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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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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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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작성
22.10.0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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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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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1쪽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DUMMY

그렇게 정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특히나 풍방에 대한 정리는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어차피 위사들을 참살한 것도 모자라 궁에 자리한 승상부의 이들을 도륙한 것은 물론, 그 외적인 오만 범죄들까지 드러나게 되면서 실질적인 정계 은퇴에 가까운 수순을 밟고 있었다.


물론, 원 역사의 여불위에 비한다면 사뭇 그 은퇴가 어색한 것이 뭔가 더 충격적인 큰 사건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거야 역사를 아는 이들의 시각일 뿐. 정작 그와 별개로 이리 난장을 피운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맞고 있었다.


차라리 권력을 쥐고 끝내 정변을 성공시켰거나 진밀을 죽이고 승상부의 폭정을 끝낸 채 곧바로 그 정권을 승계받고 계한과의 전쟁에 돌입했더라면 그 공으로 과가 씻어질 수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일이 그런 식으로 끝난 것도 아니라서 되려 더 골치 아픈 상황에 놓였으니 이는 비단 죽은 진밀과 더불어 가장 우선적으로 죄를 물어야 할 인사가 되었다.


거기다 하필이면 진밀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책임을 물을 이가 없게 되어버렸으니, 자연스레 그에 따른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이의 은퇴를 즉각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었다.


죄를 묻자니 그에 따른 삼보 일대와 이 나라에 뿌리 박힌 기득권의 반발이 두려웠고, 거기엔 아직 넘어가지 않은 호족과 사족을 비롯한 이들의 영향력뿐만이 아닌 이들이 지닌 재물과 권세를 비롯한 생산력과 군사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 새로이 화폐를 주조하고 기존의 자산 가치를 재검수하여, 이에 따라 새롭게 가치를 매기는 기존의 경제체제를 벗어난 새로운 개념의 경제체제를 수립하려 했던 탓에, 새로이 설치된 보전국이 일종의 은행 역할도 도맡게 된 것이 문제였다.


이는 달리 말해 이에 동조하지 않은 이들이 팔아치운 재산을 보관 중이라 되려 이러한 가산을 되려 인질 삼아 교섭과 저항을 가능케 만들었고, 기존의 가병, 사병, 상단병에 다급히 고용한 용병들 뿐만이 아니라 남아도는 오수전을 녹여 이를 바탕으로 무장시킨 새로운 전력인 오수병들 또한 적잖은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만 가는 중이었다.


그 말인즉, 건드리면 다 같이 폭사하자 하고 터지는 폭탄이요. 건드리지 않고 잘 구슬려 처리하면 사태의 수습 이후, 곧바로 계한과의 전쟁에 투입될 막대한 전력과 재원을 얻게 되는 것으로서 당연히 좋게 좋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여기까지 하시지요?”


“지금 우리더러 사부회의 권한을 내려놓으란 말인가! 감히! 일개 군관 나부랭이가 국상이 아니 계신 틈을 타 이런 무례를!”


“아니, 계시니까 이리 무례를 저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이놈이 감히.......!”


“뭐, 좋습니다. 아니면 군부인 저희가 먼저 해산하지요.”


“그......, 그 무슨.........”


“들려온 첩보에 계한에서 이제 막 새로이 중군에 해당하는 10만이 넘는 정병을 또다시 북상시켰다고 합니다. 이미 위수 이남은 떨어져 나갔는지 소식이 없고, 미현의 코앞까지 수만의 병력이 밀려왔다고 하는데, 어디 군부의 도움 없이 홀로 잘 막아보도록 하십시오. 이 나라의 미래를, 이 옹주의 미래를 여러분들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보도록 하지요.”


“이, 이보게! 자, 잠깐만!”


“이거 남사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이 손 놓으시지요?”


“지금 돌아가는 상황 뻔히 알면서도 이리 나올 텐가! 아닌 말로, 삼보 일대로 모여든 유민들 숫자만 근 20만은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아, 유민? 그렇군요, 폭정에 항거하고 권력다툼에 실망하고 그 알량한 이상에 속아 넘어가 공화정에 더한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고. 그 와중에 수천이 넘는 유민들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기어코 왕궁까지 뒤집어 대소신료들까지 도륙하고 난장을 피운 그 모든 사실을 조만간 알게 될 그 유민들을 말씀하신다면, 당연히 여기 계신 그 죄인과 협력한 당사자들께서 어련히 잘 다독여주시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작금의 자신들의 유리함이 우선이냐’ 아니면 ‘실질적으로 필요한 저들의 가치가 우선이냐’ 를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정이 빨라진 것은 작금의 풍방이 부상으로 누워있다는 것과 계한의 침공이 본격화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일찍이 장안을 내버리고 도망친 이들과 서쪽에서 피난 온 이들까지 못해도 십수 만이 넘는 이들이 우르르 동쪽으로 내몰린 탓에 되려 삼보 일대가 시끄러워진 것이 문제였다.


