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567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8.06 04:30
조회
179
추천
3
글자
22쪽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DUMMY

“........”


그러나 이권은 당장에 이에 대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그 일 때문인가?”


이권에겐 세간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 씁쓸한 과거가 있었다.


익주 광한군의 이름난 명사요, 어릴 적부터 재능과 학식이 있어 천재, 기재 소리를 들었으며 훗날 원 역사 속에서도 촉한의 신하가 되어 활약하는 진밀과의 일화가 바로 그것인데, 그가 진밀에게 전국책을 빌릴 당시의 진밀이 그에게 전국책을 빌리는 연유를 물었다.


이에 이권은 공자와 엄평 등 이름난 이들이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이 넓어지고 식견을 얻게 됨을 이야기했는데, 진밀은 공자와 엄평 등은 지식은 넓어도 예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전국책은 합종연횡과 같은 모략이 기술된 책으로 다른 이들을 멸망시켜 스스로 보존하는 것이라 경전에서도 꺼린다 대놓고 그를 질책했다.


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이권은 쓸데 없이 남에게 해악을 끼칠 궁리나 하게 되는 악서(惡書: 불온한 서적)이나 읽은 못난 인간이 되었고, 이를 엄중히 질책하여 후대에 훌륭한 가르침을 남길 일화를 만들어낸 진밀은 소위 성인군자가 되었으니 이 유교의 교화(敎化)에 해당하는 일화는 일평생 이권을 못나고 모자라며 불온한 인간이라 지적질하고 평가 절하하는 꼬리표가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익주에는 이러한 일화가 많았다.


힘이 있는 가문을 이끄는 토호임에도 소위 익주 내에 대나무처럼 자라난다는 광한군 출신의 어린 유생들에게 무기력하게 짓밟히는 이야기.


사족 출신의 기재들에게 매양 무식하다, 모자라다 그런 것만 생각하고 행동하니 교화가 필요하다 하는 식으로 무시받고 조롱당하는 이야기.


한데 막상 이를 돌이켜보면 익주를 떠나서 이 시기에 칼이 아닌 붓을 들었던 사대부, 유자, 문신들에게 기록된 일화들 중엔 이와 비슷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삼국지라 불리는 이 시기의 동오의 이들이 야만인들이라 불린 것, 토호를 포함한 촉주의 토착민들이 동주사들에게 야인 취급을 받은 것. 문인이 무장을 질책한 이야기. 귀족을 질책한 이야기. 고관을 질책한 이야기. 왕을, 황제를 질책한 이야기.


소위 당대의 가치관이요, 시대관이라 할 수 있는 올바른 가르침인 유학에 어긋나는 행실과 그에 관심을 지니는 태도 같은 것들이 하나같이 사람이 되기 위해 유학에서 교화라고 권장하는, 문인들이 소위 무인과 귀족을 비롯해 제가 아닌 사람들을 모조리 짐승 취급하여 지적질하는 행태가, 하여 상대방을 못 배우고 모자란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제가 따끔하게 혼내고 바로 잡았다, 고로 나 깨어있다, 나 잘났다 하는 그럴듯한 일화를 통해 명성을 얻는 일들이 빈번한 것이 아예 이 시절의 문인들이 성공하기 위해 흔히들 쓰는 빌드업이요, 문화이자, 전통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화의 피해자요, 당사자인 이권은 이를 두고 할 말이 제법 많았다.


“신은 일찍이 진밀에게 빚이 있습니다.”


“알고 있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별개로 신은 그에게 세 가지 감정을 지니고 있지요.”


“세 가지?”


“부끄러움과 모멸감 그리고 복수심입니다.”


여기서 이권이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창피한 속내를 진밀에게 들켰기 때문에 생겨난 감정이었다.


그 핑계는 식견을 넓힌다 였으나, 진밀은 실상 엄한 책을 통해 난세 속의 인물이 되고자 하기에 난세를 꿈꾸는 이권의 공상이요, 망상에 가까운 속내 말이다.


