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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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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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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DUMMY

그리고 소식은 전해졌다.


“사족들이 거진 궁에서 쫓겨나듯 내쳐졌다? 거기에 거진 그 옥음이 고성에 힐난도 모자라 질책이었다고?”


“예, 일황자 전하.”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사족들이 쫓겨났다는 것은 비단 유언의 의중이 전쟁으로 흐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아직 조당을 비롯한 이들 앞에 직접적으로 그 의중을 밝힌 것도 그에 따른 별개의 밑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나 적어도 그리 그간 곁에 두고 감싸돌기만 하던 사족들을 저리 체면이 구길 정도로, 그것도 그간의 총애를 제 손으로 이리 깎아 먹을 정도의 자충수를 뒀다는 것 자체가 비단 이들에겐 기회였다.


“선생.”


“동주사들이라고 마냥 사족들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반면교사로 삼기에도 그만한 것이 없지요. 후후훗. 그래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주어진 기회조차 살리지 못하게 될까 만에 하나 조심하기 위해 조위에게 이를 먼저 되물은 유범의 판단은 옳았다.


다시금 그 깃부채를 들어 조심스레 입을 가린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벌써 돌아가는 상황과 그에 따른 인과관계를 모조리 파악한 듯 보였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황상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존의 이들로는 대처할 수 없기에 내려진 판단이다. 진밀의 가치를 알고서도 저리 나왔다는 건, 비단 진밀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 목도한 사족들의 행태나 현실이 작금의 황상이 그리는 이상을 따라오지 못하기에,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가져온 쪽으로 그 마음이 기우는 것이다.”


물론,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예측할 수 있는 사안이다.


누가 봐도 퇴짜를 맞았고, 그것도 궁에 자리한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크게 욕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실망스러웠다는 것일 테니, 그래. 여기까진 비단 천고의 기재가 아닌 이들이라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일 터.


그러나 비단 천고의 기재인 진밀마저 낮게 평가할 이전 시대의 실력자요, 은퇴한 마당에 다음 시대를 거머쥘 계승 서열 1위인 적장자를 구워삶아 다시금 정계의 복귀를 노리는 조위의 안목과 재주는 이제 시작이었다.


“여름날의 장마로 무너지고 황폐화된 길을 보수하겠다고 하십시오. 가도를 정비하고 일대의 순찰을 강화하여 치안을 안정화시켜 나라의 안돈에 일조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렇군! 고더러 부친께 그 의중을 드러내고 실질적으로 이를 지원하는 자세를 보이라 이런 뜻이요?”


“송구하오나 정반대이옵니다.”


“아니, 그러면 전쟁에 반대한답시고 이러한 일을 벌이라는 뜻이요?”


“그에 아니라 애초에 그 의중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설령 그것이 전쟁이든 전쟁이 아니든 상관없다?”


“예.”


“허 참......,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제아무리 영민한 유범이라도 이미 여론까지 기운 마당에 그 의중을 감추고 지원사격을 나서라는 조언이 막연히 와닿진 않았다.


이미 저 바깥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생난리가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조당에 모여든 이들은 당장에 전쟁이냐 아니냐 사족과 호족으로 나뉘어 오만 갈등과 충돌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그 어떠한 정치적 어필도 없는 세력의 도모와 그에 따른 일처리가 있을까?


아닌 말로, 그 어느 것 하나 정치적 수사라도 들어가야 이에 반응하는 이들이 나올 것인데, 그러한 이들과의 교류나 접점을 피해라? 세를 불릴 생각도 말고?


“그래, 뭐 이해하기 어렵지만 알겠소. 한데, 만일 그 저의를 묻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어찌 답해야 하오?”


“그게 중요합니다. 실상, 이번 일은 그 하나를 위해 설계된 안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이번 일의 맹점이지요.”


“맹점?”


“예, 고로 이제부터 신이 알려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알겠소.”


“....., 하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 사욕과 이기심을 비롯해 추한 욕망만을 앞세워 정작 중한 것을 보지 못한 머저리들의 집합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시일이 지났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민간에선 장로와 오두미교의 교세가 커지고 그 와중에 호족들은 더더욱 전쟁의 목소리만을 높이는데, 정작 한 차례 유언에게 질타를 당한 사족들은 여전히 맥을 못 추는 형국이었다.


