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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라토
작품등록일 :
2017.06.25 11:55
최근연재일 :
2024.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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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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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쪽

님프의 동굴 - 1998[판타지][미완]

DUMMY

님프의 동굴 The Nimf of Cave






쟝르 : 크툴루 신화 판타지



1부 : 탄생


1

비가 그치다. 아름다운 이슬방울들이 잎새마다 매달려 새로이 다가올 생명력의 시대를 축복하고 있을 것이다. 버섯, 이끼, 풀, 나무마다 맺혀 있을 이슬들은 상상만해도 영롱하다.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님프Nimf 한 사람이 새벽을 맞이하려고 가지들을 벌리며 기지개를 켠다. 겉으로 보기엔 말라붙고 가냘픈 한 관목일 뿐이다. 나무 껍질들이 부드러워지고 갈라진 부분들이 달라붙는다. 가지들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동그란 부분이 아름다운 얼굴로 바뀐다. 벌려진 가지들이 짧아지고 형체를 갖춰간다.

이제 한 여성이 땅 위에 선다. 사람의 몸과 다른 점은 배꼽이 없다는 점 하나 뿐이다. 그녀가 두 팔을 활짝 벌려 옅은 단풍나무 잎새빛 살결의 알몸으로 더욱 많은 햇볕을 받고자 준비한다. 님프는 여느 나무처럼 햇살을 먹고 산다.

그녀가 들녘 학교에서 배운 주문을 외운다.

[해님이여 떠올라 주세요!]

순간 해가 떠오른다. 해는 마치 물 위에 뜬 것인 양 흔들린다.

그녀, 나디가 고개를 돌린다. 나디의 게으른 피붙이들도 서서히 사람과 닮은 꼴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나디의 눈에 아름답게 비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풀들이 살랑거리며 이슬 방울들을 떨구어 내고, 수많은 세월을 견뎌낸 떡갈나무가 근엄한 표정을 덜어내고 풀들의 장난에 동참한다. 나디가 수풀을 더 잘 보고자 해에 등을 돌리고 보드럽고 파릇파릇한 이끼를 밟으며 나아간다.

빛으로 된 비늘을 지닌 양 반짝거리는 자그마한 개울이 나디와 나란히 흐른다. 개울가의 돌들이 이끼 덕에 미끌거리지만 나디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다.

해와 함께 떠오른 무지개가 아직 어슴푸레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다. 무지개는 해와 함께 동녘에서 떠오른 맑은 하늘을 부르고 있다. 무지개 스스로가 좀더 아름답고 밝아 보이도록.

나디의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 나디가 발뒤꿈치를 쳐들고 작고 통통한 배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소리를 친다.

[야아!]

밤나무가 가지를 조금씩 뻗고 있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들린다. 어린 도토리나무가 낙엽들 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들쑥들이 들쑥 날쑥 나있고 그 사이 사이로 고사리들이 작은 잎새들을 부끄럽지만 상냥하게 내밀고 있다. 나디가 그 잎새들을 살짝 매만진다. 토끼풀들 사이로 도마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나디가 도마뱀을 가볍게 쥔다. 작고 차갑고 마른 몸이 잡힌다. 나디는 적잖은 양감에 놀란다. 햇살을 받아야만 원기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그들. 그러기에 햇발을 사랑하는 그들. 나디는 도마뱀에게 님프와 닮은 데가 있다고 여기곤 스스로가 쥘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도마뱀을 예의 바르게 놓아보낸다. 다람쥐 한 마리가 그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덤불 안으로 사라진다. 개울이 사람의 말로 규정지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흐른다.

나디가 개울로 뛰어든다. 물거품이 일고 작은 물결이 인다. 송사리며 피라미들이 나디의 다리 사이가 갑문이라도 되는 양 줄 맞춰 지나간다. 나디가 허리를 굽혀 손바닥에 물을 모은다. 송사리들이 몇 마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손바닥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이 좋다.

나디가 개울에 몸을 오롯히 담근다. 새벽이라 물이 약간 차갑지만 님프이기에 즐겁게 있을 수 있다.

나디가 들녘 학교가 곧 열릴 자그마한 들을 본다.

개양귀비가 흐드러지게 자라있다. 꽃이 피지는 않았다. 나디의 아름다운 초록색 눈망울에 들 위에 놓인 진흙 덩이들이 맺힌다. 수업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들인데 님프의 곱고 긴 손가락으로 빚어낸 진흙 조상을 응달에서 잘 말려서 들 위에 펼쳐놓았다. 나디의 손재주는 다른 님프들에 비해 조금 무디었지만 다른 종족들이 보면 깜짝 놀랄 수준은 되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형체를 잃고 무너져내렸지만 들판의 조화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도리어 조상이 그저 덩어리가 되는 바람에 자연스러움이 높아졌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운 조상들이 빗물에 씻겨버려서 나디는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상관없다. 또 만들어서 벌려놓으면 되는 거다.

님프들이 상당수 깨어났다. 나디가 외친다.

[얘들아! 이리 와 나랑 놀자]

동갑내기 님프들이 다가온다. 나디가 먼저 물장구를 쳐 동갑내기들에게 끼얹는다. 다른 님프들이 복수를 다짐하며 뛰어든다. 그녀들의 손이 닿을 때마다 물결이 튀어 올라 물방울로 변한다.

해에서 흘러나와 무지개를 향하는 듯한 개울에 나디가 몸을 허리까지 담그더니 신나게 노래 부른다. 나디가 부르자 물장구엔 다소 싫증이 난 다른 님프들도 따라 한다. 님프들이 징검돌 위에 조르르 앉아 발로 물을 차며 장단을 맞춘다.


학교 가긴 정말 싫어.

물장구가 좋아.

딱딱한 것들은 진짜 싫어.

좋아하는 애들만 배우라 그러고,

우리는 들로 냇가로 놀러가자.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뒹굴며 물장구를 치자.

고마운 해님을 바라보며


[물장구를 치자!]

나디가 다른 님프들에게 물을 끼얹는다. 저것이... 에잇, 복수다! 다시 님프들이 즐겁게 물장구친다. 곧 언니 님프들이 들녘에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불러 놀이보다 재미없는 부분이 더 많을 수업에 동참시킬 것이다. 나디가 속으로 중얼댄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2

나디가 외친다.

[저길 봐!]

님프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해가 언덕 꼭대기에 걸려있는 가운데, 해를 배경 삼아 빛으로 이루어진 전사들이 나타난다. 말발굽 소리가 간간히 새소리가 들려올 뿐 아름다운 침묵에 싸여있던 님프들의 숲에서 정적을 몰아내며 밀려든다. 햇살에 비친 기사들의 은빛 갑옷이 빛 그 자체로 보이고 있다.

기사들이 다가섬에 따라 떡갈나뭇잎들이 햇살을 약간씩 가로막아 은빛 플레이트 메일Plate mail 위에 섬세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모험자 집단의 대장, 기사 더그가 투구를 벗어 안장에 걸쳐놓는다. 더그는 육중한 몸집 위에 얹혀진 머리의 코에서 누런 콧물을 거칠게 내뿜더니 손가락으로 쓱 훔쳐 님프의 대지에 던져버린다. 더그에게 땅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더그의 몸뚱아리는 온갖 병균의 집합소나 다름없다. 건강하기 때문에 버텨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더그는 병균에 시달리고 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높고 긴 잘생긴 코를 지녔다.

드디어 님프를 찾아냈다. 풍기를 문란케하는 괘씸한 종족들. 님프를 안 보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못된 습성 가운데 하나인 참견하고자 하고 훔쳐보고자 하는 습성을 없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굳이 님프의 알몸을 보려고 숲 속을 끊임없이 헤메는 족속들이 넘쳐날 것이다. 풍습을 정화하는 방법은 단 하나. 그 대상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 뿐이다.

더그가 그의 옆에서 말 위에 올라앉은 검은 하드 레더Hard leather를 걸친 사람에게 묻는다. 검은 하드 레더를 두른 인물은 넓지도 좁지도 않은 턱에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다. 얼굴은 젊지만 위엄이 있다.

-프리스트Priest 님, 님프들을 어떻게 할까요.

