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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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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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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DUMMY

저벅- 저벅-


어느덧 적막만이 감돌던 복도 넘어 인기척이 느껴졌으니, 그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창 한 자루를 꼬나 쥔 채,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그 얼굴까지 가린 투구를 쓰고 있는 사내였다.


“모시러 왔습니다.”


“그렇구만, 이제 나갈 때가 되었어.”


“허면.”


그렇게 잠시 양해를 구한 사내는 그 창을 비틀어 쥔 채, 뒤로 물러섰다.


그와 더불어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고, 이내 그가 당겨진 창끝을 내지른 그 순간.


“하아아압!”


투콰아아아악- 터어어엉-


엄청난 기합과 더불어 그 팔을 비틀어 가한 일격에 창살의 중심에 자리한 자물쇠가 부서지며 떨어져나왔다.


덜컥-


“나오시지요.”


“더 강해졌군, 이러나 진정 괴물을 잡는 전설 속의 영웅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옥사에 갇혀 있던 이는 남다른 소감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에 투구를 쓴 사내는 이 관서 땅에 강자들을 생각했는지 연신 그 고개를 저었다.


“서역이라면 모를까? 이 땅에선 어림도 없을 겁니다.”


“하긴, 다들 어디 보통 괴물들인가? 그래도 아비도 만났겠다,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


그러던 차, 뼈가 있는 듯 얄궂게 전해진 질문에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불편한가?”


“아닙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은, 자네는 새치고는 홀로 날갯짓을 배웠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글쎄, 뭐랄까? 나라는 사람은 날개를 주었으나 날갯짓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말이야.”


옥에서 나온 이의 이해하지 못할 말에 투구를 쓴 이의 고개가 갸웃해졌다.


역시나 이리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고 그 판을 짜며 이를 위해 세상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영감을 받는 이들은 비단 자신과 같은 소수뿐이었으니, 그래서 언제고 자신과 같은 이들이 패왕의 곁에, 군웅의 곁에, 주인의 곁에 그 밑그림을 함께 그려주는 자들로서 자리하는 것 아니겠는가?


“왕후 전하는 뫼시었고?”


“이제 막 궁으로 돌아오신 것으로 압니다.”


“허면 승상부로 가야겠구만, 모두가 그곳에 있을 터이니. 앞장서게.”


“예, 가 총사.”


그리고 마침내, 그 옥에 있던 이의 실체가 그 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음, 그렇게 부르지 말게. 그저, 뭐라 그러더라? 그래, 다이달로스. 그리, 불러주면 좋겠군.”


그러나 비단 이들의 역할극은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이 이야기는 전설을 바탕으로 짜여졌으나 그 결말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저벅- 저벅-


“이건 배역은 있으되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역할극이야, 그렇기에 모든 것이 보장되어있지. 어떠한 선택지로 귀결되느냐에 따라 모두를 살릴 수도 모두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신은 왕명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적어도 왕후전하만큼은 어떻게든 모셔가야 합니다.”


“왕후가 살아도 그녀의 아비를 비롯한 이들이 죽으면 그건 추후에 어떠한 여파를 낳고,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 그리도 순하고 여린 여인이 되려 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분노와 악심을 품으면 이는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 나는 생각하네, 어쩌면 그녀의 존재가 이 땅에 다시금 한 고조의 존재를 부를지 모른다고.”


“우리의 폐하께선 변치 않은 진왕이십니다.”


“이 사람, 그리 중원에 오래 살았으면서 아직까지도 이 땅의 비유를 모르나?”


“예?”


“하필이면, 하필이면 여씨야.”


“여씨가 뭐 어쨌단 말입니까?”


“한 고조의 부인도 여씨였거든, 근데 비단 우리 폐하의 장인이 바로 여불위 아닌가?”


“............!”


“살아서 더한 악녀가 되느니, 되려 죽는 쪽이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지.”


비단 엄밀히 말해 포홍의 아내는 풍씨로 성씨는 다르나, 그 장인인 풍방이 여불위라 불리웠으니 이는 달리 말해 역할극에 따른 비유였다.


그리고 그 여불위의 피를 이어받은 여씨 출신의 여인이 기어코 만들어낸 비극의 참상은 한조 천하라는 환상의 실체라 할 수 있는 여씨 천하의 암흑기요, 한조 초기의 위기였다.


