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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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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8.1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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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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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1쪽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DUMMY

제발 부탁이건대 제게 주어진 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꼈다.


그리 일이 벌어진 순간, 그 또한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을 말이다.


“감히! 진국에 대한 복수를 막을 셈이냐아아아-!”


그에 귓전이 찢어질 듯 우렁찬 성공영의 살기 어린 목소리와 그에 손에 휘둘러지는 칼이 보였고.


그 옆에서 새하얗게 질려버린 낯빛으로 평정을 잃어버린 조위가 뭐라 소리치며 이를 막기 위해 륜거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당탕-


“크윽! 이 병신이 나라에 대한 충심은커녕 일개 황자에 대한 충심만 그득하구나!”


“위사들은 뭣들 하느냐! 경비를 선 위사들은 뭣들 해-!”


졸지에 서로 부딪힌 조위와 성공영이 한데 뒤엉켜 바닥을 굴렀고, 그에 힘없이 뒤로 나자빠진 유범은 멍하니 얼이 빠진 얼굴로 주저앉아 바닥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장로의 신음과도 같은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이, 일개 황자가 제 입지만을 추려 모든 것을 판별하였으니, 끝내 그 의구심을 거두지 못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구나. 흐흐흐......., 미련한 자여. 황제도 아닌 그대가 어찌 제국의 앞날을 짓밟는 것인가? 남은 것은 이것이 진심임을 증명하는 충신의 결의일 뿐이니, 황자 그대는 읍참의 결의를 잊지 말아야...., 마, 말아야.......”


덜컹-


“도, 도주님! 도주니이이임!”


“황자 전하! 대체 이 무슨........!”


“살려라! 무조건 살려! 장로부터 살려! 어서-!”


* * *


“하아.......”


때아닌 장로의 부상이었고, 수많은 오두미도의 신도들이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당장에 소식이 곳곳에 정해졌고 이미 자리를 비운 성공영은 조금 전 제가 빼돌린 암살의 진범과 더불어 그 종적을 감춰버렸다.


“당했습니다. 실로......, 후우.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


연신 식은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온 조위 또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은 모습으로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을 정리한 채, 날이 선 경계를 통해 억지로 울분에 찬 이들의 반발을 억누르는 병사들조차 장로의 부상에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신도들을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최대한 빨리 철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이쪽이 뭐라 지껄이던 간에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 줄 이들이 없겠지.”


“적어도 조당에 발을 들이는 이들 중에 이쪽과 장로의 해묵은 원한과 갈등을 모르는 이가 없지요. 그렇다고 예서 가만히 있으실 생각이십니까?”


“그 해묵은 갈등의 대의를 그르쳤다. 그대가 저지른 대계가 비틀렸고, 장로의 소인배적인 이면은 이걸로 가려지겠지. 그렇다면......”


스르응-


그 와중에 무심한 얼굴로 다시금 칼을 뽑은 유범이었다.


그러나 다급히 륜거에 탄 몸을 움직여 이를 가린 것은 조위였으니, 지금 유범이 들고 있는 칼엔 아직 장로의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하.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


“놈이 그러했어, 눈물로 베어내라. 그렇지 않고서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그것이 놈의 간교한 술책임을 어찌 모르시는 것입니까! 작금의 놈이 바란 것은 진정으로 계한을 섬긴 충신이자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제 한 몸 바쳐 희생하려는, 실로 제 아비와 다를 바 없는 순교자의 고결한 최후가 아니겠습니까!”


으드드득-


“알아, 아니까 화가 치미는 거야. 제 놈이 아주 대단한 자리를 만들었어. 전쟁을 부추기면서도, 이쪽에 한 방 먹이면서도, 제 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성인군자가 되시겠지. 전쟁을 부추겼어도 그 또한 충심으로 해석될 것이고, 종국에는 그조차 희석이 되겠지. 어차피 전쟁을 부추긴 당사자의 역할은 성공영이 자처할 테니까.”


그러나 여전히 이가 갈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연극일 가능성이, 아니, 이제는 지금까지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이 다 자신을 추락시키 위해 준비된 연극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질 않았다.


“이 모든 게 나 하나 잘라내기 위함인가? 그런 게야? 정녕 그런 건가?”


“송구하오나 아직 모든 것이 명확하진 않사옵니다. 당장에 장로를 내버리고 인질만 챙겨서 사라진 성공영만 보더라도 죽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니까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변방 오랑캐 개잡놈이, 제 복수 하나 하겠다고 기어코 전쟁의 불씨를 던지겠다는 거야. 그 불길에 고가 타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게지.”


