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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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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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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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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3쪽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DUMMY

가뜩이나 힘든 시기다.


죄인들이 차고 넘친다.


전쟁은 필요하나 그에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이들이 없고 제 목소리만을 높이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반란까지 일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노골적인 진압과 그에 따른 학살을 자행할 순 없었으니.


그렇다고 내부 정리를 한답시고 굳이 내전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니.


그렇기에 알아서 복종하고 수그려 그에 따른 권위를 바칠 이들이 필요했다.


“한데 이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 내 아들, 아니 조위다?”


그 와중에 미련한 것만 같았던 제 아들이 내어놓은 선택지에 유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진 것이 오랜만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것이 제 아들의 방침이 아닌 조위가 꼬드긴 선택지라 할지라도 그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믿을만한 건 동주사들 뿐인가?”


앞서 논하였듯 이 땅엔 크게 4갈래의 세력이 있다.


사족, 호족, 오두미교 그리고 동주사.


그중에서 동주사는 두말할 것 없는 제 직할 기반이며, 애초부터 저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이 익주 땅에 새롭게 터를 잡은 이들이다.


물론, 조위와 같은 이들이 제 야욕과 재주를 버리지 못한 탓에 짧은 정리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그만한 이들은 없었다.


“변방 촌구석 놈들 데려다 일하려고 하니까 역시나 쉬운 게 없어. 하지만.......”


허나 필경 그에 따른 의문점은 들기 마련이다.


복수는 물 건너간 듯 보이고 그나마 노리는 것은 다음 대의 번영을 위한 치적이요, 초석으로서 제 아들 유범을 키워주려는 듯 보이는데, 그럼에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스스로 종을 자처하겠다는 저 방식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만한 것만 따지면 저 광한군의 사족들보다 더한 것이 동주사들인데.......”


본디 동주사란 무엇인가? 본디 중원 땅에서, 그것도 그 중원의 중심에 자리한 수도 등지의 영역에서 번영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이들이다.


작게는 낙양 일대요, 크게는 삼보 일대를 비롯한 낙양, 더 나아가 하남윤을 비롯한 형북 남양 일대를 걸쳐 수만 호가 집결하여 살아가고 있었으니 이들 중에 지식인, 귀족, 사족, 호족을 비롯한 오만 기재와 부호, 재주꾼은 물론, 별 것 아닌 평민들조차 중원의 중심에서 살아가기에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그에 따른 교육수준과 생활양식 또한 전반적으로 드높았다.


비단 아랫것들조차 그 머리가 깨어있었고, 어디에서나 굽신대지 않는 풍토는 당연시 되었으며 그에 따른 신의를 기반 삼아 충심이 서린 지조와 절개가 있었으니, 그렇기에 따라오는 자태가 오만이었다.


한데, 그 오만한 이들이 이제와 저리 제 앞에 복종하여 수그리되, 비단 저리도 낮은 저 자세를 고수한다?


그것도 이전 시대의 동주사들을 대표했던 조위를 제 손으로 정리하여 되려 그에 따른 충성의 이면에 복수심과 두려움이 심어졌을 그들이, 좋지 않은 기억과 그에 따른 불편한 속내를 모조리 정리하고 이제와 개과천선하여 다시금 제게 복종한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차라리 이쪽만한 선택지가 없어 협력을 자처했던 저 이권과 같은 호족들처럼 어쩔 수 없이 협력하여 그다음으로 충성을 바치는 것이 더 맞는 그림이지.”


오월동주(吳越同舟)까진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 앙금이 남은 이들이 자발적 복종을 자처하며 이쪽의 곤란함을 해결해주는 것은 비단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과 그래야만 하는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이제는 근 10년, 길게는 20년 안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노쇠함을 모르지 않을진대, 이전처럼 제 아들 유범이나 꼬드기며 이쪽이 죽은 다음의 시대를 기약할 이들이 이리 나왔다는 것은 비단 이만한 기회가 없다는 소리였다.


