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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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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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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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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DUMMY

고대 미케네 문명의 전설,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


조금은 뜬금없으나 미노스 왕을 비롯한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제법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미노스 왕과 그의 딸 아리아드네, 그런 아리아드네와 더불어 별의 왕이라 불리웠던 아스테리오스(미노타우르스).


그런 아스테리오스(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는 테세우스, 그리고 그 이전에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그러한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와 그런 다이달로스의 아들인 이카루스까지.


미노타우르스의 미궁과 별개로 그에 녹아든 이야기는 비단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전반부는 미노타우르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요, 그 후반부는 그와 얽힌 다이달로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미노스왕이 그와 그의 아들을 가둬, 이들이 미궁을 벗어나 탈출하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날개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대저 이 이야기가 왜 흘러나왔는가?


“그야 역할극 때문이지.”


그리고 맥락 없이 그 이야기를 꺼낸 이는 비단 자신이 갇힌 옥사의 창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인 채, 새어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꽤 볼만해졌을 게야. 중한 것은 같은 내용이 적혀있는 서찰이니까.”


화아아악-


그 사악한 미소와 더불어 창살 너머로 고개를 돌아선 이가 웃었다.


그리도 두려운 이의 시선을 벗어나고자 도망치듯 옥사의 복도를 따라 뛰어올라 그 문을 열고 나가면, 사방에서 칼부림을 멈추지 않은 왕성의 모습이 펼쳐진다.


거진 위사들이야 이미 정리된 듯 보였고 그에 저항하는 것은 몇 남지 않은 승상부를 따르는 무리와 조당에 속한 관료들이 전부였다.


그들 모두가 한때나마 옹주정의 집권하에 있었고, 그들 중 다수가 그 옹주정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복종하며 따랐으니, 비단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은 일찍이 포홍에게만 충성했거나 이미 죽어 고혼이 된 이들이 전부일 터.


그에 주변에 자리한 모든 것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여러 전각에 나뉘어 구금이 되는 찰나, 수백의 호위를 이끌고 아직도 인기척이 느껴지는 승상부를 향해 거침 없이 내달리는 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찰랑이며 흩날리는 머릿결의 끝에 핏방울이 떨어지니 그리 날뛰며 칼을 휘두르는 손과 자태가 너무나도 고왔다.


콰앙-


그리고 마침내.


기어고 닫혀있는 승상부의 문을 열였다.


“뭐야, 너무 빤하다 싶어서 다른 곳부터 뒤지고 왔더니만 이제보니 다들 여기 있었네요? 그래서 묻는 말인데, 내 딸 어디 있어요?”


그렇게 이 땅의 모든 환난을 끝낼 그 마지막 주역들이 한데 모여들었다.


* * *


피이이잉- 쉬이이이익-


그리고 그 시각.


성외에는 도망치는 유민들 너머 자리한 숲속에서 불꽃이 솟구치며 연기를 뿜어내는 올랐다.


“왕후가 있다는 신호다, 가자!”


그렇게 도망치는 유민들 사이로 거적과 외투를 걸친 이들이 그 안에 걸친 갑주와 무기를 숨긴 채, 동쪽으로 내몰리는 흐름을 역행하며 그 물길을 거슬러 북상하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때마침, 풍방의 명으로 왕후의 도주와 납치 등의 상황에 대비해 장안성 밖에서 대기중이던 순우경의 눈에 이러한 움직임이 눈에 들었다.


비단 모두가 흘러내려 가는 판국에 되려 연어마냥 이를 거슬러 오르는 작은 물결의 갈래가 여럿이니, 그 자태가 심상치 않았다.


“저기다! 저놈들을 쫓아라!”


푸히히힝-


“.........!”


“놈들이다! 적미군이 온다!”


“제기랄! 흩어져라! 흩어져서 숲속으로 내달려라!”


그렇게 다급히 말 배를 차고 내달리는 적미군들의 준동에 겁에 질린 유민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또한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커짐에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노려졌음을 깨달은 이들 또한 그 무리에 섞여 다급히 흩어졌다.


“비켜라! 놈들을 잡아!”


푸히히힝- 히히히힝-


“던져라! 창을 던져!”


“이야아아압!”


휘우우우웅-


그러나 적미군 또한 어디 보통의 이들이던가?


