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581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10.04 05:23
조회
162
추천
5
글자
21쪽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DUMMY

“벼, 병원.......”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 병원이 절명했다.


실상 시간을 거스르고 다시 알로 돌아가자 어쩌자 말하였으나 그가 말하는, 시간을 되돌리는 반복에 오늘의, 아니. 조금 전의 그는 없었다.


“가 문화, 당신......!”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다 효령황제 유굉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애석하게도 용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두 형제는 각기 어린 뱀과 어린 새가 되었고, 이 사람과 동 중영은 그 둘 모두를 확인했지요.”


이에 풍씨가 증오하듯 그를 노려보았으나 가후는 되려 그리 제 앞에 쓰러져 죽은 병원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하늘에 오르는 일은, 새 시대의 문을 여는 일은, 스스로 그 빗장을 열어젖히는 일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그 열쇠가 되는 일은 결단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었으되, 그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쟁취하겠다 일을 벌이는 것은 필경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자 함께하는 이들을 되려 더 힘들게 하게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 자질을 보고, 자격을 보아야 함에,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고 내던질 수 있으며, 때론 그 이상조차 내려놓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을 보살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새 시대를 열었음에도 또 무슨 놈의 새 시대가 필요합니까?”


이 모든 것이 비극이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진실로 이를 몰라서 되묻는 것이옵니까? 그러고도 전하께서 정녕 폐하의 베필이 맞긴 한 것이옵니까?”


“.........”


그렇기에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씨가 그에 불만을 토로하였으나 정작 이를 두고 돌아온 가 문화의 답은 실로 싸늘한 눈초리와 더불어 실망스러운 목소리뿐이었다.


“진실로 이리 서로를 죽이고 죽이며 서로 간의 상잔을 지속하는 난세가, 이 전국이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새 시대라 생각하십니까? 아닌 말로, 부군께서 아무런 연유도 없이 이리도 잔혹한 세상의 문을, 그저 저 혼자만을 위하여, 그 스스로만을 생각해 열어젖힌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비단 이게 새 시대의 축복이라도 됩니까? 비단 이 모든 비극이 누구를 향한 구원이 됩니까?”


“그게, 그게 무슨 소리........”


“비단 이 모든 게, 이 순간순간에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많은 것도 압니다.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진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시험은 끝났습니다. 이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가는 새 시대의 문을 열어젖히기 위한 실험 또한 끝났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미숙하지요, 아직은 모든 것이 영글지 못하였으니, 시대의 과업은, 미래를 향한 안배는, 그에 따른 유산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당신, 왜 그이와 같은 말을........”


그에 뒤이어 연신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읊는 것에 풍씨는 더한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간혹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던 제 남편이 입에 담았을 법한, 그에 엇비슷한 말들을 입에 담는 그의 모습에서 풍씨는 또다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조금은 동떨어진 그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백년전쟁의 난세는 실현될 것이요,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시련이 될 것이옵니다. 그 속에 이르고도 늦은 구원이 있을 것이나 이는 스스로를 깨워 그 자격을 획득한 자들에게만이 찾아올 것이옵니다. 이는 비단 육신의 풍요가 아닌 정신의 풍요를 먼저 깨친 자들에 의해 열릴 것이옵니다. 그 작은 것조차 담아낼 수 없는 작디작은 정신의 곡창을 지닌 이들은 이다음의 세상을 살아갈 자격을, 새 시대의 풍요를 획득지 못할 것이옵니다. 고로 자격이 없는 이가 멋대로 다음 세상을 준비하게 되면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게 되옵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가후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하며 병원을 향해 두었던 시선을 이내 다른 사람에게 두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격이 없는 이가 멋대로 저만을 위한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일 또한 하늘의 안배에 위배되는 것이옵니다.”


“아버지?”


그렇게 가후의 시선의 끝에 조금은 당황한 듯 보이는, 그러면서도 굳이 애써 이를 감추는 풍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상 제아무리 모두가 함께 잘 살고 모두를 위한 좋은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비단 그것을 핑계로 오직 저만을 위한 천국의 문을 여는 행위가 당연시되는 것은 아니지요. 또한 감히 그 하늘 위에 오르지도 못한 짐승이 멋대로 자격을 논하고 심사하는 일 또한 없어야 할 겝니다.”


“하......, 가 문화, 이.......”


