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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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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450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5.04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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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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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2쪽

372화 – 변혁과 방임의 네 번째 걸음은 대진국과 같아지기 위함이요, 대진국과 달라지기 위함이다

DUMMY

“왜라? 이를 왜라고 묻는다면...... 그야, 아조가 대진국이 되기 위함이자 대진국이 되지 않기 위함이겠지?”


“..........”


포홍의 대답에 부간과 장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와 별개로 포홍의 시선은 더는 그 둘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스윽-


그렇게 총애라 할 수 있는 포홍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은 굴리엘모스는 이내 그 눈을 번쩍이다 다급히 예를 갖추어 감격한 듯 그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형......”


“폐하.”


그러나 아직도 이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더는 그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번뇌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이가 느끼는 심경의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뎌졌으니 그만큼 그 머리만 커지고 자라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갑훈의 제자인 부간에 이어 계한에 몸담은 장로까지 각기 서로가 다른 시점에 다른 사고를 품은 채 각자의 기대에 맞지 않는다 하여 이리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세상은 서로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다 다르긴 한 모양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는 애초에 사람과 자리에서 이어지는 평정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으니, 실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온전히 자신을 이해해주고 생각해주는 이들은 없다는 것에 다시금 씁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사람에 의한 실망과 상실로 이어졌다.


누구 하나 온전히 자신의 사고와 계획을 이해해주지 못하며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지 못한 채, 때론 저를 위한다는 핑계로 때론 자신의 사고와 이념을 비롯한 사상 등의 바램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에 대한 우려와 반론을 들며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상실감을 보이고 있으니, 결국 사람에 의한 것이든 자리에 의한 것이든 하늘의 농간이든 정해진 운명이든 간에 애초에 이는 정해진 기간만을 함께하고 같이 할 뿐, 영원히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로 함께 가기 위해선 서로 간의 협의점을 연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공통된 목적이나 목표를 두고 이를 꾸준히 갱신해야 했다.


서로의 눈높이와 시선 그리고 그에 따른 방향과 높낮이,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름에 그것이 교차되는 교차점에 이것이 이어지는 연장선에 서로의 존재를 의식해야 만이 서로 부딪히고 멀어지지 않은 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긋난 관계는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애처로워하다 이내 서운해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른 상실감을 넘어 이내 거슬려하기 시작하고 걸림돌로 여기기 시작하다 끝내 치워내다 못해 그 존재를 지워낼 마음을 먹게 된다.


‘그것은 곧 비극이지. 이 또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요, 모든 것이 극에 달하였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임금은 오롯한 자아를 품고 있는 이들을, 소위 말해 스스로 사고하며 판단할 줄 아는 그 머리가 달린 이들을 신료로 둘지언정 수족으로 두지 않는 것이며, 그리하여 황제와 왕을 비롯한 임금은 군신 간의 의를 논할지언정 그 밑에 별도로 환관을 비롯한 내관, 나인을 두어 주변의 모든 것을 살펴 감시하고 명분을 만들어 이를 벌하고 흔들 수 있는 소위 음험하고 음습한 간세요, 감시자와 같은 이들을 두는 것이다.


그와 별개로 그러한 정해진 자리나 직위가 아니어도 자신을 위해 일할, 그 머리가 자라나 있음에도 언제든 그 자아를 내버린 채 그 머리마저 스스로 비워낼 수 있는 이들을 수족이자 심복으로 두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러한 이들이 없다면, 그 아래 그 머리가 깨진 이들을 통해 마땅히 받아야 할 당연한 추앙과 추종을 비롯한 충정의 가치를 구슬려 활용하는 방도도 있으나, 이는 비단 소수에 대한 셈이 아닌 다수에 대한 공식이 되어야 함이 마땅한 것이라.