형식적인 질문이다. 프리스트라 불린 사내, 쟝 되쟝되미르의 얼굴 가죽이 분노와 자기 도취로 사정없이 떨린다. 해가 쟝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다. 숲의 빛깔이 연하게 바뀌어간다. 그가 나직이 입을 연다. 커다란 눈이 더욱 크게 떠진다.

-님프는 이교도들이 숭배하던 악마들이 만들어낸 어둠의 종족들이오.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죽여야하오. 그럼으로써 신이 만드신 땅을 깨끗이할 수 있는 것이오. 저들에겐 영혼이 없소. 마음도 없소. 따라서 저들을 죽이는 것은 저들이 지닌 저주의 육신에 억지로 담겨 있는 원소들이 자유롭게 되어 보다 높고 훌륭한 일에 쓰이는 것을 뜻하는 것이오. 오. 추위, 더위, 메마름, 젖음. 이들 세상을 이루는 궁극적인 네 원소가 님프의 더러운 몸에서 벗어나도록, 저들 정의의 사도들을 비호해 주십시오. 그대들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고맙소. 총공격!

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더그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감수성의 편린들마저 마음의 깊은 속에서 모조리 몰아내버린다. 감수성이 약간 남아있었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나 더그가 약간의 불쾌감을 느낄 수 있게 몰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궁수가 롱 보Long bow를 힘있게 당긴다. 화살이 바람을 끊는다. 화살이 한 님프의 작고 얄팍한 가슴을 꿰뚫고 다른 님프의 어깨를 날려버린다.

그 뒤를 따라 수많은 화살들이 살별처럼 쏟아져내려 님프들의 부드러운 살결을 찟어버린다.

궁수들이 물러나자 기사들이 위풍당당하게 헬바드Hallberd를 쥐고 님프들에게 달려든다. 그들의 찬란한 플레이트 메일은 성벽과도 같다. 그 어떤 화살도 그들의 플레이트 메일을 뚫을 수 없다. 님프에겐 활조차 없다.

님프들의 가녀린 몸이 날카롭고 억센 헬바드에 뚫린다.

기사들이 무기력한 적을 잡아 잔인하게 처리하는 즐거움을 느낀지가 언제였던가. 농부의 아낙네를 붙잡아다 돌려가며 성폭행할 때를 빼고는 그런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다. 역시 더그를 따라 모험자 집단에 합류한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

님프들이 쓰러진다. 오랜 세월동안 힘들여 키워낸 피들이 헛되이 흙에 스며든다. 토끼풀들이 님프의 핏기 가신 몸을 조심스럽게 받아낸다. 되도록이면 멍을 적게 들도록 하려는 것이다. 곧 벌레며 곰팡이에게 훼손되어 버릴 몸이지만 잠시동안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님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시체를 보며 한 번 울 수 있게 도우려는 것이다.

보병들은 큼직한 십자가가 그려진 체인 메일Chain mail을 입고 있다. 그들이 팔치온Falchion을 마구 휘둘러 님프를 친다. 팔치온은 숲에서 길을 뚫을 때 가지를 치고 잎새를 잘라버리는데 쓰이는 칼이다. 그들에게 있어 님프는 정복되어야 마땅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쟝은 후방에서 궁수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쟝은 스스로는 죽기 싫으면서 남에게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는 선동꾼인 것이다. 대부분의 집단에 존재하여 남을 등쳐먹는 기생충. 쟝이 크게 말한다.

-님프는 하늘의 마신 요브, 바다의 마신 냅튠, 지옥의 마신 플루토, 땅의 요녀 헤카테의 자손들인 것이오. 저들은 우리의 이성에도, 위대한 신성에도 적이 되는 자들이오.

모험가들이 님프들을 강간하고 음란한 낙서를 그려넣고 죽이느라 진격이 느려진다. 모험가들에겐 님프의 죽음에 대한 경의 따위가 없다. 같은 사람을 죽였다면 묻어주기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없는 악마의 창조물 따위에게 경의를 표시할 이유는 없다. 님프의 주검에서 병균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일 뿐이며 모험가들이 떠난 다음이 될 것이므로 병균에 감염될 위험성도 없다.

첫번째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님프들이 무지개를 뒤로 하고 한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침 안개가 작은 산을 이루며 시원스럽게 언덕을 감싸고 있다. 들꽃들이 훈훈한 향기를 내뿜어 피가 풍기는 이질적인 비린내를 공기 중에서 사라지게 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님프들의 숫자는 침략해온 모험자들보다 훨씬 많다. 3배 쯤 된다. 님프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님프가 말한다. 그녀는 다른 님프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보일 뿐이다. 님프는 평생에 걸쳐 젊음을 유지한다.

[모두 무기를 들자. 저들은 무기가 훌륭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많고 안개 속에서도 활동을 잘 할 수 있으니 전력은 거의 대등한 셈이다]

님프들이 단결한다. 나뭇가지, 옻 가지, 돌 따위가 무기이지만 그들에게 힘을 준다. 무수한 강대한 종족들 사이에서 님프가 굳건히 살아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많은 인구에서 터져 나오는 단결력이었다. 오늘 그것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영원히 발현되지 않기를 바라던 그것. 그 어떤 님프도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든 것이다.

인구 2000만의 잉카 제국이 160명의 압도적 병기를 지닌 침략자에게 무너진 까닭은 무기가 열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잉카는 부족들 간에 알력이 극심했다. 단결력이 모자랐기에 잉카는 무너진 것이다. 님프들은 끈끈한 정과 애타심, 익숙한 생활 습관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힘을 보여주기로 한다.

님프가 한데 뭉쳐 돌팔매질을 하자 화살을 쏘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바람이 모험자들 쪽으로 불고 있어서 궁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화살이 님프들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쟝이 외친다.

-괘씸한 자연 같으니! 인간을 위해 신께서 창조한 자연이 스스로의 직분을 저버리고 악마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니! 당장 숲을 태워버리시오! 이교도가 모여들고, 모든 이교의 상징들이 모여있는 악마의 숲을!

더그에겐 쟝의 말 자체에 찬성할 생각 따위는 없다. 부싯돌을 따닥거린다고 불이 따라 일어날지도 의문이지만 숲을 태웠다가는 자신들이 불을 뒤짚어 쓰기 생겼으므로 더욱 실천할 생각이 없다. 바람의 방향이 뜻하는 바도 모르는 무식쟁이같으니. 아니다. 쟝은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희생하고 싶다면 맘대로 해도 되지만 그럴 생각이 없는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아다오. 더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님프를 너무 얕본 것 같다고 판단한 더그가 님프의 마을 둘레를 돌며 님프가 변한 나무들을 클레이모어(Claymore)로 쳐대고 화톳불로 그을려버린다. 핏빛 진물이 흘러내리며 비명 소리가 울린다. 쟝이 고래 고래 소리지른다.

-저것이 바로 마녀의 마력의 근원이오!

쟝은 님프가 마녀에게 도움을 준다는 자신의 가설이 증명되었다는 생각에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쟝이 독수리 깃털 펜으로 양피지에 그 가설을 기록한다. 언덕 위의 님프들에게서 동요가 인다. 그들의 소중한 자매들이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그가 중얼댄다.

-그래, 귀여운 것들. 어서 내려와라. 내려와서 이 귀여운 오빠의 애무를 받아야지. 그런 다음 저항하지 말고 죽는 거다. 여자들에게 반항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지.

떡갈나무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나무들이 흠짓 놀라며 으스스한 소리를 낸다.

거인의 손길로 다듬은 듯한 북쪽의 화강암 절벽에서, 해마저 피해가는 그 험준하고 거대한 절벽을 서슴없이 통과해 오는 한 사내가 더그의 눈에 잡힌다. 그 절벽은 더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땅 위로 치솟은 것이 아니라 큼직한 골짜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골짜기 아래에서 무섭게 바위들을 때리는 강의 울부짖음과 소용돌이도 더그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땅에서 솟은 듯 사내가 약간 위태로운 걸음으로 더그에게 다가선다. 여행자인 듯 허름한 로브Rob를 걸치고 로드Rod에 몸을 맡긴 체 힘겹게 걷고 있다. 개 짓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더그가 사내에게 서둘러 뛰어간다.