“그 역할은 비단 그쪽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고로 그 자격을 얻고 싶으면 스스로의 희생을 자처하십시오, 비단 흘러넘치는 재물 몇 푼 얹어봐야 그 자격을 얻을 깜냥조차 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건 하나는 확실히 보증토록 하지요. 이 땅에 자리매김한 저울과 저 하늘 위의 저울이 같을 것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같은 값으로 그 무게를 늘리려거든, 더 많은 이들을 살리는 쪽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더 갸륵할 것인즉. 더 많이 죽이든 더 많이 살리든 비단 어느 쪽이든 부정한 이들을 가려 그 끝에 되도록 많은 이들이 살아남는 것을 지향하십시오. 그 스스로가 부정한 이임에도 남고자 살고자 하시거든, 비단 그리 가진 그 모든 것을 태워야 할 겝니다. 제물이랍시고 알량한 장난질과 눈속임을 더해봤자 비단 이 땅의 이들만을 속일 뿐, 그 하늘의 진노만 더할 겝니다. 아, 이미 겪어보셨지요. 이미 그대에겐 끊어낼 수 없는 족쇄가, 짐승의 표식이, 이전의 하늘을 업신여겼기에 내림 받은 저주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고로 이를 노골적으로 알고 있다는 듯, 그렇기에 예서 멈추라는 듯, 이쯤 하면 알아먹을 거라는 듯, 가후는 그에 대한 힐난이자 질책이며 조롱에 가까울 노골적인 당부를 남겼다.


물론, 그와 더불어 그 눈이 뒤집힌 풍방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었으나 어쩌랴?


까아아아앙-


“이 정체도 모를 정신 나간 창잡이야, 그 빌어먹을 머리통부터 치워-!”


타악-


“........!”


또다시 그의 앞을 막는 투구를 쓴 사내의 창이 풍방의 칼을 짓눌렀고, 이에 화가 치민 풍방은 그 빈틈을 노려 칼을 쥐지 않은 손을 뻗어 그 투구 끝을 올려쳤다.


그와 더불어 거진 풍방만큼은 아니라 한들, 그에 비견될 찰랑이는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너는 포홍의.......”


또한 그 미모 또한 엇비슷한바, 그만큼의 미인은 아니었으나 비단 그에 엇비슷한 피부색과 더불어 어리고 여린 듯 보이는 서구적인 느낌의 미청년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테세우스!”


그 순간, 마치 이를 향해 들으라는 듯, 가 문화가 소리쳤다.


때마침 그리 투구가 날아간 덕에 거슬림을 느끼던 호적아 또한 자신을 알아보고 놀란 얼굴을 향해 기어코 창끝을 내질렀다.


* * *


치익- 화륵- 화륵-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오만 곳에 피투성이요, 시신과 혈흔이 낭자한 장안성 왕궁에서의 혈사가 끝이 났다.


곳곳에 횃불과 화톳불을 키우고 부상자와 사망자를 옮겨 나르는 이들의 움직임으로 바쁜 와중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상황을 정리한 가 문화를 찾았다.


“오랜만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너무나도 위험한 시간들이었네. 좀 더 빨리 나설 수는 없었는가?”


맨 먼저 찾아온 이들은 다름이 아닌 풍방과 충돌했던 갑훈을 비롯한 사인들과 상인들을 비롯해 다시금 부활한 오수병들이었다.


뭐, 상황도 얼추 정리되었겠다 좋게 다듬어서 보내려는데 의외로 끈덕지게 붙은 갑훈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는가?”


“다른 이들도 만나고 정리해야지요, 이제.”


“무엇을 위한 정리? 다 솟아오른 창칼마냥, 부러지고 쪼개진 금속 조각들 마냥, 찢어지고 엇나간 것들인데.”


“지금 시비 거는 겁니까?”


“거는 거네.”


“어째서요?”


“그놈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드니까.”


“이런, 이것 참. 허면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해 더한 노력을 기울이셨어야지, 높으신 자리에 있으신 분이 정작 그 바깥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셨으면서 옥사에 있는 이에게 대저 무얼 바라신 겁니까?”


“그놈이 그러던가? 이리 방만하고 엇나가게 놔두라고?”


“상처 입으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결과가 이리도 실망스러운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오나.......”


