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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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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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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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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DUMMY

끼이이익- 쿠웅-


화려하게 치장된 왕궁의 문이 열리며 그 전신에 핏물을 뒤집어쓴 시뻘건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전신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듯, 휘청이며 비틀거리는 그는 제 손에 시뻘겋게 물든 만곡도를 놓지 않았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그 빌어먹을 재상 놈이 설치지만 않았어도......, 하아.”


허나 그 또한 사람인지라 눈치가 보인다.


떨리는 목소리에 그 머릿속이 복잡하면서도 불안한 눈동자가 자꾸만 주변을 살핀다.


“스승인 갑 장사의 일은 내 먼저 피를 본 거고, 내 딸의 일은 나도 아비잖아요. 그러니까, 내 새끼 행여나 잘못될까 그래서 그런 거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비단 이를 두고 그 어떠한 식으로 또 자신을 압박해올지 모르는 제 사위에 대한 알게 모를 두려움이 자꾸만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고해성사를 낳게 한다.


애당초 무례고 나발이고 이미 왕궁에 무장한 병력과 더불어 침입한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그 와중에 궁을 수호하는 위사들까지 죽였으니, 가히 그 죄의 무게는 더더욱 커질 것이다.


“푸우, 이제는 나도 모르겠네요. 어쩔 거야? 지가.”


그러나 그리 이 자리에 없는 포홍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한 그 순간.


되려 불안과 초조 그리고 공포심이 날아가 버렸다.


그 몸에 떨림도 멈췄을뿐더러, 흘러나오는 목소리 속에 도리어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건 그렇고, 기왕 이리된 거. 정리할 건 정리해야겠네요. 더 봐줄 수가 없잖아, 나도 사람인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호랑이 없는 곳에서 여우가 왕 노릇을 하기 때문일까?


그조차도 아니면, 당장에 포식자로서 제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냥감에 더한 신경을 쏟게 되었기 때문일까?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핏물이 튄 입술을 훑으며 한 차례 궁궐을 훑는 그의 모습은 가히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비단 자식도 자식이지만, 그가 이리 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부로 마주해야 할, 정리해야 할 이가 있음을 그 또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 *


찰박- 찰박-


“나는, 나는 더 이상은 못 가요!”


그렇게 한창 장안성 내의 왕궁 위가 시끄러워질 시각.


왕궁을 쌓아 올린 지표면 아래 어두컴컴한 수로를 거닐던 이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났다.


“따르시지요.”


“내가 그대들을 어찌 믿고! 궁에 내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면, 나는 안전해요!”


“불안전합니다.”


“어째서 그래요?”


비단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작게나마 타오르는 횃불이 전부였지만 그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는 대치 국면은 실로 다급하면서도 애처로우며 고결하기 그지없었다.


“장안 또한 저들의 손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장인이시라고 한들, 계한의 30만은 버텨내기 힘듭니다.”


“진이 그렇게 허약하나요?”


“폐하께서 아니 계시는 진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대들은 내 남편을 믿지 못하는군요.”


“폐하의 은혜 속에 누린 풍요를 제 것 인양 착각하여 오만에 빠진 이들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이 기어코 폐하를 등졌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폐하께선 그런 그들을 아끼셨어요.”


“대초원을 아우르는 이는 능히 엇나가는 이들조차 포용할 줄 아는 법입니다.”


“그래요, 말 잘했네. 그래놓고, 이제와 저들 모두를 버리겠다고? 제아무리 잔혹한 짐승이라도 제 새끼는 보듬고 아끼는 법이지 않나요? 초원의 이리도 그렇잖아요? 한데 이게 뭐에요? 다 내팽개쳐두고, 다 내버려두고 나만, 이리 나만 챙김을 받으라고?”


“하아......, 전하. 제발.......”