예서 풍문 하나면, 이미 죽은 진밀도 진밀이지만 풍방이 권력다툼을 위해 장안을 뒤집어엎으려 했고 이를 위해 사병을 기르며 오만 부정한 짓을 저질러 이 옹주에 혼란이 극에 달했다는 그 부풀린 이야기 하나면, 거기에 왕후의 안전을 확보한답시고 도망치는 유민들 사이 시민군 잡는다는 핑계로 도망치는 유민들까지 모조리 도륙한 이야기 하나면, 비단 거대한 군중 심리의 폭발과 더불어 삼보 일대에 자리한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 삼보 일대로 기어들어 온 십수만 유민들이 되려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킬 것이 뻔하고 그리 가난한 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성역이 무너지고 불타 없어지는 꼴을 볼 수 없는 이들은 결국 풍방의 부재 속에 자발적인 협력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이네, 우리와 같은 이들은 그저 사태의 원활하고도 조속한 수습을 원해.”


“부탁이라, 그래요. 뭐 좋습니다.”


“저, 정말인가?”


“뭐, 한 입으로 두말할 것도 없고, 어차피 계한 놈들 막지 못하면 이쪽이나 그쪽이나 다 같이 망하는 건 똑같으니 노력은 해보지요.”


“고, 고맙네! 참으로 고마워!”


그렇게 협상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이를 따라 거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협력이라는 이름의 요구사항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우선 지원령 및 동원령과 자발적 징수와 헌납 등의 안건을 결의하는 것이 좋겠지요. 나라를 위해 가진 것을 내어놓겠다 스스로 결의하여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그 민심 앞에 죄악을 씻어내기에도 좋을 겁니다.”


“아, 알겠네. 다른 이들과 최대한 협력해서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보지.”


“그리고 임시적으로 군정이 들어서게 될 것 같은데,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주시고 군부에 협조하는 안을 결의해주신 뒤, 자발적 해산의 안건 또한 결의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이보게! 그건 너무!”


“제아무리 삼보 일대에 자리하고 계신 여러분들이 그리 비대하고 튼실한 것들을 쥐고 계신다고 한들, 그렇다고 이쪽이 아예 이를 못 벗겨 먹을 것이라 생각지는 마시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오실 폐하의 앞에 대역죄를 지은 국상과 협력한 동조자로 함께 끌려가 그에 따른 처분을 당하고 싶으신 겝니까?”


“........!”


어차피 약점도 잡았겠다, 이때가 아니면 이리 밀어붙일 수도 없겠다, 이참에 이 땅에 자리한 이들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존재를 일깨우니 이에 기겁을 한 이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확실히 그 효과가 직빵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초원과 유목에 기반을 둔 절대적 무력을 지닌 이들과 비단 이 땅에 뿌리 내린 시설을 비롯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고착화된 정주 형태의 기반을 둔 이들의 차이가 이리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막말로 반정을 일으키실 것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저 협조하였을 뿐인데, 역도의 죄가 더해지면 그보다 더 억울한 것이 있겠는지요?”


“그래도......”


“그게 싫으시면 전면에 서시라니까요? 대신 계한의 침공을 막지 못한 책임은 비단 본인들이 우선적으로 지게 될 것만 알아두시고, 일을 벌이십시오. 허면 저희는 조용히 물러날 테니, 서로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익! 지금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어찌 일국을 지키는 소명을 품은 군부의 이들이 이리 무책임할 수가 있어!”


“에이, 왜 이러십니까? 아니, 권한도 없는데 책임을 지라고 하면 뭐 우리더러 어쩌라구요? 전쟁도, 전투도 제대로 못 치르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그쪽 동의 구하고 어쩌고 하다가 병력도 제때 못 움직이고 지원도 제때 못 받다 망하면? 다 죽으면? 아니 안 죽어도 문제지. 그러나 나중에 옹주 다 빼앗기고 나면? 그때 가서 죄송합니다, 그 모든 것은 저희 책임입니다. 하고 돌아오실 폐하의 앞에 목 내놓으면, 뭐 달라지는 게 있긴 합니까? 아닌 말로, 우리가 다 모가지 내놓아도 여러분들은 폐하의 진노를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든 우리가 조당의 정무를 넘겨받아서 되도록 잘 결의하고 도와주면.......”