소위 제게 주어진 못나고 평범한 현실을 벗어나 난세의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 그러나 남들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꿈.


평등이다 인권이다 무례다 남 괴롭히지 마라 조롱하지 마라 이것저것 따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주어진 현실에 벗어나 어긋난 상상이자 망상 그리고 공상을 즐기면 찐따라 그런 것이라느니, 뇌내망상이라느니, 제가 현실에서 못 이루는 거 대리만족이라느니 하는 비웃음과 비난의 소리가 따라오는데,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라던가, 제 밥벌이 궁리할 생각이라 하라느니 하는데, 이딴 거 보고 정신승리 하냐느니 하는데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하나 잡히지 않은 이 당시라면 그 조리돌림이 오죽할까?


그것도 제 출세와 유명세를 위하여 어떻게든 타인을 무시하고 깎아내려야 하며 이를 못난 인간으로 못 박아야만 하는 이 당시라면 오죽하였을까?


그 유치함이 발각되었을 때의 창피함이란 실로 오죽하였을까?


남에게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은 그 별 것 아닌 행위가 순식간에 모두가 보는 앞에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모자란 행위에 당사자가 되었을 때, 그때의 심정은 오죽하였을까?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할 때, 그 별 것 아닌 것에 위축되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을 적의 심정은 오죽하였을까?


그러나 한 가지가 더 있다.


여기서 이권이 말하는 모멸감이란, 그리 들킨 속내를 들킬까 조마조마한 와중에 이 일을 부풀려서, 모두의 지적질 속에 상처받은 것뿐만이 아니라 세간에 알려진 일화와는 달리 당시의 진밀이 그러한 꿈을 꾸는 그에게 아무 의미 없는 병신 같은 망상이나 주접은 그만 떨고 인생 똑바로 살라는 직언을 했기 때문이다.


살다 살다 제 또래의 이에게 그러한 지적을 받은 것이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고작해야 이전 시대의 역사서나 다름이 없는 책 한 권 빌려주기를, 그것도 정작 자신은 소유하고 읽지 못하였기에 호기심이 동하였을 뿐, 정작 그 책을 곁에 두고 매양 읽은 사람은 제가 아닌 그리 저를 무시한 진밀이었을 것을.


아닌 말로 저는 평생 그런 책을 곁에 두고 읽어도 괜찮은 사람이고, 자신은 그러한 책을 애당초 곁에 두지도 단 한 번이라도 읽지도 말아야 할 정도로 못난 사람인가? 줘 봤자 나쁜 짓이나 궁리할 것이 빤한 그런 사람인가? 줘 봤자 그 안에 담긴 교훈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할 모자란 사람인가?


은연중에, 아니 노골적으로 내포된 그의 감정과 태도를 비롯한 언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이권에게 오만가지의 모멸감을 선사했다.


세간의 손가락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가 평생에 아물어지지 않을 상처요, 일평생 제 가슴을 난도질하여 헤집는 비수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남은 한 가지 감정을 더 확인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그러한 지워내고 싶은 일화요, 기억을 남긴 이에 대한 분노와 살의에서 비롯된 복수심이었다.


“그랬군, 그래서.......”


그리고 이러한 일화가 유언에게 전해졌을 때.


다른 이도 아니고 익주의 장래가 기대되는 그 오만한 천재요, 기린아와 척을 진 그의 깊이가 실로 남다름을 알게 되었을 때.


유언은 스스로가 골치 아픈 상황 속에 빠져버린 직감한 듯, 두 눈을 감고 손을 들어 제 찡그린 미간을 쓰다듬었다.


“이권.”


“역시, 쉽지 않으신 겁니까?”


오만할지언정 천고의 기재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출사를 허락하지 않았을지언정 그 재주가 사해를 덮는다.


“이권, 이는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을 진정으로 얻고자 하십니까?”