“기회........, 이만한 기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회?”


그러던 차, 문득 한수가 자신을 꼬드길 적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는 부정할 것 없는 기회지. 그것도 그간의 충심으로 나를 모셔온 자네가 기어코 일궈낸 기적과도 같은 기회. 하늘은 기어코 나를, 이 계한을 버린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 기회. 천명이 내게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기회.”


그때의 그 말을 곱씹으며 자신은 무슨 생각들을 떠올렸던가?


이리들을 사냥할 기회, 이리들을 처리할 기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기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 장안을 비롯한 삼보 일대를 접수하고 길게 늘어진 진나라의 허리를 끊어 그 세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기회. 황제의 위엄을 만방에 떨칠 수 있는 기회. 내부 결속와 외부 세력의 정리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기회. 제국의 안정과 확장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기회.


잠깐, 삼보 일대?


“........!”


순간의 전율과 더불어 유언의 얼굴에 작은 끄덕임이 일었다.


“이거 진짜로 오월동주로군. 그렇게 해서라도 고향을, 확고했던 제 기반을 되찾으시겠다?”


그와 더불어 제게 복종을 자처한 이의 진심 어린 수그림에, 저도 모르게 이권을 비롯한 호족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였다.


어디 이뿐이랴?


제게 몸담은 성공영을 비롯한 장로 또한 그러했다.


생각해보니 작금의 이 익주 땅에 돌아가는 판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한발 걸쳐 원수지간인 이들이, 심지어는 저와 불편하다 못해 그런 저와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이들이 이제와 전쟁이라는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제게 협력하고 있다.


* * *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오월동주라는 소리요? 거기에 동주사들이 아닌 체를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그 와중에 전쟁을 부추기는 목적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함이고?”


“예.”


“아니, 이것 참.”


그렇게 대전을 나온 유범이 다시금 조위를 찾아 그가 시킨 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들었을 때, 그 표정은 실로 심란한 감정 그 자체를 담고 있었다.


“황자 전하께선 부친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지요, 거기에 장로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럼에도 본연의 목표를 위해 이들과 함께 전쟁에 바람을 부추겼으니 오월동주 아닙니까?”


“그거야 그대의 조언에 의해서......”


“그에 계책과 안배를 내어드린 신 또한 부친이신 황상과 불편한 관계에 또 오두미교를 이끄는 장로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관계에 놓여있지요. 그럼에도 황자 전하를 위하기 위해 부친이신 황상께 바짝 엎드려 협력하고 복종하겠다, 의지를 내비친 것 아닙니까? 장로를 비롯한 오두미교와 함께 가겠다, 성공영과 같이 전쟁하겠다, 그 의지를 보였으니 이 또한 오월동주 아닌지요?”


“그야 그렇긴 하다만.”


“허면 반대로 저 이권을 비롯한 호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애당초 한조가 멸망 당한 시점에서 부친이신 황상과 오월동주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조라는 선택지가 이제는 부친께서 내세우신 계한 그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철천지원수요, 호적수였던 그와 협력하여 전쟁을 논하였습니다. 제 잇속을, 그 목표를 위해 함께 가겠다고 말이지요.”


“그야 옹주 그 하나만 쥐어도 그들에게 떨어지는 것들이 엄청나니까, 굳이 영토와 백성이 아니어도 그 땅에 자리를 잡은 지주화 부호를 비롯한 상류층의 이들만 털어먹어도, 그간 굴리던 모든 물자와 자금의 손해의 몇 배, 아니 몇십 배의 이득을 건져낼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거기에 황하를 끼고 있으며 낙양과 지척이니 중원이라는 시장에도 가까워집니다. 별도로 하동 일대마저 닿아있으니 비단길에서 갈라져 나온 사연택과도 가까워집니다. 하북을 주무르는 시장이지요. 다른 지방의 호족들과 달리 그 밑에 상공인들을 두고 비단을 비롯한 무역과 교역품의 생산에 적극적인 후원을 자처하는 이 익주 땅의 토호들에게 이만한 결과물은 없습니다. 가히 이들에게 있어 천하와도 뒤바꿀 수 있는 세속의 이상향이지요.”


