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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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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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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4
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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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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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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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9쪽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DUMMY

“전쟁이라, 전쟁........”


유언은 저도 모르게 용수(龍鬚)과 같이 자라난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장로가 나간 빈자리를 두고 혀를 찬 그는 과연 그의 앞에 드러난 것만을 말했을까?


“내관, 지금 당장 성도 교위하고....., 어. 중서령 불러와.”


“예, 황상.”


그렇게 유언의 앞에 두 사람이 당도했다.


한 사람은 듬직해 보이는 체구에 충직한 눈빛을 지닌 장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문사 티가 나는 것이 제법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러던 차, 유언은 먼저 충직한 눈빛을 지닌 장수를 찾았다.


“실상 오랜만의 부름이지, 손조?”


“대전에서 무례한 것들을 내쫓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긴 합니다.”


손조.


유언이 황제가 되어 계한이라는 제국의 문을 열기 전이자 포홍이 진나라를 개국하고 왕을 선포하기 이전에 잠깐 그 모습을 드러냈던 이였다.


장로의 어미인 노씨와 오두미교의 영향력 아래 자리한 이들 그리고 유언의 아들들을 낳은 정실과 유교의 영향력 아래 자리한 이들 간의 충돌에서 유언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움직였던 이로, 지금은 영전 끝에 교위 중에 으뜸이요, 특별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도 교위 벼슬을 달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사예교위의 벼슬의 익주판이자 계한 버전인데, 익주의 중심이 성도이니 성도 교위의 명칭이 내려진 것이라 하겠다.


그래도 그 이름 또한 특별하니 거진 중랑장과 다를 바 없으되 성도의 모든 것을 직할로 책임지면서도 보다 유언과 가깝게 자리하고 있어 실상 수도경비사령부의 주인과 다를 바 없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는데, 지금 이 양반이 하는 역할을 보면 어째 꼭 치안국장이나 안보국장처럼 느껴진다.


“그......, 대진국에서 흘러들어온 정신 나간 서학, 거기에 빠진 미친 것들 얼마나 때려잡았나?”


“지금까지 일만하고도 사천오백입니다.”


일만 사천 오백, 한 나라의 수도권 일대에서 소위 사상 운동과 더불어 폭동과 분란을 일으킨 저항에 승인되지 않은 교육과 전파를 담당하며 나라를 혼란케 한 이들의 숫자가 가히 상장을 초월했다.


“이 정도면 가히 국가 내란적 위기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이 불온한 것들 때문에 제국이 쪼개지게 생겼어. 이 머저리 같은 것들이 이 하나된 제국을 저 포홍이 일으킨 전국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어. 저 철 지난 것들 때문에.”


유언이 말한 대진국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역의 로마이건 아니면 관서의 진나라 대진국이건 흘러 들어온 자유와 공화에 입각한 신정부 수립과 민중 저항 및 해방 운동은 실상 알게 모르게 이 성도 일대를 넘어서 그 주변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나 촉주와 파군을 비롯한 이 일대는 거진 드높고 험준한 산간 지역으로 둘러싸인 분지들이 여럿 이어진 형국이니, 이는 달리 말해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문화와 지역색을 지닌 공동체들이 이전부터 발달해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땅에 이리도 많은 토착 부족들과 이민족들이 각자 저만의 것들을 지키며 살아왔던 것이고, 그 와중에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제 정체성을 잃지 않은 그 작은 공동체 사회는 이내 한조가 이 땅을 차지하고서도 쉬이 지워지지 않을 통치의 어려움을 남겼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선정과 확장 그리고 발전의 시기를 넘어선 가히 황금기에 가까운 전성기를 보내온 유언의 통치 속에서도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었다.


“이미 남중이 이 꼬라지야. 그 알량한 작은 이익에 취해, 만석을 비롯한 염료와 보옥에 취해 남중 정벌이 무색하리만치 서로 찢어지고 분열 중이지.”


이럴 때 보면 마치 남중은 흉노, 선비, 강, 저, 오환 등의 유목 민족들처럼 보인다. 부족 국가, 부족 연맹체를 탈피하지 못한 작은 공동체끼리의 이합집산이 반복되는 질 사회,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져 서로를 죽여대며 살아가는 자발적 강자존을 요구하는 고립된 생태계의 사회.