그러나 그 또한 증명치 못하면 막연한 가능성이라, 당장에 중한 것은 이리 빠져버린 함정, 아니, 정확히는 이미 엎질러진 이 사태에 대한 후폭풍과 그에 따른 뒷수습이 먼저였다.


“조당의 이들이 동요할 겝니다, 사족의 이들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허나 제일 동요할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호족들일 겝니다.”


그리고 그에 최우선으로 우려되는 것이 바로 호족들의 이탈이었다.


“어째서?”


“정작 나라의 큰일을 앞두고도 구태의연한 작은 일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제왕의 그릇이 아니요, 그 아비인 작금의 황상만 못하다 여겨질 겁니다. 거기에 작금의 저지른 일이 계획된 것이라 왜곡된 견해를 가질 가능성도 높지요.”


“왜곡된 견해라니?”


“황자는 그간 일대를 돌며 얻어낸 그 알량한 민심과 교분을 통해 이를 멋대로 제 세력이라 여기고 장로를, 오두미교를 건드리는 악수를 저질렀다. 수십 년의 세월을 민중을 구제하고 치유하며 쌓아 만든 그 탄탄한 기반이 고작해야 성도 일대에 자리한 이들 여럿이 힘을 합친 것만으로 무너지리라 생각하다니 이는 실로 오만한 예단이 아닌가? 거기에 그리 호족을 별 것 아닌 존재로 치부하는 것 또한 우습다. 같이 간다는 것이, 호족과 함께 간다는 것이, 호족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그 호족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 줄은 아는가? 뭐 이런 견해들이 나오지 않겠ㅅ......”


그리고 그 이탈의 원인은,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황자 놈이 묘수랍시고 제 정적을 제거하려고 벌인 어처구니가 없는 바보짓이라고나 할까?


“누가, 대저 누가 고를 그따위 하등한 인간으로 보는가!”


“그 판단은 순전히 저들 몫이지요. 저들은 보여지는 것만을 믿습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런 저들의 세상은 그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판별함에 크게 그릇된 실정을 내린 적이 적지요. 고로 전하께선 그것들까지 모조리 감안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본디 권력이 위임되고 승계되는 상황의 정국이 제일 불안한 것이니 당장에 반란과도 같은 문제를 빼고 보더라도, 그 권력을 넘겨받기 이전에 떨어져 나간 지지기반은 쉬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정통성이 보장되는 후계자라도 제 못난 행실과 실정으로 까먹게 되는 민심은 쉬이 회복이 되질 않는다.


조위는 이를 지적한 것이었고, 유범 또한 이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이를 어찌 수습할 것인가?


“빌어먹을, 그래서 어쩌잔 말인가?”


“판을 다시 짜야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리 뒤집힌 판을 다시 뒤집겠다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조위였다.


“장로의 죽음을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여야겠지요. 호족이 버리는 패가 되었다면, 사족을 끌어들이면 됩니다. 그것이 당장에 전하의 기반이 되어줄 것이니, 나쁜 그림은 아닐 것입니다.”


“사족?”


“놈들에게 전쟁을 반대할 명분을 선사하겠습니다. 아니, 아예 다른 목표를 제시하지요. 또한 이권을 만나 놈의 손에 놈이 바라는 것을 쥐여줄 것입니다. 기왕지사 크게 자란 먹잇감을 던져줄 것이옵니다.”


“그게 가능한가?”


“신은 천문과 점성을 다루며 지세와 인간을 볼 줄 압니다. 신이 마음을 먹는다면 이뤄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고로 필요하다면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일도, 당장에 전쟁을 위한 칼바람을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하지요.”


펄럭-


그렇게 그의 손에 자리한 깃 부채가 거세게 움직였을 때.


“.........!”


휘이이이이이잉-


어느덧 바람이 거꾸로 불기 시작했다.


* * *


“그러니까! 지금도 전쟁을 하자는 게요!”


“아니, 지금이 기회라니까! 대저 그대들, 사족들은 뭔데 이를 반대를 하고 있나!”


“진국이 어디 촌구석 허름한 일개 번국도 아니고, 꼴랑 옹주 하나 떨어트린다고 다 끝난답니까! 아닌 말로, 저 비단길에서 전쟁하고 있는 포홍 그자가 대군을 이끌고 돌아오면 어쩌려고!”


“돌아오면 돌아오는 거지! 뭔 그리들 말이 많아!”


“야, 이 모자란 것들아! 진나라 허리통 잘라 놓으면 뭐 달라지는 줄 알아! 제일 위험한 량주에 기거하는 강족들에! 돌아올 포홍의 군대에 또 반대편은 관서의 이들이 침공을 막는 최전방인 낙양이야! 거기에 하내도 끼어있어! 그러다 양측에서 전선이 만들어지면 그리 협공당하면 어찌 견뎌낼 것이야!”