“그렇군.”


“성공영은 또 어떻습니까? 본디 그는 량주의 군벌이었던 한수를 따르는 강족의 통솔자로 본디 한중을 비롯한 이쪽과 알게 모를 충돌이 많았지요. 특히나 한중의 장로와는 그 마찰이 극심하였으나 포홍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와 협력하며 작금에 옹주 일대의 강족들의 습격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는 한수와도 협력했고 또 아조 계한과도 협력했지요. 이 또한 오월동주입니다.”


“거기에 장로 또한........”


“부친이신 황상의 총애를 받는 계한의 충신이기에 또 한중의 지도자이기에 진국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나 작금의 별개로 튀어나온 옹주정을 무너트리기 위해 재상인 병원을 꼬드겨 진나라를 분열시키는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그 와중에 후계이신 유씨 형제분들과 사이 또한 좋지 않지요. 거기에 성공영은 또 어떻습니까? 본디 량주의 이들과도 으르렁거리는 것이 한중의 이들이었는데, 그럼에도 결국 협력했습니다. 이 또한 오월동주지요.”


그렇게 돌고 돌아 그 모든 세력을 돌아보고 나니, 실로 이 계한에 자리한 이들의 사정이란 것이 하나의 관점과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작금을 기회 삼아 그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것을 준비하는 동주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면 동주사들은 정녕 그게 다요? 고향을 되찾는 것, 그리 돌아가 제 본연의 기반을 다잡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진정 모르시는 것이옵니까?”


“아니요, 아오. 되려 꿈만 같아 그러지.”


그래서였을까?


유범이 보기에 그 눈에 물기가 어린 환상을 품은 조위의 모습은 실로 경건하다 못해 그리움과 설렘이 그득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그렇지요. 실로 꿈만 같은 일이지요. 드디어 한의 실권자들이, 이 한의 지도부가, 그간의 세월 이 나라를 떠받들어왔던 수많은 기둥들이 드디어 제가 뿌리 내렸던 고향이요, 터전이었던 중원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계한의 통치 강역이 더는 파촉 땅과 한중에 갇혀있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 땅에 내려온 우리가 더는 이 구질구질한 벽촌의 구석탱이에서 제 터전을 자처하는 머저리들의 안방까지 빼앗아가며 앉아있으면서 들었던 오만 불평불만을 굳이 귀를 막고 참아주며 들어줄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기반이 없어 저 사족들과 손을 잡고 더더욱 악독하게 이 땅의 이들을 짓누를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저 돌아가면, 그리 기반만 잡으면 더는 이 땅의 머저리 같은 것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리 되찾은 힘 하나로 짓눌러버리면 그뿐이지요.”


“혹여나 싶어 되묻는 말이네만은, 정녕 그 정도요?”


“천하를 압도하는 힘은 비단 관중, 중원의 중심에서 나옵니다. 인구, 물산, 학문, 경영, 통치, 인재, 심지어 천명과 대의까지. 실상 그 천하가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겨갔으니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던 삼보 일대와 낙양 일대 그리고 동한의 발상지였던 남양까지 자리를 잡았던 우리 동주사들은 세상의 중심을 살며 그에 걸맞은 것들을 품고 나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부친이셨던 황상을 보좌하였을 때, 황상은 어찌하셨습니까?”


“이, 익주를 제압했소. 이 땅을 정복하고 복속시켰지.”


“그리고 계한을 여셨지요?”


“그런 셈이지, 천하가 옮겨온 꼴이니까.”


그리고 그 끝에서 드러난 것은 비단 역시나 광한군의 사족들 저리가라 할 오만함이자 그 오만함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그들이 지닌 위력이었다.