3

-오! 자네가 왔군.

더그가 기뻐하며 크릭을 꽉 껴안는다. 크릭이 치렁한 보라빛 머리카락 아래에 있는 연보라빛 입술을 간신히 떼어 말한다.

-비켜.

더그가 크릭을 떼어놓는다. 크릭의 얼굴엔 핏기 하나 없다. 전에도 병자같았지만 지금은 더하다. 키는 컷지만 너무 말랐다.

크릭은 사냥개들을 이끌고 왔다. 재갈이 물러져 있다.

-마법을 부릴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쟝이 끼어든다. 발악하듯 말한다.

-마법은 사악한 기술이오. 이교의 기술이란 말이오.

크릭이 입술을 달삭거린다.

-신께서 창조하신 것 가운데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소. 쓸모가 있기에 여기 있는 것이오.

더그가 힘있게 말한다.

-지금 님프들은 싸울 준비를 갖추었소. 아깐 기습이 성공해서 단 한 사람의 목숨도 상하지 않았지만 님프가 준비한 이상 다를 것이오. 님프의 반사 능력과 속도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고 힘도 사람보다는 세지요. 더구나 보아하니 지금은 화살을 피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오. 저들의 인식 속도가 느린 건 평화로운 생활에 너무 젖은 까닭일 것이고. 화살 공격도 이제부턴 쉽사리 먹혀들지 않을 것이란 결론이오. 마법을 쓸 수 있겠나? 크릭.

크릭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한다.

-저들이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승산이 있어. 내가 있으니까.

더그가 답한다.

-저들에게 마법사는 없는 것 같았다. 있었다면 벌써 사용했겠지.

아침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해가 물기를 잡아먹으며 하늘을 힘겹게 가로지르고 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을 몰아간다. 해가 님프의 주검들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하늘을 가리려는 것일게다.

박하나무들이 몸을 움츠린다. 그들이 가지를 자라게 하는데 쓰일 양분을 잎새로 돌린다. 더욱 많은 산소를 내뿜어 님프들이 활동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구름이 해에게 다가간다. 숲이 헬쓱해진다

크릭이 고사리를 짓밟으며 무지개를 향해 선다.

삼나무와 참나무들이 크릭의 시야를 가로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육중한 거구들이 가로놓여 있어 눈길을 잡기가 힘들다.

크릭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여전히 님프는 보이지 않는다.

비 온 뒤라 땅이 질척거린다. 님프들은 어리나 늙으나 비 온 뒤의 흙을 밟거나 진흙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문명인인 크릭에게는 불편함일 뿐이다.

길을 잘못 안 덕에 절벽으로 오느라 기력이 다 빠져나간 크릭에겐 더욱 좋지않은 상황이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 크릭은 장화가 진흙탕에 빠져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크릭이 말한다.

-정말 지저분한 곳이군.

더그가 말을 받는다.

-그래도 도시보다야 깨끗하지. 창문에서 가끔씩 오물을 길거리로 뿌려대고, 오크Oke의 대가리를 한 돼지들이 돌아다니며 오물을 먹어대는 도시보다는 말이야.

쟝이 투덜댄다.

-문명의 권화인 도시를 모독하다니. 도시는 마땅히 깨끗함의 상징이어야만 하오. 신께서 스스로의 모습을 따라 만드신 사람 밖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도시야말로 깨끗함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오. 우리가 지금 님프들을 박멸하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오.

더그가 크릭에게 말한다.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삼나무들을 뚫고 하나의 목소리가 크릭의 귀에 울려온다.

[제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디의 절망에 찬 울림이었지만, 크릭이 님프의 언어를 이해할 리도 없고 이해하더라도 다르게 행동할 리 없다.

아직 참나무가 방해된다. 크릭이 언덕을 가운데 두고 돌기 시작한다.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 반대쪽으로 돈다. 삼나무, 삼나무, 삼나무.... 어디로 가나 크릭이 님프를 볼 길은 없다. 발뒤꿈치를 들어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홀려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마법사가 홀린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더그가 보다못해 외친다.

-거인보다 높이 서려면 그의 어깨 위로 올라서야 해.

크릭이 고개를 끄덕이곤 가지가 굵고 실팍해 보이는 참나무 하나를 골라 그 위로 기어오른다. 바람이 거세진다.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도 멀리 가지 못하고 힘없이 내려앉을 정도의 바람이다. 크릭은 님프에게 오롯히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님프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크릭에게 돌을 던져보지만 바람은 돌맹이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님프들은 평소에 돌 던지기를 해두지 않았다.

님프의 장로가 말한다.

[앞으로는 돌 던지기를 수업에 포함시키도록 하자]

[그래요!]

나디가 먼저 큰 목소리로 동조하자 나머지 님프들도 좋아들한다. 지금 해보니까 돌 던지기가 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디가 평평한 돌을 골라 힘있게 던진다. 돌이 평평해서 바람을 받아 약간은 멀리 날아가지만 큰 효과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님프들은 희망이 새록새록 커져 가는 것을 느낀다. 님프들이 돌을 주워 던진다. 몇몇 님프들은 언덕 너머로 가서 돌맹이들을 줍거나 땅에서 파내어 가지고 온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 님프 사회에 분업이 발견된 것이다.

나디와 친구들이 상당량의 열매를 따오거나 주워온다. 위가 차있어야 싸울 수 있는 법. 이곳엔 언제나 열매가 끊이지 않는다. 과일 나무들과 님프 사이의 계약 덕이다. 님프들은 열매를 먹고 나온 씨앗은 양지바른 곳에 잘 심었다.

크릭이 참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땀에 옷이 흥건히 젓었고 얼굴에 실핏줄이 보인다. 나뭇가지들이 몇 차례 부러져 아래쪽으로 떨어져내렸으나 크릭은 계속 오른다. 트롤Troll이 걸터앉아 쉬어도 끄덕없을만치 억센 가지에 크릭이 앉는다. 평소엔 트롤이 올라가도 괜찮았겠지만 비가 그친 뒤 끝이라 나무 조직이 연해져있다. 가지가 부러질 작정을 하고 자그마한 금을 그어가기 시작한다.

크릭이 그것을 간파한다. 크릭이 님프들을 쏘아본다. 이제 님프들이 잘 보인다. 크릭이 주문을 외운다. 정확한 발음과 음량을 써야만 주문의 효과가 생길 것이다. 님프들이 돌을 계속 던지고 있지만 크릭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가죽 주머니에 돌을 집어 넣고 던지는 개인용 투석기같은 것이 님프에게 있었다면 나는 벌써 날아갔겠군. 저들에겐 기술도 조직도 없지. 크릭은 잠시 그렇게 생각해본다. 아주 약간의 동정심이 크릭의 마음 안에서 피어오른다. 그는 쟝과는 달리 독선이 없다. 개인적 원한 따위도 없다. 설사 님프 몇 명이 이번의 공격에서 살아남더라도 더이상의 공격이나 추격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크릭은 한 차례 공격 주문을 쓰기로 더그와 계약했을 뿐이며 그것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크릭의 정신 안에서 하나의 주문이 완성된다. 크릭의 상상 안에서 그것은 따뜻하고 일렁거리는 빛의 공과 같은 것이다. 해를 닮은 생김새다. 크릭의 몸 밖으로 당장 튕겨내지 않으면 크릭 스스로를 태워버릴 마법.

크릭은 이 마법이 좋았다. 그 어떤 감수성을 느낄 겨를이 없다. 크릭이 이 마법을 님프에게 날리는 것은 자기 방어일 따름이다. 날려보내지 않으면 크릭은 손톱 한 조각 못 남기고 소멸될 것이다. 곧 이것은 쏘아질 것이고 언덕을 날려버릴 것이다. 크릭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그뿐이다.

-가라! 마나볼Manaball!

크릭이 온 힘을 다해 마법의 공을 날려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의 생김새는 크릭의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공이란 점조차 크릭의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4

나디는 스스로의 느낌을 믿을 수 없다.