“그러면 가만히 이대로 있을 생각이야! 어? 야, 이 매국노 같은 새끼야! 여기 성공영이 흉수를 지목했잖아! 그 장로가 황자....., 황자 전하의 칼에 맞기 이전에 저 암살자 놈에 의해 먼저 죽을 뻔했잖아! 저 흉수가 진 국상의 심복이라잖아!”


“어허! 여기서 어찌 황자 전하의 이야기가 나오는가! 그저 고성과 다툼이 오간 것뿐이고, 장로 또한 스스로의 충정을 증명하려다 그리 벌어진 것뿐이야! 그리고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 하였거늘, 당장에 진나라와의 교역에 묶여 쟁송이다 뭐다 허우적거리면서 무슨 전쟁을 하겠다고! 우리의 교역도, 물산도 자립을 해야 하는 거야! 자립! 독립 말이야!”


시끌벅적한 고성이 오가는 대전 내의 분위기가 묘했다.


필경 전쟁이라는 대업을, 이를 위해 커져만 가는 불씨를 코앞에서 꺼트려 버린 일황자 유범의 어처구니가 없는 실정에 조당의 모두가 말이 없던 것이 얼마 전이었다.


은연중에 전쟁을 바랬던 유언 또한 이번 일에 실로 실망을 금치 못하였고, 화가 치밀다 못해 그 머리통에 앞에 두었던 상소와 장계까지 집어던졌다.


이미 성도 밖은 살얼음이 낀 분노마냥 고요한 적막을 유지했고, 그 속에서 간혹 들려오는 이들의 목소리는 거진 장로의 회복을 바라는 기도뿐이었다.


이는 비단 황건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민중이 나라에 반기를 든 도적으로 돌변하기 직전의 분위기와 같았고, 그리 설치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이들조차 행여나 큰일이 날까 두려워 절로 그 입을 닫았다.


당장에 사태를 수습해야 하기에 불러들인 유범은 조당에서 스스럼없이 무릎을 꿇으며 죄를 청했고, 종군(從軍). 그것도 장수가 아닌 일개 병사로서 졸군(卒軍) 하겠다며 끝내 전쟁의 수행 의사를 밝혔다.


앞서 인질과 찾아온 성공영에게 언질과 증언을 들은 뒤의 일이라 바뀌는 것은 없었다.


비단 늦게나마 유범이 병졸로서 종군하겠다고 하니, 호족들 또한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렇게라도 전쟁으로 그 분위기가 온전히 쏠리는 듯했는데, 돌연 한 사람의 출현으로 그 분위기가 뒤바뀌게 되었다.


덜컥-


“아무래도 조금 늦은 듯 싶사옵니다.”


진밀.


광한군 제일의 책사이자, 익주 재일의 기재이며, 사족들의 상징과도 같은 천고의 문재.


“그러나 늦었다고 더 늦게 드릴 말씀은 아닌 듯 싶사오니, 이부터 전하지요. 전쟁은 불가하옵니다.”


“뭐, 뭐라!


“..........!”


“아니, 지금 그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웅성웅성-


그 문재가 등장과 더불어 충격적인 말을 통해 더한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더냐?”


“신이 쓴 상소이옵니다. 가납하여주시옵소서.”


더불어 유언의 앞에 그가 쓴 상소 하나가 올라왔다.


“사불가론?”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당장에 추수가 바쁜 가을이고, 그 이후는 산지 곳곳이 얼어붙는 겨울이니 전쟁이 어렵다.


촉도난은 비단 한중 일대만 국한된 것이 아닌바,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살얼음이 끼는 이 마당에 잔도를 통한 행군은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니 한중까지의 행군 또한 어렵다.


작금의 옹주정은 거진 애초부터 진나라의 군대를 쫓아내고 들어선 괴뢰정권이자 반군 정부로서 차라리 이와 협력해 공을 세운 장로를 내세워 그들을 보호령으로 내세워 천천히 흡수하는 게 이롭다. 왜 우리가 애써 그들의 골칫거리인 반란군을 처리해주어야 하는가?


후방이 시끄럽고 위태로운데 이를 정리하지 않고 북상할 순 없다. 당장에 내려보낸 병력으로도 온전히 수습이 안 되는 남중이 진과의 전쟁을 빌미로 이탈하게 되면 이전처럼 계한이 필요로 하는 물산과 교역품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들이 소개되자 사족들이 힘을 얻었다.


