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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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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4
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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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0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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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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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0쪽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DUMMY

펄럭- 사락-


그와 더불어 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서찰이 떨어져 내리니, 그 끝에 풍방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덜컹-


“국상 어른, 어인 다급한 걸음이신........”


“순우경에게 일러 적미군 1만을 이끌고 서진해서 장안 근처에 있으라고 전해! 지금 당장-!”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호위들 준비시키는 동안 갑주부터 가져와, 음?”


이에 그에 걸음을 확인한 식솔들이 그에 곁에 모여들었고, 그가 내린 명령은 쉬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온화하며 여인과 같은 말씨가 사라진 것 하며 그 고운 목소리가 갈라지다 못해 찢어지는 것까지 돌아가는 상황이 다급해졌음을 확인한 이들의 움직임은 빨라졌고, 그렇게 삼보 일대에 머물고 있던 풍방은 이내 무장을 마친 5천의 병력과 더불어 엄청난 속도로 장안을 향해 내달렸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그를 따르는 식솔들이 우려를 표하는 사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서찰을 건넸던 심복이 조심스레 바닥에 떨어진 서찰을 주워들었다.


[그대가 전한 홍농을 이용한 피난 및 이주와 삼보 일대에 자리한 이들의 재산을 처분하여 수용하는 낙양에 대한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었음에, 이제는 보전국과 보전위원회에 참여 의사를 표하고 가산을 바쳐 눈에 든 뒤에 이쪽의 사람을 심어라. 새로이 주조될 반량전과 비롯한 모든 것을 조사하여 보고를 올리고, 그 과정에서 정리된 가산을 헌납하고 주변의 이들을 구워삶아야 하니 그에 따른 활동비 1억 전을 별도로 지원해주겠다. 또한 더는 궁에 관심을 두지 마라. 안주인에 대한 일은 이쪽이 해결했으니.]


뒷배도 자신들의 정체도 적혀 있지 않은 밀지였으나 누가 보아도 위협적인 것이 확실했다.


막연한 장난이라 하기엔 그 속에 적힌 말의 무게가 남달랐고, 또 막상 쪽지에 적힌 대로 풍방의 곁에 들러붙은 똥파리가 저지른 일을 사주한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도저히 이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혹여라도 무슨 일이 없기를.”


* * *


그렇게 수하 된 이가 그 주인을 걱정하는 동안, 풍방은 비단 거칠 것 없이 내달려 장안에 도착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러나 비단 장안 일대를 내달려 오는 길에 마주한 것은 거진 수천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수의 유민들을 보았고, 그들로부터 이미 무공수를 건넌 계한의 이들이 서쪽의 군량을 보관하는 미오를 위협하며 그 일대를 차지했다는 풍문을 듣고 나니 더더욱 그 속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속력을 더 높일 수 없더냐!”


“이게 최선입니다!”


“빌어먹을, 누구냐? 누구야? 계한의 잔당이냐, 오두미의 족속들이냐 그도 아니면.......”


정체를 모르는 적이 어느덧 제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제가 구상한 대계를 알아내려 하고 있고, 그도 모자라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제 가녀린 여식에게까지 마수를 뻗히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그 이성을 부여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럴 수가.......”


그렇게 장안에 다다랐는데, 비단 성 바깥을 지나가는 인파가 가히 구름 떼요, 바윗돌을 휩쓸고 지나가는 물결과도 같았다.


무우우-


“서둘러라!”


우지지직-


“마차가 눈밭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지 뭣들하는 거야!”


못해도 작금의 풍방을 비롯한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이들의 숫자만 수만, 아니. 족히 십만은 넘어 보였다.


새하얀 눈밭 위를 뒤덮은 사람 떼가 개미 떼로 보일 정도였으니 그에 비단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메에에에- 에에에- 꼭꼭꼭-


나무로 만든 틀에 담긴 양과 닭을 비롯한 짐승들이 연이어 울부짖었고, 보다 귀한 듯 보이는 짐승들이 담긴 커다란 포획틀은 하나같이 고급진 천에 감겨 조심스레 운반되고 있었다.


개들이 사람의 곁을 따랐고, 빼빼 마른 소들까지 그 등에 오만 짐을 짊어진 채 코뚜레를 당기는 인간의 걸음을 따랐다.


이미 통제를 놓친 듯한 장안성은 이미 동쪽에 자리한 모든 성문이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아래 가난하든 부유하는 그에 귀속되지 않은 이들이 한데 뒤엉켜 동쪽으로의 먼 생존을 위한 도피요, 유랑이자 피난의 길을 떠나고 있었다.