중원의 이들이 명가의 자제를 비롯해 그 장래가 기대되는 어린 기재들이 제법 많은 땅이라 예로부터 꼽았던 예주 영천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이 익주 땅에서 광한군은 옛부터 이름난 기재와 천재들의 땅이었으니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를 후원하지 않을지언정, 그 장래에 해가 됨이 없도록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그간의 세월 이곳을 통치해온 이들의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그렇기에 대치(大治)를 위한 나라의 동량을 육성하는 유일무이한 학군으로 자리를 잡은 이 땅의 사족들은 오만했고, 주변 토호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오만함을 채우고 남을 재주와 능력이 있었기에 동주사들과 함께 이 땅에 안착한 유언은 이들과 손을 잡고 토호들을 밀어내며 다스리고 정리한 채, 통치를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자신을 위한 대치(大治)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권. 그야 당연히......”


“폐하께서 하나의 조건만을 내거시니, 신 또한 폐하께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겠습니다.”


그러나 이제와 통치가 아닌 전쟁이 필요해진 순간에, 이를 위해 그리 가진 것이 많고 스스로 내어놓을 것이 많은 토호들의 대변자를 선택하려 하니 그에 따른 반발로 귀결될 이들의 원한이 이리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


“진밀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같은 꿈을 꾸겠습니다.”


그 말인즉, 이권의 뜻을 허락하게 되면, 해서 진밀을 건드리게 되면, 자신은 거진 앞날의 계한의 통치를 위해 그 재주를 갈고 닦아 온 예비 관료들이나 다름이 없는 광한군의 어린 것들에게 출사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어쩌면 제 대에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죽고 난 뒤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지도 모른다. 당장에 새로운 이들의 출사가 필요 없는 지금이라면 몰라도, 한 세대가 교체되며 제가 죽게 될 10년 뒤, 제 아들들이 이를 물려받을 20년 뒤의 상황을 보장하지 못한다.


“선택은 제가 아닌 폐하께서 내리시는 겁니다. 앞서 신에게 그리 많은 것을 따지지 않겠다 말씀하신 것도 폐하시옵니다.”


선택이란 두 글자에 저도 모르게 그 눈이 커져 버린 것도 모자라 조금 전 스스로 내뱉은 말이 유언의 몸을 옥죄어왔다.


“그러고 보면 동한과 서진이 천하를 둔 운명의 결전을 벌일 당시의 일이 떠오릅니다. 동서대전, 천하대전이라 불리며 수많은 호사가들이 그에 관련된 일화를 떠들며 수 없이 입을 놀렸지요. 그리고 그 와중에 아조로 흘러들어 화자가 되었던 몇몇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반금작계, 그리고 계륵.”


그래, 자신은 그 조금 전 그 두 가지 사례를 떠올려 끝내 선택을 했었다.


그렇다면, 대저 어찌하여 이권은 제게 이러한 사례를 꺼내놓는가?


이 또한 선택을 강요하려 함인가?


“이권, 그대는 내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하는 것이 아닌, 설득하는 것이지요.”


“선택이 아닌 설득이라, 그 둘의 차이가 있는가?”


“오직 군주된 이가 내리는 것은 선택이요, 신하된 이가 올리는 것은 설득입니다.”


“나는 임금이요, 그대는 신하다?”


“예, 신은 폐하의 신합니다.”


말이 주는 어감이 묘했다.


별 것 아닌 것이라 치부할 수 있으나 어째 곱씹을수록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남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한데 이를 곱씹으며 돌이켜보니 선택을 내리게 하는 관점이, 대상이 달랐다.


앞서 유언은 사족과 호족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이라 여겼다.


앞서 내정과 중앙집권화를 위해, 즉 통치를 위해 사족을 택하였으나 이제와 전쟁을 위해 호족을 택할 시 떨어져 나갈 사족들의 반발을 우려했다.


그러나 그 관점이 바뀌면서 그 선택지 또한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진밀은 나의 신하가 아니로구나.”


“.........!”


“임금은 제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라를 생각하는 이들의 노고와 충정을 헤아려야겠지.”