“하긴,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긴 뭐가 그래! 그래서, 이러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생각인가!”


“기회고 나발이고 당장에 남중이 떨어져 나가면 곤란한 건 당신들이지 않소! 아닌 말로, 이 땅에서 상공인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게 그대들 아닌가!”


“이익! 그러니까 이를 상회할 이득을 위해 진을 치자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 진나라가 뉘 집 개 이름이냐고! 만일 행여나 전쟁이 길어지거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땐 책임질 거요! 거기에 옹주 말고 다른 지역들은 어떻게 할 거야!”


과연 천고의 기재 진밀이라며 그를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보다 중한 것은 당장에 그로 인해 힘을 얻은 반전의 여론이었다.


지난날, 한 차례 유언에게 욕을 먹었던 노신들조차 정작 그 유언에게 지적당했던 문제를 꺼내 들며 비단 옹주 하나 점령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설파했다.


“아닌 말로, 죄인들이 세운 잔도를 믿을 순 있는 거요? 급하게 정비한 것 아니요? 거기에 가도가 아무리 튼튼해도 얼음이 얼어 지반이 약해지고 미끄러질 것이 빤한데, 그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지 않소!”


“감히 황자 전하가 행한 일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지금!”


“그게 아니라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외다! 그리고 애초에 이 추운 날에 속전속결이 가능하기는 하오? 한중에 30만 군대가 머무는 것도 아니고, 상소에도 써 있지 않은가! 낙석에 절벽에 험로에 미끄러지는 살 얼음길에 애먼 병사들은 어찌 옮겨!”


그와 더불어 한쪽으로 기울기만 했던 여론이 어느덧 묘한 균형을 이루게 된 것 또한 바로 이즈음이었다.


그렇다고 호족들을 비롯해 전쟁을 찬동하고 나선 이들의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셈인가? 허면 뭐 하자고? 추수도 끝났겠다, 당장에 놀고 있는 병력들 데리고 뭘 하자고? 비단 전쟁이 아니고 다른 방도라도 있나? 그도 아니면 달리 전쟁을 벌일 곳이라도 있어!”


“옳소! 가뜩이나 나라의 내부가 시끄러운 상황에 외부에 힘을 실어주어 단결해야 내부의 균열이 사라지는 법인 것을!”


“만일, 전쟁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설사 전쟁을 바란다고 한들, 다른 길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조차도 예상했다는 듯, 진밀이 또다른 대안을 제시하면서 졸지에 그 갈등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뭐라? 교주? 그러니까 지금 그 교주를 치거나 아니면 그 교주 일대를 개척하라 이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렇게 비단 전쟁이든, 전쟁이 아니든 상대하기 어렵다고 여겨진 진나라를 대신하는 대안으로 나온 것은 뜬금없는 교주였다.


허나 정작 진밀은 이를 뜬금없다 하지 않았으니, 그는 작금의 조당의 이들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을 이야기를 꺼냈다.


“서역에 자리한 대진국(로마)의 상인이 바닷길을 통해 교주를 드나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너머 먼바다에 사는 남만의 이들과도 교역을 벌이며 그 규모가 방대하니 작금의 아조가 남중에서 수입하는 것 이상의 물자와 귀품들이 오고 가는 것 또한 확인했습니다. 그리 수많은 이들과 교역을 하다보니 그에 따른 수요 또한 대단한바, 거진 대진국의 유행에 따라 막대한 양의 사치품을 소비하는 진국의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이며 특히나 남중의 골칫거리였던 만석과 아조의 제일가는 수출품인 촉금 등에 수요가 드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그러니까 그 말은........”


꿀꺽-


“애초에 대진국(로마)의 유행을 받은 대진국(진)에게 물건을 파느니 차라리 애당초 그러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본래의 대진국(로마)에게 이를 팔겠다?”


“예.”


그 한 마디에 곳곳에서 탄식과 경탄을 비롯한 술렁임이 일었다.


과연 천고의 기재라더니 작금의 위태로운 조국이 내릴 수 있는 또다른 선택지를, 그것도 거진 그 진나라를 완전히 대체할 선택지를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비단 그 전쟁의 위험성 또한 낮았다.


남중이야 어차피 먼저 내려보낸 병력 외에 새로이 증원군의 형식으로 내려보내면 그뿐이고 그리 앞마당 역할을 자처하는 남중이 정리되는 대로 현지 부족들을 징발하거나 길잡이 삼아 막대한 대군을 이끌고 밀고 들어가면 그뿐이었다.