토사구팽의 일을 시작으로 비단 무소불위의 권력을 집어삼킨 여걸로서, 결국 최초의 황후이자 황태후이며 고황후가 된 그녀는 결혼의 이후 갖은 고생 속에 그 성정이 변하여 기어코 야심을 추구하는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 끝에 개국공신을 비롯한 오만 이들이 연이은 숙청과 실각 속에 그 모든 권력이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비단 그리 그녀들에 손에 의해 죽어 나가고 정리당한 공신들이 그간 건실한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하여 겉으로 보기엔 그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의 평탄한 시절이었으나 초한대전의 여파로 실상 쓸려나간 국력은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고, 대외적으로 흉노 앞에 굴종적인 외교를 수십 년간 지속해야 하였으며,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그 고혈을 빨리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설마, 왕후께서 그 여씨처럼 변한다는........”


여씨라는 피의 저주가 비단 분란의 상징일지 지나친 야심의 일환일지 어떠할지 모르나 그러한 여씨들의 기원이요,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여불위부터가 그러한 작자였고, 그러한 여불위와 붙어먹은 여인들 또한 하나같이 정치적인 야욕의 끝자락을 향해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 여인들이었으니, 비단 이러한 여파가 실질적 계승이든, 정신적 계승이든 간에 인간이 미쳐 돌변하게 되는 그 한순간을 알고 있는 가후로서는 비단 그러한 선택에 더한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지. 허나 눈앞에 닥친 비극의 한순간이야말로 사람을 정반대로 변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계기이니, 그에 기대를 거는 게지. 왕후가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그리고 이는 비단 가후 또한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나도 그러했거든, 염충의 죽음이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일조했지. 그리고 나는 염충의 이상과 정의를 비롯한 그 모든 선을 실현하기 위해 온 세상을 헤집은 악이 되었다.”


과거 황보숭의 곁에서 출사했던 시절.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진 동탁, 포홍의 난.


제 눈앞에서 포홍의 화살에 목을 꿰고 죽어버린 하진의 최후.


그 뒤에 펼쳐질 천하.


“재미있었다. 나름의 소명 의식도 있었지. 그러나 결국 세상이 이를 감당치 못했다.”


이를 수습한 직구 황보숭의 곁에서, 황보력의 곁에서 작금의 난세를 이끌고 재정비하며 살아옴에 기어코 그 끝에 낙양 정권의 몰락을 확인한 그는 포홍에게로 갈아타 기어코 제가 일군 공든 탑인 한조 자체의 소멸과 그에 속한 유씨 황제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러한 가 문화를 주인으로 모시며 인연이 있었던 투구를 쓴 이 또한 그때를 회상함에 되려 우려스러운 것은, 비단 그 여불위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이 눈앞에 가 문화의 존재였다.


“제 눈에는 어째 그 여불위보다도 제 전 주인이셨던 총사께서 더 위험해 보이십니다.”


“후후후, 그러한가? 하긴, 내 세상을 휘감아 집어삼킬 뱀이긴 하더구만. 뭐, 그래도 용이 될 생각은 아니니, 그걸로 되었지. 아닌 말로, 나 또한 그 날카로운 송곳니에 물려 죽고 찔려 죽고픈 마음은 아니라서. 거기에 비단 용이라 한들, 못 집어삼킬 것도 아니거든.”


어쩌면 용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용이 될 생각조차 없는 뱀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에 투구를 쓴 이가 고심하던 찰나, 비단 여불위에 대한 우려를 두고서도, 그 여파로 인한 여씨 왕후의 등극과 변화를 앞에 두고서도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만 있었다.


“여튼 요지는 이거야. 왕후에게, 아니 공주에게 이 모든 것이 달려 있지. 그녀가 어떠한 선택을 내리는가는 그녀가 택한 선택지의 여파가 그녀를 휘감을 때 벌어지겠지. 그리고 그때를 봐야겠어. 기어코 그녀가 제 부친인 여불위를 넘어선 여 황후가 되려는지, 그도 아니면 제 본연의 성정을 지킨 채, 이대로 남을 것인지. 그녀가 더는 공주가 아니게 되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게야. 실로 극적이지, 장안성 내에서 공연을 하던 극단에서 벌어졌던 그간의 공연들보다 더.”