다른 이도 아닌 순우경이 훈련시킨 이들이었고, 애당초 그 모집부터가 진나라의 군부를 뛰어넘기 위해 풍방이 신경을 쓰고 키워낸 특수한 사병집단이었다.


서원 팔교위의 갈굼과 굴림 속에 어지간한 정병 이상으로 자라난 이들은 그에 거추장스러운 유민들이 짓밟히던 말건 상관없이 이들을 밀치고 내달리며 창을 던지니, 그리 날아간 창대가 정확히 거적데기를 걸치고 도망치는 이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퍼서어억-


“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죽는다! 이러다, 다 죽는다!”


“그 움직임이 날랜 것들, 긴 장포마냥 겉옷을 두르고 그 안에 무기를 숨긴 것들 모조리 다 처단하라!”


곳곳에서 비명과 절규가 들리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순우경의 명령에 그 눈가를 붉게 물들인 이들이 유민들 사이를 헤집으며 거칠 것 없는 살육과 사냥을 시작했다.


투콰악-


“어흑!”


피이잉-


“아악!”


무심한 얼굴로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허리를 베고 도망치는 이의 등을 향해 화살을 날리니 그에 엎어지고 베어지며 바닥에 고꾸라진 이들은 하나같이 요사스러운 무구와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 중 몇이 거적을 들췄고, 마침내 이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거이, 서역 놈들 갑옷이구마? 장군! 이놈들 이거 공화주의자 놈들 아닙니까?”


“왕후 전하를 납치하려는 자들의 실체를 알았구나.”


“어찌합니까?”


“갑주 좋은 놈들 위주로 살려주고 나머지는 다 죽여라.”


“들었제이? 다 죽이랍신다!”


이제 정체도 밝혀냈겠다, 그에 더는 볼일이 없었다.


어차피 왕후의 신원이야 그 계급이 높은 놈들 붙잡아다 물으면 될 뿐이니, 남은 것은 자신의 집권에 해가 되는 이들에 대한 살처분이 전부였다.


푸욱- 푹- 푹-


“끄흐으윽! 네놈들, 왕정에 미친 네놈들을 저주할 것이다!”


“아따, 이 시부럴 게 죽을 때도 더럽게 가네? 어?”


으지지직-


물론, 이상이라는 마약에 물든 공화정의 이들 또한 소위 광신적인 이들처럼 그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저항을 지속하였으나 그에 열이 받아 더 잔혹하게 숨통을 끊는 적미군들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공화주의 만세에에에-!”


푸욱-


“고, 공화정 만ㅅ.......”


풀썩-


“하아, 씨발 것들. 뭐, 이렇게 질겨?”


물론, 그 비장한 죽음 앞에 흔들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비단 전국이란 이름의 난세에 어디 이념과 사상 그리고 종교에 미친 이들이 한둘이랴?


“홍건적이나, 황건적이나, 오두미나, 이놈들이나, 하여간 아주, 다들 말세가 어쩌고 구원이 어쩌고 죄다 다 저들이 세상을 구원하고 저들만이 답이라고 지랄들이지, 아주.”


“불평불만을 내뱉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필사적으로 죽여라.”


“예?”


그럼에도 이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비단 순우경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더 밀어붙여, 그 잘난 공화를 위해 죽는다는 의기마저 짓밟아 무너트려.”


“자, 장군.......”


“저들이 죽음을 직감한 순간 앞에 절망이 드리워지도록 만들어. 그에 굴복해야 다시금 고개를 들지 않을 테니. 이곳은 도성 밖이 아니고, 전장이다. 그러니까, 압도적으로 이겨.”


그간의 세월 알게 모르게 소외된 것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자주 전장을 나다니지 못한 것인지, 그조차도 아니면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이리도 많은 유민들이 보는 앞에 대놓고 살육전을 벌이는 순간에도 순우경은 여전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들은 빨리빨리 사라져줘야지. 그래야, 난세에 어울릴 이들이 그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게지.”


그렇게 고삐를 쥔 채, 무심한 얼굴로 전장을 보는 순우경은 고개를 돌려 서쪽을 보았다.


저 먼 서쪽의 끝, 비단 량주를 넘어, 비단길조차 지나친 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땅.


그곳에 저와 뜻을 같이한 이들 모두를 이끌고 떠나간 포홍이 있었다.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자신 또한 가고 싶었다. 진실로 저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재미있습니까?”


그렇기에 되묻는 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제와서. 이게 무슨 짓인지.”


