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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498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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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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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408화 – 읍참진밀(1)

DUMMY

“이권을 불러와.”


- 예, 황상.


그리 홀로 남은 독백 속에 용상이라는, 천자의 위라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눌러앉은 늙은 이무기요, 비좁은 천하에서 승천한 반쪽짜리 용인 유언의 고심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덜컥-


“아들놈이 헛짓거리를 했어. 결국, 제 태생을 버리지 못함인지, 그도 아니면 욕심이 과했든지.”


“전하.”


그렇게 모두의 눈을 속여 변복과 더불어 다시금 입궁한 이권이 비단 기분 좋은 얼굴로 그의 앞에 자리했다.


“동주사들이 후원을 자처했고, 그에 휘둘리는 놈이 정작 조위의 지모라는 보좌를 받고 있음에도 그 장로에게 휘둘렸어. 허면 비단 내려지는 판단은 둘 중 하나겠지. 적어도 이들이 두고 부리는 동주사들의 가치보다 오두미도를 이끄는 장로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


물론, 이는 장로가 부상을 입게 될 당시 성도 일대에 요동치는 민심과 더불어 그의 안위를 위해 제 정체성을 드러낸 수십만 신도들의 실체를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틀어졌어.”


“진밀....., 때문입니까?”


“그렇지.”


그러나 그럼에도 마냥 이를 가벼이 두고 넘길 수 없는 것은 진밀의 등장과 더불어 졸지에 균형잡힌 판세로 접어든 조당의 흐름이었다.


허면 대저 진밀은 왜 튀어나왔는가? 거기에 자신의 신하도 아닌 자가 그 부름도 없이 멋대로 궁에 든 것 하며, 그 와중에 제 능력을 과시해 자신의 권위와 질서로 움직여야 할 조당의 무게추를 멋대로 뒤집은 죄는 또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 죄를 물을 이는 또 누가 될 것인가?


“흐.”


점점 그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는 이권이었다.


“짐이, 심히 거슬려. 짐의 신하도 아닌 자가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이 실로 거슬려.”


“하오나 작금의 진밀의 등장은 비단 의외의 소견이긴 합니다.”


“자네가 나섰기 때문이라면 말이 되겠지. 허나......”


“그렇지 않다는 건, 이 또한 조위의 작품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조위는 결국 전쟁을 찬동했지, 비단 유범 그놈이 종군의 의상을 표방했으니, 당장에는 문제가 안 돼.”


“허면 결국 진밀이로군요.”


“짐의 권위가, 안배가 말이 아니게 되었어.”


용상에 자리한 이의 분노와 거슬림이 반가울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그것이 이토록 반가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신하된 이의 직함조차 없는 이가, 그것도 별도의 연유로 초빙된 것도 아닌 일개 어린 인사가 벌써부터 이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책을 도맡은 신료들과 세력들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달리 말해 황권에 훼방을 놓으면서, 황제의 결정에 비견될 먹잇감을 던져놓으면서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 선택을 내린 어심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임금의 총애는 반대로 그 총애를 받는 충신이 기대에 부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 막중한 사안에 무게를 느낀 이권의 입은 찢어지고 있었다.


“웃고 있군.”


다른 이도 아닌 진밀을 치워내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다짐을 받아낸 지난날과 다를 바 없으니, 그 고양된 모습에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냥 정국에 방해된다고 죽여달라는 것도 아니야. 사감을 내세워 일을 그르치라는 것도 아니다. 황자 유범의 선례가 장로와 같은 비극을 키워 여차하면 써먹을지 모를 선택지 하나를 지운 셈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치워내는 것이 가능하더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여드리지요.”


“............!”


그리고 그 확신은 이내 곧 그에 대한 믿음으로 전해진다.


“허면 짐은 어찌해야 할 것이냐.”


“신이 진밀의 목을 베는 그날 우십시오. 궁을 나와 모두가 보는 앞에 목놓아 우십시오. 신을 엄히 질책하시고, 그런 신을 전장으로 내보내십시오. 그 품에 진밀을 안으시고 부릅뜬 눈으로 진밀의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그보다 더 값진 결과를 가져오라 하십시오.”


“그렇구나, 그런 것이야.”