파악-


“개소리! 애당초 너무나도 많은 것을 허락하고 보여주었어! 이러면 아니 되는 것이었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그 와중에 멱살까지 잡고 늘어지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실로 가후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서렸다.


“글쎄요, 그게 하늘의 뜻이었는지, 어떠하였는지 이 사람이 대답을 해야 하는지요?”


“그래야지! 그놈이 또다시, 기어코 비극을 저질렀는데 당연히 그에 가장 가까웠던 이에게 답을 물어야지!”


“그렇다면 그에 들려드릴 수 있는 답은 하납니다. 아직도 진은 제국이 되지 못했다. 아니, 제국이 될 자질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럴 자질도, 그럴 기질조차 없으며 그저 머저리 같은 것들이 신과 같은 구원자, 단 한 사람에 기댄 채, 너무나도 편안히 많은 것을 누려왔을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설 생각도, 틀어진 문제를 바로잡을 생각도, 다가오는 위기에 맞설 생각도 온전히, 오롯이 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 땅은 비틀린 한의 구린내 나는 민족성을 떨치지 못했다. 제국의, 전조의 백성이요, 그 밑에 자리한 종놈이자 탐관이며 도적놈으로 남았던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아니, 뭐 비단 어디 이 땅의 이들만이 그렇겠냐만은, 적어도 진인은 달랐어야 했거늘, 실로 그렇지 못했다. 교화란 비단 의미없는 허상인 것, 계몽이라 그 머리를 때려 그 세상을 부순다고 한들, 되려 저들의 머리통이 깨지고 터져 나갈 뿐, 이를 받아들일 이가 과연 몇이나 남으랴?”


“가 문화-!”


조롱도 이런 조롱도 없고 힐난도 이런 힐난이 없었다.


막연히 손가락 하나를 세워 그 밑바닥을 가리킨 뒤, 버러지 내려다 보듯 내리 깔며 깎아내리는 어투에 갑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녕, 이럴 게야! 정녕 이럴 거냔 말이야!”


“송구하오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땅의 이들에게 그 축복이 과했다, 고작해야 아직도 섞이지 않은 것들. 이족과 한족이 뒤엉킨 잔재에 불과한 것을, 그 알량하고 오만한 것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너무 많은 것을 허락했다. 이상이란, 더 나은 세계란, 신들이 사는 상계란, 저 서역의 이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그 누구에게도 열려있지 않은 채,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춘 이들만 들여보낼 수 있는 성역이란 아직도 요원하고 먼 길이니, 아직도 이 나라엔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서 세상을 이끌고 일굴 의지가, 그 온전히 진보된 세상을 누릴 자격이 없다. 애석하게도 처방을 잘못한 것이다, 그 알량한 자유와 공화를 조금 맛보게 해주었다고, 더 나은 세상과 비단 저 하늘 너머의 장막을 살짝 들추었다고, 그에 홀리고 물들다 못해 이에 중독되어 그 몸이 터져 죽어버렸다. 이것으로 이 땅의 이들의 가치는 증명되었다. 그저 그런 왕조의 백성으로 살다 그리 죽으면 그뿐인 것이다. 자, 이제 만족하십니까?”


“자네, 정말.......!”


“가시지요, 어차피 이 땅의 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후는 갑훈을 외면한 채, 자리를 옮겼다.


이에 분이 풀리지 않은 그가 돌아갔고,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사라졌으니 그다음으로 몰려든 이들을 만나던 찰나,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옥에 갇힌 것은 비단 그 의미가 없었군요.”


“부손.”


그 얼굴이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인 어린 낭관의 등장이었다.


지난날 옥사에 갇힌 그를 꺼내려 하였을뿐더러 장기와 더불어 이후의 전쟁을 준비하며 빠른 내부의 수습을 위해 세를 모으며 군사적 준동까지 계획했던 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런 그의 뒤로 자리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초임 관료도 보이고 유력가의 자제도 보이며 중년의 은사들도 보였는데 어째 노골적으로 학파와 신분 그리고 직업군 등으로 똘똘 뭉쳐 쪼개진 번목을 자처하던 현 옹주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다채로운 면면들이었다.


“이미 일세를 일구었군그래?”


“뭐, 누가 난리를 쳐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축하하네, 이제야 조당에 인물다운 인물이 서겠군.”