드러나는 이의 복색은 가히 귀한 것이었고, 그 위로 땀에 젖은 머리칼과 어울리지 않을 불안함 속에 흔들리는 눈동자는 되려 물 위로 떠오른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하필이면 그 미색조차 누구를 닮았는지 실로 아름다워서, 그 분위기조차 너무나도 여리고 고와서, 되려 이를 마주한 이들조차 행여나 건들면 부서져 내릴까, 혹여나 그 작은 실수에도 상처가 나지 않을까 손 하나 쉬이 내밀 수 없고, 그 목소리조차 쉬이 높이기 어려운 것이 눈앞에 이들이 이끌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럴 일 없어요! 거기나 내 남편이 진왕이에요! 나는 왕후란 말이에요, 그런 이 나라의 국모가 이리 도망치면 도성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구요?”


“그들 모두보다 귀한 존재가 바로 전하이십니다. 그들 모두를 죽여도 왕후전하만큼은.......!”


짜악-


그러던 찰나, 희다 못해 여리고 고운 손이 휘둘러졌다.


“저, 전하......”


“다시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요. 애초에 민심을 얻고 그리 수백만에 달하는 유민들 꼬드겨 불러들인 게, 이렇게 다 죽이고 내팽개치려고 불러들인 거 아니잖아? 지금 그 말, 그 말은 그대들이 여태껏 내 남편이 일군 대진국의 위업을 부정하는 말이야. 내 남편의 진심을 왜곡하고 곡해한 말이야.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큰 뜻을 품고 목숨 바쳐 충성을 다했고, 가진바 그 모든 재주를 활용하여 작금의 이 나라를 일군 그 모든 이들을 모독한 말이야. 그러니까, 그대들 스스로가 그리 스스로를 욕보이지 말라고.”


우렁차지도 않은 목소리에 주변을 장악하는 분위기조차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리 유약한 미성 속에 흘러나온 진심이 절로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소, 송구합니다. 전하. 하오나.........”


“알아요. 위험하지, 나야 정사를 모르지만 많이 무섭고 두려웠어요. 비단 작금의 무너지는 장안을 봐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그랬어. 아닌 말로, 한조가 아직 남아있을 적에 뜬금없이 선제의 명으로 지금의 내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움을 표출하시던 내 아비의 얼굴을 기억하니까. 내 남편은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잔혹한 장수였고, 언제 이성이 날아갈지 모르는 괴물이자, 변방의 짐승들을 때려잡는 짐승이었어요. 그런 이에게 황명이라고 덜컥 딸을 주게 되니까, 그래. 그 이후로도 그러했지.”


풍방의 딸이자 현 진왕 포홍의 아내요, 진국의 왕후인 풍씨.


그 미모가 가히 절색이라 비단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 성품도 고왔기에 원 역사에서는 그녀를 후궁으로 삼은 원술이 아끼고 아꼈으며, 그녀의 지조와 절개를 시기질투한 이들의 괴롭힘 끝에 교살당한 뒤, 자살로 꾸며졌던 비운의 여인이었던 그녀는 그 역사의 비틀림을 따라온 작금의 이르기까지의 본연의 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난세를 겪어야만 했다.


원술의 후궁도 아니요, 다른 후궁들의 괴롭힘은 없었다 하나 천하가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요, 난세의 중역인 이의 아내가 되어 그에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겪으며 수없이 많은 이가 살고 죽는 것을 보아온 것이 마찬가지니, 결국 권력과 칼끝이 무섭고 이를 쥐고 있는 이들의 손에 의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결정지어지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무엇보다 그녀의 제일 가까이에 자리한 제 아비의 두려움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칼과 권력 앞에 죽어 나갔어요. 모두가 눈치를 봐야만 하고 두려움 속에, 혹은 충성 때문에 내려진 명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난세를, 전국을, 그에 속한 이들을 욕하고 싶진 않아요. 비단 이 모든 게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고 한들, 그에 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분명 그 이전 시대를 살며 이러한 불행의 씨앗을 흩뿌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 남편인 포홍을 욕보이고자 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흉측한 짐승이고 잔혹한 괴물이라더니, 정작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다방면에 말이 통하며 제게 친절했고 선을 넘지 않았다.