뭐, 그렇다고 조당 내에 장로의 세가 커진 것이냐 함은, 애초에 민간 중심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들이기에 그렇지가 않았다.


그나마 장막의 동생인 장위가 설치는 빈도가 늘어나긴 했는데, 정작 그 또한 작금의 사족들이 고꾸라진 이 형국을 빌미 삼아 세를 불리며 제 목소리를 높이는 호족들만 못했다.


그렇다고 사족들이 마냥 죽어준 것도 아닌 것이, 소위 말해 지적 수준이 조금 아쉬운, 조금 더 혈기왕성하고 모자라며 덜 배웠기에 쉽게 흥분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호족들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현란한 언변이 뒤섞인 반격을 날리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당장에 유언을 실망시켜 이전과 같은 뒷배와 유세를 누리지 못할 뿐, 아예 대역죄인이 되고 제 입장조차 비호 못할 그 발언권까지 몰수당해 무기력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 아니, 황자전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것은 대전에서 세세히 전하고자 하네. 작게나마 다들 시간을 내어줄 수 있겠는가?”


“어유, 다른 분도 아닌 황자 전하의 부탁이시니, 감히 어느 누가 이에 토를 달겠습니까?”


“알겠네, 허면 내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부탁하러 가보지.”


“아, 아니요! 아니, 그러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음? 어째서인가?”


“어...., 그러니까, 그게. 에이, 아닙니다. 자리는 신들이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비단 유언의 장자인 유범이 넌지시 조당이 열리는 자리에서 간언하고픈 것이 있다고 하니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의외로 그 반응이 신선했다.


되려 여러 세력들에게 부탁할 것도 없이 한순간에 일은 성사되었고, 그리 만들어진 조회의 자리는 그간에 벌어진 여느 자리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석하였으니 거진 조당에 속한 모든 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비단 지금까지의 형국이 너무 시끄러웠던 것 대해 피로감을 느꼈던 이들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하온데, 황자 전하? 동주사들의 의중은 어떠하온지요?”


“이를 묻는 연유는?”


“그야.......”


‘삼파전이기 때문이지요.’


그 와중에 찾아와 넌지시 그 의중을 떠보는 이들도 있었으나 정작 그 연유를 되물음에 그 속에 담긴 진의를 밝히는 이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연유를 짐작 가능한 것이 비단 이는 두말할 것 없는 삼파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계한은 동주사, 사족, 호족, 오두미교라는 거진 네 갈래의 세력과 파벌로 나뉘는데 그중 물경 세 갈래의 세력이 이에 얽혀있었다.


승자조차 정해지지 않은, 그저 찰나의 흐름을 타고 오르내린 이들의 서열정리에 가까운 개싸움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그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멋대로 저들끼리 물고 뜯어대는 개싸움의 결과는 그 원인이 뭐가 되었든 서로 간에 잠시라도 그만 싸웠으면 한다는 것.


그 와중에 아직도 참전을 꺼리며 이에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동주사들의 의향과 그 속에 담긴 진의 또한 궁금해진다는 것.


그렇기에 그 분위기도 얼추 환기시킬 겸, 그 와중에 자신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도 들을 겸 해서 나름 화합과 안정의 자리가 마련된 것인데, 비단 그곳에는 의외의 등장인물이 또 있었다.


- 황상 폐하 드시옵니다!


대전의 문이 열리고 중앙에 깔린 비단으로 치장된 어도를 걸어 오르며 황금으로 치장된 용상에 오른 유언은 이내 불평불만이 그득한 얼굴로 그리 대전에 모여든 이들을 쏘아보았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마침내 그간의 개싸움을 지켜보던 개 주인이 진노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여태까지 난리를 피운 개들은 눈치껏 그 개 주인의 진노를 피해 수그릴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개 주인의 시선은 되려 자신들이 아닌 작금의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1황자인 유범에게 가 있었다.


‘그간 잠잠하더니, 이제와 무슨 꿍꿍이야?’


‘대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조위에게 조언이라도 들었나보지?’