그러나 지역적 특색까지 더해 이를 더 엄밀히 살펴보자면 실상 다른 예시를 드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정확히는 저 서역 36국들을 닮아있지요. 소위 도시 기반밖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국가라 내세우는 모자란 것들의 연합 말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중서령의 벼슬에 올라 있는 문사 티를 내는 이가 제 존재감을 뽐냈다.


중서령이라, 궁성 내의 문건을 관리하는 중서성에 속한 이답게 그 배경지식이 해박하였으니, 허면 이는 과연 누구냐?


“역시 지리와 역사를 논함에 있어 이 땅에 이권, 자네만한 이가 없지. 익주의 호족임에도 언제고 저 익주 바깥의 천하를 꿈꾸는 자네를 죽이지 않은 짐의 선택은 기어코 옳은 것이었어.”


원 역사에서 동주사들과 함께 익주에 뿌리를 내리려던 유언의 눈에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그 목이 날아갔던 이들 중 하나였던 이권이다.


그 시절 죽임을 당했던 왕함과도 같은 이들과 더불어 살아있는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낙양에 자리하고 있던 황보숭 정권이 황보력으로 넘어가면서 사민(士民) 간의 갈등으로 멸망한 이후, 유언이 내세운 한조를 대신할 계한이라는 천명이라는 대의에 합류했는데 이는 실상 원 역사 속 유언이 본연의 한조가 살아있는 와중에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려 했던 야욕만 따지던 시절과는 달라진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하셨다면 신들의 칼이 황상을 향하였을 것이온데, 아쉽사옵니다. 애석한 것은 한조의 멸망이었으니, 그것만 아니었다면 실로 불온한 야욕을 품고 계신 한실의 반란자를 처단한 만고의 충신이 되었을 텐데요.”


“중서령! 감히 폐하의 앞에서 그 목이 달아나고 싶은가! 그도 아니면 이 손조의 칼에 도륙당하고 싶은 게야?”


“되었다, 손조.”


“하오나, 황상!”


“역시, 그대는 지식과 꿈이 있는 사내야. 천하로 나아가려면, 천하를 품으려면 그대와 같은 자를 포용해야지. 아닌 말로 돈 밝히는 멧돼지 왕함도 품었는데.”


그리고 그 현실에 순응한 것은 비단 유언이나 이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제 성질머리 여전한 것과 별개로 뭐가 중한지 알게 된 서로는 서로를 치워내지 않은 것으로 모자라 이리 서로를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비단 공화주의자들을 경계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저 서역에서도 일찍이 내던진 것이 바로 공화제이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화제는 제국의 도래와 더불어 사라졌으니, 저 서토의 대진국 또한 그리 제국을 자처함과 동시에 공화를 버렸습니다. 애당초 거대한 강역과 인구 그리고 물산을 품은 제국을 다스릴 수 없는 체제로 나라가 커질수록 중요한 것은 위계요, 질서이며 천자의 군림과 사농공상에 의한 계급이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그리해야 사회가 단단해지고 안정이 되는 것으로 압니다.”


“맞아, 그럼에도 내가 이를 경계해, 그 연유는?”


“이러한 공화제의 출범한 요인이 바로 그런 대진국의 옆 자락에 자리한 고대 문명의 터에서 기인했기 때문입니다. 하필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서역 36국의 모습을 닮아있으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지세라. 아조 또한 이러한 지형을 닮아있으되 이는 산간벽지에 사람이 살만한 크고 작은 분지들이 여럿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제일은 성도요, 그다음은 한중이며 그 아래 여러 작은 터전들이 있으니 이 땅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앞서 말한 촉주와 파군을 비롯한 이 일대가 거진 드높고 험준한 산간 지역으로 둘러싸인 분지들이 여럿 이어진 형국이라,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문화와 지역색을 지닌 공동체들이 이전부터 발달해왔다는 뜻이 와닿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이 땅에 이리도 많은 토착 부족들과 이민족들이 각자 저만의 것들을 지키며 살아왔던 것이고, 그 와중에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제 정체성을 잃지 않은 그 작은 공동체 사회는 이내 한조가 이 땅을 차지하고서도 쉬이 지워지지 않을 통치의 어려움을 남겼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이 땅의 분열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애초부터 생겨 먹은 것이 크고 작은 용연(분지)들의 난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성도에서 제국을 전복시키지 못하더라도 저 사이한 자유와 공화의 사상이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했다.