이것이 사회와 국가로 나아가 규격화된 틀로 정해지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 애국심과 정체성을 비롯한 민족성으로 나타나며 보다 좁아진 개념에서의 충과 효 등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더 세분화되어 인의예지와 같은 갈래가 되며 그것이 사회 규범이라는 더 작은 틀의 분류가 되어 규격화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약속을 짙어지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질서가 된다.


질서란 무엇인가? 선을 긋는 것이다.


선을 긋는 이유는 무엇인가? 넘지 말라는 것이다.


넘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한을 두는 것이다.


허면 왜 제한을 두는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함께 하기 위해서다.


그래, 함께하기 위해서다.


되도록 오래 상처 입지 않고 거슬려 하지 않으며 이대로 쭉 흘러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이번 일은 나의 불찰이다. 내 직접 선을 그려 그 밑그림을 보여줬어야 하는 것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니, 방임이라는 무질서 속에 저지른 변혁이 질서가 되길 바라는 모순을 저질렀구나.’


그렇기에 포홍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정책을 비롯한 나랏일을 논함에 평정과 같은 자리를 통해 제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연유는 무엇인가? 그와 별개로 친밀하거나 영향력 있는 이들을 몰래 불러들여 그들에게 밑그림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거나 이해를 시켜 그에 따른 합의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그 판을 짜는 연유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쓰일 명분과 그것이 세상에 가져올 득실을 설파하는 연유는 또 무엇인가?


그렇기에 트랙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행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입히지 않은 채,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이고 싶지 않다, 치워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기에 그 밑그림을 그려줄 것이다. 너희가 달려야 할 공간과 경계를 만들어주겠다. 정해진 곳만을 달려라, 그에 의문을 품지 말고 그 안에서 멈추지 말고 달려라. 진나라에 대한 애국심, 진인으로서의 정체성, 나에 대한 충성심, 그 모든 것이 부국강병이라는 하나의 목표이자 이상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가 같지 않음을 알았음에도 함께할 수 있다.’


타앙-


그렇게 상을 내리치며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은 포홍은 이내 다시금 그 시선을 굴리엘모스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자네의 존재가 답이 될 것 같군.”


“대진국(로마)에 대한 것이라면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겠지요.”


이에 굴리엘모스 또한 제게 모여드는 시선을 느끼며 한껏 진중한 자태를 통해 이들이 몰랐던 비사를 꺼내놓았다.


“최근 들어 맹가를 비롯한 여러 이름난 가문의 이들이 대진국 출신과 그 속주에 해당하는 이들과의 접촉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


“특히나 맹가의 경우, 아예 추방당한 외주의 이들과 노예로 끌려온 이들까지 사들이며 그 집안의 가솔과 식객으로 두고 있는 형국인데, 그 와중에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를 비롯해 그들의 가져온 물품들과 증언들을 토대로 대진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이에 놀란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려를 표했다.


“서역의 이들이 아조에 침투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불온한 사상과 이념을 주입하려는 움직임이 뻔한 게지요. 그렇게 스며드는 겝니다, 위험합니다, 사형!”


“계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입니다. 제아무리 오만 이민족들이 뒤섞인 파촉 땅이라고 한들, 이러한 전례는 없었지요. 어찌 보면 왕권에 손상이 가는 일 아닙니까?”


허나 그것이 사상전이이자 문화침략의 관점에서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협이 되든, 그 반대로 외지에서 들어온 모든 것을 관리하고 하사하여 내려주고 허락하는 통치적 관점에서의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이 되든 상관 없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문명과의 접촉을 비롯한 교류는 국가의 중대사가 맞긴 하나 이는 반쯤은 포홍이 바라고 있던 바였다.


“훌륭하구나.”


“사형!”


“폐하, 그게 무슨 말씀........”


“아무것도 모를 시절보다 어렴풋이 알게 되고 그에 환상을 품는 것이 더 자극적일 게야, 그렇지?”


“꽤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과장되었을지언정 그에 따른 거짓은 없사오니, 신은 실로 오랜만에 신이 나고 자란 모국과 그 너머로 소속된 제국에 대한 대한 자부심은 제법 느꼈나이다.”