“그보다는 정권이 바뀌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되려 소개할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손을 뻗어 보다 먼 발치에 자리한 이들을 부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장졸들과 함께 그 목을 벅벅 긁으며 나타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 덕용이라 합니다.”


부손이 소개했던, 또 가후 스스로도 알고 있던 장기의 등장이었다.


“잘 부탁하네, 가 문화일세.”


“예, 총사 어른. 아으, 저 근데 잠시만......”


쩌적- 쩌저적-


“어유, 이거 송구합니다. 하도 가려워서.......”


비단 왕궁에서 살육전이 벌어졌던 만큼, 그 바깥에서도 치열한 교전이 있었는데 그야 외적을 앞에 두고 벌어진 자국민들 간의 내전이었으나 그조차도 별 의미가 없다는 듯 제 얼굴에 붙은 끈덕진 살점을 뜯어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그 위로 더해진 부손의 설명이 알게 모를 호기심을 더해주었다.


“뭐, 보시다시피 예의범절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아쉬운 구석이 있는 친우라......, 다른 부분이야 일찍이 말씀을 드렸으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되었네, 들은 설명과 달리 되려 큰 사람 앞에 너무 조신하고 아부하지 않은 성향이 나쁘지 않아. 다만, 이 친구는 딱히 세를 모으지 않은 듯한데?”


그러던 차, 딴에 다른 군관들도 없이 그저 휘하의 이들과 더불어 홀로 나타나니 그것이 이상하다 여겼는데 어째 돌아온 대답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실소를 나오게 만들었다.


“어......., 이미 포섭 다 끝났습니다. 뭐, 저야 군부 측 이들의 지지만 얻어내면 끝이니까요.”


“허....., 그러니까 이미 끝이 났다?”


“예, 뭐. 못 믿으시겠다면 사람 풀어서 확인하셔도 됩니다.”


비단 곁에 자리한 다른 군관들도 없이 홀로 저리 마실 나오듯 나왔다는 것이 그 자신감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리되면 이미 그와 교분을 다진 이들이 사태의 수습을 위해 휘하의 이들을 이끌고 각지에 나가 있다는 소리가 된다.


“아닐세, 그 노력이 있을 터인데. 그보다도 현 장안성 내에 그대가 포섭한 군부의 이들이 몇인가?”


“하급 군관들까지 따지면, 근 예순 정도 될 겁니다.”


“반이나 먹어 치웠군, 비단 군부에 그간 돈과 혼인을 비롯한 연줄까지 이어가며 줄을 대던 이들이 그리도 많았는데.”


“뭐, 삼보 일대에 자리한 이들과 얽힌 인사들이야 원체 그 연이 끈끈한지 그다지 많이 넘어오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뭐 사람 다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서원이나, 제자백가 거기에 상공인에 토호들까지 여럿 끼인 곳들이 많긴 했는데, 그래도......, 가려운 구석 긁어주고 군부 중심의 전시 체제에, 행정 기반 조금 넘겨받는 쪽으로 잘 마무리 했습니다.”


“행정 기반을 넘겨받는다?”


“뭐, 딱히 처음 시도하는 건 아닙니다. 본디 전국이란 이름의 난세에서 이 땅의 여러 세력들과 군웅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비단 그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전쟁이니만큼 군을 쥐고 있는 군웅들의 결정권이 중했던 것을 그저 한 개인이 아니라 보다 전문화된 기관으로 옮기는 것뿐이지요.”


그러니까 휘하 무리와 더불어 병정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현실에 맞춘 정부의 개편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달리 말해 최소한의 행정 정부 체제를 갖춘, 소위 국가의 틀을 갖춘 세력들만이 시도할 수 있는 변혁이었다.


물론, 제아무리 국가의 틀을 갖추었다고는 해도 이전처럼 휘하의 이들 모아둔 빤한 평정에 군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인물 중심, 주먹구구식 난세적 운영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와 반대로 세력화된 파벌을, 특정화된 한 무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력들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진나라는 그와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조금은 더 동떨어진 현실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이는 비단 그 모든 것의 최종 결정권자인 임금의 부재와 기존의 방식으로는 돌아갈 수조차 없는, 이미 완성된 중앙집권화와 국가체제의 수립이었다.