풍방과 더불어 소외되기 시작한 것이 몇 해 전인데, 아직도 그 입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 와중에 제일 순진무구했던, 그나마 아껴주고팠던, 그리 마음이 쓰이던 어린 것이 죽었다.


“하모가 죽었습니까. 함께하자 했던 정변의 동지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가버렸지요.”


휘이이잉-


그럼에도 불어오는 바람 소리 외에 크게 들려오는 것은 없었다.


“어려서는 부친의 입김에 휘둘려지고, 자라서는 이쪽의 꼬드김에 넘어왔으며, 더 커서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 꼴을 보아하니, 나도 참 생전에 왜 그놈을 그리 못 챙겨줬는지 모르겠습니다.”


각지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으나, 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대에게 충성을 바쳤으니 그 찰나의 정이 너무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리 소외된 와중에 그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해 국상의 밑에 스며든 아랫사람이 되었으나, 결국 그리 살면 그때의 정을 느낄 수 있답니까? 이제는 국상조차도 달라진 게지요, 결국 친우로서의 관계는, 정변의 동료로서 함께 해왔던 시절은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날려버리는 순우경의 독백은 그리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기를, 그리 전해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응답 없는 바람 소리뿐, 그에 느껴지는 것은 오직 공허뿐이었다.


“새하얀 눈밭 위에 이리 많은 이들의 피를 뿌려도, 기어코 왕후의 안전을 핑계 삼아 이리, 또다시. 정변을 일으켜도 찾지 않으실 겁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협박뿐일까?


“그도 아니면 이제는 관심조차 없는 겁니까?”


아니면 그조차도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조차도 아니면, 이 한목숨 내걸고 저 무도한 계한의 침공을 막아내면 그제야 돌아봐 주실 겁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독백이었으나 스스로 이를 고백할 만큼 그 입지가 애매한 것이 현실이었다.


포홍의 밑에서도 그러했고 그리 풍방의 밑에 들어섰어도 그러했다.


정작 자신이 직접 이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과거가 스쳐 지나감에 비단 이 모든 게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래전에, 옥사에서 나온 그 날, 나더러 그랬지요. 충신도 간신도 되지 말라고.”


그러던 차,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충신을 가장한 간신이 되지 마시게, 그렇다고 간신을 가장한 충신이 되지도 마시고.’


작금의 상황 또한 그러하니 대저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이던가?


사방에서 나라를 백성을 임금을 위한 것이라 들고 일어난 이들 탓에 나라가 망해가는 중이니, 이 익숙함은 지난날 효령 황제의 죽음 뒤의 한조 시절 겪어본 일들이었다.


모두가 엇나갈 것이며, 그에 따른 이들이 걸러져 죽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할까?


‘잊지 마시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가 충신과 간신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 사이에 서는 것이니.’


살아온 시절 속에 답이 있다는 그 말처럼, 어째 다 지난 일이라 여겼던 그와의 처음을 기억하는 그때의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였을까?


“앞으로 조금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 모든 것의 귀추는 장안성의 왕궁이 정리된 뒤에 결정될 터.


순우경에게도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 * *


“이 짓거리도 참 힘드네요. 나도 참, 좋은 사람 되기는 글렀어.”


그러나 정작 그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이들은 승상부의 이들이었다.


곳곳에 시체가 그득한데 그 중간에 살아있는 것들이 많아서 말썽이었다.


아니, 되려 죽어가는 이들이 많으니 그 모습이 더더욱 공포스럽다고 해야 하려나?


왈칵-


“커흡......., 쿨럭!”


터덕- 터덕-


책장 아래 주저앉은 이가 그 입에 한가득 머금은 핏물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 너머에 목이 잘린 시체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양,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징그럽게 팔딱이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사, 살려..... 하아.......”


그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손목이 잘린 이가 먹물이 찍힌 종이로 제 잘린 팔을 감싼 채, 식은땀을 흘리며 온 주변에 칼부림을 일으킨 이의 눈치를 보며 굽신거리고 있으니, 비단 이 또한 그 누구도 아닌 풍방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는데.......”


스윽- 사락-


“맞네요, 범인.”


피 묻은 칼끝을 내밀어 바닥에 떨어진 서찰을 적신 뒤, 이를 들어 올린 풍방은 드디어 제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듯, 바닥에 쓰러진 이들 앞에 반가운 얼굴로 이를 쥐고 흔들어 보였다.