이러한 자신의 되물음에 굴리엘모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붉은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놀랄 것 없다, 짐은 맹가에게 환상을 팔았을 뿐이니. 이는 곧 유행이 되고, 새로운 바람이자 물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과연 이들은 알고 있을까? 이민경쟁, 이주경쟁에 이어 등장할 다음 시대의 키워드는 무엇일지 말이다.


그리고 그 새 시대의 키워드를 통한 갈등과 격동의 촉발은 이전부터 그토록 부르짖었던 계한에 대한 안배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초래할 것이다.


그 선봉장을 도맡을 맹가의 가주에게 자신은 살짝 이를 맛보게 해주었고, 이는 비단 작금의 혼란한 사회상에 어울리며 그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더한 자극을 일으키는 촉발제요, 높읜 곳에 자리한 이들과 쉬이 뒤섞이게 도와줄 유화제가 될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중원이라는 비좁은 천하관에 갇혀 여전히 한인들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에 귀속된 줄 알고 있는 반쪽짜리 진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에 자리한 무지몽매한 이들에게 있어 대진국은 새로운 계몽이자 계명의 세기를 가져다줄 것이다.


진나라와 그에 속한 진인들이 살아갈 세상을 새롭게 창조할 개벽이자 그들의 내적, 영적 각성을 도우며 과거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일으킨 오리엔탈리즘에 버금갈 새로운 세계화의 전환점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아조는 본격적으로 제국의 걸맞은 국가로 거듭난다. 그저 허울뿐인 대진국이란 호칭이 아니라 진정 그에 어울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


그렇기에 이에 경악하는 이들의 앞에 포홍은 아주 솔직한 자신의 목표요, 이상이자 자신이 그려낸 밑그림을 흐릿하게나마 밝히기로 했다.


“고로 이를 위해 대진국을 참고할 것이다. 그들을 지향하고 그들을 지양할 것이다. 작금의 시기에 바라마지 않은 이상이요, 이제는 사라져버린 관대한 제국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럼에도 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제국이 바로 그들이요, 당장에 아조가 뛰어넘고자 하는 목표이자 이상 또한 그들이기에 과인은 그들과 같아지길 바라며 그들과 달라지길 바란다.”


“대진국.......”


“본디 사부회를 비롯한 정책과 그에 따른 사회 혼란에 대한 논의가 우선인 줄 알 것이다. 허나 이는 그대들이 나중에 해석할 숙제로 남겨두고, 우선은 대진국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과제로 내리지. 고로 그대들 또한 맹가의 이들과 같이 움직여라. 서역의 이들을 가까이하고 그들과의 교류를 늘려라.”


“예?”


“정녕 참이시옵니까?”


그렇게 내려진 예상치 못한 명령에 당혹스러운 것은 다름이 아닌 장로와 부간이었다.


한쪽은 사림의 대표요, 한쪽은 뭐 쌀장사꾼을 자처하니 농인이라 볼 수 있으나 그 실상은 교주인지라 종교의 대표다.


한데 그러한 이들더러 갑자기 로마에 대해 알아 오라고 한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이게 무슨 소리일까?


‘무슨 소리긴 비단 억지로라도 좋으니까, 외산 문화 수입해서 널리 장려하란 소리지.’


속된 말로 롬뽕 좀 느껴보라는 것이다.


또다른 말로 하면 딴에 그 나라의 주된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회 지도층에 해당하는 이들더러 지금 외세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유행 좀 시키라는 뜻이다.


허나 애초에 경직되고 굳어지며 보수적인 한 사회의 지도부가, 그것도 대항해시대 이후 제국주의 이후 머리통이 깨진 동양마냥 탈아입구니 메이지 유신이니 하는 선진화 운동을 벌이는 것과 그 그림은 조금 달랐다.