거기에 현 전국에 제일가는 생산량과 소비력을 비롯한 인구와 물산, 영토 등을 보유하고 있으니 기존의 주먹구구식 체제로는 돌아갈 수조차 없는 사회구조와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으니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면서도 그 내부의 체계를 온전히 뒤집어야 하는데 그리하여 이들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군정(軍政)입니다. 군부통치라고 하지요. 아시다시피, 전국이란 이름의 난세를 앞에 두고서도 그간 우리가 너무 오만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때가 된 거지요.”


“군사정권이라.”


굳이 먼 후대의 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군인황제의 시대에 입각한 로마의 체제와 엇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 시대의 이들에게 이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공화정 위에 황제를 자처하는 프린켑스(임페라토르)가 올라선 요상한 형태의 공화정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긋난 제정과 공화정에 원로원까지 표류하고 뒤엉키는 요상한 난세의 군웅들의 할거는 꼭 황건의 난 이후에 이 중원 땅에서 벌어진 이 시대를 그리는 듯하니, 비단 제도가 앞선 마당에 벌어진 군웅의 할거가 전문화를 거쳐 전국시대와 어울리는 모습으로 자리했다 말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적어도 체계와 체제가 앞선 그 모습이 전문화도 되고 안착한 것만큼은, 이 땅에서 벌어진 것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진보된 것이었다.


물론, 본디 로마의 속주 통치가 그러함에 당연한 군정일 수 있으나 이는 비단 그 본토와 중심을 비롯한 이들의 세력화되어 입각한 개념을 뛰어넘은 군이 정부를 움직이는 개념의 초안이라고나 할까?


뭐, 여러 오해를 살 필요도 없이 네 글자로 함축하면 군국주의(軍國主義)를 지향하는 신정부의 수립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행정을 넘겨받겠다고 했네, 군이 정부를 움직인다고 봐도 되겠는가?”


“비상(非常)한 시국이기에 그 머리를 맞대고 내어놓은 답입니다. 애당초 그 이전에 총사께서, 아니. 폐하께서 바라시던 결과물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거기까지. 정작 폐하께선 이에 대한 실패를 우려하신 안배를 두었을 뿐이니, 이 또한 그분의 진의라 볼 수 없네.”


“이거, 흥분한 터라 주제도 모르고 설쳤군요. 송구합니다.”


“되었네, 그보다도 다시 앞서 물은 질문으로 돌아가서, 행정을 넘겨받겠다고 했는데 이를 어찌 위임받을 생각인가? 뭐, 작금의 승상부를 비롯한 조당이야 그렇다 쳐도 이에 대해 반발하는 성명과 더불어 사적으로 군을 일으킨 사부회가 있어. 그 뒷배가 삼보 일대의 이들임은 모르지 않을 터인데?”


“그러니까 사부회, 아니지. 그 의회부터 해산시켜야지요.”


“..........!”


하지만 보다 더 놀란 것은 그리 들어서게 될 신정부가 꼽은 첫 번째 제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집권에 걸림돌이 될 장애물로 현 옹주 땅에 제일 큰 기득권을 뽑을 줄이야.


“오는 길에 국상께서 피운 난장(亂場)을 보았습니다. 제아무리 위로는 국모를 둔 외척일지언정, 너무 크게 일을 벌였지요. 폐하도 계시지 않은 이 옹주 땅에서, 폐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구원을 바라는 이 땅의 이들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여론전에 말려죽기 싫다면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부귀와 권세를 지닌 여불위라고 한들 이에 협력해야 할 겁니다.”


“이것 참. 그건 또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답인지.”


“그야 누구겠습니까? 일찍이 지난날에 총사께서 소관에게 일러준, 백성들에게 헌신짝처럼 내던져진 채 방황하며 그간의 세월 날아오를 기회만을 엿보던 그분이시지요.”


“관녕.......”


그렇게 익숙한 이름이, 그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새로운 후보의 존재가, 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또다른 이의 날갯짓이, 새로이 도래할 시대의 이면이 벌써부터 혼란스러운 시대의 뒤안길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번 명절 기간은 연재를 쉽니다.[9/30 - 10/4] 20.09.29 414 0 -
공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4 20.06.25 1,446 0 -
공지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월 21일 업데이트] +2 20.06.14 794 0 -
공지 새로 시작합니다. +8 20.05.11 5,102 0 -
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33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3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6 3 21쪽
»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3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2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8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9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