애초에 원주민들을 비롯한 여러 부족들과 부대껴 사는 생활환경 또한 비슷했고, 비단 수목이 우거지고 삼림이 울창한 자연환경 또한 자신들의 터전 대비 크게 이질적이고 이국적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자신들은 남중을 끼고 있으며 실상 장안이 있는 옹주를 비롯한 량주 등 메마른 광야와 초원, 그리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유목민들의 터전이 더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일 테니, 점점 더 교주라는 선택지에 마음을 기울게 되는 이들이 많아지는 형국이었다.


“전쟁이 아닌 개척이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작금의 아조는 불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재원과 이들을 고용할 일자리가 부족합니다. 또한 남중을 정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그들을 이주시켜 남중과 교주 일대에 자리를 잡게만 해도 수많은 곳들이 개척되고 발전할 겁니다. 알아서 생존할 것이니 식량의 걱정도 덜할 것이고 그리 개발된 곳에 마을과 도시 그리고 농토와 광산 등이 들어서겠지요. 한인들이 늘어날 것이고 여러 남만의 부족들 또한 자연스레 그에 감화되며 한인들의 것을 접하고 이를 따를 것입니다. 이리 인구가 반출이 되면, 수요 또한 절로 줄어드는 길이 될 터이니 그간 성도 일대에 드높은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으로 뛰었던 물건값도 자연스레 내려가게 되겠지요.”


거기에 비단 전쟁이 아니어도 좋다며 당장에 계한이 처한 과잉인구 부양 문제와 식량부족 거기에 물가안정과 식민지 개척을 포함한 뉴딜정책까지 제시하니, 이건 뭐 새로운 시장과 영토의 확보 외에 얻게 될 이득이 엄청난 것이었다.


타앙-


그러나 당장에 이 솔깃함에 휘청이는 분위기를 언짢게 여기는 이가 있었다.


“좋은 지적이다, 좋은 대안이야. 허나 그것이 아조가 계한이라는 국명을 지닌 그 마지막 적통이자 천하일통의 대업을 달성하여야 할 국가로서 내려야 할 결단인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


웅성웅성-


그간 잠자코 용상에 앉아있던 유언이 그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제 바램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정국을 되돌릴 겸 여론을 뒤흔들기 위해 꺼낸 그의 이야기는 그리 뒤바뀐 조당의 분위를 또다시 뒤흔들었다.


“장안이다. 작금에 옹주를 얻으면 전한의 수도인 장안을 얻는다. 그와 더불어 삼보 일대를 얻으며 더 나아가 사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황도 낙양으로의 길이 열린다.”


쿠웅-


“하여 묻노니 아조는 계한인가? 아닌가?”


한을 이었다는 정통성, 그것은 제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함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확고한 방향성과 상징성을 지닌다.


쿠웅-


“아조는 당대에 그저 그런 변방의 왕조로 남을 것인가? 그도 아니면 기어코 천하의 환란을 수습할 통일제국으로 남을 것인가?”


그렇기에 그것이 주는 자부심과 얼은 물론이고, 그에 몸담은 이들의 동기부여와 대의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는 법.


쿠웅-


“교주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비단 교주와 옹주가 동등하다는 비교와는 별개로 400년 세월의 수도요, 제국의 황도였던 장안과 낙양에 대한 계산이 마저 들어가야 할 것이니, 그에 따른 추가적인 셈이 필요할 터.”


그리 모두를 일깨우는 것에 고작해야 세 번의 물음과 세 번의 발을 구른 것이 전부였다.


순풍이 역풍이 되었고 그 역풍이 다시 잠잠해는데 고작 그 세 번이 전부였다.


“.........”


조금 전까지 열렬히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던 진밀조차 당장에 그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선은 시간을 가지는 걸로 하지. 대소신료들은 이에 따른 준비와 노력을 더 기해오도록. 오늘의 조회는 파하겠다. 그리고 작금에 난동을 부린 이들은 짐이 부를 때까지 근신하고 있도록. 물러들가라.”


그렇게 때아닌 축객령에 우르르 대소신료들이 대전을 벗어나 궐 밖에 나왔다.


비단 죄를 청한 황자인 유범도, 전쟁을 부추긴 성공영도, 장로 암살을 시도했던 암살범인 하모조차도 병사들에 의해 옥사로 압송되며 대전엔 누구 하나 남지 않았다.


“이래서, 이래서 놈이 위험한 게다. 아들아.”


그리고 그리 모두가 나온 자리에 홀로 남겨진 유언의 독백은 가히 더 놀라운 것이었다.


어쩌면 작금의 이 익주 땅에서 제일가는 기재는 조위도, 진밀도 아닌 다른 누군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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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6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2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2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9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9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8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4 3 20쪽
»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7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9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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