펄럭-


“국상, 순우경이 이끄는 적미군이옵니다.”


그리고 그에 머지 않은 곳에 그 두 눈가를 시뻘건 치장으로 물들인 오직 그만을 위한 군대가 가까워진 것이 눈에 들었다.


마치 물길을 건너듯 이리저리 흩어지는 피난민들을 제치며 그 사이를 헤집고 자신의 앞으로 나타난 순우경을 마주한 풍방은 대저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고, 그에 돌아오는 대답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성내에서 서로 다른 의중을 지닌 민중들과 군병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 와중에 성문이 열렸다고? 그 와중에 고관대작이나 부유한 이들을 태운 마차들이 뛰쳐나오면서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졌고?”


순우경 또한 조금 전에 도착하였다고 하였으나, 그리 도착하여 도망치는 이들을 붙잡고 탐문을 해보니 정체 모를 이들의 무장을 한 채, 문루로 뛰어들어 일대를 장악하고 장안의 동쪽 성벽에 자리한 문들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문루의 아래에는 도망을 치겠다 피난을 가겠나 지레 겁을 먹고 난동을 부리던 장안 땅의 백성들이 그득하였음으로, 그와 동시에 수많은 인파가 성문을 점거하고 성밖으로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그 예상치 못한 사고는 마치 공포의 전염과도 같았고, 그나마 억제해온 성내의 불안을 촉발시키는 점화장치와도 같았다.


밖을 나설 수 없으니 매양 장안성의 광장과 장시 일대에서 입씨름과 몸싸움에 심지어는 창칼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값비싼 물가와 솟구치는 살의, 떠오르는 책임론에 대한 비판과 힐난을 비롯한 갈등을 멈추지 못한 채 모두가 각자의 것을 드높이던 차에 기어코 그 모든 것이 터져 나왔고, 그 와중에 불안감에 휩싸인 민중들이 내부 폭발이 아닌 외부로의 탈출을 택하면서 이를 목도한 장안성 내에 급격한 피난의 물결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렇게 한때는 성내에 자리한 이들을 포함에 그 성 바깥에 자리한 정착촌들까지 합하여 못해도 수십만이 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장안성이 이제는 그 외곽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부에 자리한 이들까지 빠져나가는 혼잡한 상황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대는 이 바깥에 자리한 이들 중에 혹여나 마차를 타고 나와 호위를 받는 듯한 일행이 있으면 모조리 붙잡아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요, 반항하면 죽여도 좋으니까, 특히나 계집을 태운 수레는 무조건 확인하도록 하고.”


“국상, 그러니까 그 말씀은.........”


“이 정도 말하면 대충 다 알아먹었을 것 아니에요? 혹여나, 진짜 혹시나 싶은 일이니까 우리 왕후....., 아니. 내 딸이 혹여 장안을 빠져나가는지 아닌지 무조건 확인하라고.”


그렇게 동쪽이 뚫린 장안성 외부에 대책을 마련해 놓은 즉시 풍방은 휘하의 이들과 함께 성내로 진입했다.


예상치 못한 이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화려한 무장과 위협적인 무력 과시와 더불어 오직 외길만을 뚫겠다 그 앞을 막는 이들을 모조리 짓밟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그에 지레 겁을 먹은 이들이 좌우로 길을 터주었다.


“후우......., 이건 진짜로 개판이네요? 정말로 너무하자나, 이건......., 실망스럽기 그지 없잖아! 그간 쌓아 올린 진국의 위상에 맞지가 않잖아-!”


그러나 그리 성내로 들어선 순간 피난민들의 행렬 너머, 성내의 대로변 깊숙한 곳에서는 연이은 충돌과 더불어 끊이질 않은 금속의 파열음이 들려왔다.


화가 치밀다 못해 계집과 같은 말씨의 앙탈이 찢겨 지며 분노에 젖어든 사내의 일갈로 뒤바뀐 것은 그리 제 앞에 펼쳐진 실로 부끄럽고 창피하기 그지없을 내전에 가까울 대로변에서 벌어진 교전 때문이었다.


- 오두미교의 간세들부터 잡아라!


- 우리가 언제부터 죄인이었더냐! 이 모든 것이 다 탐욕스러운 너희 것들 때문이다!


- 폭동이다! 군부가 난을 일으켰다!


- 옹주정을 수호할 이들이여! 우리는 이에 맞서 싸우자! 우리의 공화정을 우리의 재상을 수호하자!