애초에 작금의 중원에서 제일가는 국가요, 이 동방에서 이만한 부강함을 자랑하는 국가도 없으며 그 자부심 또한 엄청난 마당인데, 소위 국뽕에 취해 엉덩이 흔들어 제끼는 것이 당연한 전성기에 취해 있는 마당인데, 자신들의 문화와 사상을 온 천하에 선전해도 모자란 판국에, 이 와중에 굳이?


그리고 이는 부간을 비롯한 장로의 표정에서도 아주 확실하게 나타났다.


막상 자연스럽게 두면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할 일도 하라고 부추기고 강제하면 싫어지듯 내려진 명령에 알게 모를 반발심리가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중뽕 패시브를 타고난 이들에게, 그것도 사회 지도층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외산 문화의 장려는 되려 천하의 중심에 자리한 문명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암만 서쪽 끝에 부강한 나라고 비단길을 통해 알려지고 그 와중에 코쟁이 몇 놈 찾아왔다고 한들, 그들이 이쪽을 알고 배우며 섬겨야지, 되려 우리가 왜 저 오랑캐 놈들의 것을 보고 들으며 배워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과 불만들이 속속들이 그 얼굴 위로 올라서는 것이 아주 당연할 정도로 말이다.


“크흠.”


그 와중에 심하게는, 특히 장로 이 새끼는 이 인간이 정녕 미친 건가 하는 표정마저 드러낼 정도였는데,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왕의 명령인데, 까라면 까야지.


‘고려양에 몽골풍도 있던 마당에 로마풍이 없을 건 또 뭐고? 다 이유가 있으니까 부채질 하는 것 아니겠어?’


끼이이익- 쿠웅-


그렇게 쉬이 풀리지 않을, 그 목적을 모르겠을 난제를 과제로 받아들인 이들이 찝찝한 얼굴을 한 채 물러났다.


시간이 늦은 밤이었던 만큼, 다음번의 만남을 기약하는 이 비밀스러운 회동의 끝에 포홍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은 굴리엘모스를 향해 이를 되물었다.


“로마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역시 무리긴 하지?”


이에 굴리엘모스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는데, 어째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이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신이 이 땅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필경 민주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현실을 썩게 만드는 이상입니다.”


“허어? 제 고향 그리스를 욕보일 정도의 자조적인 비난이라? 되려 그 자부심에 어울리지 않을 평가로군, 어째서?”


“폴리스와 같은 작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실에 존재하나 그 규모를 키워내면 키워낼수록 통치를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자라납니다. 또한 난국의 순간에 하나 되어 외적을 대적해야 하는 자리임에서도 그 잘난 민주주의 하나를 지키겠다, 그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며 그에만 충실하니 내재된 분열과 다채로운 목소리가 하나로 합해지지 않으며 그 와중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아테네는 그 잘난 데모크라티아(민주주의) 때문에 망했지요.”


“흐음, 그래도 꽤 냉철한 분석인데, 정녕 그게 다인가?”


어째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래도 오래된 가문의 핏줄답게 제법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소위 국뽕 하면 빠지지 않을 아테네 뽕을 기억하는 이가 저리 나온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는데, 그 폐해를 배운 현대인도 아닌 자가 그것도 먼 후대에도 공정하고 옳은 정치 체제라 추앙받는, 소위 무슨 짓을 저지르건 그 네 글자 하나만 지키면 만사형통인 줄 아는 머저리들도 많은 마당에 저런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했다.


“못 생기고 장애가 있으며 병약하고 다른 것을 이야기하면 추방을 당합니다. 그 이전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오물을 투척하거나 욕설을 하고 비아냥을 하다 못해 철학적인 비꼼을 더하지요. 특히나 축제의 자리에서 그해의 제일가는 못난 이를 뽑아 애어른 할 것 없이 조롱거리로 삼는데, 그 괴롭힘이 끝난 뒤에는 대다수가 더한 병신이 되거나 그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곤 합니다. 허나 그럼에도 살아있거나 그 자리를 버티고 있으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제로 도시 밖으로 퇴거명령을 내리지요. 민중 법정이 자리하고 있으나 이 또한 부정이 많습니다. 그 외에 너무 잘나도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뇌물을 바치지 않거나 영향력 있는 이의 심기를 거슬려도 형벌과 퇴출을 당합니다. 투표에 조작이 난무하며 때로는 모두가 멍청해지고, 때로는 다수가 무관심하여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이들이 폭정을 일삼을 때도 있습니다.”