아무런 연유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지도, 모든 것에 강압적이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더 조심하고 심지어는 그런 자신을 피해 다닐 적도 있었다.


묘하게 쑥맥이라 그런가 싶었으나 비단 연유는 그뿐만이 아니었으니 그것이 권력과 칼 때문에 또 제 아비가 먼저 포홍을 모독했던 실수 때문에 기존의 관계가 불편해졌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런 것임을 알고 나니, 되려 제 인기척과 눈치를 피해 다니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다가갔고 먼저 손을 뻗고 먼저 말을 걸었다. 먼저 웃어주었고 먼저 안아주었으며 먼저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렇다면 이는 순전한 감정 때문이었는가?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가식적이었다.


그 불편한 관계 속에 힘들어하는 제 남편이 안쓰럽기 때문에, 여전히 그에 눈치를 보며 알게모를 두려움과 소외감에 힘들어하는 제 아비 때문에 그리 안타까운 두 남자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그리 돌려받은 이들의 아낌과 보살핌 그리고 사랑이 거짓이었냐고 함은 그렇지 않았다.


제 아비고, 남편이고 비단 저 하나 챙기겠다고 하는 그 고운 마음씨만큼은 비단 이 세상을 악명으로 뒤덮었던 진왕이자 여불위답지 않은 선의 끝이었으니까.


“나는 많은 것을 받았어요, 도와주려고 했는데 진심만을 담아야 하는데, 그리 받은 것이 많다고, 그리 마음이 쓰인다고 더한 것을 담았어요. 근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네요. 그리고 이는 지금이라도 다르지 않아요.”


언젠가 자신이 이 세상에 가장 아끼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본다면, 비단 그 어미마저 죽고 없는 이 세상에 어떻게든 놓고 싶지 않은 두 가지가 무엇인가 돌이켜본다면, 일평생 제 곁에 남아줬으면 하는 저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두 사내가 전부일 것이라.


그렇기에 언제고 홀로 잠든 왕후전의 침실에서 꾸게 되는 악몽 속에 제 아비가 제 남편을 죽이고, 제 남편이 제 아비를 죽이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면 매양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식은땀 속에 눈물 젖은 고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으니, 오늘날과 같은 일이 벌어진 이 순간에 그 악몽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터.


“그래서 미안해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백성을 내세웠으나 결국 내가 살리고자 하는 건 두 사람이 전부네요. 그래도 걱정 마요, 어떻게든 잘 도망칠 테니까, 다시 보기 전까지 절대로 무슨 일이 없도록 할 테니까. 이 모든 것은 언제고 폐하, 아니 나를 아껴준 그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그날 내 직접 죄를 청할 테니까.”


“예? 아니, 그게 무슨.......!”


타악- 치이이이익-


“저, 전하!”


그렇게 섬섬옥수와 같은 손으로 제 곁을 밝히던 횃불을 든 이의 손을 쳐내니 떨어진 횃대가 물에 잠기며 빛이 사라졌다.


찰박- 찰박-


오직 어둠만이 자리한 물살을 헤치며 다시금 이들에 손에 이끌려온 장안성의 지하통로를 되돌아가는 풍씨의 마음은 오직 하나 간절함 뿐이었다.


“뭣들 하느냐! 찾아라! 어서 뫼셔오란 말이다!”


“하, 하오나 대피용으로 만든 이 지하수로의 그 구조가 미궁과 같은지라 지도를 보지 않고 서는.......”


“돌아온 길도 기억을 못 하느냐! 거기에 미궁이라도 비단 왕후전으로 연결된 출입구는 하나일 것 아니냐! 일대를 헤집어도 좋고, 출구가 코앞이니 다시금 바깥에서 불을 붙이고 들어와도 좋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를 뫼셔 와야 한다! 이리되면 지호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온 호 장군을 뵐 명목이 없으니, 내 어찌 그분 앞에 이 소식을 전한단 말이야!”