왕궁을 비롯한 조당을 쥐고 있는 승상부를 따르는 이들과 이를 지지하는 민중들이 한패가 되어 폭도들과 충돌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폭도로 지목된 이들은 사이한 도복을 입은 이들과 합류하여 곳곳에 불을 놓거나 창고와 점포를 때려 부순 채, 생존일지 광기일지 모를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딴에 난을 다잡겠다 뛰쳐나온 군부의 이들이 관병들을 이끌고 나타나 성내에 민중들을 비롯한 이들 모두와 뒤엉켜 있었으니, 창칼과 핏물이 오가고 모래와 불길이 오가며 그에 속한 모두가 미쳐 날뛰는 살아있는 지옥도를 내비치고 있었다.


“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이 꼴을 봐야 해요?”


“와, 왕궁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으니, 그리로 뫼시겠습니다.”


그렇게 다급한 병사들의 속에 조금은 먼 길을 돌아가니 곳곳에 자리한 것이 제자백가의 거처요, 서원에 속한 건물들이었다.


그들 중 소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들 중 다수는 바깥으로 나와 이 와중에도 논증과 대담을 벌이고 있으며, 그 와중에 직접 이 문제에 해결을 주도하겠다며 왕궁으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철컥-


“그대들은 신원을 밝혀라! 이 앞은 누구도 지나갈 수 없나니!”


그러나 예상외로 장안에 자리한 왕궁의 머지 않은 곳에 이들의 출입을 막는 사이한 복색의 무리와 군대가 있었다.


그 수는 적었으나 기세는 맹렬했고, 그러한 이들 뒤에는 각기 관헌에 복색과 유림의 복색을 한 이들이 제각기 그 손아귀에 칼을 쥔 채,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맹위병, 아니 오수병이 왜 여기에 있어?”


과거 한조를 이끌던 낙양 정권이 자멸할 당시 관민이 충돌하였고, 홍건적의 기원이 되는 공자를 따르는 이들이 발흥했는데, 그 와중에 맹자를 따르는 이들 또한 생겨나 오수전을 녹여 만든 무구를 걸쳐 저와 뜻을 같이한 이들을, 특히나 그에 속한 상공인들이 저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병들을 헌납하여 무장시켰던 것이 맹위병이자 오수병의 기원이었다.


그 맹위병이자 오수병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비단 맹자서원의 주인이며 제자백가들을 이끄는 으뜸의 학종인 그 우두머리가 돌아왔다는 뜻이 되었으니, 이는 지난날 그에 대한 의구심을 표한 자신과 충돌했던 이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리였다.


저벅-


“그러는 그대야말로 이 무슨 무례인가? 군대를 이끌고 왕궁으로 침입하려 하다니, 실로 불경한 일 아닌가?”


그렇게 가뜩이나 갈 길이 바쁜 풍방의 앞에 갑주를 걸친 갑훈이 기어코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또한 이미 한 차례 얽힌 전력이 있으니 마냥 풍방 앞에 나서는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막상 돌아가는 상황이란 놈이 지난날의 제가 풍방과 얽히며 밝힌 입장과는 꽤나 다른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우리 어르신 진짜......., 내가 지난날에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자꾸 거슬리고 의구심 가는 이런 짓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때 내게 그랬잖아? 다 떠났다고, 근데 이게 뭐야? 맹자의 사상을 따르면서도 국가에 충성하는 상공인들, 다 떠나고 없다더니, 어째 다 여기 모여 있었네?”


“이건....., 오해일세.”


물론, 갑훈의 입장에선 진실로 억울한 것이 맞았다.


지난날 제게 속했던 맹위병들을 비롯해 제게 충성하던 상공인들은 포홍이 확실하게 내수사다 뭐다 하여 빼돌린 것이 맞고, 작금에 모여든 이들은 비단 옹주정의 밑에서 일했던 운반업자에 세금 징수, 특산 매매를 하는 공상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막상 옹주정이 대책 없이 무너지면서 졸지에 이들의 입지가 붕 뜨게 되었는데, 거기에 하필 전쟁을 일으킨 계한과 협력했다는 과거 때문에 그에 반발하는 민중 세력들에게 죄인이요, 배신자이자 매국노로 낙인이 찍힌 마당이라 일찍이 상계를 통합하여 그 모든 이들을 휘하에 두고 있던 진 국상 풍방의 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민중의 지지를 잃은 탓에 그리 창칼을 들고 일어난 폭도들에게 그 목숨이 노려지고, 그렇다고 더는 옹주정에게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앞서 말하였듯 돌아갈 곳도 없는 이들이 결국 의지할 수 있는 이는, 지난날 관민의 갈등을 비롯한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충돌로 몰락한 낙양의 선례를 남긴 맹위병들의 지도자요, 사인임에도 상공인들을 보호하는 포용심 넓은 갑훈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아, 오해....., 그렇지. 이게 다 오해지. 근데요, 어르신.”