그렇기에 가 문화는 그녀에게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자리를 주었다.


그 이전에 애당초 풍방을 미노스의 왕이라 둔 것에 의한 안배일 수도 있으나 실상 이 땅의 왕은 그가 아님에도, 일찍이 미궁 밖을 나아가 온 세상의 하늘을 뒤덮은 별들의 왕이 되기 위해 저 먼 서역으로 나아간 미노타우르스(아스테리오스)가 포홍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 괴물이 없는 미궁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본래의 전설대로 미노스가 해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음에도 그 약조를 지키지 않아 받은 저주의 산물이 미노타우르스인 것처럼, 풍방 또한 포홍의 존재와 관련하여 그간 영제의 도움을 받았음에, 그를 통해 건석을 제끼고 서원 팔교위의 새로운 수장이 되려 했던 일에 저주가 더해진 비틀린 결과의 산물로 내려진 것이 포홍이라 볼 수 있었다.


역사의 장난인지 운명의 일환인지, 한 시대를 풍미한 괴물이자 그 악명으로 이름이 높은 것은 같았으나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미노스에게는 다이달로스가 있었으나, 그때의 풍방에겐 자신이 없었다.


아니, 설사 풍방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본래의 주인이었던 황보력이나 황보숭이 그에 조금만 더 자신을 믿어주고 노력을 가했더라도 작금의 천하가 이리될 일은, 저 별들의 왕이 저리 갇혀 있던 궁궐을 벗어나 대초원을 누비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을 무릎 꿇릴 왕 중의 왕, 별 중의 별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진실로 별의 왕이라 불리게 되는 괴물은 진실로 미궁 없이 천하를 질주했고, 그 결과 별들이 끝도 없이 수놓은 밤하늘 아래 모든 초원을 내달리며 진실로 그 위에 군림하는 별들의 왕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뭐, 그래도 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거기다 재미있는 것은 비단 미궁이나 다름이 없는, 이 장안성을 비롯한 왕궁을 재중축하는데 얽힌 자신과 풍방의 인연.


풍방이 사례에서 옹주를 찢어 분할하여 가지게 되면서, 그 이후 진국을 세워 왕을 자처하기 까지의 동서금로를 비롯한 수로의 정비와 오만 토목공사가 진행되던 그 시절.


이 왕궁의 장래성을 염두에 두고 원활한 집권을 위한 재증축을 실질적으로 시행하고 그 자금을 댔던 것이 바로 풍방이요, 그 속에서 그 건설에 책임자로 관여하여 미궁과 같은 지하수로를 남몰래 집어넣어 건설을 시킨 것이 가후, 자신이었다.


허나 그때는 자신은, 먼 서역에 자리한 희랍의 전설을 모를 적 일이었고, 되려 참고했던 것이 다름이 아닌 전설처럼 남아있던 진시황릉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물론, 그 규모도 실질적인 역할도 다를뿐더러 수은의 강이라는 말도 아니 되는 값비싼 미친 짓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여차하는 순간에 이용할 대비책이자 비상 탈출구요, 지하갱도 수준으로만 만들어둔 것이었는데, 한데 그것이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이렇게, 이러한 이야기 속 역할극마냥 자리매김하게 될 줄은 또 몰랐던 것이었으니, 이 또한 저 하늘이 안배한 운명의 장난질과 같으랴?


스윽-


그렇게 가 문화는 조금은 우습고도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이러한 안배를 남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 좋은데, 그렇게 자꾸 알량한 장난질을 하면 정녕 그땐 그 안배고 나발이고 다 비틀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남들이 그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온전히 고개를 하늘을 향해 뒤로 젖힌 채, 그 눈에 살기를 담아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어낸 그는 졸지에 애먼 하늘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을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그리 뜻대로 모든 것이 돌아갈 것 같겠지만, 실상 모든 것이 내 의중에 의한 것들조차 결국은 저 하늘의 그물이 짜 만든 천라지망의 일환이 되어 그 운명의 실타래들이 엮인 이야기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돌이켜 의심하고 돌아보는 형국이니 나름 돌아가는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지요.”