‘모든 것은 대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짐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게다. 최근 들어 안팎으로 시끄러운 것이 개나 소나 그 주제도 모르고 제 목소리만을 높이며 그 고개를 쳐들고 저만 옳다 제가 맞다 높이 올라 설치려는 것이 실로 오만하기 이를 데 없으니. 장담컨대 황자라고 봐주는 일은 없을 게야.’


‘예.’


그리고 그러한 유언의 거슬리는 시선에는 비단 그에 걸맞은 연유가 있었다.


일찍이 조당에 자리가 마련된 그 순간 부로 유언의 부름에 의해 호출된 유범은 숨죽이고 수그리며 그에 진정성 있는 자세로 복종해야 했고, 그에 따른 암묵적인 허락의 끝에 이러한 자리가 열렸으니 그리 모두의 시선이 그런 그를 감싸게 되었다.


“자, 그래서? 이놈들 모조리 불러 놓고 하고픈 말이 뭐야?”


“여름날의 장마로 무너지고 황폐화된 길을 보수하고자 하옵니다. 가도를 정비하고 일대의 순찰을 강화하여 치안을 안정화시켜 나라의 안돈에 일조하고자 하오니, 이를 가납해달라 모두의 동의를 구하고 또 청하려 하였나이다.”


웅성웅성-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발언을 실로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에 따른 술렁임과 그 전후사정을 파악하기 힘든 사태의 혼선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황자 전하께서 전쟁에 찬동하신다 뭐 그런 겁니까?’


‘설마요, 황상을 비롯하여 일가를 이루고 계신 황자분들께선 본디 예부터 우리 사족들과 가까이 지내셨지 않습니까? 애초에 동주사들을 휘하에 두고 계신 마당에 동주사들이 우리와 척을 질리는 만무한데......, 거기다 은연중에 상공인 계층을 쥐고 있는 장로와 호족들의 사이가 제법 가까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허면 견제를 위해서도 균형은 반드시 필요함을 알고 계실 터인데......’


‘황자 전하께서 우리 손을 들어주시겠다 언질을 하신 적이 있었나?’


‘없습니다.’


‘허면 황상께선?’


‘일찍이 사족들을 쫓아내신 것 외엔 별다른 언질이 없습니다.’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도와주시려는 겐가?’


‘이게 무슨......, 다른 이도 아니고 일황자가?’


‘그러게 말입니다. 본디 예상은 반대를 위한 반전의 태도를 고수하는 황자들과의 충돌이 아니었습니까?’


곳곳에서 들릴 듯 말 듯 제 파벌들끼리 수군대는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사족들은 비단 유범의 의중을 의심하면서도 동주사들이 그럴 리 없다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호족들은 제 편을 드는 것 같은 유범의 태도를 도리어 전쟁에 찬동하기 위한 여론 조작을 위해 유언의 티 나지 않은 지원사격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장위를 비롯한 오두미교의 이들 또한 그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비단 유범을 포함한 황자들이 교주인 장로를 유언이 총애하기에 혹시나 하는 황위의 계승자로 두게 될까 이를 견제하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칠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정작 스스로 밝힌 의중은 그 반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정작 이를 가장 납득하기 힘든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유언이었다.


대놓고 그 두 눈가에 냉엄한 기운을 흘리는 것이 누가 보아도 실망스러움이 그득한 표정이었다.


“뭔가 했더니, 쯧.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러한 시국에 길을 보수해? 그럴듯한 자리 하나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고작해야 한다는 소리가, 그따위 것에 불과한 것이야?”


“왜 화를 내십니까?”


“뭐?”


“굳이 연유를 묻지 않으신 것 하며, 그 눈에 담긴 실망은 또 어인 연유십니까?”


“지금 그따위 것을 질문이라고 하느냐! 그 의도가 빤히 보이는 것임에도, 그리 헛바람을 집어넣으려 하면서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르는 체하며 알량한 말장난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 그게 괘씸하여 화를 내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언은 왜 화가 났을까?


고작해야 황자의 자질이 이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에 그렇다.