해서 아름답게 포장되고 기억되던 옛 시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역시 이를 듣고 보니 민주주의의 유구한 전통은 예부터 훌륭했다.


부정선거와 투표조작을 비롯해 인간이 내보일 수 있는 모든 조작질과 그 위로 더해지는 시기, 질투, 조롱, 집단 따돌림, 왕따, 괴롭힘을 비롯한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 하나 제물 삼아 희생시키는 위대한 인간 본성까지 아주 착실하게 녹아든 아름답게 포장된 고대의 사회상은 실로 이천 년 후의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파르마코스라고 그해의 못생긴 자를 뽑아 축제에 자리한 이들의 모든 부정을 한 사람에게 몰아준 뒤 그 사람을 내쫓아 소위 액땜을 하는 방식이나, 인민재판 고대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민중 법정이나, 딴에 사회구성원들의 안전을 보장한답시고 저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놈 하나 뽑아서 내쫓기 위해 도편추방제를 비롯한 선거 투표제도를 활성화하며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그 사회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누리는 안정과 만족감을 비롯한 충실함을 위해 사람 하나 병신 만들어 놓고 즐기는 조리돌림, 왕따 문화를 즐기는 이러한 선진화된 고대국가의 모습은 실로 이를 듣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절로 경탄의 박수와 실소를 나오게 만든다.


짝- 짝- 짝-


“그렇지, 본디 국제정치와 외교를 비롯한 모든 것이 그렇지. 저들끼리 편 먹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 골라 잡아 다구리 놓는 게지. 훌륭해.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다수가 편 먹고 소수 조지면서 그리 매양 제물을 골라 피를 보면서 그 사회를 유지시켜 나가는 게지. 역시, 인류 이래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싶어.”


이쯤 되면 학교나 직장을 비롯한 조직 내에 사회적 괴롭힘과 차별은 실로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은 가장 훌륭한 모습이자 전통을 계승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따를 비롯한 괴롭힘과 외모지상주의를 비롯한 차별 문화가 장려될수록 우리는 성숙된 민주사회의 시민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기도 해.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실상 이제 그 땅에 남은 것은 로마 속주에 불과한데, 어째 본인 이야기 같아?”


문제는 하도 그것이 현실감이 있어 너무 과장되게 말하는 것 아니냐고 이를 되물었는데,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고도 살아남은 전통이 어디 그리 쉬이 바뀌겠습니까?”


“전통이라면, 설마......., 지금도?”


사라락-


“이 머리칼이면 설명이 되시겠습니까?”


정녕 그것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알게 되니 실로 충격이었다.


그것도, 정작 슬픈 얼굴로 제 붉은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굴리엘모스를 보면서 다시금 시대 속에 자리한 빨간 머리를 떠올리게 되니 절로 그 고개를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뭐, 현대인들은 빨간 머리와 그에 따른 인종차별 하면 당연히 아일랜드를 떠올리겠으나 정작 고대 시대에서 붉은 머리칼의 소재지와 산지는 의외에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다름이 아닌 레반트, 아나톨리아,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중동에 속해있는 지역들이었다.


이를 지역이 아닌 혈통으로 말하자면 고대 페르시아 계통의 이들을 비롯한 유대인들과 그 인근에 자리했던 이들이었고, 이를 역사에 대입해보면 과거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전쟁으로 얼룩져 그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사이였으며, 로마에서의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수많은 핍박과 탄압을 받았던 존재로 당연히 그 민족성 뿌리 깊이 새겨진 원한을 빙자한 차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로마 시대에, 그것도 그리스, 그중 제일 가는 민주주의의 총 본산인 아테네에서 빨간 머리를 한 이가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차별과 핍박 등이 있었을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괜한 것을 물었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픈 상처를 들쑤셔 미안하네만, 이 외에도 또다른 문제가 있나?”