이미 이권은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희생양을 점지해두고 그 희생양을 제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이미 계획해두고 있었다.


“우선 전쟁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보다도 더 이 나라의 비극을 더더욱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신이 목소리를 높일 것이옵니다. 그 와중에 다시금 진밀을 건드릴 것이옵니다.”


“그러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는 게지요. 과거의 일로서 흠집을 내는 게지요.”


“그리되면?”


“신이 진밀의 자존심을 건들 것이옵니다. 그간 쌓은 명성을, 평판을 해할 것이옵니다.”


“진밀은 필경 반발할 것이다.”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이미 신은 그 당시 진밀이 내린 평을 이겨냈사오니 그에 따른 증언 하나만을 청하고자 합니다.”


“그에게서 무엇을 바라려고?”


“출사를 권할 것입니다.”


“............!”


그랬다.


결국, 임금이 택하는 것인 신하여야 한다.


임금된 이는 신하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암군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며, 명군은 신하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이다.


매양 그 입에 진충보국을 담으면 무엇하며 그 재주를 자랑하면 무엇할 것인가?


멸사봉공하지 못한 이의 본질은 결국 개인의 욕심과 사감을 우선시하여 대의와 대업을 그르치는 행위인 것이니, 그저 출사를 권하겠다는 별것 아닌 이 말이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게 될 줄은 이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막상 이권이 직접 진밀에게 소리치기 전까지는.


* * *


“나는 호족이 아닌 신하다-!”


오늘도 쩌렁쩌렁한 울림이 황궁을 비롯한 성도 일대에 울려 퍼졌다.


진과의 전쟁이냐 계한의 침공이냐 개척이냐를 두고 연이어 이어진 회의 탓에 반강제로 출석할 수밖에 없는 진밀과 이권의 묵혀진 악연이 그리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출사해라! 더는 그 재주를 썩히지 말고 아조와 아조의 황상과 아조의 백성을 위해 봉사(奉仕)해라-!”


“모자란 것이 이제와 대인 행세를 하는구나. 꺼져라, 불온한 서적에 잡아먹힌 짐승에게 할 말은 없으니, 그리 집어삼킨 먹물에서조차 누린내가 나는 그 냄새나는 혓바닥의 꼬드김에 놀아날 일은 없으리라.”


“대체 너는 뭐냐! 객장도 아니요, 사간도 아니다! 그저 그런 세객임에도. 애초에 외부인사임에 불과함에도 뭐가 그리 잘났기에, 멋대로 궁을 들락거리며, 그 와중에 조당의 의사를 좌지우지하고, 이 나라의 대소신료들의 의중을 틀렸다 말하는 것이냐! 그저 네가 불가하다 선언하며 제 뜻대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만이, 그게 그리도 맞는 것이냐! 그렇다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출사를 하여 적극적으로 이에 가담하면 될 것이지, 자격도 없는 이가 대저 뭣 때문에 모두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서 가르치려고만 드느냐! 그것도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는커녕, 그 존재조차 비하하여 격하시키기 일수이며 저와 같은 사족이 아니면 사람 취급조차 안 하며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함이니, 어찌 이리도 그 심사가 뒤틀렸는가!”


“비단 선비가 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의미와 연유가 있는 법이거늘, 그조차 이해하지도 못하고 연신 떼만 쓰는 네 수준을 내가 연이어 지적해주어야 속이 풀리겠더냐? 그도 아니면 같이 붙어 다니는 놈들 중에서도 그 머리 하나 깨친 놈이 없어 이런 네놈을 그냥 두고 방치하는 것이냐? 그리고 내 네놈들의 의사를 거부한 것은 들어줄 필요도 없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대저 네놈들이 뭘 안다고 그리들 설치느냐? 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다 으레 돈 벌고 제 사욕 채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것들이, 대저 나라와 백성, 천하가 어쩌고 대의가 어쩌고 충정이 어쩌고 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모르는 게야?”


그러나 비단 이조차 얄팍한 수작질이라고 여긴 진밀의 태도는 실로 오만하다 못해 무례했다.