촤아앙-


“........!”


이에 그 눈을 부라린 풍방은 짐짓 이해한다는 듯 그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무심한 얼굴로 칼을 뽑아 들었다.


“장난질도 어디 정도껏 해야지, 그것도 적당히 해야 받아주지, 안 그래요?”


“지, 지금 어딜 감히 대진의 학종 앞에 무도히 칼을 뽑느냐! 뭣들 하느냐! 스승님을 지켜야 한다!”


채재재재쟁-


“개 버러지만도 못한 사족 나부랭이들이 감히 대진국의 승상 앞에 칼을 뽑아? 뭣들 하느냐! 모조리 제압해라!”


채챙- 채재재재쟁-


그 순간에, 이를 목도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고 상황은 더더욱 극적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네! 정말 이럴 셈인가! 이건 자멸이야! 자멸!”


“자멸이고, 나발이고 지나가겠다는데 길 하나 안 비키고 오만 지랄을 떨면 내가 가만히 있겠어요, 지금?”


“그러니까 옹주정의 문제는 평화롭게.......”


“이 씨발, 노친네. 진짜 오냐오냐 하니까 뒤질라고, 너 내가 지난번에 병원 놈 감싸주지 말라고 했지? 어-!”


“막아라! 놈이 스승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


“이 환관 밑이나 닦던 흉악한 간적!”


푸욱-


“.......!”


그 와중에 이미 제 딸의 안위에 이성이 반쯤 날아간 풍방이 갑훈에게 다가선 것이 발단이었다.


무의식중에 이 나라의 으뜸가는 학종이요, 그런 진나라 학문의 영수이자 한조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그 마지막 유림과 사족을 챙긴 시대정신이나 다름이 없는 정신적인 지주를 지키겠다 그에 과잉적인 충성심에 저도 모르게 칼을 내지른 선비 하나가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국사아아아앙-!”


그 순간, 뭐에 홀린 듯 겁에 질린 선비는 어느덧 제가 내지른 칼에 그 팔뚝이 베인 것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는 여불위가 천천히 자신의 손에 자리한 만곡도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시간은 느려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흉신악살마냥 변해버린 이 시대의 여불위가 기어코 그 칼을 자신에게 휘두르는 것을 보았음에 도저히 그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푸화아아악-


“모조리이이 죽여라아아아아-!”


그렇게 제 시선 아래로 틀어박힌 만곡도의 도신 너머로 시뻘건 핏물이 터져 나왔고, 그와 더불어 그런 풍방의 뒤에 자리하던 이들 수천이 창칼을 앞세우며 쓰러지는 자신과 그 너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질세라 갑훈을 비롯한 사족들을 지키고자 무장한 병력을 앞세운 오수병들 또한 앞으로 뛰쳐나오니 그리 뒤엉킨 이들의 살육전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된다! 아니 돼! 이러면 낙양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관민이 충돌하고 사민이 충돌하며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각자 뒤엉켜 자멸하는 비극이지 않은가! 이러면 천심을 잃네! 이러면 민심을 잃어! 이러면 아니 되는 것이야! 이러먼 아니 돼애애애! 끄흐으윽!”


“뭣들 하느냐! 유림의 마지막 희망이시다! 학종부터 뫼셔라! 어서!”


그 어처구니가 없는 찰나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해, 그날의 쌓인 오해를 보다 일찍 풀지 못해 벌어진 비극 앞에 갑훈은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이에 다급히 그 호위를 자처한 이들이 무장한 병력들과 더불어 강제로 그를 붙잡고 후방으로 이끄니, 참으로 그의 눈에 담긴 이 장안에서 벌어진 혈사(血史)는 참으로 무심하고도 원통한 것이었다.


“낙양 혈사의 재림이로고, 낙양이 붕괴하듯 장안이 붕괴하는 게야. 기어코 민심을, 천심을 잃는 것이란 말이야. 이놈아,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네놈이 허락한 세상 아니더냐? 그 세상이 모조리 무너지게 생겼다, 전조의 전철을 밟게 생겼어. 네놈이 일군 세상이 이리......, 끄흑!”