“생계가 어려운 이들은 애초에 생업을 두고 민회에 참가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그 거주지가 도심과 먼 곳에 자리하면 매양 참석하기도 힘이 드는 법이지요. 결국 지주, 부호를 비롯해 특권을 지닌 소수의 이들이 모든 것을 부추기며 흔들고 결정합니다. 그렇기에 민회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고 또......, 공직 추점제라 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 또한 결국 저들끼리의 야합과 속임수를 통해 정해진 자리를 넘겨받고 그 순서까지 멋대로 정해 공직의 자리를 돌려 쓰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 와중에 어째 이상으로 점철된 고대 그리스, 폴리스,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현실 버전을 듣고 있다 보니 이거 어째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모순을 지닌 어느 것이 떠오른다.


“자네 혹시 유학을 공부했나?”


“들어는 봤습니다만, 잘 알진 못합니다.”


“그럼, 대동 사회라고 아는가?”


“모릅니다.”


“항산은? 농촌공동체는? 유교적 이상사회는?”


“그 또한 모릅니다.”


“허면 노나라라고 사상과 예법 하나만 죽여주는 나라가 있는데, 이것도 들어본 적이 없고?”


“옛 그리스에 자리했던 수많은 폴리스들도 기억치 못하는데 어찌 먼 타국 땅의 여러 국가를 알겠습니까?”


“아, 너무 닮아있는데, 이거? 소름이 돋을 정도야.”


가장 이상적인 보다 작은 사회라 할 수 있는 소규모의 완성형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최초의 표본이자, 인간이 꿈꾸던 이상을 실제 현실로 이식시켜 현세에 강림하는 것이 가능케 한 지상낙원의 실존 모델.


이상과 현실이라는 그 이면이 다른 모순 속 가장 빛나는 지향점으로 자리매김한 선악의 양면성을 품고 있는 이 시대의 기준점.


그에 따른 역사적 선례와 그것들이 파생된 결과물로 자리한 후대의 파편화된 다른 역사적 결과물들까지.


그리 배우고 깨우쳤다 하는 이들이 바라마지 않으나 그럼에도 막상 한숨만 나오는 이를 두고 포홍과 굴리엘모스는 결국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부회, 이제야 왜 이를 지향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작가의말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 것도 같고;; 의외로 쉬운 내용이 꼬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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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6 잿더미현실
    작성일
    22.05.05 07:08
    No. 1

    정책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깁니다. 시행과 진척을 통한 보여주기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밑밥과 설명을 너무 많이 하시다보니 오히려 그 이후의 전개에대한 기대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예시를 들고 고사를 가져와 정책에 대한 비판과 수용, 전망을 고찰하는건 좋습니다만 이 글은 논문이 아니고 소설이니 조금더 흥미로울수있도록 군더더기를 쳐내고 템포를 올리심이 어떠할지요. 들개때보다야 진행속도가 주역에 치중하여 조금 올라갔다지만 여전히 느려 좀 그러합니다. 애초에 포홍 자식도 아직 못본상태가 아닙니까..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5.07 22:12
    No. 2

    옳으신 말씀입니다. 쉽진 않으나 여전히 느리고 구체적이다 보니 자꾸 늘어지지요. 매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면서도 자꾸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도는데 그래도 더 줄이고 줄여야 나아질 일이겠지요. 다음화의 작가의 말에서도 적었듯이 당기고 당겨 한화 분량으로 축약시켰습니다. 앞으로도 조금 더 당겨보고 대화도 줄여보도록 하지요. 좋은 지적 매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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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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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29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8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7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2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6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2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2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9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9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8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4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6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6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9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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