특히나 이를 대변하는 토호들조차 싸잡아 짐승이라 매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여러 직설적인 표현은 가히 이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불편함을 주었고, 더 나아가 제 말이 무조건 옳다는 듯 단언하는 태도는 으레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진밀을 쫓아다니며 그와 언쟁을 벌이는 이권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그럼에도 출사하라, 스스로 그리 가진 재주가 넘치고 자격이 충분한데 애써 이를 거절하는 것은 나라와 백성 그리고 임금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그를 붙잡고 붙들고 늘어졌다.


“출사해라, 나는 호족이 아닌 신하다. 이는 비단 사족과 호족의 문제가 아님을 어찌 모르는가?”


“네놈이 사직을 하면 생각해보지. 네놈과 조당에 함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구역질이 나서 그럴 수가 없겠더군.”


“아직도 구태의연한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게냐? 왜? 내 직접 네놈의 이름값을 날린 일화를 스스로 깨부수고 올라섰기에, 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야?”


남들이 보기에 이는 실로 충신의 모습이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포용성과 자기희생을 내보이는 면모 또한 어설프나마 진정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비단 책하나 옆구리에 끼고 뭐라도 된 것마냥 설치더니 기어코 남하한 동주사들 상대로 잘 나갔다고 진정 뭐라도 되는 줄 아는구나? 머저리야, 그래봤자 결국 네놈은 승리조차 못하고 종국에는 그 밑으로 들어가 신하를 자처한 놈이다.”


그에 비해 비단 진밀은 어떠한가?


“나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두가 동주사들을 이끌고 내려온 폐하의 신하를 자처했다! 허면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그도 아니면 네놈이 별것 아닌 존재라 싸잡은 나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지속하신 폐하와 동주사들조차도 결국 다를 바 없이 별것 아닌 존재라 싸잡는 것이냐?”


“머저리가 내 언제 그런 말을 했더냐?”


“지금 네놈이 하는 말이 그렇지 않더냐? 그 와중에 그 태도 또한 그러한 것이 어찌하여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냐?”


“나는 전쟁을 반대한 적이 없다.”


“그래놓고 진과의 전쟁은 불가하다 했지?”


“내 직접 적어 올린 네 가지 연유를 내세운 불가론의 상소를 듣지 못하였더냐? 이래서 못 배운 놈은 가르쳐야 한다니까.”


“허면 무조건적으로 이 땅의 이들은 모조리 네놈 말을 들어야 하느냐? 네놈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느냐?”


“아닌 말로, 이 나라에 사족이 왜 존재할 것 같으냐? 비단 나라의 적법하고도 올바른 통치를 위함이다. 그 모든 것은 교화를 위함이다. 사족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교화되지 않으니까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게다. 진에 끌려다닌 너희들 그에 방관한 것들, 이를 방치한 것들, 그에 득을 본 모두가 쓰레기들이지.”


사람이 겸손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못했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순 없는 건가?


“네놈이 지금껏 이 나라를 위해 노고를 다해온 이들을 욕보여!”


퍼억-


“크흑! 이게 지금 뭣하는......!”


뻐어억-


“그 안에 황상이 계시고 네놈과 같은 사족이 있으며 호족이 있고 상공인이 있으며 농자가 있고 백성이 있는데도! 그따위 망발을!”


그 와중에 지속된 신변잡기는 이를 목도하는 이들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에 대한 반감과 오해, 그리고 불편함과 거슬림을 낳게 했고, 그 빈틈을 치고 들어가 주먹질을 일삼으며 난동을 부린 이권에 대한 통쾌함과 호방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호족 나부랭이가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는 게야!”


그러나 때아닌 드잡이질 너머 더해진 주먹질에, 그것도 호족으로서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이의 살기가 어린 주먹질에 실로 제 죽을 것 같은 충격과 감히 제 몸에 손을 댄 짐승만도 못한 이에 대한 거부감이 더해진 진밀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냥 네놈이 나를 인정치 않는 게지! 해서 그냥 불편한 것 아니냐!”


“죽어라! 죽어! 그냥 어디든 가서 뒈져버리란 말이야!”


“봐라! 봐! 네놈이 그리도 욕보이고 멸시하며 오직 네놈의 이름을 알리는 청명만을 얻기 위해 쓰고 버렸던 나를 봐라! 내가 네놈의 위에 있다!”


