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굶어죽다 - 1998[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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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굶어죽다
불량 학생인 모모 군은 과학 기술 박물관을 견학하다가 시간 여행관에 가게 되었다.
-이야, 웜홀 머신 아니야.
웜홀 여행법이 가능하면 과거로 뿅뿅하는 것도 된다는 점을 한 귀로 어쩌다 들은 바 있는 모모 군은 신이 났다.
미성년자 보호법은 1000살 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미성년자로 규정짓고 있다. 메모리 칩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식만을 가르칠 수 있을 뿐, 정교한 무의식의 통제는 아직 불가능했다. 때문에 어른들은 인격 도야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950년 동안 학교라는 울타리에 사람들을 가둬 놓고 있다.
-빌어먹을 놈의 불사성 때문에 우리가 요모냥 요꼴이라니까. 죽지 않는 방법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치 같은 노인네들이 끝내주게 예쁜 몸을 두르고 변태 짓하는 꼴이라니 정말 못 봐주겠어.
모모 군도 몇 백 년 동안 학교에 다녀 이골 난 아이다. 몇 십여 차례에 걸친 유급이 모모 군의 머리를 불려놓았다. 메모리 칩을 잔뜩 우겨넣어 몸통 보다 큰 머리를 가졌지만, 모모 군의 초특급 건망증을 메모리 칩이 어찌 당하랴.
웜홀 머신 앞엔 엄청나게 큰 경고장이 붙어 있다. 들어가지 말지여다. 알려고 하지도 말지여다!
-흥. 난 모든 과학 기술을 이겨낼 수 있는 무적 캐릭터란 말이야.
총기 재벌들의 어마어마한 우주적 담합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총기들이 시장에 넘실대고 있다. 싸요, 싸!
모모 군은 호박엿 1g과 바꾼 초강력 울트라 메가 스펙타클 에로틱 티타늄 레이져 건을 꺼내 들었다. 이름은 어떨지 몰라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구닥다리인데다 고장도 잦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모모 군은 경고문 쯤은 읽자 마자 잊어버리는, 주체성이 투철한 새 나라의 어린이다.
모모 군은 초강력 울트라 메가 스펙타클 에로틱 티타늄 레이져 건을 마구 쏘았다. 순식간에 박물관이 박살나고 급우들과 선생들은 몽땅 증발했다. 짜짠~~ 꿈에도 그리던 웜홀 머신의 육중한 모습이 드러난다.
모모 군은 잽싸게 올라탓다. 버튼들을 돌려댄다.
-4000년 전으로 가자! 21세기라고 엄청나게 야만적으로 살벌한 시대지. 나한테 딱 맞는 곳이야. 놀아보자!
웜홀 머신이 대뜸 바깥 세계에서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박물관 폐허가 깨끗이 없어져버린다.
웜홀 머신이 찰흙 반죽처럼 흔들리고 뒤뚱거리더니 어딘가로 쏙 빠져 사라진다.
-얼라 여기가 어디야.
모모 군이 웜홀 머신 밖으로 나왔다.
-벼락만 염병하게 치는군. 으 웬 오줌 지린내가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는 거야? 제기랄. 이 따위로 오염된 시대라는 자료는 못 배웠는데. 싸가지 없는 놈팽이들 같으니.
모모 군이 투덜대며 웜홀 머신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의 눈에 띈 것은 40억 년 전이라는 계기판이었다.
-뭐시여? 40억 년 전이라고라. 쳇. 그렇다면 전 지구의 운명이 내 손아귀에 달렸다 이거지. 좋았어.
모모 군이 초강력 울트라 메가 스펙타클 에로틱 티타늄 레이져 건을 들어서 마구잡이로 휘갈긴다. 전 지구 표면이 끓어오르고 퍽퍽 푹푹 튄다. 모모 군은 지구가 달꼴이 될 때까지 쏘아댓다.
-우하하. 그런데 어째서 인과율적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거냐? 내가 내 할아버지를 옛날로 가서 때려죽이면 난 태어나지 못하므로, 난 내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는 모순이 왜 일어나지 않는 거냐고!
모모 군은 스위치를 40억 년 뒤로 돌렸다. 뾰뿅~!
모모 군이 스스로의 시대로 왔다.
-엉? 뭐야 이거. 황야 아냐! 켁켁, 숨 막혀!
모모 군이 당황하다가 문득 옆을 본 순간 웜홀 머신 옆에 너덜 너덜 헤져 붙어있는 경고문이 눈에 확 들어온다.
경고문
........................<전략>.....................
과거로 갈 때, 여행자 본인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웜홀 머신도 마찬가지다. 여행자는 그 자체로서 그를 만들어낸 모든 인과들의 훌륭한 집적이며,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여행자가 간 때로부터 이룩되는 모든 것은 카오스 이론에 입각하여 바뀌어 버린다. 따라서 과거로 가는 여행은 여행자를 뺀 다른 모든 것을 말살시켜 버리는 극단적 파괴 행동이다. 평행 우주론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모든 이여. 과거로 가는 여행 따위는 할 생각 하지 말 길 바란다. 당신에게 소중한 모든 걸 잃고 싶지 않다면.
........................<후략>......................
너무 너무 뻔한 소리였지만 모모 군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육감이라는 게 있잖은가. 눈치 늦은 모모 군이 잔머리 굴리다 외친다.
-으아아아!!!
모모 군은 당장 다른 과거로 갔다. 그러나 똑같았다. 어떻게든 먹을 게 널린 초특급 미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로 갔으나 모모 군의 멍청한 머리론 무리였다.
모모 군은 결국 굶어 죽었다~아~.
[1998년 7월에 대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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