“예!”


“어떻게든 찾아라!”


“전하를 찾아!”


그렇게 어둠 속에 돌아온 길을 되짚어가는 이들이 어둠만이 그득한 지하수로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덜컹-


“불부터 붙여라! 너는 호 장군께 소식부터 전하고.”


그들 중 일부가 문을 박차고 졸지에 밝은 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내니 황궁을 수호하는 번쩍이는 갑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그 정체가 궁을 지키는 위사들의 일부가 장안성에서 멀지 않은 숲속 오두막 문을 열고 나오니 그에 다급한 움직임을 보인 이가 찾은 곳엔, 이국적인 갑주 위로 그 얼굴마저 온전히 덮어버린 투구를 쓰고 있는 한 인영이 말을 매어놓은 채, 날카롭게 비려진 창 한 자루를 손질하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 시각.


옹주정을 세운 혁명의 동지요, 새 시대의 문을 열었던 수십 명의 관료들이 하나같이 승상부에 모여들어 있었다.


한창 제 딸을 찾겠다 주변을 휩쓸며 왕후전으로 달려간 풍방의 소식을 접한 이후, 기어코 왕궁을 지키는 위사들마저 그의 출입을 막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들은 실로 허망하고 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자신들이 이룩한 정부가 남긴 유일무한 유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대의, 우리의 도의, 우리의 이념, 우리의 희망, 우리의 이상, 우리의 꿈, 우리의 정체성, 그 모든 것이 담긴 우리가 내걸었던 깃발.”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의 깃발.


곧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고 이곳에 자리한 모두의 목이 잘릴지 모르는 판국에도 이들은 그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불태웠던 그 인생의 모든 기억이 담긴 단 하나뿐인 상징에 복받쳐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녕 이 모든 게 우리의 탓인지요?”


“보다 묻고 싶은 것은 어찌하여 하늘이 이 땅에 이 원대한 이상의 실현을 허락지 않는 것인지네. 어찌하여 저들이 우리의 이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며, 어찌하여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그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일까?”


- 반항하는 것들은 모조리 죽여라! 단 저항을 멈춘 이들에게는 그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말라!


- 왕궁이다! 최대한 피를 보지 마라! 승상부에 속한 관료들과 작금의 옹주정에 협력한 이들을 위주로 붙잡아라!


초래한 전쟁의 여파를 도성 안으로 끌고 온 탓일까? 그도 아니면 그 이전에 벌인 통치, 그 자체가 그릇되었던 것일까?


이미 저 바깥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고성, 그에 따른 비명이 얼룩진 비극은 비단 작금의 왕궁 바깥에서 벌어지는 이들 간의 분란이요, 충돌이자, 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성내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부 사족들을 포함해 이쪽의 손을 들어준 상공인들이 맹위병을 조직하여 왕궁을 비롯해 분쟁이 벌어진 외곽 지역의 혼란을 억지로 통제하는 중이라 합니다.”


“이와 별개로 오두미교의 이들이 교인들을 움직여 성내에 불을 지르는 등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으며 그에 감화된 신도들이 저항하는 와중에 다른 세력에 속한 무리들과 연이어 충돌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호족을 비롯한 대거 영향력 있는 이들이 포함된 서원 일대에 군을 배치했고, 사부회를 열어 성내 반란에 대한 입장표명을 밝히니 옹주정은 실패한 정부요, 진국의 몰락을 자초한 정권이니, 그에 따른 적법한 수습은 기존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승상부를 중심으로 한 조당이 아닌 사부회가 논의할 것이며, 빠른 환란의 종식을 위해 무력적 조치를 불사할 것이라.......”


“그렇구만, 군부는?”


“동쪽을 제한 성벽과 군영 일대를 점거하고 있고, 이미 피난을 떠난 백성들을 붙잡기는커녕 되려 군대를 움직여 폭동을 일으킨 이들 전부를 공격하는 중이라 합니다.”