“웃기는 소리! 어째서 네놈이 내 위야!”


그 눈빛 속에 오만과 분노, 그리고 질시와 거슬림을 비롯한 오만 감정이 튀어나왔다.


아주 당연하리만치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울부짖으며 흙을 뿌리고 가당치 않은 주먹을 날리며 몸부림을 치니 그것이 더더욱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적어도 폐하의 신하가 되었다! 이 땅의 다른 중신들처럼 계한과 그런 계한의 황상을 위한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라! 네까짓 놈이 어째서 충신이야!”


“그걸 몰라서 묻는 게냐? 적어도 나는 네놈처럼 오만불손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되지 못할 놈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무에 그리 오만해!”


“그 오만불손이 문제인 줄만 아느냐! 나는 적어도 네놈처럼 네놈의 입장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어찌 본다면 실상 신기한 광경이다.


누구 하나, 그에게 지적질을 하는 이가 없었다.


같은 사족들조차, 심지어 광한군 내에 자리를 잡은 대치의 이들조차 그런 그에게 우려 섞인 걱정을 건넸을 뿐, 그런 그의 잘잘못을 노골적으로 꼬집지 않았다.


배움, 학식, 재주. 이는 마치 자격과도 같았고, 그에 모자란 이들이 되려 그를 지적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른 오만함은 당연한 것이었으니 비단 이 땅에 누구 하나 그보다 잘난 이가 있으랴?


“적어도 나는 내 일신을 벗어난 입장을 취했다! 한조가 망해 계한이 그 보루인 것을 알았을 때, 그 모든 저항을 멈췄고, 그에 곧바로 황상의 신하가 되었지! 그때 황상께서 이러한 나를 두고 뭐라 말씀하셨는지 아느냐?”


그렇기에 그보다 못난 이가 그를 질책하며, 그런 그를 설교하는 이러한 풍경은 가히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함께 가자. 짐과 함께 천하를 일통하여 이 전국을 끝내자.”


웅성웅성-


그 와중에 흘러나오는 실로 감동적인 이야기에 절로 이를 지켜보는 이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고,


“늦었지만 못할 것도 없지. 태공망은 일흔에 출사하여 은을 멸하고 주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짐은 이미 주를 대신할 계한을 세웠으니 남은 것은 진을 멸해 천하를 안정시키는 것뿐이지 않은가?”


- 역시, 황상께선 대업을.......


- 그래, 관중을 얻어 천하를 제패하는 한 고조가 되시기로 한 게야.


그 와중에 어찌하여 지난날 유언이 진밀의 의견에 반하는 듯, 장안과 낙양의 가치를 따지며 진과의 전쟁 쪽으로 그 의중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좋다! 일평생 그 품에서 전국책을 놓지 않았던 사내여! 심지어 이 땅의 이름난 석학마저 이를 무시를 할 정도로 그 망상이자 공상 속에 파묻혀 살던 사내여! 그대가 현실을 벗어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그 비틀린 세상을 꿈꾸었을 때, 모두가 이를 힐난하고 비아냥거렸어도 오직 나만은 그대를 경계했다! 오직 나만이 그대의 위험성을 꿈꾼다는 기이한 평가를 내렸으나 반대로 이는 한조의 멸망을 우려했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진밀을 바닥에 눕힌 채, 그 위에 앉아 격양되어 소리치는 이권의 외침이 절정에 달한 것은,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그에 따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이제부터였다.


“난세는 영웅을 부르고,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 그런 고로! 그대는 그대에게 들러붙은 꼬리표에 기죽지 마라! 세간이 그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들, 무에 문제랴? 짐이 그대를 인정하는 바이니, 그대는! 짐의 둘도 없는 호적수요, 짐과 함께 천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같은 꿈을 꾸는 짐의 신하다!”


“...........!”


비록 그것이 이권의 입에서 나온 일방적인 주장일지라도, 그의 입을 빌어 나온 이야기는 지난날 이 익주 땅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권에 대한 조롱이 섞인 일화를 일방적으로 뒤집어버리는 선고와 같았다.


일평생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던 이를 인정하여 그에 손을 내민 것은 가히 제왕의 풍모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선비된 자로서 능히 바라왔고 꿈꿔왔던 일이 될 것이라.