비단 청류파들을 비롯해 죄 없는 일반 백성들, 거기에 상공인들도 모자라 공자를 추앙하는 공위병(홍건적들의 기원)들이 한데 뒤얽힌 낙양의 한복판에서 이들이 어떠한 비극을 만들었는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로서는 눈앞의 이 혈사는 그날의 악몽을 일깨우는 전조와도 같았다.


휘잉- 서걱-


“비켜!”


그러나 풍방에게 있어 이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퍼석-


“비키란 말이야!”


당장에 중한 것은 제 딸의 안위요, 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마음이었으니,


“끄흐윽! 죽어라! 이 간.....!”


푸으지지지직-


“아흙......, 으그그극! 흐으으으윽!”


“간적! 간적 왜 자꾸 간적이래! 아비가 제 딸이 안전한지 살펴보겠다는데 왜 이리들 지랄들이야-!”


그리 오랜만에 과거로 돌아와 서원 팔교위로서의 잔혹한 칼솜씨를 뽐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후, 후퇴하라! 퇴각하라!”


그렇게 선두에서 미쳐 날뛰는 아름다운 광인의 살기를 감당 못한 사족과 맹위병의 이들은 무너졌고, 이를 목도한 풍방의 호위병들 또한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의 숨겨진 이면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며 그에 절로 복종했다.


그리고 마침내.


철컥-


날카로운 대도를 뽑아 쥔 채,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위사들이 줄지어 그 앞을 막고 있는 왕궁의 앞까지 당도한 풍방은 이내 지난날을 회상하며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기분 좋은 궁궐 나들이는 아니네요. 편안하면서도 정갈한 옷은 아니라서.”


“송구하오나, 부름이 있기 전까지는 들어가실 순 없사옵니다.”


그러나 그 힘겨운 미소가 진실로 지금보다 더 힘겨운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알기에 위사들은 짐짓 궁궐 앞에 모여든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온 풍방을 달래며 애석한 듯 거절을 표했다.


“그래요? 그러면 뚫고 가야겠는데?”


“국상! 어찌하여 무례를 범하십니까!”


“무례라, 무례. 그래. 내 딸, 아니지. 왕후마마를 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성 내외로 혼란이 가득합니다. 사적인 만남이야 추후로 미루시고 부디 예서 멈추시지요. 간곡한 청입니다. 예서 멈춰주십시오.”


그도 모자라 화도 내보고 부탁까지 해보았으나 그럼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후후훗, 막연한 상상이지만 만일 내가 궁에 들었을 때, 저치들이 나를 죽이려 들거나 붙잡아 옥사에 넣는다면 그 또한 볼만할 거야.”


“국상! 제발, 제발 돌아가십시오! 왕후마마의 안위는 저희들이.......!”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돌아가요? 그리고, 알죠? 나, 서원팔교위잖아? 한때 일국의 도성 뒤집었던 거 우습게 뒤집었는데, 그런 인간이 이리 칼을 뽑아 일을 저질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봐?”


그렇게 다시금 승리자로서 왕궁에 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한 풍방은 이내 기분 좋은 얼굴로 마치 스스로를 다잡듯 기세를 다잡았다.


“할 수 있어요, 뒤집을 수 있어요. 나는. 실로 함께 하자고 마음 먹었던 사위가 내게 등을 돌렸고, 그런 나처럼 소외된 이들 중에 그나마 순진무구하게 나를 따랐던 하모가 죽었어도, 그 와중에 고작해야 나보다 못한 일개 재상 놈이 주제도 모르고 설쳐 내 그간 준비해둔 모든 것을, 그에 따른 안배를 무너트리려 해도 나는 그때, 그날처럼 스스럼없이 일을 저지를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저지르고 볼 생각이에요, 그게 누구던 이 풍방을 건들면 어찌 되는지, 다시금 모두의 앞에 보여줄 생각이니까. 다시금 더한 혼란과 난세가 찾아온다 한들, 상관없어요. 모조리 정리하면 그뿐이니까.”


파악-


“오, 온다! 막아-!”


그렇게 궁을 지키는 위사들 앞에 날아들 듯 내달린 풍방의 만곡도가 드리워졌으니, 이내 그 육중한 대도가 기어코 일국의 재상을 뛰어넘는 재상을 향해, 죽은 자들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여불위의 이름을 품은 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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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62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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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9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9 2 23쪽
»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50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8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6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5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7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9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1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7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20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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