“바로 그 힘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힘이 황자 전하의 가장 강력한 후원 세력이요, 기반이 될 것이오니 그때에 이르러 황자께선 굳이 성도니, 한중이니 하는 것들에 별반 노고를 기울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오나 성도는 작금의 계한의 수도요, 황제의 기반이란 말이요.”


“그 계한이라 해봐야 전조의 잔당들이 변방에 반쪽짜리 괴뢰국이 아니겠습니까?”


“........!”


살랑-


그리고 여기서 유범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콧잔등을 어지럽히는 우선의 살랑임이 제게 새로운 세계로의, 천국으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옹주를 쥐면 장안을 거머쥡니다. 또한 낙양까지 지척이지요. 노쇠한 황상께서 단숨에 기반을 버리고 거취를 옮기실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이제 막 정복한 땅에 애먼 익주 땅의 이들을 데리고 새로이 터전을 일굴 수는 없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에 익숙한 이들과 더불어 그간 잃어버렸던, 허나 이제는 되찾아온 터전을 다시금 일궈야 합니다. 그게 누구겠습니까? 비단 급작스레 확장된 영역과 기반에 배알이 꼴릴 사족들을 짓누르고, 그에 그 욕심을 주체 못하고 설칠 호족들을 관리하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일대를 안정시켜 제국의 기반으로 삼아 이끌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황자 전하께선 비단 그 옹주를 터전 삼아 이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겁니다. 전한의 수도인 장안에 자리하시건 후한의 수도인 낙양에 자리하시건, 그때부턴 천하를 거머쥘 운명을 타고난 이로서, 그 영웅적인 행보에 한 걸음을 내딛게 되시는 것이옵니다.”


- 만세! 만세! 계한 고제! 계한 무제! 한 시제! 만세! 한나라 만세!


자신의 앞에 펼쳐진 것은 가히 하늘 문 너머라, 새하얀 깃털이 흩날리는 찬란한 광경 아래 자리한 것은 비단 수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제국의 황도를 걷는 황제가 된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미 이들은 저를 데리고 나아갈 천하에 대한 구상까지 전부 그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에 지금까지의 모든 노고가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듯하니, 이를 위한 오월동주라면, 이것이 제국의 차기 주인이자 천하를 일통할 이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시련이라면, 되려 이를 참지 못하는 것이 그 자격을 내팽개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그 가슴이 뛰지 않으랴?


어찌 격동하는 심장을 부여잡지 않을 수 있으랴?


“진은 한중을 비롯한 관중을 기반으로 천하를 일통했고, 한 고조 또한 한중을 얻고 관중을 얻어 천하를 쥐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고 또한.......”


“예, 그리 되셔야지요. 진의 시황이 되시고, 한의 고조가 되셔야지요. 그 때문에 동주사들의 뜻을 대변해 전쟁에 힘을 실어주셔야 했고, 그 와중에 부친이신 황상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도록 한 것입니다. 적어도 일평생을 함께 해왔던 동주사들 만큼은 여전히 믿을 수 있는 이들이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어심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근심거리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 겸손이 그 고개를 수그려 복종의 자태를 보였습니다.”


이는 비단 저를 위해 정해진 운명이요, 하늘이 설계한 안배와 다름이 없었다.


“그렇구려, 나를 위해 또 그대들을 위해 그리 스스로 감내한 것이었구려. 그리고 이는 비단 두말할 것 없는 지엄한 하늘의 뜻이었구려.”


선왕의 뜻에 따라 의로운 선비들과 힘을 합쳐 무도한 진을 방벌(放伐)하고 백성을 구제하여 천하에 대업을 선포한 뒤, 그 막중한 위업을 선제로부터 선양(禪讓) 받아 난세를 끝장내는 것.


달리 말해 이는 유범에게 내려진 천명(天命)이었다.


그리고 그 천명은 비단 신이 내린 시련과도 같아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 인내하고 또 견뎌내야 할 고행이 될 터.


“하여 다시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황자 전하 또한 마찬가지이십니다. 되도록 수그리시고 되도록 복종하십시오. 실상, 당연한 듯 여겨지는 자리라 해도 황자 전하의 곁에 경쟁자가 없는 것도 아님을 결고 좌시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장로.”