그녀를 뺀 모든 님프가 크릭의 마법에 전멸당했다. 현란한 빛, 고막을 찟을 듯한 소음, 몸에 덮쳐 드는 흙더미, 입 안에 고인 씁쓸한 침. 모든 것이 진실을 웅변한다.

나디는 더그가 있는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개 짓는 소리가 들린다. 사냥개들을 풀어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어째서 쓰지 않았을까. 크릭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님프를 쫓기 위해 데려 온 사냥개인 것이다. 오직 나디를 쫓기 위해 온 존재인 셈이다.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나디는 뛰고 또 뛴다. 저들은 지형을 모른다. 님프에게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암내 따위를 풍길 아무런 까닭이 없다.

갈색의 부식토가 채 썩지 않은 낙엽을 군데 군데 보여주며 널려 있다. 아까시 나무를 덩굴 식물들이 감아오르고 있다. 산딸기가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로 사암들이 노랗게 드러나있다. 나디의 입 안에서 침이 돈다. 산딸기를 먹으려면 자잘한 씨앗들을 씹어야 한다.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딸기 옆에서 머무르며 햇발을 받고 싶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되도록이면 멀리 떠나야 한다.

월계수가 햇살을 담뿍 받고 있다. 나디가 친숙함을 느낀다. 작게 줄인 궁전같은 난초가 월계수 옆에서 빛나고 있다. 난초엔 꿀이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나비, 꿀벌, 등에, 파리 따위가 유채꽃밭 둘레를 떠돈다. 어떤 꽃에 꿀이 더 많이 들어있나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은 꽃 위나 잎새 위 혹은 줄기에 앉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나디가 유채꽃밭에 다가간다. 혀를 내밀고 정밀하게 사용하여 유채꽃의 꿀과 꽃가루를 섭취한다. 도톰한 입술 둘레에 꽃가루가 좀 묻었다. 다른 꽃으로 가서 마찬가지 행동을 한다. 20여차례 정도 반복한다. 이 정도로 가는 여인과 비슷한 몸집을 지닌 님프의 배가 찰 리 없다. 꽃가루 받이를 되도록이면 하라는 의무를 지킨 것 뿐이다.

나디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지금 쫓기는 중이다. 개 짓는 소리가 아련히 들린 듯도 했다.

해가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에 떴다. 너무 높아서 어지럼증을 느낀 해가 금새 떨어질 것 같다. 아직도 이슬이 살짝 맺힌 깊은 덤불 안에서 삵쾡이 한 마리가 힐긋 보인다. 다소 당황한 모습이다. 사냥개들이 자신을 쫓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더그는 사냥감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디는 줄달음친다. 토끼가 나디와 나란히 뛰어가다가 옆으로 몸을 틀어 빠르게 사라진다. 나디가 문득 멈춰서 앞을 본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어딘지 이질적인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건 수컷이잖아!]

나디는 님프의 수컷을 처음 보았다. 그럼에도 수컷인지 금새 알 수 있는 건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겨레의 기억 덕분일 것이다. 님프 수컷은 언듯 보면 꽃 같이 생겼다. 보드러운 잎새가 줄기같이 생긴 부분을 감싸고 있다. 나디는 차곡차곡 싸인 잎새를 헤치고 그 사이에 있는 돌출된 가지에 샅을 끼고 내리눌렀다 올렸다를 반복한다. 선 체로 무릎만 살짝 굽혔다 폈다 하면 되었다.

나디가 양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채 손가락을 쫙 펴고 팔뚝을 양 옆으로 벌린다. 머리를 높이 쳐들고 눈을 감는다. 눈 아래쪽 살갗이 떨린다.

사실 나디는 그냥 스스로와 꼭 닮은 아기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수컷과 힘을 합쳐야 재빨리 튼튼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나디가 앞으로 가려는데 움직이지를 않는다. 개의 것과 마찬가지로 질 안에서 부풀어오르는 것이다. 이미 절정을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느낀 나디가 돌을 집어들어 그 식물의 밑둥을 찍어내어 버린다. 마음이 아팠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디는 샅에서 탯줄 비슷하게 메달린 줄기를 떼어내어 버리고 다시 내달린다. 이제 뱃 속에서 새로운 개체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디가 더욱 큰 책임을 느낀다. 어깨가 점점 무거워진다. 은유가 아니라 실재로 그렇다. 피곤이 밀려오는 것이다.

[안 돼. 쓰러져선 안 돼]

나디가 중얼거리며 계속 달린다. 달리기 하나는 자신있다. 햇살이 나무 틈새로 빗겨 들어와 나디가 갈 길을 인도해준다. 햇살로 만들어진 기둥들이 하나의 길을 이루며 이어진다. 끝없는 빛의 길이 숲에 나있는 듯싶다. 나뭇잎들이 가볍게 흔들리며 햇살을 반사한다. 산들 바람 덕분이다.

어쩌면 지상의 마지막 님프일지도 모를 나디를 큼직한 호랑이 한 마리가 가로막는다. 나디가 깜짝 놀라며 멈춘다.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자 붉은 안이 속속들이 잘 보인다. 광주리같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악의 표상처럼 빛난다.

금새라도 피할 태세를 갖춘 나디 앞에서 호랑이가 걷는다. 호랑이가 가끔 나디를 돌아본다. 어서 따라 와. 너를 보호해줄께. 나디는 호랑이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은 듯싶다. 나디가 발을 옮겨 호랑이를 뒤따라 걷는다.

호랑이는 가끔 뒤를 돌아본다. 그때마다 겁이 난다. 하지만 호랑이가 님프를 잡아먹었다는 말은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어! 나디는 용기를 내어 발을 옮긴다.

한 님프 언니가 어버이를 잃고 애처롭게 우는 새끼 호랑이 한 마리를 키워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호랑이일지도 몰라. 헤헤. 내가 그 언니랑 많이 닮은 모양이지.

찬란한 빛에 싸인 호랑이의 털에선 윤기가 흘렀다. 빛살 안에서 호랑이의 탐욕스런 얼굴은 한없이 복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돼. 나디는 조심 조심 발을 옮겨나갔다. 내 배 안에는 목숨 하나가 자라고 있어. 목숨을 소중히 대하라는 말씀을 배웠지. 어이없이 죽어 간 동료들을 생각하자 나디의 고개는 저절로 숙여진다.

호랑이는 점점 깊은 숲 안으로 나디를 안내했다. 해는 조금씩 서녘으로 기울어져 하루를 이루려 한다. 땅거미가 비구름과 더불어 서서히 누리를 촉촉히 적시려 다가온다. 땅거미가 어스름이 되고 어스름이 밤이 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디는 다소 추웠다. 그런 나디에게 호랑이의 파란 등불같은 눈이 똑바로 박혀있다. 호랑이가 다가온다. 두툼한 발바닥 덕에 소리 나지 않는다.

과연 믿을만한 존재일까. 어두워도 님프의 눈은 제대로 움직인다. 호랑이가 나디의 뒤로 돌아간다. 어느새 이슬비가 내려 나디 둘레에 물로 이루어진 막을 이루고 있다. 비구름 사이로 내려쪼이는 달빛에 비친 나디의 어깨는 너무나 하얗고 자그마하다. 그 어깨가 가볍게 떨린다.

호랑이가 빠르게 움직여 큼직한 몸통으로 나디의 오금을 가볍게 친다.

[헉!]

나디가 놀라며 호랑이 등 위로 넘어진다. 순간 호랑이가 도약한다. 나디가 서둘러 호랑이의 털을 붙잡는다. 달리는 호랑이의 등 위에서 자세를 바로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디는 호랑이에게 엎힌 자세를 취하는데 성공한다.

호랑이는 대단히 빨랐다. 낮부터 날 안내해주느라고 물조차 마시지 못했는데... 나디는 호랑이가 걱정되었다. 온갖 종류의 나뭇가지들이 그녀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간다. 호랑이의 등은 빗발 속인데도 너무나 따쓰하다. 나디는 그만 달콤한 잠에 빠져들고 만다.



5

[아! 잘 잤다]

나디는 하품과 더불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나디는 뒤돌아보았다.