장차 이 제국을 물려받을 차기 군주나 다름이 없는 이가,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서 설칠 때와 그렇지 못한 때를 구분 못 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는 절대로 같을 수 없거늘, 고작해야 신하들이 제 잇속을 위해 설쳐대는 개싸움에 아무렇지 않게 힘을 실어주려고 하니, 저들끼리의 경쟁과 충돌 속에 이를 조율하여 제 권력과 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균형을 맞춰야 할 이가 정작 그 임금에 대한 사고와 복종은 뒤로 한 채, 저들 세상이 왔다고 주제도 모르고 설치며 이 세상에 저들이 중심인 양 저것들의 실수를 먼저 발견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저들과 진배없는 존재마냥 스스로의 격을 깎아 먹을 행동을 자처하니 이 어찌 화가 나지 않으랴?


작금의 중한 것은 비단 계한은 제국이라는 것이고, 그에 따른 모든 의사는 그러한 제국의 주인인 황제의 의중에 의해 결정지어져야 하는 것으로, 그리해야 군주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예속되고 제약을 받지 않는, 실로 자유로운, 군주는 무치의 형태로 군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저리 일개 신료들이 뭉쳐 세운 파벌마냥 자신을 고작해야 그에 속한 한 계파의 일원이나 수장마냥 여기게 되면 결국 그에 따른 행보는 동등한 이들의 무리의 확장에 치우친 패거리 수 싸움으로 귀결될 것이니, 종국에는 그러한 이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별개의 존재로서 군림하는 자의 면면과 권위가 바로 서지 않게 된다.


비단 유언 자신이 전쟁이란 선택지를 골랐음에도, 고로 이권이란 사람을 선택하였음에도, 벌써부터 제 세상이 온 것마냥 설치는 토호들을 아니꼽게 보는 것도, 마냥 이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토호들의 말꼬리나 잡아가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입만 살아 설치는 사족들을, 그 와중에 정신 못 차리며 설치는 장위와 같은 이를 좋게 볼 수도 없는 노릇.


한데 그 와중에 딴에 4형제 중 계승 1순위요, 그나마 다른 형제들 중에 제일 똑똑하다는 놈이 제게 반기를 든 것도 모자라 제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할 무게추가 되어야 함을 모르고 있으니, 어찌 그 속이 뒤집히고 열불이 끓지 않으랴?


거기다 실망스러운 부분은 또 있다.


설사 비단 그 의중을 밝혀 전쟁을 밀어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일국의 황자로서 신분을 지니게 되는 이가 이리 아무렇지 않게 제 의중을 너무 솔직하게 밝혀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론 알면서도 모른다 해야 할 때가 있고, 알아도 그 의중을 숨겨야 할 때가 있는데 너무나도 솔직한 것이 문제이니 그에 아부하려는 이들이 자꾸만 늘어갈 것이다.


거기에 제아무리 수많은 이들이 전쟁을 원하다 그 목소리를 드높이 외쳐도 정작 이는 신뢰할 수 없는 한때의 유행과도 같은 바람일 뿐, 정작 일국의 전쟁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부의 결심과 용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를 신뢰할 수 없음을 모두가 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이 불특정 다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닌 그 나라의 고위직도 모자라, 일국의 중한 위치에 자리한 한 개인의 입에 나온 것이라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나 그것이 계승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후계자의 자격을 갖춘 이의 입에서 나왔다면 이러한 정보를 파악한 상대국은 곧바로 전쟁을 막기 위한 대처를 준비할 것이니, 진정으로 전쟁을 바란다면 끝까지 이를 숨겨 상대가 이에 따른 방비를 할 수 없도록 이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필경 뒷말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숨겨진 간세가 있을지도 모를 이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 의중을 밝혀선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비단 저 이권을 비롯한 토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면, 그 이전에 미리 저를 찾아와 그에 따른 의중과 그에 따른 연우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


“짐을 우롱하려는 게야?”


“아니옵니다.”


“헌데도 이놈이!”


그렇기에 유범을 대하는 유언의 태도에는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걸?


“대저 찾아드는 가을날에 보다 온전한 가을걷이를 위해 드리는 청이거늘, 어찌하여 황상께선 그 진의를 알아주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뭐?”