물론, 아직 병원을 비롯해 죽지 않은 이들이 남아있으니 이제 이들을 겁박하여 딸의 신원만 넘겨받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물을 게요, 어디 있어요?”


“소, 송구합니다만......, 보증이 필요합니다.”


“아이 씨. 내가 더 이상 안 죽인다고 했잖아요? 응? 한데, 뭔 더한 보증이 필요해에에에에-!”


그러나 그럼에도 그 앞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비단 그 대가리만 굵어져 가지고는 딸의 신병이 확인되지 않고서든 자신이 그 어떠한 위해도 받지 못할 것을 깨달은 병원이 저항하면서부터 상황이 거슬리게 돌아갔다.


“오는 길에 보고를 들었습니다. 기어코 왕사이신 갑 장사의 무리를 공격하셨다고.”


“그거야, 그 빌어먹을 노친네가 내 딸 보살피겠다는 아비 앞길을 막으니까. 응?”


그 와중에 오고 가는 신경전 또한 거칠기 그지없으나, 그 속에서조차 서로에게 책잡히지 않을 명분 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차례 오고 가는 날 선 언변이 잦아들고 나서야, 병원 측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사례로 보내주십시오.”


“진짜 개새끼네요......, 진짜 오냐오냐 하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했나요?”


그리고 당연히 그 추악한 속내를 짐작한 풍방 쪽에선 격정적인 반응이 더해진 거절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화흠, 병원, 관녕이 일룡인 것을 모르는 이들도 없고, 그간의 세월 뚝 떨어져 나온 하내와 더불어 실상 진에 속하였으나 반 독립국마냥 살아온 사례에서 후일을 도모해보겠다는 빤한 노림수였다.


아닌 말로 사례가, 낙양이 어떠한 곳이던가? 비단 십 년의 노력과 정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녹여낸 진나라가 일궈낸 결실이요, 새 시대의 빛과 같은 곳이 아닌가?


낙양 팔관을 필두로 단단히 방비한 국경선 하며 저 서역의 대진국 부럽지 않은 상하수도 시설과 가도의 정비는 물론, 계획도시로서 서역의 기술과 산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집약된 것도 모자라, 하내와의 교역을 통해 부와 번영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한조의 도성이었으며 제국의 상징이었던 역사적 가치를 품은 곳인데, 그러한 성지(聖地)를 날름 집어삼켜 다시금 그 위에 폴리스를 일구고 광장정치와 민주정을 꽃피울 공화정을 위한 기반으로 삼겠다는 저 태도 자체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칠 거면 저 홀로 곱게 미칠 것이지. 애먼 이들 꼬드겨 하늘나라 꿈꾼다고 이 땅의 수많은 이들 모조리 다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것도 모자라서 또다시 그 빌어먹을 천국을 꿈꾸고 그래요? 진짜 죽을 때 곱게 가기 싫어서 그래요?”


“무슨 소린지 잘 압니다. 그러나 아시지 않습니까?”


“후우......, 그래야지 내 딸을 돌려주겠다?”


“비단 국상께도 좋은 일입니다. 온전히 옹주를 얻으시고, 그동안 모자란 저희가 저지른 실책을 다잡고 다시금 나라를 안정시켜 민심을 회복하고 이 땅의 백성들에게 다시금 인정을 받으실 수 있는 나름의 기회지요.”


거기에 더 격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난 곳에 부채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름을 부어버리는 저들의 어처구니가 없는 작태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죽여달란 소린데, 그럼에도 그 뻔뻔한 낯짝 너머에 아른거리는 딸의 얼굴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니 어찌 열불이 나지 않으랴.


“이 씨발 것들아, 아니. 이 씨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우리 승상부 여러분.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니들이 싼 똥 치우란 소리잖아요? 안 그래요?”


“변으로 보면 변인 것이고, 병으로 보면 병인 것이니, 달리 말해 이는 그간 쌓인 고름이 곪아 터진 종기라 볼 수 있겠지요. 비단 저희가 아니었어도 언제고 터져 나올 불만이었으니, 애석하게도 만 백성이 그 진의를 몰라준 것이 애석할 따름입니다.”