쿠우웅-


그 한 마디에 감격한 눈빛을 내비친 이권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엄청난 울림이 일었다.


쿵- 쿵- 쿵-


“망극하옵니다, 폐하아아-!”


그 머리가 찧어 피가 나는 것도 모른 채, 전율이 이는 몸으로 소리친 이권의 일갈에 일평생 그 가슴에 서린 한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제아무리 선택을 내리는 관점을 뒤집어 그 선택지를 뒤바꿨을지언정, 실상 세간에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의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다.


사족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러한 사족들과 가까운 세를 형성하고 있는 동주사들 또한 이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지 모른다.


제아무리 지금이 적기라지만, 그리하여 전쟁을 택했다지만.


정작 이를 위해 다른 이도 아니고, 한때 자신이 죽이려 했던 불구대천의 원수요, 호적수를 데려다 쓰겠다고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그 장래가 약속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기재를 죽이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미친 소리가 통용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짐은 그대를 선택했다.”


쿠웅-


“오늘의 이 선택이, 그에 따른 결심과 용단이, 반금작계와 계륵을 밀어낼 계한을 대표하는 일화가 될 것이옵니다. 오늘 이후 천하의 호사가들이 폐하의 안목과 결의와 용단을 드높일 것이옵니다.”


“그래야 할 것이다.”


“소신을 택한 것을 실로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세간에 이러한 일이 알려지는 것은 보다 나중이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폐하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그보다도 더 뒤가 될 것이옵니다. 모든 것은 신이 안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이를 증명하였을 때, 세간에 이 아름다운 일화를 널리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밝히겠나이다.”


그렇기에 그 미지수를 확신으로 뒤바꿔야 했다.


“그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나, 그때가 언제가 되겠더냐?”


“계한이 장안을 얻게 되었을 때, 이를 밝히겠나이다.”


“장안, 장안이라.......”


그리고 지금 유언은 이권의 눈에 가득 차 있는 확신을 보았다.


“내가 그대를 믿을 수 있을까?”


“믿으십시오. 신은 이미 폐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실로 꿈과 같은 일이 그의 눈에 실존하듯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은 저질러졌다.


때아닌 적기에 기어코 임계점을 넘은 대공황이 터진 것이다.


* * *


“전쟁이라니 급작스레 그 무슨 망발인가!”


“허면 비단 전쟁 말고 이를 해결할 방도가 있소?”


“그렇다고, 암만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일을 저질러? 어디 전쟁이 그리 말 한마디면 되는 것이 던가!”


“그 말 한마디가 희망이 되니까 그러는 것이야! 아닌 말로 그대는, 저 바깥의 이들이 살려달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대저 언제부터 전쟁이 구원이 되었어? 거기다 다른 곳도 아닌 진국이야! 천하제일을 자처하는 진나라란 말이야!”


“그 진나라가 휘청이는 것을 장로가 증언했다! 그간의 활약을 통해 공을 세운 장로가 기어코 아조에 희망을 물어왔어! 비단 전쟁 그 하나면 이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는데, 지금 이 나라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어찌 이를 반대해!”


최근 성도의 분위기는 곳곳이 뒤숭숭한 것이 말이 아니었다.


조당에 모여든 이들이 매양 목소리를 높여가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데, 나라 안팎의 상황은 더더욱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 형주에서, 장강을 낀 전쟁이 벌어졌다. 장사에서 수군을 출병시킨 손견이 유표의 뒤를 때렸고, 이에 유기가 호응하여 형주는 양면에서 위협받고 있다.


- 손견의 수하들이 물길을 모조리 막았다. 근 일백 척에 달하는 대소 선박들이 청장강(장강)을 접수한 이래 막대한 통행세를 걷으면서도 정작 형주로의 접근을 허락지 않으니, 싣고 온 물건을 내다 팔 수가 없다.