지금껏 호랑이 배를 베고 자고 있었구나. 호랑이는 부드럽지만 확고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말하고 있다. 일어났니? 어서 가자. 어서.

[응]

나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난다. 호랑이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아직은 누워있을테지만 곧 일어나서 나를 인도해줄테지. 어디로 이끌든지 따라가볼테야. 호랑이 배 안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어이없이 죽긴 싫으니까.

나디가 몸을 풀려는 작업의 하나로 목을 까닥거린다. 갑자기 어깨가 시원해져 온다. 목덜미에도 소름이 돋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린 듯도 싶다. 나디가 뒤돌아본다.

호랑이가 배 깊숙히 화살을 맞았다.

놀랄 틈도 없이 나무 위에서 누군가가 두번째 화살을 쏘았다. 예민한 나디의 귀는 그 소리를 느끼게 했다. 나디는 번개처럼 옆으로 구른다.

두번째 화살은 피했다. 하지만 적은 노련했다.

세번째 화살은 나디가 가는 방향을 완벽히 예측하고 날아왔다. 두번째 화살은 함정이었다. 상상 못 할만치 오랜 세월동안 온갖 노력을 경주한 끝에 다듬어진 기술임이 틀림없다. 피할 수가 없다. 그 화살은 나디의 가슴을 꿰뚫을 것이다. 적의 기쁨에 찬 웃음이 들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디는 할깃 옆을 본다. 호랑이의 쓰러져가는 실루엣이 살짝 보인다. 호랑이를 본 감각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느낌이 정리되기도 전에 화살이 또 날아든다.

나디는 정신없이 굴렀다. 보이지 않는 적의 화살 재는 속도와 겨냥하는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처음 몇 번은 호랑이가 막아 준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엔 연거푸 화살이 나디에게 정확히 날아들었다.

화살 하나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차라리 박히는 편이 덜 아플지도 몰랐다. 까진 살갗이 이만저만 아프지가 않다. 그러나 그 아픔은 나디의 마음에 미처 전달되지 않았다.

문득 화살이 날아오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함정일까. 풀섶 안에 숨은 나디는 생각했다. 나를 시야에서 놓친 것일까.

오판이다. 얼마못가 화살이 나디가 있는 쪽으로 날아든다. 나디는 재빨리 피한다. 화살이 연달아 쏘아져온다. 나디는 이리저리 피한다. 그 서슬에 귓바퀴 한 켠이 찟어진다. 아플 법도 하건만 그렇지가 않다.

다시금 짧은 휴식이 찾아든다. 이번엔 풀이 짧게 자라 어느 정도 시야가 트여있는 곳이다. 적이 전통을 갈고 있다는 걸 나디가 알 리 없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따른 것이란 점 쯤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디는 숨이 끊어질 듯 달린다.

곧 나디의 앞뒤로 화살이 어지럽게 떨어진다. 나디는 어지럽게 달리거나 자세를 낮게 높게 바꾸거나 풀덤불에 숨던가 하여 적의 눈을 어지럽히려 애쓴다. 나디는 체념이란 낱말 자체를 모른다.

화살 세례가 잠깐 멈출 때마다 나디는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나디는 적의 사정권을 벗어나 있었다.

나디에게 화살을 날린 적 - 엘프Elf는 컴포짓 보Composite bow를 거두었다. 화살이 다 떨어져 더이상 공격할 수가 없다. 그동안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느라 힘이 들었지만 상대한 님프 만큼 진이 빠졌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1만 2천 년 밖에 못 사는 주제에, 영원한 삶을 불태우는 엘프들과 맞먹으려드는 건방진 족속들. 겉모습은 늙음과 젊음을 함께 지녔으되 마음은 이미 늙어버린지 오래인 그 엘프는 님프를 그 정도로 여기고 있다. 엘프가 입술을 살짝 깨물어 다짐을 하고는 짦은 칼 하나를 허리춤에서 뽑는다.

엘프는 숲에서 살지만, 님프는 숲 자체다. 그 다름은 엘프를 적잖게 당황하도록 만들었다. 숲에 대한 사랑은 엘프의 자존심을 이루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엘프가 숲을 사랑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겨레인 님프. 님프에게 엘프가 느끼는 감정은 질투에 말미암고 있다. 트롤 또한 숲을 사랑하지만 배타를 전제로 하기에 파괴력으로 나타난다.

엘프의 사랑을 트롤 수준으로 낮추려는 그의 기도는 힘있게 내딛는 한 걸음씩 이루어지고 있다. 엘프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의 모습도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은 모두 갖춘 듯이 보인다.

숲을 우리 엘프가 가지는 건 당연해. 님프는 숲이 없어도 스스로가 숲이기에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엘프는 숲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한다. 엘프 모두를 이롭게 하기 위해 그는 나디의 흔적을 쫓는다. 찾긴 쉽지 않다. 님프도 엘프 못지않게 걸음이 가벼워 땅 위에 극히 미세한 흔적도 가끔씩 밖에 남기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결국 나디는 엘프에게 발각당하고 말 것이다. 그 엘프는 대단한 실력파였기에.

아침 햇살이 멧사과 위에서 수만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 아름다우면서도 너무나 섬세한 그 장면을 나디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저렇게 예쁜 걸 깨물어 해쳐야 하나. 하지만 몸 곳곳이 흉터 나서 아픈데다 속까지 쓰려서 먹지 않을 수 없다. 나디는 멧사과를 따서 베어 물며 중얼거린다.

[너희가 우리와 맺었던 약속을 꼭 지킬테니 걱정하지 마. 네가 나에게 맡긴 씨앗을 반드시 심을 꺼야]

입 안에 새콤달콤한 물이 가득차 시원하고 참 좋다. 나디는 씨앗이 담긴 심만 빼고는 꼼꼼하게 다 먹었다. 다행이다. 애벌레가 없구나. 나디는 씨앗 두 개를 주먹에 넣고 꼭 쥔다. 세 목숨이 내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어. 꼭 지켜줄꺼야. 나디가 다시 뛴다.

달려가는 나디를 엘프가 뒤쫓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 하고 있지만 만날 때가 오리라는 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엘프가 다시금 스스로를 정당화시킨다. 님프와 엘프는 다른 존재인데도 같은 숲에서 살아야 한다. 같은 곳에서 부대껴야 하는 자들일수록 많이 싸우는 법이다. 엘프가 좀더 행복한 삶을 살려면, 똑같은 곳에서 사는 님프는 전멸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엘프인 그녀가 다른 엘프들 몰래 나디를 쫓고 있는 까닭이다.



6

양지 바른 곳이야.

여기다 심어놓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손 안에 든 멧사과 씨앗 하나를 심자. 벌레가 꼬이지 않아야 할텐데. 아래에 물이 있으니 빨아마시고 옆에 이끼가 있으니까 도와달라 그래.

힘든 길인 건 알아. 그래도 넌 잘 헤쳐가리라 믿어. 이건 나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해. 네 엄마가 나에게 맡긴 널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줄께.

땅을 손가락 마디 두 개 깊이로 파서 너를 심고 흙으로 잘 덮었어. 이제부턴 네 차례야. 모든 걸 네가 알아서 해야 해. 잘 자라렴. 그리고 너를 닮은 씩씩한 멧사과를 주주리 주주리 달아야지.

오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어제 비가 내려서 네가 있는 곳은 아직 축축할꺼야. 잘 살아.

네 자매도 심어주어야지. 가까운 곳에 심어줄께. 서로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만한 거리에.

둘이서 서로 도와야 해. 적이 나타나면 서로 알리고. 햇발이나 영양분이나 물들도 잘 나눠 먹어.

이제 난 갈께. 안녕.

바람이 귀 옆을 휙휙 지나간다. 지난 이틀동안, 내가 그 이전 평생동안 달린 것보다 더 먼 거리를 간 것같다.

힘들어서 착각하는 거겠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데.

물푸레나무 아저씨 안녕. 가만 물푸레나무 아저씨 있는 곳 근처에 분지 하나가 있었지. 그러면 이 근방이야.

개울가로 옮겨가기 전 여기서 살았던 적이 있어. 내가 아직 걸음마 뗄 때였을 거야, 아마.