“하....., 이 개새끼......., 와, 진짜 되려 이를 따져 물어야 할 쪽을 할 말이 없게 만들어 버리네. 아니, 언제부터 그렇게 뻔뻔해지셨어? 이야, 나 순간, 지난번에 나 속여먹은 우리 왕사, 그 노친네 보는 줄 알았네에에에!”


콰직-


그러나 그 또한 사람이니만큼, 인내하는 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 병원의 옆에 선 한 사람의 머리가 날아갔고, 그제야 다시금 겁을 집어먹은 이들이 이전보다 고분고분해졌다.


“인간이 참 간사해, 제 죽을 자리에서도 어떻게든 비벼볼 생각이 들면 그 찰나를 참지 못하고 오만하고 교만해져.”


“그건 국상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까?”


“뭐?”


그러나 병원만큼은, 작금의 이 모든 것의 발단이요, 원흉이었던 그만큼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비단 다른 이들은 죽여도 그만큼은 죽일 수 없으니 어쩌면 이 자리에서 유일무이하게 제 딸의 행방을 아는 이가 될 수도 있는 데다가, 하필이면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이 얽혀온 것이 문제였다.


“여태까지 국상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 과연 감당이 되는 것인지 돌이켜보십시오.”


“하고픈 말이 뭐에요?”


“피차일반이란 소립니다, 이쪽이나 국상이나.”


“하, 외적과 손을 잡고 내분을 일으켰으며 혹세무민하여 백성을 선동하여 나라를 망쳐놓고, 거기에 남의 집 귀한 딸까지 납치한 주제에, 그것도 일국의 왕후를 멋대로 빼돌리려 한 주제에 어딜 같다는 거에요, 지금?”


“왕사를 건드리고 왕궁을 지키는 위사들을 베었으며 죄 없는 백성을 참살하고 난국의 와중에 사병을 일으켜 기어코 도성을 뒤엎고 궁을 장악하여 정변을 일으킨 것은 죄가 아닙니까?”


“아오, 진짜. 딸만 아니면. 내 딸만 아니면. 응? 그냥 이 자리에서 다진 핏덩이로 만들어줄 수 있는데, 하으......, 참. 아쉽다.”


거기다 하필이면 이쪽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을 긁고 있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뭐가?”


“난을 일으킨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 위로 덧씌워질 망국의 책임은 어쩌실 겁니까?”


“.......!”


넘겨받은 죗값이란 말이 있다.


문제가 터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그 문제를 터트린 인간의 죗값마저 덩달아 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과거이나 이를 체감하는 것은 현재니 그리 과거가 된 것들은 조금씩 잊혀지며 미화되고 사라진다.


그에 비해 그 문제 자체를 물려받은 이가 실수로 이를 잘못 손대 일이 더 커지기라도 하면, 그때 가서 그 모든 책임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일을 저지른 지금과 맞물려 기억되며 다시금 되살아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은 지금 병원이 풍방더러 제 목을 쳐내고서도 감당이 되겠냐는 소리였다.


비단, 그리 병원의 목이 날아가면 결국 남은 사태의 수습과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것을 풍방이 지게 될 것이나 그 뒤로 남은 30만 정병을 이끌고 북상한 계한과 전쟁이라는 또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거기에 이 자리에서 병원을 치워내면, 비단 이와 별개로 기존에 저지른 죗값을 물어야 할 이가 풍방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애초에 오두미와 계한은 외적이니, 이 나라 내부에서 옹주를 무너트리는데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책임의 소재를 물을 대상은 몇 없는데 그조차도 줄어드는 것이다.


나뉘어 짊어질 것인가? 홀로 짊어질 것인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물로 남겨둘 것인가? 죗값을 치루기 위해 그 아래 무릎을 꿇고 목을 내밀 것인가?


가는데도 순서가 있는데, 적어도 그리 앞선 순번이 있어야 나름의 시간 벌이라는 것 또한 가능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실로 솔깃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만일 화 자어가 이 사람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땐 그가 우리의 죄를 나눠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되면 관녕 또한 그 입장이 불편해지겠지요.”


“..........!”


“국상을 포함해 그간 이 나라를 이끌어온 두 재상이, 그 이전의 재상이었던 화흠마저 모두 죄인이 되는 것이옵니다. 그간 이 진국을 이끌어온 공신 모두가 죄인이 되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천하에 어떠한 의미를 남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경악스러운 이야기에 풍방 또한 처음으로 그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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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7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3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3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10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2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8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4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3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1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5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9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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