“예상치 못한 변덕과도 같은 날씨가 횡행하여 연이은 재난과 재앙을 낳고 있는 형국이니, 되도록 그 피해를 빨리 수습해야 함이 옳다 여겼습니다. 적어도 수확의 때에, 추수의 시기에 그에 따른 여파로 인한 불편함과 피해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이 나라가 막장이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째 그에 따른 유범의 변명, 아니 설명을 듣고 있자니 어째 이것이 기존의 제 예상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다른 말을 꺼낼 필요도 없지요. 온전한 추수를 위함입니다. 손실된 분량이 없이 되도록 하나라도 더 온전한 수확량을 건져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당장에 당면한 문제를 방치하고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웅성웅성-


그리고 또다시 일대의 술렁임은 더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에 전쟁이냐 아니냐를 떠나 이 땅에 제일 중한 문제로 떠오른 것은 절대다수의 생존조차 보증하지 못하는 부족한 분의 식량이었다.


대공황이 휩쓸며 일자리마저 날아간 형국에 그것도 진나라와 같은 식량 배급제를 하고 있지 않은 마당이니, 당장에 어느 곳에 지난해에 수확한 여유분의 식량이 얼마나 잠들어있는지 명확히 국가가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공을 세운 장로가 진나라를 무너트린답시고 진나라에 넘겨준 분의 식량 하며, 기존의 30만에 달하는 정병들 먹이겠다 군량으로 소비된 식량 하며, 그 이후 미친 듯이 치솟는 물가와 원자재 부족으로 혼란한 사회상을 잡겠다고 구휼과 사회 안정을 위해 군량까지 돌려대며 뿌려댄 끌도 없을 양의 식량까지 생각해보면, 당연히 당장에 계한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바로 최대한 많은 양의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데 이를 방치하면 진짜 막장이 됩니다. 당장에 이 땅에서 산출되는 생산량을 우습게 상회하는 것이 이 땅에 자리한 이들의 머릿수입니다. 그 와중에 제 바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이 각지에서 말썽을 일으키며 도적으로 돌변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무너진 지반에, 떨어져 나간 판석에, 구멍 난 도로가 곳곳에 즐비하니 어찌 그 식량의 운송이 원활하겠습니까? 이를 실어나르는 와중에 손실되는 분의 식량이 많을 것입니다. 이를 핑계로 욕심 많은 이들이 빼돌리는 식량 또한 많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필경 산적들이 곳곳에서 날뛰겠지요. 식량을 운송하는 이들을 노리는 습격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토벌은 쉽지 않겠지요. 중앙에서 수 차례 군사를 내려보내도 병사들이 보다 빠른 행군을 위해 애용할 가도가 황폐화된 마당에 재빠른 섬멸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도 아니면 그 추격이 쉽겠습니까?”


그렇기에 이를 지적한 유범의 발언은 실로 타당하다 할 수 있었다.


당장에 저들끼리의 권력다툼, 서열 다툼에 따른 갈등만 우선시했지, 그에 따른 미혹에 가려진 본질을 도외시한 이들이 받게 된 충격은 가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미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이제는 장강을 통한 식량의 수급도 불가합니다. 형주와 양주가 전쟁에 휩싸였는데 누가 우리에게 식량을 공출해줍니까? 한중이요? 강족들의 습격에 곳곳에 불길이 솟구쳐 전소된 창고가 끝도 없습니다. 남중(남만)이요? 아직도 난이 수습되지 않은 마당에, 일개 부족끼리도 뒤엉켜 칼부림이 나는 동네에, 그것도 일대에 제대로 된 농지조차 크게 개발된 적이 없는 밀림에서 무슨 식량이 나온답니까?”


그것도 머지않은 순간에 닥칠, 직접적으로는 국가가 붕괴할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가장 중한 위기를 꼬집었으니 그에 눈을 뜬 이들의 놀람은 연이은 경탄과 찬사로 뒤바뀌게 되었다.


“기어코 나라가 무너집니다. 전쟁이고 내부 정리고 나발이고, 사족이고 호족이고 자시고. 뭘 해보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터질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진정 다 같이 죽고 싶습니까?”


“화, 황자 전하......”


“저 무너진 한조마냥 백성들의 반발과 반란이 주축이 되어 저 황건적, 홍건적마냥 또다시 그 머리에 두건이라도 두르고 이 세상을 뒤집으려 드는 또다른 도적놈들이 튀어나오게 해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결국 계한 또한 전조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여 민의를, 민생을 살피지 못해 멸망했다. 다들, 먼 후대의 세인들에게 그리 창피한 기록이 적힌 선례를 남기려 하십니까?”