“아니, 어린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진짜 떼쓰는 것도 아니고.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책임은 지기 싫은데, 전권은 가지고 싶다. 그래서 가지라고 하니까, 그것도 또 싫다. 허면 그 전권을 내놓고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할 이들에게 협력하라니까, 이제와 그건 또 힘들다. 죽기도 싫고 내놓기도 싫고 일 벌리기도 싫고 책임지기도 싫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거기다 이에 반대할 명분조차 없어서, 거기에 막상 그 목을 내걸 깜냥조차 없어서 자꾸만 명분 없이 몰리고 몰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 그, 그렇지! 사부회를 강제로 해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비단 희생의 정신도 모르고 책임감도 떨어지고 언제고 풍요롭게 살며 전쟁은 남의 일이라 생각해온 이들이라도, 그리 기득권으로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경험이 있기에 제 잇속의 보전을 위한 그 비상한 잔머리 하나만큼은 가히 인정을 해주어야 했다.


“또 뭡니까?”


“사부회는 폐하께서 허락하신 것이야. 그러니까 폐하의 허락 없인......”


“참, 말귀 못 알아들으시네. 그러니까 내 말씀드렸잖아요. 강제해산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여러분들 손으로 그 사부회 문 닫으라고. 여러분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관뚜껑 닫고 나무못 세워 박고 못질해야 된다니까? 그리고 내 알기로 폐하께서도 되도록 사부회 권한 존중해주신 것으로 아는데, 거의 이원 정부라 할 정도로 그 체제가 둘로 쪼개졌고, 서원도 비단 왕립서원과 공립서원 둘로 나뉘었던 것 아닌가? 이 정도면 독자기관에 별도기관인데?”


“어?”


그러나 그 늦은 발버둥 또한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진 기관의 특성 탓에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던 이권 다툼 또한 명분 없는 추악한 발버둥이 되어버렸다.


“아니면, 뭐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해드려?”


“다, 다른 방법이라니?”


“뭐, 아까 말한 대로 풍문 하나 푸는 거죠, 뭐. 그렇게 풍문 풀고, 사부회에 속하신 분들이 배후라 부채질하면 절로 성난 민중들, 도망친 피난민들, 풍방의 사병들에게 쓸려나갔던 유민들 우르르 들고 일어날 테고. 그리 일어난 푹동에 여기 계신 분들 여럿 다치시거나 죽어 나갈 테고. 그리되면 자연스레 의회를 열 최소한의 의석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고. 자연스레 의회가 열리지 않으니까, 휴정이 생겨나게 되고. 그 휴정이 지속되면, 뭐 나중에는 전쟁통에 있으나마나 한 기관 절로 해체되고 문 닫는 거지 뭐.”


거기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부회의 문을 닫게 할 다른 방도까지 있는 통에 결국 그에 속한 이들은 끝내 항복을 선언하며 두손 두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자,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제일 중한 게 남았는데......, 잠깐만, 실례. 어우, 가려워.”


벅벅-


한데 아직도 또 뭐가 남은 모양이다.


그것도 이제는 저들이 아주 위로 올라섰다고 그 예의마저 슬쩍 생략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전권을 빼앗긴 사부회의 이들로서는 절로 화가 치밀 지경이었다.


“마지막이라니! 다 내주었어! 교섭권에 협조도 모자라 가산에 인력까지 다 털어먹고 그 마지막에 기어코 사부회의 문까지 닫게 만들었으면서 또 뭘 더 마지막인가!”


“어유, 참. 진정하시고, 아이. 왜, 이러셔들. 이거는 되려, 그쪽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니까?”


“도움이라니? 또 무슨 추악한 부탁을 하려고!”


“아이, 참. 사람이 그렇게 멍청해? 한두 번 속았으면 됐지, 거기서 또 뭘 속고 살려고? 이건 진짜라니까? 진짜로, 내 여러분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려고 이러는 거에요. 되려 그 앞날을 축복해주기 위함이라니까? 그 장래를 보장해주기 위함인데, 사람 섭섭하게 진짜 그 진의도 몰라주고......, 에이. 몰라. 안 해.”


