성들을 위해 사후세계를 가능하다면 마련해준다 해서 이상한 상상은 아니다. 사후세계를 만들어줄 정도의 문명이라면 사악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애초에 효율성만 따진다면 사후세계를 만들어주는 낭비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착하게 언행을 생전에 하는 편이 낫다. 사후세계가 없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지만, 사후세계가 있고 그걸 마련해주는 자가 착하다면 사후에 심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후세계를 마련해주는 자가 악하다면 어차피 악당은 악당을 봐주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류는 향후 도덕을 유지하면서 문명 6단계가 되는 길을 가야 한다. 문명 6단계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지극히 오래 걸릴 것이므로 그동안의 흥망성쇠는 김과 같은 악마 부자들을 무수히 삼킬 터였다. 문명 6단계라면 물질 교체로 자아의 연속성을 부정당하는 문제도 어쩌면 해결될 수도 있다.
설령 만약 문명 6단계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실망할 것은 없다. 나는 생각하고 느끼므로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이 세상이 무(無)가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한 것인데, 최선의 방향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해서 나쁠 것은 없다.
김은 약간 섬뜩했다.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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