“신들이 못나 이를 깊이 헤아려 살피지 못했나이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굳이 이권과 진밀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은 애먼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굳이 가벼운 경고를 더한 것은, 국가적 위기를 보는 안목과 나라와 백성을 향한 애심, 거기에 사익보다 앞선 공익 추구의 자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당장에 시의적절한 화두를 꺼내놓은 유범의 지적은 실로 수많은 이를 놀라게, 또 감복케 했다.


“추문은 어려울 것이나 답답해하는 이들은 나올 것이고 부친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행여나 엄한 오해를 살까, 애먼 뒷말이 나오게 될까 우려스러웠소.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를 지적하는 이 없으니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누명을 쓸 것을 각오하고 나서 이야기를 꺼냈던 거요.”


“흥.”


그 와중에 겸손한 자세로의 마무리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으나 단 한 사람, 이를 통해 수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 체통을 잃고 체면을 구기게 된 이가 있었다.


과연 유언의 아들이자 대업의 뒤를 이어받을 후계자다운 면모라며, 그가 아직도 확정받지 못한 황태자의 입지를 노골적으로 다져갈 때, 그에 한 방 먹은 머저리가 있었다.


“부황(父皇)께도 용서를 구합니다.”


“되었다, 내 비록 오해를 하긴 하였으나, 그 결심이 갸륵하더구나.”


“최근 들어 나라의 살림이 곤궁해져 곳곳에서 제 알량한 이득만을 위해 기존의 질서에 위배된 집단적인 행동을 보이며 멋대로 일을 저리는 도적의 무리가 많아졌는데, 이에 따른 피해가 증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나라의 면이 바로 서고 그에 속한 무리가 알량한 제 잇속만을 위해 함부로 준동하지 못할 테니까요. 감히, 엄한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조는 어떠한 선택을 내리건 그 후일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추수, 그 하나에 집중해야 함에, 그에 따른 본보기가 필요하다 여겼을 뿐이옵니다.”


그리고 조위는 유범에게 그러한 부친을, 그중에서 제일 잘난 머저리를 어찌 구워삶을 수 있는지조차 아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그렇지. 우리 황자가 참으로 옳은 말을 하였다. 나라의 면이 바로 서며 그에 속한 이들이 제 잇속만을 함부로 내세우지 않도록, 엄한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못하도록 그에 따른 본보기를 확실히 세워야 함이야. 정해진 질서에 위배되지 않도록 말이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오니, 촉도난(蜀道難)이라 했습니다. 험준한 산세가 외부로의 도움과 지원을 허락지 않으니, 고로 익주를 가리켜 세간의 이들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기댈 곳이 없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 난국의 상황에 일할 곳이 없어 백성이 방황하여 나라는 위태로움 또한 스스로 걷어내야 합니다. 마침 식량의 수송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도를 정비해야 하는 요역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추수에 바삐 움직이는 백성을 동원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죄인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해서, 이 땅에 자리한 정해진 질서를 위배하면 어찌 되는지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주겠다? 아조에게 반하면 어찌 되는지?”


본보기와 가도 정비 그리고 촉도난과 요역.


“지난날 성도 교위의 활약 아래 잡아들인 불온한 이들의 수만 물경 1만 5천을 상회한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협력하거나 동조한 이들의 수는 더 많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죄인들이 몸소 고행을 행하며 스스로의 죄를 뉘우칠 광산의 수는 매우 적은데 비해 그러한 광산으로 몰려드는 인력들은 끝도 없다 들었습니다.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 작은 품이라도 팔아야 생계가 유지가 되는 상황 탓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되려 고행 없이 방치된 죄인들이 그 죄를 뉘우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들었습니다.”


“이를 허락하지 않으면 도리어 짐이 못난 군주가 되겠군.”


대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유언이 아니었으니, 상상만으로도 그 입가에 절로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1만하고도 4500에 달하는 죄인들에 대해서는 400화에 미리 나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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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33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3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7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3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3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10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8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2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60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8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4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3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5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3 4 23쪽
»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6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1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5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9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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