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살아있다 - 1999[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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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살아있다
옛날 아주 작고 허약한 것들이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왔었다.
오늘 그것들은 아주 약간 규모가 커진 체 내 영역에 돌아왔다.
영역이라는 건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시공 및 진공의 특수한 형태인 물질로서의 존재를 가진 모든 것들에게 그러하리라 여겨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우기 그것들은 처음 올 때 지니고 있었던 유쾌한 특성들은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있는 듯했다.
처음 왔을 때 그것들은 내 영역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들에게 있어 내 영역은 불쾌하고 이질적이었으며 뜨거우면서도 차가워 온갖 극단들만이 모여 몸부림치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전번에 보았던 들뜨면서도 조심스러운 기분 따위를 그것들에게서 거의 찾아낼 수 없다. 나에 대한 경의를 잃어버린 그러한 짓거리라니.
내 친구가 어떻게 그것들을 용납하고 있는 지 나로서는 서서히 이해가 안 되기 비롯한다. 기본적인 의사 소통의 능력마저 우리와는 공유할 수 없는 무리들이 아닌가.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어, 그것들 보다도 작은 친구가 나에게 오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따뜻한 눈길로 보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의사를 나누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기본적 의사 소통 수단인 중력 보다는 전자기력이라는 시덥잖은 힘에나 의존하고 있다.
전가기력이라니. 서로 서로 부딪치면 상쇄되기나 하는 그딴 힘에는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찾아 낼 수 없다. 서로 모이면 끊임없이 배가되어 마침내 우주의 진화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중력이야말로 모든 존재를 잉태해 낸 위대한 힘이다.
우주를 팽창시킨 힘이 반중력, 우리를 다시 뭉치게 하는 힘이 중력임을 보아도 자명한 노릇이 아닌가. 반중력과 중력이 부딪치면 서로 사라진다는 뜬 소문이 들리곤 한다. 그러나 그런 소문 따위는 초팽창 이후 물 건너 간 것들이다.
내 영역에 무단 침입한 그것들은 너무나 미미하여 중력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는다. 전자기력을 움직여, 내 영역 안에 있으면서도 나의 체제에 오롯히 굴복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내 체제도 전자기력에 많이 의존한다. 그러나 그것들 만큼이나 많이는 아니다.
우리랑 의사 소통할 줄 모르는 주제에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의 힘을 시험하려 하며 건방지게 구는 것들 따위를 어찌 용납할 수 있는가. 나는 내 큰 친구에게 연락하여 그것들을 쓸어버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내 큰 친구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기야 나도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것들을 내 큰 친구랑 직접적으로 의사 소통하여 없에버리는 방법이라고는 나랑 내 큰 친구랑 부딪치는 것 밖에 없잖나. 나는 아직 내 큰 친구랑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 아직 그럴 필요도 없고. 나는 나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불덩어리 친구가 나랑 내 큰 친구랑 함께 삼킬 때 하나가 될 생각을 품고 있다. 불덩어리 친구는 얼마못가 그렇게 할 거라고 우리랑 약속을 했다. 즐거운 일이다. 50억 번 큰 친구가 불덩어리 친구를 돌고 나면 약속의 때가 찾아들 것이다. 이번 일이, 중력의 승리를 우주 규모로 넓히는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반중력으로부터 태어난 우주 팽창 따위에 중력이 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가 경멸하는 반중력이 중력에 이기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한다.
그런데 한 작은 친구 하나가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스스로랑 하나가 되는 게 어떻겠느냐고. 난 기분 좋게 응해줬다.
그와 같은 몸집을 가진 친구들은 내 몸에 기분 좋은 애무의 흔적들을 수없이 남겨 놓았었다. 그같은 뜨거운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들은 나와 하나가 되어 빛나는 역사를 아로새겼다.
그런 일을 마다할 내가 아니다. 단 나는 그에게 조건을 걸었다. 나와 내 큰 친구의 조석력 사이로 들어와 산산조각나라고. 그러면 내 큰 친구도 오랫만에 적잖은 애무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언제나처럼 애무를 받으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즐거워하겠지.
이건 나랑 작은 친구와의 비밀이다.
2015년, 지구에서 70만 km 떨어진 곳에서 24km짜리 소행성이 부서져 운석들이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달에 막 짓기 시작하던 기지의 과학자들과 군인들을 비롯해 지구인 55억이 죽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확률이 아주 적다는 까닭으로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다.
199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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