그러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되려 저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울화통이 치미면서도 그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차피 이미 갑을의 관계가 정해진 마당에, 목줄이 채인 개마냥 끌려다녀도 할 말이 없는 것이 현 정국의 현실이었으니, 바로 여기서 지금까지의 교섭을 주관해온 이가 그 눈이 번뜩일 제안을 건네왔다.


“쯧,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우리 충성 서약 한번 제대로 할 겸, 탄핵 한 번 합시다.”


“..........!”


웅성웅성-


“탄핵이라니, 그러니까 지금 탄박(彈駁)을 하겠단 말인가!”


뭐, 시대별로 차이가 있긴 하나 실상 탄핵이나 탄박이나 높으신 양반의 죄나 잘못을 따져 묻는 것, 그 자질을 논하여 벌을 내리고 그 직위를 해제하는 것으로 그 본질은 거진 같았다.


이는 일종의 고변이자 상소를 때리는 것에 가까운데, 문제는 그것이 집단화된 이들의 행동이어야 하며, 적어도 절대다수가 한 사람을 온전히 등지고 매장시킬 각오로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서로 간에 얽히고설킨 인맥과 연줄을 자랑하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대저 그 여파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리 몰락한 이에게 신세를 지던 식객이 복수를 자처할 수도 있고, 그를 목숨 바쳐 따르는 충복이 끝내 살아남아 암계를 꾀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그 와중에 너무 설친다던지 등의 연유로 함께 탄핵에 동조한 이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되거나 따돌림을 당해 추후 같은 운명을 당할 수도, 그에 엇비슷하게 정치적 수명이 끝날 수도 있으며, 이후 세월이 흘러 재평가가 내려지게 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욕을 먹고 비판의 여론 앞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엄한 작자, 아니지. 그 실질적인 당사자, 하나만 등지면 이건 뭐 그간의 죄가 싹 씻겨나갈 수 있는데? 어때요?”


그럼에도 이들이 혹하는 것은 비단 자신들이 함께 쓸려나갈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더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풍방과는 얽혔고, 그에 따른 누명이 덧씌워지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작금의 이 문제를 싹 씻어줄 방도가 있다면, 그에 함께 얽혀 죽게 될 일이 없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어찌 이에 흔들리지 않을까?


“자, 그럼.”


그렇게 모든 협상을 마치고 나온 장기는 다른 군부의 이들과 헤어진 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반쯤 텅 빈 장안성의 거리를 걸었다.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전란과 다를 바 없는 환란 속에 살아남은 이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비춤에, 더 이상 이들의 말과 행동에 이전과도 같은 오만한 작태가 느껴지지 않았다.


- 폐하! 우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어서 빨리 저 먼 서쪽 땅의 전쟁을 끝내고, 이 땅으로 돌아와 모두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군부에 협력합시다, 여러분! 군부에 협력하여 공화주의자들과 저 무도한 오두미교들을 척살합시다! 저들에게 복수합시다!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떠난 이가 언제 돌아올진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겪은 이 고통을 알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옳소! 옳소!


“이건 전쟁입니다! 전쟁! 내가 죽거나 저들이 죽지 않은 한 끝나지 않은 겁니다! 한데 아닌 말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런 이 땅에 찾아와 우리를 흔들고 유린한 게 누굽니까!”


그 대신에 그간 잃어버렸던 겸손을 되찾은 듯,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조심스레 또 한편으론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과 그 반대로 그간 잃어버렸던 현실을 되찾은 듯 보이는 이들.


그 사이로 비단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부의 야욕이다 뭐다, 국군은 살인자다 뭐다 비단 포홍과 연계된 이들 중에 정치권에 속하지 않았던 군부의 이들을 싸그리 도려내고 모독했던 이들이 이제와 그러한 군부를 추앙하고 따르려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이 세상은 실로 모순적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되는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


“우리 모두 군부에 힘을 보태줍시다! 하나 되어 우리를 괴롭혀왔던 이들에게 맞서 싸웁시다! 진국의 무한한 영광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대저 저들이 언제부터 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이야 진인이지 언제고 그 잘난 옹주인으로서의 별개의 평화와 안락에 찌들어 살았던 세월이 가려진다고 가려지는 것도 아니 거늘, 비극이 그친 자리에, 잠시 피난이 멈춰선 자리에 되도 않는 태세 전환과 더불어 또다시 알량한 희망을 품고 다급히 이에 기대려는 머저리 같은 이들의 촌극이 실로 거슬렸다.