“그리고 자꾸 사족이 어쩌고 하니까 하는 말인데, 그거 알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그 목숨을 바친다는 거?”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자객열전 편이로군. 흐흐흐, 그래서 이제와 네놈이 나를 죽이러 오는 자객이라도 되려고?”


“그렇겠지? 그럴 요량은 아니었다만, 이제와 네놈을 보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스르응-


그러나 그 감동의 끝자락에 그보다 더한 비극이 찾아오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이, 이권! 잠깐만! 자네 지금 대저 무엇을 하려는 겐가!”


“다가오는 놈은 그놈부터 벨 것이야! 다가오지 마라!”


졸지에 허리춤에 패용되어 있던 검을 뽑아버린 그가 이를 역수로 잡고 진밀을 겨누면서 그 주변이 난리가 났지만, 정작 칼을 쥔 이권의 살기에 누구 하나 그에 가까이 가는 이들이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가 죽는 것은, 그리 수많은 책을 읽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야. 애당초 내게 전국책을 허락했다면, 오늘날의 네가 이리되는 일은 없었겠지. 오만한 천재여, 수많은 교훈이 적인 서책을 수천 권 읽고 외워 읊을 줄 알면 뭣 하는가? 눈앞에 자리한 이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하는데? 제가 받들어 모셔야 할 군왕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는데.”


“내 이럴 줄 알았지, 내가 네게 이를 허락지 않은 것은 다 그만한 연유가 있는 게야.”


그 와중에도 제 잘못을 깨치지 못한 진밀은 되려 이러한 이권의 행동을 조롱하고 있었다.


“너의 그러한 행위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네가 나를 이리 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어.”


“이 해악한 자야, 어찌 세상에 해독약조차 없는 극독을 풀려고 해.”


“그대를 비롯한 세상이 내게 해악을 선사했는데, 나는 세상에 해악을 선사하면 안 되나?”


“역시 이조차도 망상인가? 세상이 자신에게 악을 선사했다 그리 망상이야?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그래, 그리 바라던 난세가 찾아왔다고 한들, 평생을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깨지 못하고 죽겠지. 그래, 이는 네놈이 빛나기 위해 모두가 죽어 나가기 전까지 깰 수 없는 꿈이 될 것이다.”


“깨지 못할 꿈이라도 좋아. 꿈꾸던 것이 진정 현실이 되리라 마음먹었던 적은 애당초 없었으니까. 한데 그것이 진정 현실이 되려 해. 같은 꿈을 꾸는 이가 생겼어. 그리고 정정하자면.......”


그렇게 한 차례.


푸욱-


“커윽!”


“그저 부끄럽고 창피하나 어린 아해마냥 동심에 이를 즐겼을 뿐, 그러나 굳이 그걸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내게 악을 선사한 것은 네놈이지.”


“흐흐...., 흐윽....., 네놈은 세상에 더, 더할 나위 없는...... 아, 악을......, 선사할 게야.”


“나는 그걸 충정이라 부르기로 했네. 적어도 신하된 자로서의 책무는 다하겠다는 게지. 한데, 그리 신하된 바를 떠나서 애초에 사족이라는 배경과 출신을 두고 있음에도 오직 제 일신만을 따지는 자네는 도저히 용서가 안 돼.”


두 차례.


푸욱-


“흐으으으윽!”


“자네는 사족도 신하도 뭣도 아니야. 그리 자격도 뭣도 없는 이가 고작해야 과거의 인연이 불편하고 거슬린다는 그 연유 하나만으로 나라와 임금마저 등진 채, 제 알량한 재주 몇 번 빌려주고 대저 어디까지 대접받고 어디까지 올라서려 함이야?”


세 차례.


푸욱-


“허으....., 허......, 허ㅅ.......”


“별 것 없는 개인이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데는 제법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지만, 명망 있는 누군가를 앞세운 이 사회는 그게 너무나도 쉬워. 그저 물어뜯으라 내던지는 단 한 순간이면 족하지. 내가 그랬어. 허니, 이제 네놈도 그러해야지?”


그 목구멍에 새로운 바람구멍을 내며 꿀렁이는 핏물을 솟구치게 만든 이권의 칼질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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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2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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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8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7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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