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지세 - 2009[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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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지세
수아는 눈을 깜빡였다.
수아의 각막엔 -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 감시장치가 이식되어 있었다. 수아의 고막 바로 안에도 감시장치가 이식되어 있었다. 수아의 코 안에도 감시장치는 있었다. 이들 감시장치에는 다른 모든 이들이 언제든 얼마든지 접속할 수 있었다. 지금 누가 자신의 감시장치에 접속하고 있는지 언제든 알 수 있었다. 이들 감시장치의 성능은 기본적인 감각 보다 뛰어났다.
감시장치를 수리나 개선 밖의 일로 끄는 것은 불법이었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샤워를 할 때에도,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때에도, 예술 작품을 창조해낼 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감시장치는 결코 끌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감시장치에서 쌓인 정보는 나노 초 단위로 로그화되어 별도의 저장매체에 무선으로 이동되어 영구 보존되었다.
수아는 22살의 생기발랄한 미녀였기에 접속하고 있는 이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조차 눈독을 들이는 이들은 대체로 관음증에 걸린 사회부적응자일 경우가 많았으므로 수아는 마음을 놓았다. 평소에 언제나 공권력이 감시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평소의 감시 업무는 컴퓨터 시스템이 맡고 있었다. 컴퓨터 시스템은 이상이 생기면 신고를 했다. 물론 본인이나 주변 인물이 신고할 수 있었다.
수아는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 사람들과 기분 좋게 인사를 했다. 수아의 미소는 눈부셨다. 오늘날의 세상을 사람들은 모모지세라 불렀다. ‘모두가 모두를 지켜보는 세상’의 약자였다. 몇몇 이들은 보다 긍정적으로 모모지세를 파악했다. ‘모두가 모두를 지켜주는 세상’의 약자로 본 것이다. 수아는 그런 해석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수아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구 연합은 성립되어 있었고, 모모지세를 펼쳤으며, 입법부 역할은 지구인 모두가 하는 직접 민주주의 체제였던 것이다.
인공위성과 연결된 컴퓨터 자동 조종 시스템이 수아의 바이크를 신나게 달리게 했다. 자동 항법 장치로 인해 운전의 긴장감이 없었다. 수아의 기분은 최고였다. 출퇴근길엔 마땅히 이래야 했다. 한동안 달려서 직장에 이르렀다.
수아는 평범한 수준의 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일을 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적성을 갖추었다. 이는 뇌생리학을 바탕으로 뇌를 스캔해서 얻어진 정보였다. 민주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 아래 심리학, 정신분석학, 뇌생리학, 신경학, 사회 생물학 등등이 지배 체제에 동원되고 있었다. 개인이 일을 잘 못 하는 것도, 게으른 것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모두 사회가 개인을 잘 책임지지 못 했기에 생긴 일들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사실이기도 했다. 어떤 개인도 사회 보다 오래되지는 못 하다. 심지어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조차 그 이전 인류의 사회에서 양육된 것이 아니던가.
수아는 강화복을 든든히 차려입고 로봇들을 연결시켰으며 자동기계에 탑승했다. 점검할 사안들을 꼼꼼히 챙겼다. 나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수아를 무장시켰다. 이공계가 대우받는 세상이었다. 수아는 비록 돈 잘 버는 화이트칼라 이공계 즉 지식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중하층 생활은 기본으로 누릴 수 있는 블루칼라 이공계였다. 수아의 직업은 거창하게 말하면 유기물 자원을 인류와 생태계로 되돌리는 일이었고, 옛날식으로 대놓고 말하면 똥퍼였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인류가 활용할 수 있는 유기물의 총량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를 재활용하는 것은 인류 생존에 이바지했다. 수아가 퍼올린 오물들은 처리 공장으로 보내지고 난 뒤엔 농장들로 갔다. 때문에 수아는 보람을 느꼈다. 일을 하기 앞서 수아는 후각을 마비시키는 처리를 했고, 적외선과 자외선도 볼 수 있게 하는 고글을 썼다.
수아의 일은 수익이 높았고, 나중에 일을 끝내고 나서도 괄시받지 않았다. 작업장엔 5성 호텔 수준의 샤워실이 있었고,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데다 값도 적당한 구내식당도 있었다. 모모지세는 처음엔 공직부터 적용되었다. 그 뒤엔 남의 돈 가지고 장사하는 일인 금융업과 주식회사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일반 사원 뿐 아니라 임원급에게도 적용된 건 물론이었다. 처음엔 모모지세는 법치주의가 더욱 잘 적용되도록 하는 증거로서 작동했다.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듯이, ‘강자와 약자 사이에선 자유가 억압이고, 법이 해방’인데 법에 대한 증거로서 작동했던 것이다. 정치권력은 법치를, 경제권력은 평판을 제공하는데, 법치와 평판으로 인류 사회가 지탱되어 왔다고 모모지세 사람들은 믿었다.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적용될수록 동정심과 양심이 인류를 채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픈 사연들에 공감했다.
비로소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의 큰 뜻 가운데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이 틀린 것들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 법이다. 인민(人民)이라고 왜 공산주의자가 사람들을 불렀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양심(인류와 우주에 대한 애정과 의무감), 윤리(남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 사회성(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배려할수록 더 잘 발휘되는 덕성) 등등이 발현되었다. 악당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모든 삶을 검증해서 인민재판과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민재판이고, 마녀사냥이라고 수아는 생각했다. 증거가 충분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작업 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였다. 일하는 동안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한 뒤 샤워하는 시간은 아주 행복했다. 수아는 저축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이 일을 골라잡았다. 화이트칼라 이공계가 되어 인류 사회에 더욱 이바지하는 삶을 살겠다고 수아는 결심한 상태였다. 그러려면 수업비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Fin
[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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