“우리를 따르는 시민들까지 말인가?”


“공화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적에 협조한 이들 모두를 진압하라는 명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군 시민군의 이들은?”


“전력을 숨기기 위해 도주하는 유민들 사이로 숨어들어 피난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만......., 때가 되면 필경 성 밖으로 도주하게 될 왕후를 사로잡을 것이옵니다.”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일군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비록 이리 붕괴하고 자멸하며 물러가지만, 이는 절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야지, 그리해야 이 환란을 멈추고 협상이 가능해지는 법이지. 그 누구도 이 자유와 공화가 깊숙이 뿌리내린 장안성을, 그에 모든 이들이 얽히고설킨 이 왕궁을 벗어날 순 없는 법.”


그간 맛본 적이 없던 이 고매한 이념을.


실로 몽상이요,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비록 한때나마 그 머리가 깨인 모두의 지지 속에 기어코 만인을 평등한 계몽의 사회로 이끌었던 이 짜릿한 경험을.


언제가 될지 모르나 이 땅에 왕과 황제가 사라지고 계급이 사라진 이래, 기어코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동 사회에 부합하는 이상이 서게 될 천국을 마치 약속받기라도 한 것처럼 이들은, 그리 저들의 머릿속에만 비춘 그 흐릿한 환상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에 미친 듯이 집착했다.


“이 모든 것은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해방을 위함이라. 자유와 공화의 뿌리가 내린 그곳에는 임금도 신하도 노예도 아닌 오직 공민(公民)만이 존재할 것인즉, 왕후의 존재 또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그 어떠한 성역도 남아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보이지 않은 새장의 창살을 부수고 그에 속한 모두가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고 그 끝에는 기어코 제가 갇힌 새장을 탈출하려는 가련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려는 병원, 아니. 타락한 이카로스가 있었다.


“병 승상........”


이상을 향해 하늘 높이 솟구치기 위해 기어코 밀랍에 깃털을 이용해 날개를 만든 그는 천상에 자리한 신이 보는 아래, 기어코 그 신을 거부하고서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새가 아닌 자신이 이 땅을 벗어나 날아오를 수 있다며, 고통 속에 핍박받는 이들이 갇혀있는 이 중원이란 땅에 속한 제국이요, 왕국을 벗어나 새로운 길이 있다며 직접 이들이 보는 앞에 밀랍과 깃털을 섞어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았고, 그에 그 하늘 위에 자리한 신이 되려 자신들을 가둬주는 존재임을, 그간 이 땅에 자리한 법과 제도 그리고 국가를 비롯한 사회 일체가 자신들을 가두는 창살이요, 새장임을 지적하며 그에 구멍을 내고 탈출하여 오직 신들만이 기거할 수 있는 저 하늘 위로 날아가자 모두를 꼬드겼다.


“그러하옵니다, 언제고 이 땅에 왕조는 사라져야 하는바, 우리 모두는 공화국의 건설에 그 모든 것을 바쳐야 할 것이옵니다.”


“유학의 끝에 닿은 이상과 교화 또한 공화국의 건설이었습니다. 작금의 이들이 추앙하는 교조는 결국 왕권에 기대어 권력을 쥐고, 정작 그리 권력을 내린 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르쳐 그 왕을 대리 통치하는 그릇된 방식이자 모순이었사옵니다. 왕을 보좌하고 백성을 돌보기는커녕, 그 둘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발판이자 핍박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으며 기르고 이끌어야 할 가축으로 보았나니, 그 추악함이 한조의 멸망과 유학의 몰락을 불러왔음을 모르는 이가 없사옵니다.”


마치 앵속에 손을 댄 이들처럼, 마약과도 같이 평상시라면 꿈에서도 겪어보지 못했을 환상을 사실로 겪고 나니 그에 취하고 중독된 이들이 실로 그에 젖어든 몽롱한 눈길로 세상을 보았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날개를 만들고 비단 하늘 높은 곳까지 오른 가련한 이카로스는 그것이 신의 자비인 줄 모른 채, 기어코 자신을 어찌하지 않는 신의 의중을 멋대로 판단하여 이들과 함께 날아올라 자신들을 옥죄는 세상을 부쉈다.