“만일(萬一)은......, 결국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우려를 삼는다면 둘째 전하이신 유탄 전하 또한......”


“그만! 그건 너무 간 일이다! 탄이는........!”


“신은 지금 유탄 전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어심이 유탄 전하께로 향할지 모르는 황상의 변심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러니까 오월동주하는 심정으로 수그리십시오, 황상의 눈밖에 들지 않도록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행이라 하더라도 오월동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후우, 알겠소.”


그렇게 유범은 제게 내려진 시련을 받아들이겠다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허면 이 사람은 남은 문제를 해결토록 하지요.”


“남은 문제라니?”


“모두가 이 나라를 위해 오월동주하는 이 마당에 아직도 당장에 제 입지를 내버리지 못한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광한군......, 사족! 사족을 손보겠다는 말인가?”


“오월동주라고 하였으니 확실히 그 희생양을 정해야지요. 그에 의기투합한 모두의 값어치가 사족들의 그것보다는 커야 합니다. 그리고 진밀의 가치를 뛰어넘어야겠지요.”


애당초 저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 또한 신하된 바, 그에 걸맞은 시련을 짊어진 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 고군분투를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사족들도 바보는 아닐진대, 필경 이에 준하는 해결책을 가지고 나오겠지. 아닌 말로, 부친께서 포기하지 못하시는 것이 바로 절대적인 황권이니까. 비단 작금의 사족들이 십상시마냥 돌변해도 그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능히 이를 허락하실 부친 아니겠소?”


“그거야 신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여차하면 장로와도 손을 잡도록 하지요. 허니 비단 황자전하께 부탁드릴 것은 앞서 언급한 가도의 정비요, 순찰의 강화이자 치안의 안정에 최대한 손을 써주십시오. 이미 은퇴한 동주사들의 사병과 가병을 합쳐 보기 2만을 드리겠습니다.”


“2만!”


그러나 비단 그 시련만큼이나 빛이 나는 것이 바로 하늘이 제게 인도한 안배였다.


“작금의 사례 교위 역할을 대신하는 성도 교위가 고작해야 1만을 거느리고 이 일대를 바삐 정리하고 있다지요? 그럼에도 매양 도성의 백성들을 붙잡아 압송하고 두들겨 팰 때마다 수없이 많은 반발과 민심의 이반이 지속됩니다. 민심이란 실로 쓸데없이 공감대가 높지요, 애초에 제국에 충성하는 이들을 건드릴 목적이 아님에도 괜스레 그에 몰입하며 마치 저들이 핍박받는 마냥 난리를 치니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라고 마냥 붙잡아 압송하면 할수록 폐하를 향한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로.......”


“그 둘은 갈라라?”


“예, 제국의 충성하는 이들은 노역을 할 때마다 형을 감형시켜주고 녹봉도 쥐여 주시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죽을 때까지 굴리고 부리십시오. 그리 대단한 가치를 지닌 거라면 어디 네놈들 먼저 이 땅의 이들을 위해 솔선수범해라 그 알량한 자유와 공화가 이 나라의 만민을 살찌우는 것을 증명한다며 말 몇마디 씨부리기 이전에 스스로 먼저 이를 실천하여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라, 이를 증명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허나 그리 기회를 주면.......”


“대다수는 죽겠지요, 또한 그 와중에 힘들다 못하겠다 반발하는 이들이 절로 뛰쳐나올 겁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 또한 알량한 옳음을 외치던 이들의 노골적인 불평불만과 반발에 알다가도 모를 실망감을 느끼겠지요. 비단 저들도 똑같이 노역을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저것들은 저리 입만 살았을까?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이간질, 불온한 사상을 전파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별대우.”


살랑-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례는 바로, 그 누구도 넘지 못했던 호로관을 넘었던 포홍의 이간계에서 기인하지요.”


“그렇군, 알겠네!”