쿠구구궁-


“그래도 그것이 나름의 의의는 있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자리한 광장과 대로변을 지나 왕궁에 도착하고 나니 군졸들이고 병사들이고 사방팔방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


“성 바깥에 자리한 민가를 철거해서 자재를 얻는 일에 대한 진척이 필요해. 인원 더 붙여줄 테니까, 모조리 털어와. 가뜩이나 한파인데 땔나무 부족하니까 지붕 만드는데 들어간 볏짚이랑 나무껍질은 무조건 벗겨오고.”


“그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작금의 주인 없는 고택 속에 남겨진 자산을 회수하는 일은?”


비단 그 관복을 입고서도 오만 체면치레 속에 제 관복과 그 사이로 빛나는 사치와 권세를 자랑하기 급급했던 이들이 보이지 않으며, 지식의 오만과 무리의 당여, 출신과 신분을 비롯한 연고의 위세를 자랑하던 이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리 모든 것이 정리된 자리에 남은 것은 가장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며 확정적이고 추진력 있는 정부만이 남았다.


“거기! 미현 일대에서 올라온 척후와 정탐 보고부터 모조리 가져와!”


퍼억-


“아악!”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야, 내가 구린 놈들 사정 봐주지 말라 그랬지? 전쟁이 코앞인데 회수해온 게 왜 이거 밖에 없어? 이 씨발, 다 죽게 생겼는데, 뭐가 그리 인정머리가 넘쳐? 어?”


“끄흐윽! 송구합니다. 헌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것이 없어서.......”


“야, 해먹은 게 그리도 많은데, 피난을 안 떠나고 가산도 처분 안 했으면 그 집 마당에 따로 굴을 팠든지 아니면 숨겨둔 창고가 있든가 하겠지. 어?”


“처,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겠습니다!”


“잡곡만 계산해도 삼천 석 어치야, 노는 철방에 녹여서 굴릴 쇳덩이만 사백 개가 넘어. 그걸로 손 볼 수 있는 병장기가 몇 개인데? 그러니까 군법으로 회부되기 싫으면 무조건 찾아와.”


“예.”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마냥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일 처리가 느리거나 그릇된 이들을 걷어차거나 자빠트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 얼굴 위로 손찌검을 가하는 것은 물론, 인격적인 모독마저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방만하기는커녕, 누구 하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기는커녕 어떻게든 안 되는 것조차 되게 하려는 듯, 모두가 지난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그 모습들이 실로 경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홍건적이야 그렇다 치고, 유민들 대거 학살한 적미군 놈들 포섭하는 건 어떻게 됐어?”


“관 승상께서 직접 가셨답니다.”


“강족들은?”


“저족의 영역으로부터 공급받던 소금이 끊겼다고, 참전을 원하거든 소금부터 달랍니다.”


“씻팔 것들이, 그 주인이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전쟁 터졌다고 아주 제가 상전인 줄 알지?”


“하오나 장군, 가뜩이나 그 병력의 격차가 심한 마당에 관병들의 머릿수조차 줄어든 형국이니 비단 저들의 기병 전력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라.......”


“아쉽다고 대가리 숙이는 그 버릇 못 고치면 흉노에 시달리던 한족들마냥 이리저리 끌려다닐 게 빤해. 장안 근처에 아직 남아있는 소금 장수 있으면 모조리 불러들여. 그냥은 못 준다고 제값에 물건 받아 처리하기 전까지 북방으로 가는 소금 모조리 끊어버리겠다고 전해.”


“그리하겠습니다.”


“쯧, 감히 누가 누굴 길들이려고.”


새롭게 내건 검독수리와 태양 속에 녹아든 만(卍)형이 새겨진 깃발 아래, 옹주는 실로 군부통치에 어울리는 군정을 성공적으로 이식함으로서 다가오는 전쟁에 앞서 보다 주도면밀한 전시체제를 확립해나가고 있었다.


비상시국에 비상한 움직임을 내보인 것치고는 실로 부족함 없는 연착륙을 보여주는 변화된 정부의 지도 속에, 예상 외로 많은 이들이 하나 되어 단결하니 비단 옹주에도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희망과는 별개의 운명을 맞이한 이들은 지금 어찌하고 있는가? 오늘 이후 이 나라는 그들을 과연 어찌 대하게 될 것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10.16 20:36
    No. 1

    이전 화부터 병원이 진밀로 오타가 난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2.11.09 06:35
    No. 2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조금 돌아보네요. 물론 아직도 살필 게 많긴 한데 그래도 조속한 시일 내에 조치하겠습니다. 매번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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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3 4 16쪽
»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7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3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2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8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4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9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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