뭐가 되었든 과격하고 급진적이긴 하여도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은 제 의중에 의한 결과물이라 여겼는데, 이제와 이를 돌이켜 보니 그 또한 막상 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들에 의중에 의한 휘둘림을 겪어온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서 묻건대 보고 싶은 겁니까? 그도 아니면 보고 싶지 않은 겁니까? 산 자들이 죽음의 이름을 등에 업고 부활하는데, 시대는 자꾸만 이전의 역사에 뒤엉켜 덧씌워지는데 과연 그것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 과연 그 끝에 누가 부활하게 될지. 그도 아니면 설마, 뭔가를 다시 뒤집어봐야 할 만큼 작금의 이 세상에 이르기까지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겁니까?”


역사는 돌고 돌며 먼저 간 자들의 이야기는 선례가 되어 그다음의 길을 걸어갈 이들의 행보 위에 덧씌워지는 지표요, 비유가 된다.


그 또한 역할극의 일환이요, 이를 통해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엇비슷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재탄생하여 이 땅에 더 극적인 이야기들을 낳게 되니 결국 그 속에서 대저 무엇을 보거나 바로잡고 싶어 하냐는 말이다.


그렇게 상황이 이쯤 되고 나니 가 문화 또한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기획한 일이었으나 자신 또한 그 운명이 정해진 장기짝이라면, 차라리 그 끝에 내려진 선택만큼은 하늘의 뜻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끝을 보고 싶다면, 이 이상은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지요. 비단 모든 것이 신들의 바램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을 테니. 아니, 그 신들조차도 그 의중이 갈릴 테니, 그것이 무엇이건 저 드높은 곳에 올라 장막 뒤에 선 것은 작금의 내가 올라탄 별의 왕 하나로도 족할 뿐이니, 어디 신들이 기거하는 그곳까지 가서 봅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애초에 제 죽을 운명을 벗어난 별의 왕에 대한 믿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세월을 거슬러 도성에 자리한 옥사에서 이미 죽을 운명이었으나, 제 수하를 시켜 암습을 사주하여 제 발로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던가?


그것이 운명이 되었건 저 드높은 천상에 자리한 이들 앞에 올라서 한소리를 해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남다른 것이라 여겼다.


그 잘난 신들 앞에 그 아가리를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 그 자체를 휘감아 그들의 세상을 옥죄고,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재미있을 것이라.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간 이라 할 겁니다.”


그러던 차 이러한 행동을 지켜보던 투구를 쓴 이가 한 소리를 건네왔다.


“자네는 궁금하지도 않나? 살다 보면 제가 왜 태어났는지, 왜 이리 사는지, 대저 이 땅에 무엇을 남기기 위해 자리한 건지 궁금해질 때가 많거든. 한데 그것이 극에 달하면 제 자신을 벗어난 것들을 보게 돼. 그리고 그걸 놓을 수가 없지.”


“애먼 앵속에 중독된 자들이나 할 법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들 그렇지 않나? 비단 약쟁이들 뿐이 아니야, 귀신 들린 놈도 마찬가지고, 기적을 보았다 신을 마주했다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놈들 또한 마찬가지야. 이상만을 추구하거나 현실을 도외시한 채, 늘 꿈만 꾸는 몽상가라 불리는 이들 또한 그러하지. 그저 보고 싶은 게야. 가서 확인하고 싶은 게야. 제가 본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찰나의 한 순간 밖에 없는데, 그것도 뚜렷하고 선명하기는커녕, 그 실체조차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데, 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진밀 놈도 마찬가지야.”


“.........”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되려 그리 투구를 쓴 이에게가 아닌 작금의 이 땅을 이리 피폐하게 만든 재상 진밀을 향하고 있었다.


“내 분명 모든 것이 드높이 솟구친다고 했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아난다고 했어. 감당할 수 있느냐 물었어. 홀로서기가 가능한 것이냐, 진정 독립이 가능한 것이냐 물었다. 그러나 그 이면은 진실로 인간이 하늘을, 신을 떨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지. 그리 신을 등지고 살면, 그에 따른 신의 격노를 감당할 수는 있겠느냐는 것이었고, 또 반대로 신이 비호하지 않는 이 땅에 과연 다른 신들이 비호하는 이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냐는 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하늘을 짊어지고 있음에 저 홀로 하늘이 없는 것만큼의 비극은 없으리니, 결국 나의 하늘을 목놓아 부르짖을 날이, 언제고 머지 않은 그 날이 오리라 보았다. 이는 비단 백색 소를 가둔 미궁을 이야기하는 희랍의 전설과 똑같지. 지난날 영제를 등졌다 포홍을 사위로 받아들이게 된 풍방의 이야기와 똑같고.”