우리를 지키는 관리자를 붙잡아 그 우리 속에 가두고, 그 우리를 뛰쳐나갈지언정 본연의 모습을 잃지 말라, 새장이라 불리는 그 우리를 벗어날지라도 결국 날개를 벗어던진 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이야기하는 친우를 거부하였으며, 기어코 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속에 신들처럼 기거하길 원했다.


그러나 저 하늘 위에 솟구친 해 또한 영원하지 않았으니 그리 해 가지며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대저 어디가 하늘이고 바닥인지 알아보기 힘든 어둠 속 별들마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당에 수많은 이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하늘인 줄 알고 날던 것이 부딪쳐 추락하니 바닥이었고, 구름인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통과하려던 것이 우거진 수풀과 잎이 가득한 나뭇가지였다.


그래도 마침내 하늘에 도달했다 저 하늘 위 반짝이는 별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땐, 기쁜 마음으로 이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어찌하여 그리 몰려든 별들이 거진 두 쌍씩 하나의 묶음이 되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땐, 그 눈을 반짝이는 그것들이 자신들을 잡아먹으려 뛰어드는 짐승들이요, 포식자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에 물리고 찢겨 죽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이상을 향한 비상인 줄 알았던 비행은 실상 현실을 향한 추락이었으니 다급히 그에 정신을 차려 이를 벗어나려 하였으나 그에 날개를 달고 날아든 날짐승들을 피할 길이 없었다.


비단 자유와 공화주의만이 이상이 아니요, 이를 향한 날갯짓이자 비행이 아니니 비단 현실에 의미를 두고 안주하는 이들과 달리 다른 이상을 품은 이들이 날아들어 그들을 물어뜯었다.


이카로스 또한 그에 날개를 잃고 추락하며 신음하니 그렇게 제 곁에 남은 수없이 많은 이들의 추락과 희생을 확인한 이카로스(병원)를 구원한 것은 다름이 아닌 다이달로스의 편지였다.


사락-


[저들은 공화정에 반기를 들기 위해,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용할 셈이요. 고로 쓸법한 이를 구슬려 새로이 화폐개혁을 준비하는 보전국과 보전위원회에 사람을 심어 그에 따른 모든 것을 조사하시오. 그조차 부족하다면 왕후를 사로잡으시오. 그리되면, 공화정을 보전할 수 있소. 설사, 공화정을 보존하지 못한다 한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세력의 보전은 물론, 공화의 명맥 또한 끊지 않고 이어질 수 있소.]


물론, 낙양의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일이 틀어졌으나, 비단 다이달로스가 왕명을 사칭해 위사들 몇을 대동하여 왕후를 꼬드겼다고 하니, 그에 성 바깥에 자리한 장소에서 그녀를 붙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지, 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왕궁, 아니. 미궁을 벗어나 우리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저를 가두는 우리요, 새장마냥 저를 옥죄듯 찾아온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정체 모를 협력자인 다이달로스에 감사하며 이카로스(병원)는 그나마 제 곁에 남은 몇 되지 않은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다시금 자신들이 하늘 위로 날아오를 그때를 기다리며, 제 앞에 이 땅의 왕이, 그 딸을 빼앗겨 이성이 반쯤 날아가 있을 미궁의 주인이 당도하길 기다렸다.


콰앙-


그리고 마침내.


“뭐야, 너무 빤하다 싶어서 다른 곳부터 뒤지고 왔더니만 이제보니 다들 여기 있었네요? 그래서 묻는 말인데, 내 딸 어디 있어요?”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왕이 찾아왔다. 미궁의 주인이요, 자신의 딸 아리아드네를 아끼는 미노스가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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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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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33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9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8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2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6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62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3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50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9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1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9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5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8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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