이 땅에 수많은 도시국가, 폴리스들과 다를 바 없는 여러 세력들이 난립하여 작금의 자신이 일으킨 이 계한이라는 제국이, 앞서 분열되고 무너져 내린 후한이라는 한조와 같은 운명을 맞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이면에, 그것도 이 땅에, 이와 같은 맥락으로 벌어진 선례가 또 하나 있다.


“그렇기에 내 이 땅에 자리했을 적에 가장 먼저 경계했던 것이 바로 자네들과 같은 토호일세. 동주사들과 더불어 자네와 같은 족속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 정리하려고 했던 연유가 그것일세. 미개한 부족들이야 그 발달이 덜하여 제아무리 자체적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고 교류한다고 한들,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일세를 일으키지 못하나 자네들은 그렇지 않거든. 특히나 한조라는 나라가 기울었을 때, 천하에 군벌이 난립하며 이 제국이 쪼개졌을 때, 각지에서 토호들이 저들의 터전을 기반 삼아 군벌이 되고 군웅이 되어 할거하며 효웅으로 돌변하는 것을 목도한 내가 이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대체 왜, 원 역사 속 황위의 찬탈을 꿈꾸는 유언이 어찌하여 이 땅의 토착민들을, 그들을 이끄는 토호들을 정리하게 되었는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되는 선례 말이다.


“그래도 신은.......”


“꿈이 있었지, 왕함과는 다르게.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다 여겼어. 이 땅의 이들을 규합하여 천하로 나아가겠다는 꿈을 꾸는 것은 비단 동주사들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온 내가 되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언은 이권만큼은 인정했다.


“황상, 어찌 이러한 불충한 이 앞에 스스로를 높이지 않으시고......”


“손조, 작금의 짐은 짐이 인정한 사내 앞에 그저 같은 꿈을 지닌 사내로 존재하고픈 것이야. 짐의 충신이요, 자랑거리인 그대가 정녕 이조차도 이해를 못 해주는가?”


그렇기에 이러한 유언의 태도는 그 어심의 아낌을 받는 이권으로 하여금 오묘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같은 꿈을 지닌 사내, 그 한 마디가 이권의 심간에 떨어져 작은 파문(波紋)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은, 상황이 달라졌어. 나도, 자네도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였으며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했지.”


“맞사옵니다.”


“재능은 있어, 실적도 있지. 그 내가 경계했을 정도니까.”


“실로 가슴이 떨리는 좋은 시절이었지요.”


이권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심장이 떨리는 날들의 연속이요, 끝이 없이 이어진 살얼음판 위를 걷는 일이자 드높인 곳에 매인 줄을 타는 일이었음에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만한 전성기가, 그만큼 몰입하고 제 가진 재주와 노력을 쏟아내던 시절이 달리 없었다.


“황상이 두려웠습니다. 수 없이 덤볐으나 이겨내려고 해도 떨쳐내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으니,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지요.”


이에 유언의 입가에도 미소가 드리워졌다.


비단 명분도 명분이었으나 수많은 동주사들과 더불어 일대를 압도하는 전력과 함께 나타난 유언에 대한 반기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이에 반하는 세력을 규합해 성장한 것은 비단 이권이 처음이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호적수의 등장이었다.


촉과 파군 일대에 호족들이 연합하였고 심지어는 가룡과 같은 명장의 마음까지 얻은 것은 이내 유언의 심간에 기어코 끝을 봐야겠다는 결단을 심어주었다.


“나는 용연 속에 자리를 잡고 승천하여 하늘에 올라 용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네. 그렇기에 익주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분지는 실상 내게 허락된, 나만을 위한, 하늘이 내게 내린 정해진 운명을 위해 준비된 용연이었지. 고로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의 승천을 허락하면 안 되는 일이었어. 백예(伯豫)라는 그대의 자처럼, 그 누구보다 먼저, 미리, 앞서, 기뻐하면 안 되는 거였지. 맏이자 처음이 되어 그 뜻을 펼쳐서는 아니 되는 일이었어. 반대로 가룡(賈龍)처럼, 그 이름에 용이 들어서도 아니 되는 일이었지. 오직 유씨만이 하늘에 오를 수 있는 것이 허락된 세상에, 유씨가 아닌 용이라니 실로 가당치 않은 일이지.”