그리고 그리 진밀을 향해 이어진 이야기는 이내 다시금 풍방에게로 덧씌워졌다.


“그 속에 그 미궁을 설게 한 내가 있어. 결국 그 짐승을 감당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 허나 장담컨대 왕은 그 짐승을 감당하지 못해. 허나 공주는 다르겠지. 본디 예부터 신령한 힘을 지닌 공주는, 신녀요, 여신과 같은바. 남들이 쉬이 다루지 못한 맹수와 짐승을 다룰 수 있다는 묘사가 이어져 왔으니.”


비단 그것은 규격 외 인간으로 본연의 이들과는 다른, 별도의 존재로 거듭난 포홍을 두고, 그가 벌인 일들을 돌이켜 그에 반기를 든 인간의 가까운 것이라 이는 마치 신과 대적하는 인간의 형상인 것이라.


신역과 성역을 논하며 이를 부수고 파괴하는 자를 논하였으니 그리 이전 시대를 파멸로 이끌어 새 시대를 창조하는 이를 두고 어찌 판별하여 어찌 대응할 것인가?


그 아래 무엇을 보여주고 싶고 무엇을 증명하여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가?


“내가 없이도.”


“예?”


“아니야, 그보다도 노랫말이라도 하나 지어 읊어야겠지.”


그렇게 가후는 비단 옥사를 나와 승상부가 자리한 곳까지 궁궐 내에 자리한 돌담으로 만들어진 벽을 훑으며 노래를 불렀다.


“신이여, 신을 위한 제물이여. 그대는 끓는 불길 위에 자리한 솥 안에서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며 죽으리라. 제물이 죽으면 신의 뜻이요, 신이 죽으면 인간의 승리이니, 모든 것은 흰 소의 울음 속에 결정지어지리라.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뜨고 지며 사라지는 서쪽에 이르러 그 끝이 결정지어질 것인즉, 그대들의 운명 또한 저 서쪽 끝에 다다라야 끝을 맺지 않겠는가?”


저들만의 것으로 다시 짜내려고 했던 그것은 비단 이 땅의 것으로만 짜여진 반쪽짜리이기에 그 영롱함과 촘촘함을 금할 길이 없으니 하늘빛과 더불어 내린 비단결과도 같은 햇살만 못하리라.


하늘이 부여한 질서에 입각해 각자의 역할과 저만의 소명을 타고난 이들에 대한 안배가, 그 스스로의 운명을 거부함과 별개로 그 모든 천라지망을 내던지고 무너트렸을 때, 어찌 이를 관리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이 세상을 관장함에 뭐에 홀린 듯, 친우의 이상과 하늘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혼돈과 혼란을 낳은 파괴적인 질서를 지향하며 살았고, 그 모든 것을 떨쳤을 때, 그리 부순 세상 위에 새로운 것을 세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비단 이 세상 법칙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요, 새장이며, 미궁을 관장하는 관리자가 필요한 법이지. 어찌 손을 대야 세상이 바로 서는지 알고, 어찌 손을 대야 세상이 무너지는지 알지. 그렇기에 나는 다이달로스다. 나의 역할은 왕의 곁에서, 이 땅의 보이지 않은 질서와 법칙을 세우고 무너트리며 이를 보좌하고 관장하는 것. 그런 나의 곁에는 신도 사람도 짐승도 괴물도 아닌 그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나니, 이는 바야흐로 인간과 신을 잇는, 이 땅과 저 하늘 그 사이에 자리한 별을 다스리는 그 모든 것의 왕이다.”


작가의말

뭔가 쉽게 풀어낼 수 있을 방법이 있을까 고심하느라 여러 번 수정을 거듭했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것도 그닥 만족스럽진 않은데 그래도 표현하고자 했던 바가 조금이라도 잘 담겨있으면 좋겠네요.


글의 내용상 한번쯤은 다뤄야 되는 부분이라 뺄수도 없고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겨우 하나 정리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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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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