그때 오목한 그 풀밭에서 뛰어 놀았었어. 분명히 기억이 나.

그때의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라. 난 님프니까 추억이 현실과 다름없이 보이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친구들이 죽은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 소리. 그 모습. 냄새까지. 완벽하게 떠오르거든.

갑자기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있어. 나무들이 고통스러워 해. 동물들이 사방으로 달아나. 늑대, 토끼, 곰, 다람쥐, 호랑이, 멧새.... 사람들이 숲을 태우고 있나 봐. 단지 날 잡겠다고 그러는 걸까. 엘프의 숲은 타고 있지 않아. 미리 짜두기라도 했나 봐. 이젠 숲까지 피해를 보고 있잖아.

비탄에 젖을 사이가 없어. 이제 오목한 풀밭까지 왔어.

추억 속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 나무들이 약간 자란 것 빼고는.

밤나무, 물푸레나무들이 내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게 될꺼야. 햇살이 내려쬐는 어느 해오름이 그때가 되겠지. 그때에도 지금도 옛날에도 이곳엔 새 지저귀는 소리가 가끔 들려 와.

땅을 파고 웅크리고 앉아서 큼직한 씨앗을 낳았지. 다행히 별로 아프지는 않았어. 뿌듯한 기분이 들어.

흙을 잘 덮었어. 이 아이가 어서 나와야 할텐데. 몇 달은 걸릴거야. 그때까지 내가 살 수 있을까. 사람들도 엘프도 날 쫓고 있는데. 내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릴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 가지고 골치 아파할 필요는 없는 거야. 한동안 돌아다니다가 때가 되면 와서 아기를 데리고 와야 겠어.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지.

내 딸 이름은 무얼로 할까. 에코로 해야겠어. 고대 님프 말로 순진 무구하고 순수한 사랑이라는 뜻인 이 말을 난 너무 너무 좋아해.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져 와. 뜨거운 게 가슴을 뚫었어. 가슴을 만지니까 손에 피가 많이 묻어. 너무 많아.

뒤를 돌아보니 엘프가 서있어. 내 딸까지 죽일 수는 없는데. 어디까지 봤을까.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눈이 보이지 않아. 왜 이렇게 추워지는 걸까.


나디가 피에 젖어 쓰러진다.



7

한 해가 지났다.

이사벨은 손바닥에 김을 불어넣으며 산비탈을 올랐다. 온 숲이 눈에 잠겨 있다. 풍경화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모습이다. 곧 질척거리게 될거야. 그러니 재빨리 장작을 모아두어야지.

이사벨은 물푸레나무 하나를 골랐다. 어린 나무였다. 앙상한 가지마다 눈이 매달려 힘겨워 보인다. 이사벨이 낫으로 가지를 쳐낸다. 이사벨이 물푸레나무를 향해 말한다.

-미안하다. 다음 해에 널 기억해두었다가 기름지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에 네 씨앗을 잘 묻어줄께.

밤나무가 앞에 있다. 스태프Staff로 후려치곤 재빨리 옆으로 비켜선다.

-그렇지. 이제껏 밤이 남아있을 리 없지.

이사벨이 투덜거리며 다가서는데 갑자기 따꼼거리는 밤 하나가 떨어져 그녀의 머리를 톡 친다.

-아야. 이게 약올리나. 그래. 쓸데없이 널 쳤으니까. 잘 마른 너도 가지 좀 줘야겠다. 다음 해에 가을에 따둔 네 씨앗들을 잘 심어줄테니 걱정 마. 몇몇은 내 배를 채워야 쓰겠지만.

이사벨이 낫을 들고 부랴부랴 밤나무 가지를 자른다. 구름이 하늘 한 켠에 자리잡기 비롯했던 거였다.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어도 산은 산이다. 산 오르는데 이골이 난 조심성있는 사람이라면 구름이 조금만 있어도 내려오는 것이 이롭다는 것 쯤은 안다.

어린애 울음소리같은 것이 문득 들린다. 이사벨이 재빨리 단검을 빼들고 둘레를 잘 살핀다.

-삵쾡이일꺼야. 그런데 왜 이렇게 가까이서 들리는 거지. 삵쾡이는 하얗게 새단장을 했을테니 못 알아볼수도 있어. 어서 나와. 난 겁 안 나. 한 손엔 대거Dagger, 한 손엔 낫을 들었으니 살벌하게 보이지?

아기 울음소리는 여전히 가깝게 들려온다. 겁이 났지만 이사벨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서기로 한다. 공터다. 눈이 소복히 앉아있다. 첫발자국을 밟는 느낌이 여간 좋지가 않다.

-끼야호!

이사벨은 어느새 긴장을 풀고 폴짝폴짝 뛴다. 아무도 없는 곳이니까 내 맘대로다. 이사벨은 어릴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약 누가 뭐라 그려면 등에 지고 있는 스태프로 때려줄꺼야.

바스락 소리가 난다. 이사벨은 멈짓한다. 사람이 있다면 어쩌지. 여기까지 다 봤을 거 아냐. 이사벨이 그렇지않아도 발그스름한 얼굴을 아예 귀 밑까지 새빨갛게 만들며 뒤돌아본다.

흰 산토끼가 눈을 밟으며 뛰어간다.

-쳇.

순간 이사벨 바로 앞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사벨이 흠짓 놀라며 내려다본다.

공터 한가운데 홀로 자리잡은 어린 나무에서 나는 소리다. 이 공터는 여러 큼직한 나무들이 세력 다툼을 한 탓에 생긴 완충지대 같은 곳이다. 그런 곳의 깊은 땅 속엔 큼직한 뿌리들이 얽혀 있어 물이니 양분이니 같은 것들을 빨아간다. 그래서 이곳 나무들은 크게 자랄 수 없다.

-이런데서 나무가 자라는 건 안 좋은데. 근데 여기 아기가?

이사벨이 대거와 낫을 집어던지고 나무 밑을 판다. 손놀림이 바쁘다. 손톱이 상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숨이 가빠온다.

[꺄르르]

어린 아이의 옆구리를 간지를 때 아기가 낼 법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사벨이 놀란다.

어린 나무가 서서히 조그맣고 귀여운 계집 아기로 바뀌어간다.

계집 아기의 맑은 눈망울에 이사벨이 비친다. 어릴 때 마마를 앓아서 곰보 자국이 남아 있는 조금 얽은 얼굴은, 곰보가 없었더라도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이사벨의 조그마한 눈, 긴 메부리코, 좁고 긴 턱은 중세 전설에 심심하면 나오는 마녀를 떠오르게 한다.

-악!

이사벨이 주저앉는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기를 바라본다. 아기 살이 발그스름해진다.

이사벨이 아기를 주워 안는다. 그녀의 두 팔이 연약하면서도 나름대로 탄탄한 부피와 무게를 느낀다.

-너 춥지? 그렇지?

이사벨이 아기를 외투로 잘 싸안고 산기슭에 있는 집으로 내려간다.

나뭇단, 낫, 단검, 외투, 아기 등등 짐을 잔뜩 이고 가면서도 이사벨의 입은 지칠 줄 모른다.

-이제 혼자서 이야기를 안 해도 되겠구나. 이젠 결코 외롭지 않겠지. 네가 크면 많이 많이 이야기하자. 이름을 지어야지. 넌 님프같에. 맞지? 어쩌다 버려졌니? 불쌍도 해라. 난 엘프 이름, 님프 이름 많이 아는데. 님프 이름 가운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붙여줄께. 음~. 나디로 하자.

나디가 알아들은 것처럼 꺄르르 웃는다.

-어머 얘 좀 봐. 벌써 웃네. 나중엔 전혀 심심하지 않겠는걸.

집에 도달하자 마자 이사벨은 모닥불을 지펴 방 안을 따쓰하게 한다. 나디는 그 옆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 배 고프겠구나. 이 엄마가 금방 다녀올께.

이사벨은 엄마란 말을 듣는게 소원이었다. 나디가 말을 할 줄 알게되면 엄마란 말부터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사벨이다.