- 양주까지 도달하는 물길에는 손견의 군사들이 없다. 그러나 손책에 의해 토벌당한 수적들의 잔당들과 부업으로 수적질을 일삼는 어부들이 날뛴다.


- 양주로 내려가니 전쟁이 한창이다. 이미 소패왕 손책이 양주의 남쪽과 서쪽 일대를 휩쓸었고, 이제는 장강을 건너 북상하여 양주자사 진온을 돕기 위해 합류했다.


- 북양주 또한 전쟁이 한창이다. 기어코 서주가 욕심을 내어 남하했다. 이에 착융을 비롯한 불도의 무리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밀려났으나, 정작 그리 밀려난 그들이 제세(濟世)와 안민(安民)의 가치를 부르짖으며 구원을 빙자한 피난이자 남방 침략을 자처하고 나섰으니, 양주자사 진온이 손책에게 원병을 청한 것이 바로 이러한 연유였다.


이미 비단길이 닫힌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 와중에 포홍이 그 비단길과 관련한 문제로 저 먼 서방의 세력들과 전쟁까지 치르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또한 차고 넘쳤다.


그 와중에 전해진 남중의 소식이야 이미 출병한 3만의 정병이 남하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뒤로 전해지는 소식들에 일희일비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니, 소위 이에 따라 계한의 경제가 출렁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비록 찰나의 일이나 승전의 보고에 모두가 환호하고 패전의 소식에 모두가 음울해하니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물량이 줄어드는 원자재의 수급 덕택에 물가는 그리 출렁이면서도 솟구쳤다.


그 와중에 계한과의 쟁송 또한 여전히 시끄러웠으나 때아닌 장로의 활약과 극적인 타결을 통해 진나라의 상인들이 피해를 본 와중에도 진나라의 비단을 수금하면서 그나마 시장의 전망이 밝아지니 이제 좀 정리가 되나 했는데, 정작 돌아온 장로가 때아닌 습격을 이야기하며 그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옹주 일대에 이름난 부호들과 가문이 소유하던 직물 창고들이 연이어 불타고 이에 선금을 지불하며 받아온 비단이 날아가 버린 상인들이 더 이상의 비단 수급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니, 그에 다시금 계한의 경제가 휘청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


거기에 한중마저 정체 모를 강족들의 습격으로 소송과 분쟁 등에 얽혀있던 교역품들을 보관 중인 창고가 전소되고 곳곳에서 피해가 생기면서 한중에서 전해진 불안감이 성도 일대에 더한 혼란을, 아니 노골적인 공황을 부추겼다.


거기다 파군 일대는 또 어떠한가? 비단 손견과 유표의 충돌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는 해도, 대저 손견이 아예 이를 갈았는지 거진 1만에 달하는 전력을 이끌고 나왔다. 그 와중에 그 피를 이어받은 호랑이 새끼가 위명세를 떨치며 일대를 휘저으니 비단길이 무너져 그에 따른 손해를 메우겠다 공들인 장강이란 시장조차 온전히 무너져 내렸다.


사치품이야 두말할 것 없고 그 수익이 막연히 보장된 비단의 수출길이 막혔다.


수익은 날아갔고 손해는 막심하였으며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어째 이 똑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느껴질 만큼 익숙한 악재가 반복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시장이 붕괴했다. 고용시장, 수출시장, 소비시장, 공급시장, 생산시장, 인력시장, 사치품 시장 가릴 것 없이 붕괴했다.


수요도 없고, 원자재도 막혔다.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도 모자라 이제는 점포와 업장마저 파산했다.


곳곳에 문이 닫혔고, 반쯤 정신을 놓은 이들이 노숙자요, 걸인이 되어 떠돌고 말세가 왔다느니 구원을 받아야 한다느니 제국을 버리고 개혁이 필요하다느니 정신 나간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들과 그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었다.