그러나 한조가, 낙양의 조당이 무너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누군가는 자신들에게 아주 당연한 세상이었던, 한조를 계승하고 복원하며 이어야만 했으니까.


앞서 말하였듯 그래서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후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그래, 그 이후로 쭉 이러했지. 그러나 다시금 상황이 달라졌어. 그래서 이제는 자네가 필요하다 말할 참이야.”


“........!”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의중을 내비친 유언의 진심에 놀란 것은 이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닌 말로, 자네는 자네가 살지 못한 전국의 시대를, 사내의 이상과 야망을 꿈꿨으나 스스로 황제가 될 꿈은 꾸지 않았을 게야. 전국책이란 게 본디 전국의 시절을 살아온 모사들의 책략을 집대성하여 기록해 엮은 것이니, 자네는 자네의 재주가 천하를 호령하길 원해. 임금이 아니라 명신이자 재신으로서 천하를 놀라게 할 모사요, 책사가 되길 원해. 내 말이 틀렸는가?”


그러나 정작 그 뒤에 덧붙은 말에 이권의 눈이 더더욱 커진 것을 아직 유언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뭐랄까? 나는 자네와 다르게 이리 미쳐 날뛰는 전국의 시대를 꿈꾼 적은 없네. 허나 제위에 대한 꿈은 여전히 내 안에 자리한 심장의 박동처럼 격동하고 있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말이지. 그에 비해 이 가슴속은 허전하다네. 허면 대저 뭐가 부족한 걸까? 대저 뭐가 충족되지 않았기에 나는 이리도 이 공허를 채울 것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지. 아, 작금의 계한도. 그러한 계한의 황제에 오른 나도, 실상 온전한 것이 없구나. 그리 온전한 것이 없는데 마냥 온전해질 때를 바라는구나. 그 결과가 어떠할지도 모르는데 정작 언제 올지도 모를 그때만을 기다리며, 진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했구나. 물경 30만의 정병을 준비해놓고서도, 자발적으로 전쟁도 결정하지 못한 채, 정작 그 진나라가 벌이는 이주경쟁에 이민전쟁이다 뭐다 자유와 공화다 사회변혁이다 교역이다 분쟁이다 쟁송이다 뭐다 이리저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놈들이 하는 짓에 끌려다니며 끝내 예까지 이르렀구나.”


언제고 진나라를 거쳐 그러한 이야기가 흘러들어온 적이 있다.


포홍의 사치가 대단해서 그 어떠한 기름으로도 만들지 못하는 황금 닭을 만들겠다 엄청난 양의 콩깻묵을 쥐어짜 기름을 만들었다고. 그리 만든 기름을 또 수 차례 거르고 걸러서 제일 좋은 기름을 만들고, 그 안에 튀길 닭조차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 제일 좋은 날을 잡아 튀겼는데도 온전한 황금 닭이 아니라 반쪽짜리 황금 닭인 반금작계(半金炸鷄)가 나왔다고.


이에 호사가들이 말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노력에 노력을 기해도 안 될 때는 안 되는 거라고. 천하를 일통한 진시황조차 불로불사는 불가했던 거라고.


또 돌이켜보면 이러한 이야기도 있었다.


동서대전, 그러니까 천하대전이 중반부로 접어들 시점에 가 문화가 형주에서 출병한 유기를 패퇴시키고 그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할 적에 닭의 갈비인 계륵(鷄肋)을 이야기했다고.


그 말인즉, 선택도 사람도 입장도 모두가 계륵이니 이 판에 계륵이 아닌 것이 없다고. 언제고 결단코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은 도래하는 법이라고. 그 끝에서 나는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었다고. 계륵을 두고 고민하는 것조차 실상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결국 사람은 때론 빗물이라도 마셔야 할 때가 있다고. 설사 발라먹기 힘들다 못해 살도 없는 계륵일지라도 그걸 입에 가져가면 적어도 직성은 풀린다고.