호두, 밤, 도토리 따위를 잘게 빻아서 물에 섞은 다음 팔팔 끓인다. 죽이 잘 데워지는 동안 국자로 저으면서 남편이 있었으면 당장 아이를 낳아서 함께 놀게도 하고 젖도 같이 먹일텐데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쳇, 그러다간 열달이나 기다려야 되게. 그동안 나디는 굶어 돌아가시겠네. 더욱이 나처럼 늙고 추한 여자한테 어떤 남자가 오겠어.

죽이 다 끓었다. 이사벨은 죽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디에게 나무 숟가락으로 떠먹인다.

-까꿍. 잘도 먹는구나. 어이구, 내 예쁜 딸.

그렇게해서 이사벨은 나디를 키우게 되었다.



8

-엄마!

나디가 쪼르르 달려와 부엌일을 하고 있는 이사벨의 목을 뒤에서 조르듯이 껴안는다.

-어쿠! 웬일이니. 다 큰 얘가 징그럽게.

-피. 엄마는 내가 이럴 때만 다 컷데. 근데, 엄마. 오늘은 시내에 장 보러가는 날이잖아.

-어 그렇지. 맨날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다 잊잖니.

-또 나 때문이래. 빨랑 가자, 엄마.

-아니지. 아니지. 시장에 가려면 준비할 게 많단다. 외데몽에게 줄 약초도 있어야 하고 ~ 아, 저기 있군. 선반에 놓은 걸 깜빡했구나.

-엄만 맨날 혼잣말이야. 나랑 이야기하지 않구서.

-너랑 나랑 좋아하는 게 틀리기 때문에 가끔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하기 힘들 때가 있단다.

-그러면 잘 이야기해서 맞추면 되잖아. 난 엄마가 좋은데.

-나도 니가 좋아. 어서 준비하자.

부끄러움이란 걸 알 때까진 숨겨서 길러야 했다. 혹시 배꼽 없는 게 들통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사벨이 약초를 확인하는 사이 나디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옷을 챙겨 입는다. 가난한 살림에 별로 꾸며주질 못했어도 나디는 아름다웠다. 거의 완벽에 가까우면서도 정감 넘치는 귀여운 얼굴에 자그마하면서도 균형 잡혀 11살 짜리의 예쁜 몸매를 지녔고 고운 마음씨마저 가졌다.

님프니까. 사람보다 더 옛날에 생겼다는, 그러면서도 훨씬 더 뛰어나다는 아름다운 요정이기에. 이사벨은 현실적이기에 귀엽다는 까닭만으로 나디를 대단히 사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덩치도 지금껏 산 날도 11살 된 계집아이에 지나지 않는 나디지만 힘만은 웬만한 사내 못지 않았다. 날래기로 말하면 그 이상이다.

-니 덕분에 내 일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피~. 또 놀리는 거지. 힘만 무식하게 세다고.

-잘 아네. 히히.

-엄마 맞아?

이사벨 가슴이 조금 뜨끔해진다.

산기슭에 마을이 있다.

봄볕이 따쓰하다. 떡갈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가 이루는 청록빛 잎새들 사이로 물감이라도 튄 듯 진달래 꽃잎이 보인다. 사뿐사뿐 걷는 나디 곁에 제비꽃들이 보인다.

꽃들이 나디 곁에선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꽃잎도 더 커지고 빛깔도 좀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랬다. 이사벨은 가벼운 질투를 느낀다. 호박벌, 꿀벌, 꽃등에들도 그걸 아는 양 나디 둘레를 돌아다닌다.

이사벨이 말한다.

-언제나 벌레들은 널 좋아하더라. 참 이상하지.

-이상한 일이라고? 엄마 둘레에도 벌레들이 많이 날아다니는 걸.

-니가 내 옆에 있잖니.

-아니야. 벌레들은 엄마도 좋아해. 조용히 느껴 봐. 나비도 벌도 속삭이고 있잖아. 언제나 벌레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가는 마을 사람들하곤 어쩐지 이야기가 안 돼. 아주 아주 두꺼운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거든.

-너 이상한 이야기만 하는구나. 어서 가자.


바로 그때.

기사 더그는 오랫만에 모험을 끝내고 마을로 들어갔다가 부름을 받아 프리스트 관 내빈실에 앉아 있다.

님프들을 학살할 때보다 살이 약간 처지고 배가 좀 나왔지만 여전히 냉혹하고 젊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 까칠까칠한 수염에 묻은 술을 핥다가, 수석 프리스트 쟝이 들어오자 손에 들고 마시던 술병을 마개로 막는다. 나이가 들고 좀더 많은 죄를 저지른 덕택에 살갗이 벌게지고 목이 굵어진데다 가슴에도 살이 붙은 더그가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쟝은 눈이 침침해진 것 같다. 안경을 벗어 소매로 닦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턱살이 약간 쳐졌으나 충분한 젊음을 지키고 있다. 수염도 여전히 검다. 더그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육체 단련을 한 덕이다. 숱한 하인과 하녀들을 거느린 그들이 평소에 하는 일은 운동 밖에 없었다.

쟝이 턱을 쳐든다. 좀더 공격적이고 독선적이 된 모양새다. 쟝이 말한다.

-마녀가 마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소.

더그가 묻는다.

-믿을만하오?

-물론이오. 벚꽃이 슬슬 피기 비롯하던 때였다오. 그저께였을 거요. 산등성이 사는 이사벨이라는 약초쟁이가 나무를 스몰 엑스Small axe로 치자 거기서 피가 흘렀다는 것이오. 이사벨은 미친듯이 웃었고 온갖 짐승들도 그곁에서 울부짖었다 하오. 오르페우스교라는 이교의 의식과 헤가테란 악마 계집의 술수를 모조리 꿰뚫고 있는 위험한 마녀가 틀림없소.

더그는 문득 거스려보고 싶단 느낌을 받는다. 살짝 반대를 해도 길길이 날뛰어댈테지. 더그는 그렇게 하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누가 제보를 해왔소?

-야경꾼이오. 떠벌이 늙은 계집이나 정신박약자, 정신병자 따위 인간으로 볼 수도 없는 말종들이 이야기한 것이 아니오. 튼튼한 몸을 지닌 당당한 사내가 이름을 걸고 한 말인 거요.

-돈은 주었소?

-후하게 쳐주었지. 당신 밖엔 믿을 사람이 없소. 온갖 요괴들을 처치하는데엔 전문가 아니오? 혹시 이사벨이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녀라면 문제가 크오. 게다가 마법사나 악마 따위가 끼어 들기라도 한다면 더욱. 난 당신의 힘과 인간 관계를 믿소.

쟝이 더그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다.

프리스트 관에서 더그가 나오자 부하 외스턴이 기다리고 있다가 재빨리 엎드린다. 더그가 외스턴의 등을 밟고 백마에 오른다. 외스턴은 그 옆에서 걷는다.

-외스턴.

-예, 두목.

외스턴은 키가 작고 몸이 가늘다. 이는 언제나 활달히 움직이는 눈동자와 볕에 그슬린 살갗과 어우러져 매우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더그가 묻는다.

-이사벨이란 약초쟁이에게 친척이 있나?

-11살 짜리 딸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죽은 친척의 딸을 맡아 기르는 것이라 하던데 무척 귀엽게 생겼다고 하더군요.

-한 번 봐야겠군. 아참. 이사벨이란 계집은 어떻게 생겼나?

-전설에 나오는 마녀의 인상, 거의 그대로랍니다.

-손쉽게 잡을 수 있겠어. 그런 생김새로는 어떤 시대에 살든 커다란 고역일테지. 지금껏 살아온 것 자체가 가상하군 그래.

그날도 머지 않았다. 더그가 빙긋 웃는다. 그 자체만으론 아무런 사심도 없어 보일만치 빛나는 미소다.

마녀의 인상 그대로라고. 그러고보니 어디서 본 듯한데. 더그는 슬쩍 그렇게 여겨본다. 그러나 곧 잊는다. 사실 잊어버려도 더그가 손해 볼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사항이다.


-냄새가 심하다.

-당연하지. 꾸정물을 그냥 길거리에 막 버리거든.

-오늘은 특히 더해.