시절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어 추수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농부들은 파종의 시기보다 더더욱 바빴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굶어 죽을 것은 매한가지 같으니 뭐라도 먹고 살아야겠다,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없다 하니 어느덧 남의 논과 밭에 들어가 멋대로 작물을 훔치고, 들판에서 아직 제대로 영글지도 않은 볕잎을 남몰래 베어내 도망치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이에 다급히 구휼을 계시한 장로와 오두미교는 더더욱 교세를 확장했다.


부족하나마 물에 쌀을 불려 끓인 죽을 나눠주고 자루를 들고 찾아온 이들에게 적게나마 쌀과 잡곡을 나누어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족들 또한 부랴부랴 구휼을 개시하였고 이는 비단 지역적 연고와 기반을 지닌 토호와 귀족 가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광한군 일대에 사족들을 비롯한 상인들은 이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뭐 상인들이야 본래 손해 보는 것 싫어하기도 하고, 애초에 비단이자 대리석(만석), 사치품 등을 비롯한 여러 돈놀이에 뛰어들려면 이 계한 내에 자리한 높으신 양반들의 카르텔에 끼어야 했으니, 그 카르텔을 빙자해 상납이다 뭐다 엄청나게 뜯긴 돈이 억울해서라도 잠잠한 눈치였으니 그렇다 칠 수 있는데, 정작 문제는 광한군 일대에 자리한 사족들에게서 터졌다.


되려 통치가 잘못되었다느니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느니 애먼 욕심을 부렸다느니 아직도 탐욕을 놓지 못했냐느니 그 말을 앞세우며 되려 작금의 문제를 비판하기 바빴고, 그 와중에 가만히 있다 가산이 있어도 이를 내놓지 않으니 배부른 돼지 어쩌고 탐욕스러운 짐승이 어쩌고 잠자코 있던 상인들의 뺨을 후려 갈렸다.


허나 그리 만만한 상인들이 채 기분 나빠할 겨를도 없이 토호들과 귀족들, 심지어 이 나라의 벼슬을 하고 있는 신료들까지 욕을 먹었다. 이들 또한 소위 말하는 높으신 양반들로 구성된 카르텔에 조직원이니, 비극으로 물들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겠다 입바른 소리를 내세우는 광한군 출신 사족들이 지정한 공격대상이 된 것이다.


허면 반대로 이들은 또 왜 이리 설쳤느냐? 달리 말해 유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와 확신이 있어서였다.


자신들은 이 나라, 익주 제일의 지식인 계층이요, 그 장래가 약속된 예비 관료들이자 이 나라의 사회와 질서, 문화, 예절 등을 비롯한 통치 전반을 이끌어가는 소위 선발된 엘리트 계층이었다.


그저 그런 핏줄만 내세우는 머저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로서 직접 제국을 경영하고 중원을 통치하며 그 역량을 과시했던 동주사들과 교류하며 함께 나라를 운영함에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과 비전을 제시하던 이들이었다.


고로 이러한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의 기반이 되는 자신들을 내칠 리 만무하다 판단하였으며, 또 한 편으론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핑계로 한동안 돈놀이와 비단 장사에 미쳐 가장 귀히 대해야 할 자신들을 소홀히 대한 채, 토호들, 귀족들을 비롯한 상공인들과 돈놀이를 자처한 유언에 대한 질책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은 이권과 유언의 밀약을 알지 못했다.


복수를 자처한 장로가 전한 전쟁이란 해결책을 깨닫지 못했다.


일평생 배우고 갈고 닦은 재주가 가히 사해를 뒤덮을 정도이나 정작 이들이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비단 그 재주가 전부였다.


고로 지금 당장 유언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 수행을 위한 의지요, 기반이자, 능력이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허면 달리 방도가 있나? 전쟁 말고, 작금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휘청이는 이 나라를 구원할 다른 방도가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번 명절 기간은 연재를 쉽니다.[9/30 - 10/4] 20.09.29 414 0 -
공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4 20.06.25 1,446 0 -
공지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월 21일 업데이트] +2 20.06.14 794 0 -
공지 새로 시작합니다. +8 20.05.11 5,102 0 -
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33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2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6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2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1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