아비의 곁을 떠나 이리 제 곁으로 날아온 조위는 본디 그 덕을 잃기 전에 아비의 지낭이요, 자방이었던 사람.


그 누구도 아닌 작금의 천하에 악명 높은 임금이요, 사이한 모략과 잔악한 무용을 겸비한 장수인 포홍의 사계(邪計)마저 단숨에 꿰뚫어 보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기재.


그러한 이가 제게 왔다는 것은 가히 제 아비로 인해 어긋난 천명을 그 아들인 제가 바로 잡으라는 하늘의 뜻이 확실했다.


“그리하시면 부친이신 황상께서 잃어버린 민심을 다시금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 차례 체에 걸러 깨끗하고 독이 없는 이들을 들이켜 부족한 세력과 지지에 대한 갈망과 갈증을 씻어낼 수 있게 되지요.”


“내 명심하지.”


“아, 그리고 가도의 정비는 되도록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음? 전쟁을 위함인가? 그도 아니면 혹여나 벌어질지 모르는 내전에 대한 우려인가?”


“그 둘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가도의 정비요, 순찰의 강화이자 치안의 안정입니다. 특히나 빤한 순찰과 치안은 내버려 두더라도 당장에 가도는 필수적임을 잊지 마십시오. 외적인 진을 치기 위해 저 북방으로 단숨에 뛰쳐나가기 위해서도, 그게 사족이든 호족이든 소외된 이들이 행여라도 그에 불만을 품은 든 이들을 규합해 여차하여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이를 재빠르게 그들의 강역으로 병력을 보내 그 일대를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서도 말이지요.”


“광한군과 파군 일대는 내 무조건 정리해놓도록 하지.”


하늘이 이리 저를 점지하여 밀어주는데 그에 따른 기대에, 자격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천명이 없음을 시인하게 되는 일일 터.


“그 와중에 치안의 안정과 순검을 추구하는 목표도 잊지 않으시리라 여기겠습니다.”


“고가 제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그대가 얕잡아보는 머저리만큼은 아닐세. 2만에 달하는 정병을 주었으니, 비단 이것은 그 목적이 여럿이나 다름이 없지. 가도를 정비하며 일대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인근에 사족과 호족을 짓누르는 무력 시위가 될 것이며, 그 와중에 인근 골짜기와 산간지대에 자리를 잡은 도적의 잔당들을 토벌하여 전투 경험을 쌓는 것은 전쟁을 앞둔 가장 실질적인 훈련이 될 것이니, 동주사들이 내어놓은 사병과 가병은 이내 곧 전쟁에 적합한 정병이 될 것일세. 거기다 치안의 안정을 목적으로 인근 군현의 고을을 보살피며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대의 민심을 얻는 행위이면서도 수도인 성도 일대에 자리를 잡은 지방관들을 비롯한 사, 호족들을 달래며 그들과 유대 섞인 친목을 다지는 자리가 되겠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작금의 유범이 그렇게 될 일은 없었다.


“실로 부족함 없는 임금의 자질을 비추고 계시옵니다, 전하.”


“그대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조금만 더 참게. 내 아비 대에 옹주를 얻어 대업의 초석을 닦고 나면 그땐 그대들과 함께 진 시황과 고조의 패업을 이루게 될 것이니.”


무릇, 천하에 뜻을 품은 이들이 많다지만 오월동주의 천명은 비단 이 땅의 이들에게 유효한 것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사자의 사명을, 천하를 향한 격언을 낳을 줄은 과연 누가 알았으랴?


그리 내려진 천명의 끝에 남은 것은 비단 그에 반발하는 이들의 목을 베어 제물로 바치는 결의, 그 하나뿐이었다.


작가의말

마지막 대목의 사자의 사명은 처음엔 정해진 뜻이 있는 한자를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일부러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굳이 이를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짜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 아오, 익주도 참 징글징글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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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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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33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3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7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3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3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10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2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8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4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3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3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1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80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5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9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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