-앞으론 날로 심해질꺼야! 아 참, 요즘엔 날씨가 옛날보다 훨씬 덥데. 날로 더워지고 있다고 하더라.

-누가 그래?

-쟝 신부님이. 아주 많이 아시는 분이야. 지난 300년 동안의 통계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래.

-통계 자료가 무슨 뜻이야?

-글쎄. 뭔가 믿을만한 거겠지. 자그마치 300년 동안이래. 그 말만은 알 수 있지? 엄청난 게 틀림없어. 더 이상 묻지 마.

-나 더워. 옷 벗을래.

이사벨이 놀란다.

-안 돼.

-그래야 시원한데.

-11살이나 먹은 게! 그랬다간 니 예쁘고 하얀 몸 보고 치한들이 으흐흐흐 그럴 껄.

-엄마가 치한보다 더 소름끼쳐. 어. 이젠 시원해지네.

-응? 앗!

이사벨은 놀란다. 맑고 푸른 하늘 한가운데 해가 서서히 검게 가려지고 있다. 해의 검게 가려진 부분에 붉은 별이 떠올라 이상스럽게 빛난다. 그 붉은 빛은 데몬Demon의 눈알이라도 되는양 번뜩거린다.

사람들이 다들 튀어나와 하늘을 본다. 그림자가 길어져 저녘때처럼 온 땅을 뒤덮고 있다. 해의 검게 가려진 부분에 있는 붉은 별을 보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떠들어댄다. 해는 완전한 것이다. 그 거죽엔 아무런 바뀜도 있을 수 없다. 사람들 생각은 그랬다. 그런 곳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길하고 비정상인 것이다.

더그가 사람들을 헤치고 이사벨 옆에 선다.

이사벨이 돌아본다.

-더그 님 아니세요? 예전엔 참말 고마웠어요.

더그가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이사벨과 나디를 번갈아 쳐다본다.

이 못생긴 아줌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제 한 번 찾아 뵜어야 하는데. 더그 님 한 번 뵙기가 어디 쉬워야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직 젊은데 기억력이 이렇게 떨어진건가. 어쨋든 알아내야 해. 더그가 말한다.

-자, 부인. 함께 가서 이야기를 하십시다.

-그러죠. 나디야, 따라오렴. 오늘은 좋은 일이 겹으로 생기는 것 같지? 약초도 비싸게 팔았잖니.

예의도 염치도 모르고 금새 따라오는군. 예의 따위는 따지지 않고 소탈한 내 습성을 잘 아는 아줌마 같아.


크릭은 검은 도포를 두르고 있다. 새하얀 얼굴은 젊었지만 아무런 생기가 없다. 자주빛 눈만 살아 움직이는 윤기 없는 조각이다.

크릭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더그 부하들은 그를 깍듯이 마을에선 가장 좋은 여관에 모시고 기름진 음식을 늘어놓았다.

숱한 모험에서 그들을 도와 적들을 무찌른 크릭에게 주는 작은 보답이다.

크릭이 상을 밀어 넘어뜨린다. 힘겹게 간신히 밀쳐내는 모습이 우습고 같잖아 보이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얼어버린 더그 부하들에겐 제대로 눈에 띄지 않았다.

크릭이 나직하고 맥빠진 목소리를 낸다.

-이런 거 다 필요없다. 더그는 어디에 있나?

더그 부하들이 허겁지겁 방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들이 나가자 크릭이 방바닥으로 허물어진다. 그리곤 방에 어지럽게 흩어진 고기 따위를 게걸스럽게 입 안으로 밀어넣는다.

기름진 먹이를 대충 먹은 크릭이 천장에 메달린 딸랑이를 잡아당긴다.

여관 주인이 나타난다. 친절한 목소리.

-부르셨습니까?

-깨끗이 치워.

방금 먹은 고기. 얼마나 오래 내 살 속에 머물도록 할 수 있을까.

크릭이 침대 위에 몸을 던진다. 침대에 몸이 닿는 순간 크릭은 이미 잠들어 있다.



9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회 뒤뜰이다. 명자나무들이 목숨의 기운을 한껏 내뿜으며 푸른 그늘을 땅에 드리우고 있다. 딱따구리 한 쌍이 나무가지 위에서 느긋하게 짝짓기를 하고 있다. 초록빛 바탕 위에 점점이 박힌 모란, 해당화, 장미가 잎새를 활짝 벌려 뭇 벌레들을 끌어들인다. 담장 밖의 더위엔 아랑곳없이 뒤뜰에선 산들바람이 돈다.

더그가 본디 제 부하였던 수사에게 명해 나디를 잘 맡고 있도록 했다. 나디가 뒤뜰에서 뛰놀자 숲의 요정다운 모습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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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천년전쟁 - 2015[현대] 17.06.29 45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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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착하게 살자 - 2014[역사&종교] 17.06.28 269 0 5쪽
49 한국의 멸망 - 1999[SF] 17.06.28 232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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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지존파의 재림 - 2014[현대] 17.06.28 611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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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아프로디테와 인간 - 2014[판타지] 17.06.28 227 0 8쪽
44 개 아기를 뜯다 - 2014[SF] 17.06.28 159 0 2쪽
43 나는 작아 - 연대 미상[SF판타지] 17.06.28 274 0 4쪽
42 판타지 워즈 에피소드 1의 237제곱 - 1999[SF판타지] 17.06.28 387 0 6쪽
41 아테네 - 1999[SF] 17.06.27 222 0 6쪽
» 님프의 동굴 - 1998[판타지][미완] 17.06.27 281 0 55쪽
39 파워풀가이 - 2014[SF] 17.06.27 220 0 3쪽
38 브레이브 블러드 - 1999[판타지](미완) 17.06.27 262 0 32쪽
37 라제드 마왕 전설 - 1997[판타지](미완) 17.06.27 283 0 57쪽
36 사이좋은 가족 - 2014[로맨스] 17.06.27 255 0 10쪽
35 모모지세 - 2009[SF] 17.06.26 167 0 6쪽
34 암살자 - 1997[판타지] 17.06.26 212 0 11쪽
33 쇼펜하우어의 지행일치 - 1995[역사] 17.06.26 261 0 6쪽
32 우주 폭력배 : 악의 현현(미완) - 2013[SF] 17.06.26 243 0 4쪽
31 리치 킹(미완) - 2008[무협] 17.06.26 181 0 8쪽
30 넝마주이의 죽음 - 2차판 - 2014[현대] 17.06.26 330 0 32쪽
29 노예주와 노예 - 2014[현대] 17.06.26 230 0 5쪽
28 살인자 지망생 - 2014[현대] 17.06.26 234 0 10쪽
27 인육교실(人肉敎室) - 2014[현대] 17.06.26 168 0 3쪽
26 악녀와 요술사 - 2013[판타지] 17.06.26 199 0 13쪽
25 영혼 결혼식 - 1999[SF] 17.06.26 198 0 3쪽
24 넝마주이의 죽음 - 2012[현대] 17.06.26 176 0 30쪽
23 김은 노숙자다 - 2012[현대] 17.06.26 156 0 2쪽
22 신림역 살인마 - 2011[현대] 17.06.26 135 0 30쪽
21 헤이 파리마왕 - 1995[판타지] 17.06.26 171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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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달은 살아있다 - 1999[SF] 17.06.25 150 0 5쪽
10 목에 달린 입 - 1997[스릴러] 17.06.25 95 0 15쪽
9 지옥의 법칙 - 1997[SF] 17.06.25 72 0 13쪽
8 시간세무서 - 1999[SF] 17.06.25 126 0 6쪽
7 미래에 굶어죽다 - 1998[SF] 17.06.25 95 0 5쪽
6 프림 커피 - 1995[현대] 17.06.25 188 0 17쪽
5 후조의 마왕 석호 - 2009[역사] 17.06.25 71 0 23쪽
4 생명주의자 - 1999[SF] 17.06.25 78 0 6쪽
3 돼지 멱따기 - 1997[현대 + 역사] 17.06.25 103 0 6쪽
2 천막 노인의 말 - 1998[현대] +1 17.06.25 267 1 5쪽
1 동급생 - 1998[현대] +1 17.06.25 823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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