요튼 요지는 이거다. 이상과 달리 현실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일 때가 많다. 그리고 궁하면 궁한 대로 당장에 굶어 죽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뭐든 뜯어서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을 합치면 이러한 뜻이 된다.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가 단 한 순간에 온전해질 완벽한 때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기회가 무엇이든 왔을 때 손을 뻗어 이를 쥐고 일을 저지르겠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꿈에서 끝나지만, 적어도 그 결과에 막연한 기대를 걸지 않고 여견과 시기와 같은 여러 조건을 너무 빽빽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적어도 그것은 무언가라도 실질적으로 일궈낼 수 있는, 도전해볼 수 있는 현실의 시작이 된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나는 아무래도 자네와 같은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천하로 나아가는 꿈, 나아가서 그 천하를 놀라게 하여 청사에 그 이름이 남겨지는 꿈. 그리고 그것이 내게 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주었으면 해.”


그렇게 유언이 이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일을 생각함에 있어 그리 많은 것을 따지지 않을 생각이야. 실상 그 앞에 내걸 조건도 딱 하나면 족하지.”


그 눈을 마주하며 자신을 원하고 있으니, 어느덧 세월을 거슬러 젊은 날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 속에 그 심장이 요동치듯 뛴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은, 함께 가고 싶네. 더 이상 꿈으로 그칠 게 아니라 그 꿈을 위해 나아가고 싶어. 진정으로 함께 저 드넓은 천하로 나아가고 싶어.”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 시절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속에서 자신은 대저 무얼 위해 살아왔는가?


“고로 내게. 아니, 짐에게 그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주겠나?”


꿈, 그래. 그 하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살아왔다.


“일평생 그 품에서 전국책을 놓지 않았던 사내여.”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짐과 더불어 천하를 놀라게 할 짐의 책사여.”


그때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짐과 함께 천하를 종횡할 짐의 자방이여.”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여겼건만.


“이 자리에서 선언하건대, 짐은 그대와 같은 꿈을 꾸고 싶도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도다. 난세를 평정하여 청사에 위업을 새기며 만대에 기록될 그 이름을 남기고 싶도다. 고로 묻노니, 그대 또한 이와 같지 아니한가?”


전국이 이 세상이 결국 시대와 시절이 흘러온 지난 세월과 역사를 거슬러 회귀하였듯, 그렇게 시간을 거스른 그에게도 또다시 꿈, 그 하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살아왔던 그 젊은 날이 다시, 이리 제 앞에 돌아왔다.


작가의말


드디어 400화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더 심혈을 기울였고,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네요.


그래서인가? 뭔가 더 특별편?처럼 나름의 의미가 담겨있도록 쓰여진 것 같습니다.


이미 이전화를 쓰면서 그 흐름과 전개를 설정해놓은 탓에 크게 건들 건 없었지만, 덕분에 나름 심도 깊이 계한이란 세력을 다루고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400화인 것을 떠올려보면 꾸역꾸역 어떻게든 글 마무리 짓겠다고, 그 와중에 대충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이것저것 따져가며 여기까지 멱살 잡고 끌고 온 걸 생각하니 기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매양 들쭉한 글이라도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더 느끼게 되는 것도 같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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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08.06 07:49
    No. 1

    100화 200화 쯤 갑자기 잠그고 사라지는 분들이 많죠.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8.06 21:26
    No. 2

    사실 솔직한 심경으로 말씀드리면 이기적일지라도 영민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우직하게 지켜봤자 봐보될 때도 많고 책임감 때문에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글을 계속 끌고 가는 시간 대비 수익이나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 시간에 망한 거 빨리 접고 새글 파서 자극적이고 빨리 빨리 넘어가는 거 수요 있는 거 하나라도 더 써서 내다 팔아 돈 벌면 그게 성공에 가까워지긴 합니다. 이게 전업이든 부업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인정을 받고 돈을 버는 것이 인정이자 성공의 척도라면, 저는 실패한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인가 저도 처음에는 비록 가볍게나마 실력은 모자라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 속에 작게나마 수요가 있는 글먹을 꿈꾸곤 했는데 많이 부족한 것도 알았고 문체도 고객들이 바라는 니즈도 인스턴트에 자극적이며 대리만족 형인 웹소설이 아님을 알고서 많이 내려놨습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이 힘든 세상에서 각자 제 인생 개척할 때, 어떻게 보면 그리 써야 할 시간 내다버린다고 할 정도로 내가 뭐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좋아하니까 하고 겉으로나마 뱉은 말이니까 실력 갈고 닦으며 그냥 수양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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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2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2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9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9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8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7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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